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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174화 (174/206)

제174화

episode(17) 상생의 이유#26

격정적인 전투를 끝내고, 모두가 하하 호호 웃으며 연회를 즐기는 상황에 내가 한 말은 모두의 표정을 당혹스러움으로 물들였다.

항상 무표정으로 냉정함을 유지하는 차정우조차도….

나는 적막을 깨고 다시 한번 일행들을 향해 말했다.

“천존과의 이야기는 마쳤어요. 여러분은 여기서 수행을 하다 관리자의 시선을 모두 돌렸을 때, 그때 다음 미션으로 돌입하시면 됩니다.”

관리자의 시선. 말을 그렇다고 한들, 현계와 시간 배율이 다섯 배나 차이 나는 이곳에서 이들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낼지 알 수 없었다. ‘명’을 본 나조차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예측을 할 수 없었기에.

갑작스러운 나의 말에 당혹스러운 건 차정우도 마찬가지였는지, 성큼성큼 다가와 나의 멱살을 강하게 쥐었다. 나는 말없이 차정우를 바라보며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렸다.

차정우가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지? 네놈 혼자서 다음 미션으로 가겠다는 건가?”

“맞아.”

“어째서지? 우리를 수행시키는 것이 목적인가? 네놈의 ‘명’을 위해서?”

“……”

아무래도 일행들도 내 ‘명’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 같다. 뭐라고 해야 할까. 아주 잠시, 입을 다문 나는 차정우와 일행들을 바라보며 나름대로 핑계를 만들어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핑계는 아닌 것. 누군가는 다음 미션으로 나아가야 하기에 그것이 가장 강한 나일 뿐이었다.

“관리자는 이번 미션으로 내부, 외부, 죽은 자들 세 개의 세계 중, 두 곳은 멸망을 맞이해해야. 죽은 자들은 조금 특이한 사례긴 하지만 아무튼.”

“그것이라면 네놈의 말대로 이곳에 열쇠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맞아, 지금 내가 하는 말이 그 열쇠야.”

차정우는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멱살 잡은 손을 놓은 채,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미 내부세계에서 예언을 통해 대략적인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 ‘명’을 알고 있는 나였기에 차정우가 예측하지 못하지는 않을 터.

나는 표정을 감추곤 일행들을 향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다들 알다시피, 열쇠는 숨는 겁니다. 이곳은 숨기에 적절한 장소인 건 도은 씨, 영광 씨 두 분은 아시죠?”

“그야….”

“알죠.”

죽어가는 소리가 파묻히는 두 사람.

“숨는 건 천존과의 대화로 해결됐어요. 그럼 그다음은 뭐가 문제일까요?”

“……”

“간단합니다. 남은 하나의 세계에서 적어도 한 사람은 다음 미션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고 의심한 관리자들을 피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야 한다는 거죠.”

차정우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어 나에게 말했다.

“그건 어째서 네놈인 거지? 내가 가도 되는 것 아닌가? 아니면 죽은 자중, 살아남은 저 두 사람이라던가.”

“맞아. 사실, 누가 가든 이상하진 않을 거야. 넘어가기만 하면 되거든. 그런데….”

나는 조금 더 명확하게 일행들이 이해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들이 나의 마음을 알고 더욱 강해져 나를 도와주러 오기를 바라며.

“처음에 각자의 세계는 상생해야 한다는 말 기억하지? 죽은 자들인 요시키와 유금필이 살아있어야 한다는 것도.”

“기억한다.”

“그 이유는 간단해. 천존은 지금 술식을 만들어 이곳으로 오고 있을 거야. 죽은 자들과 내부세계인의 카르마를 사용하기 위해서. 얼마나, 어느 정도를 사용할 줄은 모르겠지만 그 카르마와 술식으로 내부와 죽은 자들의 기운을 숨기는 거지.”

숨는 것이 싫었던 것일까. 차정우는 인상을 조금 찌푸리곤 나를 향해 물었다.

“그게 가능한가?”

