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176화 (176/206)

제176화

episode(18) 흑아(黑兒)#2

나의 말에 침묵하는 사내.

“가족을 포함해 모두를 죽일지, 모두를 살릴지는 당신 손에 달렸습니다. 죽어도 좋고, 살고 싶다면 들어가십시오. 전 모두를 살리기 위해 이런 행동을 하는 겁니다. 믿을지 안 믿을지는 알아서 하시고. 죽고 싶다면 고집을 피우셔도 좋습니다.”

사실, 지금 당장 전쟁을 일으켜 죽는 것보다는 곤륜산으로 들어가 수행을 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었다. 그런데도 고집을 부리는 사내에겐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가 따르지 않는다면 북유럽은 포기하는 수밖에.

흔들리는 두 동공에도 사내는 잠시 생각을 하겠다며, 자리를 벗어났고 그와 동시에 연합의 일원들도 사내를 따라나섰다.

“아린아, 아저씨가 심한 걸까?”

임아린은 희미하게 웃다가 금세, 방긋 웃으며 답했다.

“아니요! 오공 아저씨가 그랬어요. 강한 힘엔 책임이 따른다고. 그 힘을 올바르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강한 신념이 필요하다고요. 아저씨는 신념에 따라 모두를 살리기 위해 한 행동이잖아요?”

“그렇지?”

“그럼 잘했다고 생각해요. 헤헤.”

무엇이 그리 좋은지, 이곳에 온 이후로는 말만 걸어줘도 헤실헤실 웃는 임아린이었다. 그 모습에 혼자 둬서 미안하다는 마음과 안쓰러운 마음이 공존했다.

임아린의 머리에 손을 올린 나는 천천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조금 쉬고 있을래? 한 시간은 열어둬야 하니까. 조금 힘들 거야.”

“괜찮지만, 알겠어요! 전 아저씨 말은 잘 들으니까요.”

“고맙다.”

북유럽 연합원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나는 한숨과 함께 반대편 진영의 흑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 * *

30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다행인지 흑아는 계속해서 병력을 집중시킬 뿐, 마땅한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았다.

임아린이 휴식을 취하며 흑아를 감지하는 중, 나는 몸을 움직여 사내가 있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이미 30분이라는 시간이 흘렀기에 자칫하면 모든 인원이 모여드는 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안에 흑아가 쳐들어온다면…. 어쩔 수 없이 싸울 수밖에 없겠지.

“느긋하게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답답한 마음에 몸을 이동하자, 북유럽 수장들은 말다툼을 진행 중이었다. 아무래도 각자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것 같았다. 조용히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을 땐 수장들은 저마다 자신이 생각하는 말을 내뱉는 중이었다.

몇몇은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내 말을 따라야 한다는 것과 몇몇은 보여주기식인 벼락에 겁먹지 말라는 것. 또 다른 몇몇은 나를 이용해 흑아를 처치하자는 말이었다. 그중에도 침묵을 유지한 채, 상황을 주시하는 건 연합의 수장이었다.

제기랄, 이러다간 끝이 안 나겠어.

곧바로 기운을 내뿜으며 그들을 향해 움직인 나는 목소리 하나에도 지려버릴 것 같은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내가 말한 선택지는 두 가지. 여기서 죽든지, 곧바로 포탈 너머로 넘어가든지였는데?”

“그, 그건…!!”

“이봐. 우리 이야기를 좀….”

이미 그들이 논의하는 내용은 알고 있었기에 들을 필요도 없었다. 지금은 강압적으로 밀어낼 수밖에.

“남은 시간은 26분. 그 안에 내가 말한 두 가지 선택중 한 가지를 고르지 못할 경우. 난 당신들을 죽일 거야. 이곳에서 시간 낭비할 생각은 없으니까.”

내 할 말만을 전한 뒤, 몸을 돌려 이동하려는 찰나.

“이, 이 새끼가!! 감히 우릴 뭐로 보는 거냐!!”

“죽여라!!”

갑작스레 나를 향해 공격하려는 두 사람이 내 등을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연합의 수장인 사내는 그들을 말려보았지만….

“이봐!!! 그마…ㄴ”

이미 사내들은 나를 향해 병장기를 뻗어내고 있었다. 동시에.

부웅-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용광검을 허공에 띄워낸 나는 사내들을 허공에 부유시켰다. 경지에 다다른 내게 용광검을 포함해 주변에 모든 것을 강제로 부유시키는 힘이었다.

