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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177화 (177/206)

제177화

episode(18) 흑아(黑兒)#3

일본의 대표로 제법 군기를 잡았는지, 히로시가 외치자 수백에 달하는 인원들은 그럴싸한 표정으로 자신들의 병장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형님, 제가 만들고 제가 키운 부대입니다.”

히로시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처음부터 내 말을 따라 안재훈을 데리고 올 생각으로 잠입했을 뿐, 히로시는 흑아를 따르는 것이 아니었으니.

그런 히로시는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는지도 모른다. 히로시가 말했다.

“데려오는 건, 실패했지만 아무튼 지금부터는 형님을 모시겠습니다.”

나는 아주 조금, 궁금한 부분에 대해서 물었다.

“흑아에 있었으면, 나름대로 지위와 권위가 보장되는 거 아니야? 왜 날 따르려는 거냐?”

단순한 물음이었지만, 히로시의 생각을 듣고 싶었을 뿐이었다.

히로시는.

“형님.”

“왜?”

“그 정도의 강함을 보여주시곤, 그 누가 적이 되겠습니까?”

“…….”

“전 죽기 싫습니다. 하하핫.”

해맑게 웃으며.

“하지만, 형님이 제가 모실 분이 확실하다면…. 그때는 형님을 위해 죽겠습니다.”

먼 미래형이었지만, 히로시는 진심이었다.

자신은 이 세계의 왕이 될 수도, 최강자가 될 수도 없다. 그렇다면 그에 상응하는 강자에게 힘을 보태며 살아남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었다.

나는 그런 히로시를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잘 부탁한다, 꼬맹이.”

“옙!! 그런데….”

“음?”

“지금부터 어쩌실 겁니까? 제가 데리고 온 인원은 지극히 일본에서 절 따르던 사람들 일 뿐, 아직도 흑아엔 엄청난 숫자가 포진하고 있는데요?”

“아.”

히로시의 물음에 나는 행동으로 보이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상태 그대로 조용히 흑아의 본진으로 이동한 나는 히로시를 돌아보며 조용하게 말했다.

그가 들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잘 봐, 이게 내 대답이다.”

[선인의 격 LV.2]

[요선(妖仙)의 기운 LV.1]

두 가지 버프를 동시에 사용한 나는 지면에 거친 진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인간들에게 있어 괴물과도 같은 힘. 나는 그런 힘을 얻은 것이었다.

흑아의 본진에서 그것도 중심 한 가운데서 기운을 뿜어내자, 사람들은 전혀 달려들 생각을 못 하는 중이었으며.

“안재훈 데려와.”

강압적인 모습과 거친 기운에 바닥에 주저앉은 사람마저 보였다. 물론, 수십만에 달하는 인원이 모여있었기에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개중에는 나에게 이를 드러내며, 병장기를 쥐고 달려들 자세를 취하는 사람도 보였다.

“그래도, 제법 쓸만한 인원들로 모아놨네. 짜식, 재능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허공에 용광검을 띄운 채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화안금정에는 제법 쓸만한 배후성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포진하고 있었고.

“저 새끼 잡아.”

“대장이 말한 놈이다.”

“혼자 왔군, 미친 거 아니야? 우리 숫자가 몇인데….”

다짜고짜 공격을 이어가려는 이가 있다면, 수십만에 달하는 병력 한가운데로 뛰어든 나를 어처구니없이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개개인의 무력이 이미 상당한 경지에 다다랐으며, 흑아의 수장인 안재훈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을 이루었을 게 분명했다.

히로시에게 시선을 돌려 잘 보라는 눈짓을 보냈다. 힘으로 제압할 수도 있지만 결국 내 뜻대로 흘러갈 것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었다.

허공에 손가락을 까닥이며 이곳에 존재하는 인원들에게 말했다.

“꼬꼬마들, 안 들어오고 뭐 해? 엄마 보고 싶어?”

그 순간.

도발이 먹혀들기라도 했는지, 히로시와 비슷한 정도의 강함을 지닌 이가 나를 향해 덤벼들었다.

챙-!!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음에도 용광검은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고.

“혼자서는 무리일 텐데.”

“이, 이 새끼가!!”