“응, 가능해. 이곳은 성좌들도 접근하지 못하는 숨겨진 세계야. 관리자들도 기운 정도는 느끼겠지만 그걸 숨기겠다는 거고.”

“남은 외부인들은?”

“간단해. 같이 숨길 거야. 살아남은 인간은 나 하나. 그로 인해 다음 미션으로 넘어가는 것도 나 한 명.”

“……”

차정우가 입을 다문 순간.

“온다.”

나의 말과 함께 하늘을 향해 시선을 돌린 일행들. 그들의 시선에 닿은 것은 천존과 십이 대선 그리고 강자아였다.

스아아아아.

구름이 낮게 깔리듯, 조용하게 다가온 신선들은 저마다 복장은 틀렸지만, 인자한 미소만큼은 모두가 같았다.

“이들이 수행을 시켜줄 거야. 남은 외부인들은 이곳에서 수행한 아린이와 내가 모두를 이곳으로 보낼 거야. 그럼…. 최종적으로 지구에 남는 건 나 한 명이 되겠지.”

신선들은 말없이 술식을 바닥에 그리기 시작했고, 남은 시간 동안 설명을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는 이해한 표정을 지었고 누군가는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는 중이었다.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아린이를 데려가는 이유는 간단해. 이곳에서 5년간의 수행으로 기운을 숨길 수 있거든. 즉, 관리자들이 봤을 때 아린이는 나와 같은 이레귤러지 현계의 인간도 신선도 아닌 존재가 될 거야.”

임아린은 일시적이나마, 곤륜산으로 향하는 문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수행도 수행이지만, 그 때문에 신공표가 이용하려 했던 것은 그녀가 포탈을 만들어 낼 수 있었기에.

어디서, 어떻게 생긴 능력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임아린이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 분명했다.

임아린이 불쑥 끼어들어 나를 향해 물었다.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아직도 현계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열두 살이 되었다고는 하나, 아직은 어린아이기에 나는 임아린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저씨가 있잖아. 그리고, 나는 널 믿으니까.”

“아저씨….”

다시 헤어져야 한다는 것에 큰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 임아린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는 듯, 금세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나는 일행들과 하나하나 작별의 인사를 나누곤 차정우를 향해 말했다.

“지금은 이별이지만, 금방 만날 수 있을 거야. 밖에서 하루는 이곳에서 닷새니까.”

“빌어먹을 놈. 결국, 네놈의 ‘명’ 때문에 나에게 전부 떠넘기는 것과 다르지 않겠군.”

차정우는 알고 있을 것이다. 다음 미션은 지금까지와는 난이도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아니, 미션은 점점 끝을 향해간다는 것을….

그걸 알고 있기에, 약한 자신을 자책하며 나를 보내주는 것이 분명했다. 지금의 차정우는 나보다 약한 것이 분명했고 본인도 그걸 알고 있었으니.

“그렇게라도 내 짐을 덜어주면 고맙고. 나 먼저 가 있을 테니, 외부, 내부, 죽은 자들은 요괴들의 땅으로 가서 때가 될 때까지 성장을 멈추지 말아줘. 십이 대선과 강자아가 도울 거야.”

“……다음에 만나면 네놈을 뛰어넘을 것이다.”

“그래 주면 고맙지.”

차정우는 그제야 표정을 풀곤 이지은을 향해 이동했다. 남은 건 술식의 완성을 위한 현계인들 모두를 전부 이곳에 데리고 오는 것.

조금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 존재했지만, 그 일은 그다지 힘든 일이 아니었다.

“아린아, 갈까?”

* * *

임아린과 현계로 나온 후, 나는 곧바로 [요선(妖仙)의 기운 LV.1]을 발동해 현계에 남은 생존자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미션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몬스터 게이트’에서 흘러나오는 마물들에게 목숨을 잃은 자들이 많은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게 미션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몬스터 게이트의 등급은 높아지기만 했고 높아진 게이트에서 흘러나오는 마물들은 당연하게 강하기만 했었다.

요선의 기운으로 기운을 느낀 나는 곤륜산에서의 시간 괴리가 현계에서는 꽤 오랜 시간이 흐른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봐야 반년도 안되는 시간이지만.