화안금정.

화악.

한쪽 눈의 색이 금빛으로 빛나며 두 사람을 지긋이 바라본 나는 조용히 말했다.

“그렇군, 그 정도의 성좌를 배후성으로 삼고 있으니 자신감이 넘칠 만도.”

그들의 배후성은 각각 ‘꺼지지 않는 불꽃’과 ‘굳게 닫은 문’이라는 수식언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었다. 수식언만 보면 누구인 줄 짐작은 가지 않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들을 알고 있다.

요툰의 수르트와 아스가르드의 헤임달.

수르트.

북유럽 신화에서 ‘라그나로크’에서 대성운 <아스가르드>를 결국 멸망시킨 장본인. 그때야 토르나 오딘이 없었기에 가능한 부분이었지만, 현시점에 그의 수식언이 ‘꺼지지 않는 불꽃’이라는 건, 적어도 아직 라그나로크는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이유는 간단하다. 수르트는 아스가르드를 불태우고 자신마저 불태워 끝내 불꽃이 꺼지고 말았으니까.

그에 반면, 헤임달.

이 성좌는 정확히 아스가르드의 태양신이자, 경계를 지키는 문지기이자 가장 하얗기에 빛 그 자체라 알려진 성좌였다. 아버지는 오딘으로 천둥의 신, ‘토르’와 같았지만, 어머니가 달랐고 문지기라고는 해도 그 강함은 태양 신중 최상위권에 속한 성좌였다.

나는 두 사람을 한심한 눈빛으로 흘겨보기 시작했다.

이만한 성좌를 가지고도 이 정도밖에 성장하지 못한 무능함 때문이었다. 물론, 저마다 가능성이 있음에도 무엇을 위해 성장을 해야 하는지, 자신은 왜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지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이들은 주신 급 성좌를 배후성으로 지니고 있어도 성장이 미미할 수가 있다지만….

후, 갈 길이 멀구만. 이대로라면 다음 미션에서 전부 죽고 말 거야. 곤륜산에서의 수행이 확실히 도움이 되어야 할 텐데….

땅이 꺼져라 한숨을 길게 내뱉은 나는 두 사람을 향해 용광검을 움직였다.

쐐액-!!!

엄청난 속도로 쇄도하는 용광검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한 채, 공중을 부유하는 두 사람을 향해 날려져 갔다.

촤촤촥!!!

최대한 힘을 뺀 용광검의 검기가 두 사람의 팔과 다리를 회복 가능한 수준까지 찢어발긴 나는 인상을 한껏 찌푸리곤 그들을 향해 말했다.

“이대로 죽을 거면 죽여주지.”

두 사람은 그제야 자신들이 무엇을 상대하려 했는지를 깨닫고 있었다. 이전에도 자신들보다 압도적인 강함을 보인 나였거늘, 시간이 흘러 자신들도 강해졌다는 착각에 이런 행동을 취한 것이었다.

두 사람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나를 향해 말했다.

“사, 살려줘!! 미안하다, 미안해!! 우리 노르웨이는 포탈을 넘겠다!!”

역시. 힘을 보여줘야지만 움직이는구만.

“우리도 마찬가지다. 사, 살려만 주게.”

“좋아. 잘 생각했어.”

나는 그제야 부유한 두 사람을 지상에 내려놓았다. 용광검의 검기가 그들의 팔과 다리를 찢어발겼지만, 회복 스킬이 가능한 사람에게 치료만 받으면 앞으로의 전투엔 무리가 없이 참여할 수 있는 정도였다.

나는 다른 대표들을 바라본 뒤, 최종적으로 연합의 수장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두 나라는 제 말에 동의했습니다. 다른 분들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연합의 수장이 우레와 같은 소리로 전장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우리는 잠시, 전쟁을 멈춘다!! 이 자의 말에 따라 다음 미션을 대비한다. 모두 포탈을 넘어서도록!”

목소리가 천둥 같은 것이, 그 성좌에 그 후원자구만.

사람들은 일사불란하게 자기 동료와 일행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각자 후방에 있는 이들까지 책임을 지고 포탈을 넘어서기 시작했고.

이윽고, 3분 정도가 잔여 했을 때 북유럽의 모두가 곤륜산으로 이동했다.

나는 곧바로 임아린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괜찮니?”

