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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172화 (172/206)

제172화

episode(17) 상생의 이유#24

까앙-!!!

거친 파공음이 공기를 터트리며 나아갔다. 그것은 누구도 본 적이 없는 힘으로 신선, 요괴, 죽은 자, 인간의 힘이 합쳐진 미지의 힘이었다.

나는 단 한 번에 끌어낸 강대한 힘에, 몸이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었고 흔들리는 동공으로 ‘태극혜검’의 마력과 이랑 진군 최후의 공격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쿠구구구.

주변은 초토화 되어 이미 신선과 천인들은 보이지도 않는 상황. 이 전투의 행방이 신선과 천인 간에 승기를 결정하리라.

이유? 물어볼 것도 없었다. 거대한 전장에서 이랑 진군이 가진 힘이 이탈한다면 시계추의 균형은 말도 안 되게 흔들리고 말 것이 분명했으니까.

정령화도 오래 써먹지는 못하겠군, 다른 힘을 얻어야 할 텐데.

마력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팔이 사라지자, 문뜩 안정적인 힘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게 LV이 상승해 1분에서 3분으로 늘어난 시간이 분명했음에도 내 힘에 한계는 분명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번엔 이랑 진군이 지쳐있었기에 다행이지, 여차하면 정령화가 끝난 시점에 나는 죽었을 테지…?

나는 멍해진 표정으로 흩날리는 연기를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와 이랑 진군의 거친 마력 파동이 사라진 뒤.

아무것도 없는 광활한 평지가 나와 이랑 진군 두 사람이 부딪힌 흔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쿠구구구.

땅의 흔들림이 잦아지기 시작했고.

화안금정에 비친 이랑 진군이 서서히 앞으로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살의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발걸음.

나는 발걸음이 들려오는 방향으로 용광검을 고쳐 들었다. 정령화의 시간은 끝났지만 나는 아직 약하다고 할 순 없었다. 당연하게도 지칠 대로 지친 이랑 진군이 살아있다고 한들, 절대 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

이것이 오만함이라고 할지언정 내 ‘형’을 만나 따지려면 이곳에서 질 수는 없었다.

척.

거친 숨을 내뱉으며 바닥에 꿇은 한쪽 무릎을 일으켜 세웠다. 동시에.

“대단하군. 너무나도 강한 힘이야. 삼안에 잠식당해 정신이 날아갈 것 같았거늘, 오히려 강대한 마력 덕분에 정신이 들었다.”

이랑 진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삼안의 힘을 사용해 정신을 부여잡는 게 고작이던 그가 말끔하게 정신을 차린 채로.

모습을 드러낸 이랑 진군은.

은빛으로 빛나는 삼첨창이 아닌, 검게 그을린 모습이었다. 입가에 묻은 검붉은 핏물의 흔적과 여기저기 난자되고 갑옷은 이미 맨살이 된 지 오래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이면서도 멀쩡하게 서 있는 이랑 진군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미 지칠 대로 지쳤을 거야. 겉모습에 속지 말자.

이랑 진군이 말했다.

“자네의 거대한 마력 덕분에 아주 잠시지만 삼안을 통제할 수 있겠어.”

“삼안? 이마의 그 눈인가?”

“그렇다. 이 힘을 사용하면 정신을 잃기 일쑤였으니….”

“그래서? 그 힘을 흡수했다는 건가?”

“아니, 아니지. 나는 그대의 공격을 버틴 것뿐, 흡수는 이 삼첨창이 했다고 보면 되겠군.”

“즉, 삼첨창과 당신은 곧 하나이니 삼안의 힘을 창이 뒷받침해 준다고 보면 되는 건가?”

“아주 말이 안 통하는 사내가 아니군.”

“……”

딱히 궁금하지는 않았지만,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이랑 진군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자넨 왜 신선들을 돕는 거지?”

뜻밖의 질문에 당혹스러움을 비춘 것도 잠시, 나는 이랑 진군을 향해 당당하게 말했다.

“내 ‘명’을 위해서.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살아남기 위해서가 옳겠군.”

“그런가…?”

삶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법. 살아남기 위한다는 말은 그 무엇에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나의 의지가 깃든 말이었다. 그 점을 알아챈 이랑 진군은 무언가 씁쓸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이 전장에서 나를 영면(永眠) 시킨다면…. 우리 천인을 비롯해 요마계의 요괴들도 같은 생으로 태어난다.”

