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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169화 (169/206)

제169화

episode(17) 상생의 이유#21

핏빛의 감정안과 금빛의 화안금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손오공은 칠정안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미 MAX에 다다른 두 눈이 존재했다. 한데, 이 안의 기척을 느낄 수도 볼 수도 없다니.

조금씩 힘이 빠진 채, 생각에 잠긴 손오공이었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막내를 구하러 가야겠다. 버틸 수 있겠느냐?”

막연하게 느껴지지 않은 기운 때문에 자리를 벗어난다니. 오능, 오정 그리고 옥룡은 저마다 한 마디씩 거두기 시작했다.

“대사형!! 지금 벗어나면 위험하오. 막내가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대사형만 못할 것인데….”

“맞소! 어찌 현계의 인간을 그리 믿는 것이오!”

오정과 오능이 반고부를 막아서며 소리를 바락 질러댔고.

“스승님을 볼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지만, 이 힘은 우리끼리 감당하기엔 너무나 거대하오!!”

옥룡은 자신감이 떨어진 채,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실, 손오공도 알고 있었다. 아무리 강해진다고 한들 제 강함을 따라잡으려면 한참이나 남았다는 걸. 그런데도 그는 믿고 싶었다. 스승과 메시지를 주고받았고 만나게 해준다는 것을.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지만….

“천존과 강자아. ‘명’을 부여받은 그들이 그렇게나 감싸고 돈 이가 막내다. 그러니….”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여의봉을 거둔 손오공이 세 명의 사제에게 말했다.

“막내를 믿을 수 없다면, 나를 믿거라. 반드시 모두와 함께 스승님을 만날 것이니.”

반고부를 밀어내던 여의봉이 사라지자, 엄청난 힘이 세 사람을 짓눌렀다. 그 힘은 곧 세 사람의 입에서 거친 신음을 터트리게 할 정도로.

세 사람이 동시에 말했다.

“대사형! 얼마 못 버티오!”

“크하아아!! 다 같이 스승님을 뵈러 가는 것이야!!”

“다시 한번 스승님을 내 등에 태울 수만 있다면.”

손오공은 미안한 듯,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벗어났다.

그가 향한 방향은 이 안이 있는 장소로 백룡이 은각을 내려놓은 자리였다.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기에 한달음에 이동했지만.

“어디 있는 것이냐, 막내야!!”

안절부절 주변을 살피는 손오공. 그런 손오공에게 희미하지만 무언가 익숙한 기운이 은각의 사체 위로 맴돌고 있었다.

“여, 여긴가?”

손오공은 곧바로 화안금정과 감정안을 사용해 기운이 맴도는 장소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여전히 이안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익숙한 이 기운들이 그가 사라진 흔적을 내보이고 있었다.

강자아같은 선법을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아주 과거에 선술에 능했던 손오공. 그가 강자아만큼 강한 선법을 내보이지는 못했다. 그러나 최상위 요괴답게 이 안을 찾는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화악!

화안금정과 감정안의 기운을 최대한으로 끌어낸 후, 희미하게 보이는 어두운 구체를 향해 결계를 발동했다.

“강자아 그놈이 있었더라면 쉽게 갈 것을.”

쿠구구구구.

자기 피를 매개체로 생명을 깎아 만든 결계. 이 결계는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만들고 만질 수 없는 것을 만지게 했다.

물론, 생명이란 카르마. 자기 생명력을 부여해야 했지만.

손오공이 만든 가상의 공간이 펼쳐지자,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이 안의 기운과 흔적이 느껴졌다.

거대하지만 아주 작은 구체로 검은 무언가였고 이 안은 그곳에 빨려 들어간 것 같았다.

“여기군. 내가 들어가기엔 위험할 것 같은데….”

아주 잠시, 고민에 빠져든 손오공은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자신이 들어갈 수 없다면 나올 수 있는 출구를 비춰주는 것. 이것만이 두 사람이 멀쩡하게 벗어날 수 있는 길이었다.

하지만.

이 방법을 사용한다면 손오공 본인이 만든 결계에 빠져 전투가 끝날 때까지 나올 수 없게 된다.

“그래도 이 방법뿐이군. 내가 여기서 죽는다면 스승께 죄를 짓는 것이니. 막내 너를 믿으마.”

번쩍!

손오공은 자신의 여의봉을 작게 만들어 귀속으로 집어넣은 후, 두 손을 합장하여 무언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합장한 손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척.

합장한 두 손을 풀어 양손을 자기 눈에 가져다 댔다. 그 순간.