그런데.

그 짧은 시간 만에 세력을 규합한 하나의 무리가 느껴졌다.

설마?

나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기운을 더욱 집중하기 시작했고.

“아저씨?”

임아린도 기운을 느꼈는지 나를 조용히 불렀다.

“전투가 시작되면 방어 결계를 펴고 있어. 알겠지?”

“쳇, 나도 이제 강하다고요!”

임아린의 투덜거림은 당연했다. 성좌들과 강함을 견주어도 그에 지지 않는 기록자들에게 5년이라는 시간을 수행 받았으니, 어지간한 현계인보다 강할 것이 분명했다.

“어라?”

임아린은 시스템을 이리저리 만져보더니, 곧 나를 향해 물었다.

“성좌 분들의 기운이 하나도 안 느껴지네요?”

임아린의 배후성은 최상위급 성좌. 성좌들이 메시지를 보내던 그때와 다르다는 것을 금세 깨달은 듯, 의아한 표정을 계속해서 내보였다.

나는 임아린에게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그녀도 이곳의 상황을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분명한 현계인이었기에.

“그렇구나, 저들도 우리 인간과 다르지 않네요. 전쟁이라니…. 신선들도 그렇고 왜 싸워야만 하는 걸까요?”

“글쎄. 지금부터 그걸 알아내야지.”

“아저씨라면 할 수 있을 거예요!”

임아린과 대화를 나누던 중.

알 수 없는 기운의 무리가 우리를 향해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를 비롯해 임아린이 느낀 기운도 바로 이것들.

그들도 감지를 할 수 있는 인원이 있었는지, 곤륜산을 벗어나자마자 우리 존재를 느끼곤 다가온 것이었다.

나는 곧 하늘을 향해 시선을 돌렸고.

“저기다!!”

인원들 전원이 검은 복장을 착용하고 무언가의 무리가 된 듯.

경계하고 있군. 저것들은….

나는 가장 먼저 보이는 무리의 선두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선두에 있는 사내를 바라보자, 헛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후…. 어쩌다 저기에 붙은 거야?”

사내는 무리를 이끄는 대장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들의 무리는 한눈에 봐도 이 정도는 아닐 터. 지금부터 전투가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일 것이 분명했다.

간단한 이유로 저들을 이끄는 수장은 나를 적대하고 있으니까.

민재 씨를 봐서라도 갱생할 수 있어야 할 텐데….

걱정스러운 마음에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을까, 임아린이 나의 옷을 슬며시 잡으며 말했다.

“아저씨, 다 잘될 것에요. 걱정하지 말아요! 오공이 아저씨도 항상 그랬어요. 다 잘될 거라고.”

“하하. 내가 꼬맹이한테 위로를 다 받고, 많이 컸네! 정말.”

“꼬맹이라고 부르지 말아요! 저쪽 세계에선 모두가 아린 선자라고 불러줬다고요!!”

내 입장에서 꼬맹이는 분명했지만,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성장한 그녀는 본인이 꼬맹이라는 것을 납득하기 싫은 것 같았다.

하는 행동은 분명 어린아이와 다르지 않지만, 신선들의 수행은 그만큼 고단하고 진리를 깨우치기 좋은 것들이었다. 그 때문에 외적으로 어린아이인 임아린은 정신적인 부분만 놓고 보자면 어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였다.

그 순간.

무리는 어느새 우리에게 근접해 나와 임아린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세 보지 않아도 몇백은 되어 보이는 인원들.

나는 선두에서 큰소리로 외친 사내를 향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었다.

“너 이 새끼, 데려오라고 보냈더니 왜 부하가 된 거야?”

“넌 뭔…. 어? 다, 당신이 왜 여기에…???”

사내의 동공이 크게 흔들리며, 조금씩 뒷걸음질 치고. 그런 그를 바라보던 무리도 자신들이 따르는 대장의 행동에 당혹스러움 보였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듯….

나는 사내를 향해 다시 한번 말했다.

“키와타 히로시, 죽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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