“그게 무슨 말이지?”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 우주는 여러 번 반복해왔다. 그 우주에서 무한한 환생이 이루어졌지. 자네의 눈을 보아하니 손오공과 연관이 깊나 보군. 그자를 빗대어 말하면 이해하기 쉽겠는가?”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듣지 못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손오공은 전전 우주에서 망나니였다네. 그때도 화과산의 왕은 분명했지만, 칭호는 필마온에 그치지 않았지. 한데, 그다음 우주에서는 어떻게 되었는지 아는가?”

“그야….”

“손오공은 전 우주에서 제천대성이 되었고 그와 동시에 삼장과의 미션을 통해 투전승불(鬪戰勝佛)이 되었어. 성장한 것이야.”

이랑 진군이 말하는 것은 분명하게 세계의 비밀이나 다름없었다. 어째서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지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을 들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다음…. 이번 우주에서 손오공은 자네에게 화안금정 한쪽을 건네고 새로운 눈인 감정안(感情眼)을 얻어냈다네. 즉, 어떠한 계기로 인해 다른 선택을 하고 새로운 길로 나아간 것이지. 다시 한번 성장한 것이야.”

“……”

“자, 이제 내가 처음 했던 질문으로 돌아가야겠군. 자네는 어째서 신선들을 돕는 것이지?”

“당연히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이랑 진군은 쓰게 웃었다. 자신이 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아듣지 못해서였을까. 아니, 저런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말하면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이랑 진군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

냉정할 수밖에 없는 대답이었지만 처음 보는 이랑 진군을 위해 ‘그럼 너희 편을 들게.’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상관은 없다네. 난 자네에게 죽을 테고, 다음 우주에서 또다시 눈을 뜰 것이야. 그때도 나는 천인들을 위한 삶을 택하겠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지?”

“핵심은 간단하네. 자네의 선택으로 인해 수많은 천인과 요괴들은 다음 우주에서도 같은 생을 반복한다는 것이야.”

“그게 왜 나 때문이라는 건지 모르겠군.”

이랑 진군은 말을 쉽게 알아듣지 못하는 날 위해서였을까. 아주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떼어냈다.

“이 전쟁에서 이긴 진영은 신선들이 되겠지. 그들은 다음 우주에서도 모든 걸 기억하는 기록자가 될 것이야. 한데, 이미 패한 자들은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설마….”

“패한 자들은 이번 우주에서의 기억을 모두 잃고 같은 생을 반복한다네. 그 후, 승리한 신선들의 왕이 선택이 이루어진다네. 셋.”

“셋?”

“진영별로 전 우주를 기억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총 셋.”

“……”

이랑 진군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나는 조금씩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저건, 한탄이다. 무한한 삶을 반복하는 패배자의 말. 즉, 구원을 바라는 것이었다.

“운이 좋게도 나는 전 우주를 비롯해 그 전 우주에서의 기억이 남아 있네. 선택받았지…. 아니, 이걸 선택받았다고 할 수 있는가? 나는 벌을 받는 거네. 지키지 못한 자. 남겨진 자….”

“그런….”

“나는 계속해서 신선들이 기록자로 남는 걸, 바라볼 수밖에 없었네. 성장하는 손오공과는 달리 이 삼안조차 통제하지 못하니까.”

이랑 진군은 넋두리를 전하는 것 같았지만, 그의 표정을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저건 고통이고 슬픔이었다.

“나는…. 내가 지켜야 하는 옥황을 지키지 못했고, 내 사람들을 계속해서 보내야 했네. 어째서 내가 선택되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나오질 않았지. 지금도 물론이고.”

저것은 이랑 진군의 절규였다. 제발 끝내달라 아는 것 없는 미지의 적에게 전하는 절규. 반복되는 삶 속에서 여러 번 죽으면서 자신의 주군을 지키지 못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전우와 친우를 보내는 그런 삶.

이랑 진군은 계속해서 기억이라는 틀에 갇혀 강요받고 있는 것이었다.

무언가 바꿔보라고.

나는 그런 이랑 진군을 바라보면서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순간.

스아아아아.

이랑 진군이 든 삼청도의 색이 본래의 은빛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색의 변화는 물에 젖듯 창끝에서 서서히 이루어졌다.