손오공의 두 눈이 더욱 강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핏빛의 감정안, 황금빛의 화안금정. 두 눈에서 실선과 빛이 검은 구체를 향해 나아갔고.

“같은 눈을 가진 너라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번쩍!

환한 빛과 함께 길과 출구를 만들어낸 손오공은 흡족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당장 자신이 도울 수 있는 건 이 정도였다.

그리고.

과도한 힘을 사용한 덕분인지, 손오공은 거대한 돌에 휩싸여 봉인되고 말았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풀리겠지만….

“부디, 사제들을 구하고 네놈의 ‘명’을 이루거라.”

전투의 끝을 보지 못할 것이다.

* * *

손오공이 자리를 벗어나고 몇 분이라는 짧은 시간이 흘러갔다. 거친 핏물을 내뱉으면서도 오능, 오정, 옥룡은 자신의 대사형과 대사형이 믿는 막내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모든 힘을 다해서.

“대사형이 곧 올 것이다!! 버텨라, 버티기만 하면…!!!”

이미 모든 힘을 끌어내 후덕하던 살점들은 연기가 되어 산화한 지 오래였다. 한 눈으로 봐도 돼지 요괴인 오능은 홀쭉해진 상태로.

오정은 그런 오능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우리 사형 삐쩍 말라버렸네!!”

“헛소리할 거면 힘이나 더 쓰거라!”

장난스레 말을 건넨 오정이었지만, 사실 오정도 정상적인 몸은 아니었다. 온몸의 핏줄이 터져 붉은 몸을 지니고 있었으며 반고부에 짓눌려 이곳저곳 터져 핏물이 터져 나오는 중이었다.

옥룡은 그런 사형들을 바라보며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으하하핫. 이 옥룡이 있으니 사형들은 죽지 않을 것이오. 나만 믿으면 됩….”

“닥쳐라!”

“크하아아압!!!”

아무래도 과도한 힘의 사용에 옥룡이 미친 것 같았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고. 손오공이 빠진 시점에 반고부의 힘은 더욱 강대해져 세 사람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버티는 것은 한계. 세 사람은 넝마가 된 몸으로 한마디씩 했다.

“히, 힘이 없다. 마지막이군.”

“사형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바퀴벌레보다 질긴 것이 사형 아니었소?”

“크하하핫. 그렇군. 둘째 사형은 사실 벌레였던 것이오?”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낸 세 사람이 조금씩 희망의 끈을 놓기 시작했다.

그 순간.

“으하하하하!! 전부 죽어라. 죽어버려!!”

신공표의 웃음소리와 함께 반고부는 지상에 닿기 시작했다. 불과 몇 미터. 이젠 정말로 버틸 힘이 남아있지 않은 세 사람이었다.

“제기랄, 스승님은 못 보고 떠나겠구나.”

쩌저적. 파앙!

모든 것을 내려놓은 동시에 오능의 선기인 상보심금파(上寶沁金耙)마저 먼지가 되어 터져버리고.

“대사형은 우릴 버리지 않을 것이오. 컥, 콜록.”

핏물을 거하게 비워낸 오정. 이미 선기는 사라지고 없었지만, 맨주먹을 뻗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사형들. 너무 쫄아 있는 것 아니오? 크하하핫. 누구든지 내 손에 걸리면!!”

“닥쳐라.”

선기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비늘 대부분은 검게 그을려 하얗고 아름답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인 옥룡.

반고부는 곧 자신들의 머리 위까지 다가왔다.

쿠구구구구.

반고부에 금을 만든 시점에 조그마한 힘만 가해도 부숴낼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세 사람은 멍하니 반고부의 거대한 날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반고부에 죽는다면 영혼마저 갈려 나가 다시는 태어날 수 없었고 다시는 회복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세 사람은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빌어먹을 놈들, 한 놈만 죽으면 될 것을 어찌 가만히 있는 건데!?”

“크하하핫. 스승님이 그러지 않았소?”

“죽어도 함께 죽고, 살아도 함께 살자고.”

“쳇.”

쿠콰콰콰쾅!!!

반고부가 지상에 가까워지자, 주변은 초토화되어 모든 것이 터져나가고 있었다. 그것은 오능, 오정, 옥룡도 마찬가지로. 세 사람의 신형이 후폭풍에 휩쓸리는 순간.

극‘파천 신공, 오의(奧義) 파천만뢰공.

사삭, 꽈앙-!!!

콰콰콰쾅!!!!