“전투 중에 도발에 응하는 건, 죽은 목숨이고.”

“빌어먹을 새끼야!!”

“차분하지 못할 거면 흥분도 하지 말 것이고.”

“안 닥쳐!?”

“실력이 없으면 노력을 해야지.”

촤악!!!

허공을 맴돌던 용광검은 사내를 단숨에 베어버렸다. 당연한 소리지만, 이들을 죽일 생각은 없다. 모두가 곤륜산으로 들어가길 바라며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니까.

역날검에 베어진 사내는 인상을 찌푸리곤 뚫어지라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은 나는 주변 모두가 들을 수 있는 소리로 외쳤다.

“재훈아!! 형 왔다!! 안 나오냐!?”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고.

그 순간.

“크하하하핫. 내가 이래서 당신을 따랐었지. 진짜 미친 거 아니야!?”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엄청난 스피드로 내 앞에 나타났다.

“형, 보고 싶었냐?”

“당연하지!! 내가 얼마나 당신을 죽이고 싶었는데!! 민재 형의 복수는 지금 내 손으로 끝내겠어.”

“여전하네, 아직 중2병 덜 나은 것도 그렇고?”

“…….”

부하들 앞에서 어린애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 화가 난 듯, 안재훈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얼굴이 시시각각 붉어지는 중이었다.

나는 그런 안재훈을 계속해서 도발하기 시작했다.

“네가 이렇게 개망나니짓을 하면 민재 씨가 슬퍼하지 않을까?”

“헛소리하지 마.”

“민재 씨는 널 친동생처럼 아꼈을 거야. 너도 알잖아?”

“인제 와서 무슨 개수작이야?”

제법, 성장했네.

도발에 먹혀들지 않은 안재훈은 침착함을 유지하며 나에게 물었다. 사실, 나 때문에 권민재가 죽은 거라고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믿고 싶었을 뿐, 알고 있었을 것이다.

멸망한 세계에서 누군가 죽어 나가는 것은 그 사람의 힘이 부족해서이고, 누군가의 잘못이 아닌 채, 수백, 수천만에 달하는 인원들이 죽어 나갔다는 것을.

멸망은 자연재해와 같으며, 인간은 자연재해를 이길 수 없었으니.

하지만.

안재훈은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누군가를 탓하고 싶었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친형처럼 따른 이가 누군가의 실수로 죽었다. 즉, 그 사람이 복수의 동력이 되어 멸망 속에서 자신이 살아갈 힘을 주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장난스레 안재훈을 도발했지만, 시간이 되었다고 느낀 나는 한껏 진지하게 말했다.

“재훈아.”

“……?”

갑작스레 진지해진 내게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기 시작했고.

“형이 다시 한번 말할게. 민재 씨 일은 미안하다. 내가 부족했어. 그리고…. 이대로 부딪히면 네가 모은 ‘흑아’는 전부 죽고 말 거야. 나는 널 죽이고 싶지 않다. 그래도 할 거냐?”

“나는….”

안재훈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을 멈추었다. 몇 초가 흘렀을까. 그는 고개를 들어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울분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민재 형을 살려내!!!!”

쿠콰콰콰쾅!!!

이전과는 다른 힘이 나를 집어삼켰고.

“형은 할 수 있었잖아!! 왜 죽게 내버려 뒀는데!!!”

챙, 챙-!!!

자신의 검을 휘둘렀으며.

꽝!! 꽝, 꽝!!!

자기 주먹을 휘둘러 나를 공격했다.

말없이 안재훈의 공격을 받아냈지만 넘을 수 없는 격차가 존재했기에,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은 채로….

“속은 조금 시원하냐?”

“…….”

용광검을 집어넣은 나는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무언가를 느꼈다. 현 상황에 그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기대고 싶었을 것이다.

아니, 부모를 잃고 보호자가 없는 그에게 누군가 한마디 해주길 바라는 것 같았다.

경지에 다다른 나는 안재훈의 공격에 살의는 전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당연한 소리지만, 권민재를 만나기 전에 걱정한 ‘흑아’와 권민재를 만나고 나서의 ‘흑아’는 그 목적성 자체가 달랐다.