“이런, 시간이 없군. 난 다음 생에도 선택받겠지. 만약…. 다음 생에서 자네를 볼 수 있다면, 그로 인해 많은 것들이 바뀔 수 있다면…. 자네는 날 구해주겠나?”

자신을 이긴 사네에게 하는 마지막 부탁. 맞수라 불리는 손오공에게도 하지 못한 부탁을 한낮 현계인인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다. 약속하지.”

삼첨도의 색은 곧 완연한 은빛으로 빛나기 시작했고.

“고맙다. 내가 그대를 기억하겠다. 그리고, 다시 보는 그 순간을 기다리겠다.”

이랑 진군이 모든 눈을 감으며 먼지로 사라져갔다.

후우우웅.

광활한 평야엔 은은한 바람만이 맴돌 뿐,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랑 진군이 쓰게 웃으며 사라진 그 자리에 삼첨도가 굳건하게 꽂혀있었다.

빌어먹을….

정리하자면 간단했다. 반복되는 우주 속에서 누군가는 기억을 가지고 전 우주와 같은 삶을 반복한다는 것….

이 말은.

기록자로 남으려는 천존을 비롯한 신선들은 계속해서 우주의 기록자라는 말이었다. 즉, 천존을 비롯해 대부분의 신선이 나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말.

나는 온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단순하게 나를 이용해 기록자가 되는가 싶었건만, 내 삶 전체를 이용하고 있던 것이었다.

“하, 어디서부터 이렇게 된 거지…?”

혼잣말은 곧 가슴에 비수로 박혀 들었고.

“아무도 믿어선 안 돼. 내 일행들 말고는…!!”

이해할 수 없는 분노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누구를 향한 분노였을까.

신선? 천존? 비밀을 말하고 사라진 이랑 진군? 내게 ‘명’을 부여한 형?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끝과 시작은 다시 한번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 * *

전투가 끝난 뒤, 버프를 사용한 반동이 전신을 강타했다. 오늘만 해도 두 번. 지나치게 강한 힘을 사용한 끝에 남은 건 엄청난 힘의 반동이 있었고.

그 반동은 내가 그동안 쌓아온 ‘카르마’마저 갉아먹고 있었다.

누구를 위한 삶일까.

한참을 광활한 평야에 머물다 의문과 함께 자리를 이탈한 나는 곧바로 천존을 향했다. 전쟁은 이미 이랑 진군을 잡아놓은 시점에 신선들의 승리로 끝났을 것이 분명했다.

대장군 중, 두 사람인 나타와 이랑 진군이 빠진 시점에 십 이 대선들이 마무리를 지었을 테지. 그 밖에 다른 대장군들이 남아있다고는 해도 전력의 최고인 두 천인의 이탈은 작지 않은 타격이었을 것이다.

나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천존을 향해 물었다.

“더 시킬 것이 있습니까?”

“허허, 벌써 왔는가. 상대하기 힘들었을 것인데, 자넨 성장이 빠르군. 자아에게 수행 받을 때만 해도 약하디 약한 현계인이었거들.”

“과거의 이야기는 됐습니다. 이야기를 마무리하시죠.”

“좋네.”

천존은 소탈하게 웃으며 지팡이를 땅에 내리찍었다.

쿵!

지팡이가 바닥을 찍는 그 순간.

나는 알 수 없는 공간에 천존과 둘이 남게 되었다.

“이곳은…?”

“내가 만든 공간이네. 나는 기록자로서 전지한 힘을 가지게 되었으니, 이 정도 힘은 아무것도 아니지.”

빌어먹을 노인네,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이미 불신이 가득한 나는 천존을 노려보다가 금세 표정을 풀었다. 그들이 나를 이용했다면 나 또한 그들을 이용하면 그만이니. 내게 득 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만 했다.

천존은 여러 번의 우주를 겪은 전지에 가까운 자.

그에 비하면 나는 한 번인지 두 번인지 모를 생을 산 현계의 인간.

조그마한 행동에도 천존은 모든 것을 파악할 것이 분명했다.

나는 말없이 스킬을 발동했다.

이 전이었다면 화안금정과 함께 사용하느라 한쪽 눈에만 개안이 되었지만, 지금은 화안금정이 아닌 오롯이 두 눈에 집중하고 있었다.

[스킬, [칠정안(七情眼) LV.MAX]을 발동합니다.]

양쪽의 두 눈이 무지갯빛으로 빛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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