“네? 네! 이, 이 정도는 멀쩡하죠! 이래 봬도 자아 아저씨랑 오공 아저씨한테 많은 걸 배웠다고요!!”

임아린이 당차게 대답하고 있음에도 나는 알고 있었다. 상당히 무리하고 있음을. 여리디여린 아이의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나는 임아린을 향해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 차정우에게 받아둔 ‘엘릭서’를 건넸다.

“이거 마시면 조금 괜찮아질 거야. 조금 쉴까?”

“헤헤…. 알겠어요. 고마워요, 아저씨.”

엘릭서를 받아 들이킨 임아린이 곧바로 잠에 들며 회복을 시작했고.

요선의 기운.

스아아아아.

임아린이 잠든 시점에 스스로가 감지하기 위해 스킬을 사용했다.

이제 지구상에 남은 인원은 흑아에 속한 이들 뿐. 그들은 전투원만을 영입했기에 대부분 북유럽을 흡수하기 위해 한 곳에 모여들었다.

그런데.

갑작스레 북유럽 사람이 사라졌기에, 그들 또한 혼란을 겪고 있을 것이 분명했고. 나는 지금이 기회라는 듯, 임아린 주변으로 결계를 만들곤 몸을 이동했다.

미성년자로 시작해 나라 하나하나를 집어삼키며, 세력을 부풀린 숫자는 대략, 50만. 그런 그들의 수장인 안재훈. 어린 나이에 멸망에서 살아남았고, 권민재를 친형이라 생각하며 강해진 소년. 그의 나이는 고작, 임아린보다 3살 많은 열다섯 살이었다.

몸을 움직이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이 어지러운 나였다. 그들을 전력으로 받아들이면 50만이라는 숫자가 훗날 나에게 얼마만큼 도움이 될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반대로 그들을 몰살시킨다면 나는 내 목적을 위해 살인을 일삼은 절대 악이나 다름없었다.

젠장…!!

오십 만대 일.

전투를 벌이라면 못할 것도 없었다. 물론 숫자에 장사 없듯, 나 또한 큰 상처를 입겠지만 패배하지는 않을 터. 하지만 그렇게 할 경우, 무리한 전투에 다음 미션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경우가 생겼기에 무턱대고 싸울 순 없었다.

반대로 이들을 죽지 않을 정도로 상처입혀 곤륜산으로 보내도 그 안에서 어떤 행동을 취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결정해야만 했다.

안재훈의 처우를.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은 끝날 새가 없었고 생각의 정리가 되지 않은 채, 곧 그들의 진영에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 순간.

촤릉, 촤르릉.

척, 척척!

최전방에 있는 흑아의 일원들이 저마다 병장기를 꺼내어 나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자신들 외에 다른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하게 적이라는 것이기에 곧바로 반응한 것이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 한명 한명씩을 화안금정에 담았다. 최전방에 있는 인원들답게 저마다 쟁쟁한 성좌를 배후성으로 두고 있었다. 그런데.

히로시? 저놈은 왜 또 저기 있어?

히로시가 최전방의 인원들을 이끄는 대장인 듯, 가장 앞에서 나를 맞이했다.

난감한 표정과 함께.

병장기를 들고 있었다. 딱히 적대감은 없어 보이는 수백에 달하는 인원들. 적대감이나 살의는 없었지만, 모두가 긴장된 표정이 역력해 보였다.

아는 얼굴이 히로시 뿐이었던 나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또 만났네, 히로시?”

“아하하핫. 형님, 빠르시네요.”

갑자기 자신들 흑아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사라진 지금, 무언가를 느낀 건 히로시 뿐만이 아닐 것. 그중에서도 나를 알고 있는 히로시가 제일 먼저 움직여 준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적대감도 살의도 없어 보였으니까.

히로시는 긴장된 표정과 함께, 나를 향해 실실 웃으며 말을 건넸다.

“형님, 저희는 흑아에서도 제1부대. 저는 1부대 대장 키와타 히로시입니다.”

고요한 적막을 깨고 나를 향해 자신이 속한 부대와 이름을 제대로 소개하는 히로시. 그런 히로시는 곧 희미하게 웃었고.

촤르릉.

용광검을 꺼내든 나는 그런 히로시를 향해 미소를 지어냈다.

히로시는 곧 자신의 부대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큰 목소리로 외쳤다.

“전원, 발검(拔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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