정체를 알 수 없는 신형이 순간이동을 하듯, 자신들의 앞을 막아서며 반고부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벼락과 같았으며 손오공의 사제들인 그들도 본 적이 있는 것.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오정이었다.

“뇌전(雷電)?”

오정의 말에 이끌리듯 오능과 백룡도 놀라움을 감추지 않고.

“대사형!?”

“크하하핫. 너무 늦지 않았소. 내가 아니었으면 모두가 죽었을 것….”

“닥쳐라.”

손오공의 뇌전과 흡사한 힘이 반고부를 공격했고.

까득, 까드드드득.

은빛으로 빛나는 굴곡진 검이 반고부를 막아서고 있었다. 흙먼지는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고, 오능, 오정, 옥룡의 눈에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

세 사람이 동시에 입을 벌린 순간. 사내는 입을 열었다.

“대화는 처음이죠?”

여유롭게 고개를 돌린 사내의 모습에 세 사람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사내의 눈은 손오공과 같은 화안금정(火眼金睛)을 지니고 있었으며, 손오공이 최근에 개안한 감정안(感情眼).보다 상위인 칠정안(七情眼)을 가지고 있었으니.

긴장한 세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자네는…. 마, 막내 사제인가?”

“현계인이라 들었거늘, 어찌 이런 힘을…!!”

“대사형과 같은 눈이라니. 아니, 한쪽은 감정안(感情眼)보다 상위인….”

당황한 세 사람의 두서없는 말에도 사내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야기는 빌어먹을 신공표부터 조지고 하시죠.”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모습에 오능, 오정, 옥룡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쪽 팔이 없음에도 그에게 느껴지는 기운은 대사형과 비슷하기만 했으니까.

* * *

나는 곧바로 몸을 공중에 띄워냈다.

허공에서 반고부를 막아내려 용광검을 던져놓긴 했지만 애써 수거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힘. 각성을 이루었으니, 이제는 한쪽뿐인 팔로 검을 휘두르지 않아도 되는 경지에 이른 나였다.

어검술, 심검(心劍)

까가가각. 까드득.

허공에 홀로 떠다니는 용광검이 반고부를 계속해서 밀어냈다. 나는 그 모습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강해진 힘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쾅!!! 콰콰콰쾅!!!

극성에 치달은 파천 신공의 오의가 반고부를 향해 벼락을 떨궈냈다.

쩌적, 쩌저적.

밀리기 시작한 반고부에 엄청난 벼락이 쏟아 내리자, 이미 금이 간 반고부는 더욱 격렬하게 틈을 벌리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검 하나만 쥐어도 휘두르는 것이 전부였건만, 팔이 자유로워지자 복합적인 스킬의 사용도 가능해진 나였다.

나는 곧바로 오른손에 성흔, 홍염을 가득 실어냈다.

화륵.

“신공표!!!!”

외침과 동시에 신공표의 위치를 파악해둔 나는 곧바로 홍염을 쏘아냈다. 홍염은 거친 열기를 내뿜으며 브레스와 같이 뿜어져 나갔다. 그리고.

콰앙!!!

엄청난 충돌음과 함께 외마디 비명이 들려왔다.

“커헉…!!”

주인을 잃은 반고부가 힘을 잃기 시작하자, 용광검은 신살의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갈라내라.”

까가가각.

허공을 자유롭게 거닐던 용광검이 반고부를 갈라냈고. 격렬한 파공음과 함께 반고부의 파편이 여기저기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파앙-!!

각성을 이뤄 힘의 상승이 있었음에도 사형들이 힘써주지 않았다면 이렇게 쉽게 부수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는 곧바로 스킬을 사용해 신공표를 향해 움직였다.

[스킬, [축지(縮地) LV.1]을 발동합니다.]

사삭.

신공표에게 순식간에 이동한 나는 홍염에 당한 신공표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끝났어. 이제 포기하지?”

분한 표정을 짓는 신공표. 조금만 더 했다면 목적을 이루는 것은 그였거늘. 신공표가 말했다.

“제기랄!! 네놈은 도대체 무엇이기에 나를 막아서는 것이냐!! 모든 것이 눈앞까지 다가왔거늘!!! 네 이놈!!!”

악에 받친 신공표의 외침에도 나는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했다.

“넌 건드리면 안 될 사람들을 건드렸어. 내 동료들, 사형들 그리고….”

반고부를 박살 낸 용광검이 저 멀리서 엄청난 속도로 다가왔다. 그것은 곧 신공표의 심장에 박혀 들었고.

푸욱.

힘없이 늘어지는 신공표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린이를…!! 죽어, 이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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