“형이랑 가자. 너에게 형, 누나 그리고 부모님이 되어 줄 사람들이 많아.”

“……”

흑아를 만들어 전 세계를 집어삼키려 했지만 어쩌면 그 행동은 안재훈의 마지막 반항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안재훈을 향해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민재 씨 자리를 대신 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그 자리를 메꾸어주마. 나도 한때는 누군가의 동생이었으니까.”

수십만에 달하는 흑아의 전 인원이 지켜보는 중이어서였을까. 안재훈은 아무런 답이 없었다. 흔들리는 동공만이 그의 심정을 말해주듯.

그때였다.

“아저씨!!! 두고 가면 어떻게 해요!!!!!”

거칠게 울려 퍼지던 내 목소리와는 다르게, 까랑까랑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하, 금방 일어났네?”

“에잇!!!”

임아린은 내 허리춤을 끌어안으며, 비집고 들어온 손으로 나를 강하게 꼬집었다. 황량한 길바닥에 자기를 버리고 간 벌이라나.

“미안해, 금방 해결하고 가려 했지.”

“그래도요!! 아저씨는 포탈을 열지도 못하면서!!”

“하하…. 봐주라.”

“쳇.”

끌어안은 허리를 푼 임아린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엄청난 숫자에 당황하던 것도 잠시.

“뭘 봐요?”

안재훈이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양쪽 볼이 조금 상기된 채로.

역시 이렇게 되는군.

사실, 전투를 벌이려 흑아의 중심으로 뛰어든 것은 적절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이미 ‘명’을 통해 대략적인 미래를 알고 있었고 이것을 흐트러트리지 않는 선에서 움직이는 것이 흑아 전부를 곤륜산으로 데리고 갈 방법이었다.

안재훈은 내심 서운함을 풀고 내게 기대고 싶은 속마음이 있었고. 그를 동요하게 만든 시점에 임아린의 등장은 안재훈의 마음을 돌려놓기엔 충분했다.

속으로 웃음을 지으며, 흐뭇하게 상황을 바라보자,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안재훈이 입을 열었다.

“저….”

머뭇머뭇하는 안재훈이 조금씩 발걸음을 떼어냈고.

“아저씨, 저 오빠 이상해요. 왜 저래.”

“오, 오빠…!?”

임아린의 한 마디에 온몸이 사르륵 녹아든 듯, 그 자리에 굳어있었다. 그러니까, 안재훈은 내 말에 동요해서 마음이 풀려가는 와중에 그녀의 모습에 첫눈에 반해버린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게, 임아린은 곤륜산에서 시간을 보냈고 시관 괴리로 인해 안재훈과 기껏해야 세 살 차이였다. 말이 세 살 차이지 정신적인 성숙함은 어른에 못지않았으며, 좋은 곳에서 아낌없이 자란 탓에 선자(仙子)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외모였다.

열두 살에 불과하지만, 겉모습은 현계의 열두 살과는 완연하게 달랐다.

나는 그런 안재훈에게 물었다.

“같이 가면, 이 아이와 같이 지낼 수 있어.”

“어? 어어어?”

당혹스러움에 그게 무슨 소리냐며, 어버버 거리는 안재훈. 나는 유혹을 하듯,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곳은 신선계이고, 이 아이는 신선과 다름없는 아이야. 같이 갈 기회는 이번이 마지막.”

“어? 아니…. 잠시만.”

마지막이라는 말에 안재훈이 주변을 급하게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이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흑아의 인원들이 보였고.

개중에는 인상을 찌푸리고 상황을 바라보는 이들도 보였다.

강제적인 힘에 이끌려서 모인 것이라고는 해도 자신들을 모은 놈이 저런 놈이었다는 것에 크게 분노하듯.

그런 그들의 기운과 눈빛을 눈치챘는지, 안재훈은 내게만 들리게끔 아주 조용히 속삭였다.

“형…. 아니, 대왕님…. 아버님이라고 부를까요?”

“……시끄럽고, 말해봐.”

이미 어떤 일이 벌어질 줄 아는 나였기에, 안재훈의 입에서 확실하게 듣고자, 그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안재훈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하더니,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곤 내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수습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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