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7화
episode(17) 상생의 이유#19
손오공의 외침에 주변을 힐끗 쳐다보았지만, 보이는 것은 없었다. 누군가를 부른 것 같은데….
나는 재빠르게 시선을 돌려 반고부에 집중했다. 너무나도 강대한 힘에 모든 것이 사라질 것 같은 그런 기분. 혼돈마저 베어낸다는 천존의 선기는 말도 안 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이제 시작인 것을. 손오공에게 물었다.
“사, 사형!”
“반고부에 집중하거라! 신공표가 지쳤으니 한번, 단 한 번만 막으면 될 것이다.”
“……”
까가가가각.
물어볼 것이 태산과 같았지만, 손오공의 말처럼 지금 당장 무언가를 들을 수는 없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게 신공표가 사용한 반고부는 우리 모두를 짓이기고 있었으니.
손오공의 갑옷이 터져나가고 부딪힌 것만으로도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영혼 상태인 윤문과 이재신이 흐려지고 뚜렷해지기를 반복했고 주변 일대는 무(無)가 되어 사라지는 중, 나는 있는 힘껏 반고부를 밀어냈다.
도중에 홍염과 천마, 파천의 무공을 사용하고 태극검을 사용했음에도 반고부는 요지부동인 상태. 나는 생각해야만 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뭔가 방법이….
[스킬, [냉정 LV MAX]을 발동합니다.]
위기 때마다 자동으로 발동했던 스킬, 냉정이 나를 돕기 시작했다.
밀리는 와중에도 침착함을 유지한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수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두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를 잡았다.
“그 방법이라면…!!”
기회는 단 한 번. 혼돈조차 베어내는 반고부였기에 이 방법을 사용한다면 죽을지 살지 확실히는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나는 알고 있었다.
이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은 없다는 것을.
나는 손오공을 바라보며 물었다.
“사형, 누가 오는 겁니까?”
두 가지 방법 중 첫 번째 방법에 대해 말하기 위함이었다. 뜬금없는 질문에 손오공이 의아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그 표정을 바라보면서도 형제가 있다면 이런 기분이었을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잠시 맴돌았다. 손오공은 아주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온다. 올 것이다.”
“확실치는 않군요.”
“아니, 온다. 지금 내 귀에 그놈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거든.”
그놈들이라.
확신에 찬 눈빛으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에 손오공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손오공에게 첫 번째 방법을 실현하기 위해 말을 이어갔다.
“이 순간을 타개할 방법이 있습니다.”
“힘으로는 안 될 것이다. 반고부는 천존의 선기이니, 허접스러운 신공표가 사용했다고는 하나, 천존의 선기는 강력하다.”
“알고 있습니다. 해서, 온다는 그분들에게 전음이 가능하십니까?”
“물론.”
“그럼 절 믿고 움직여 주시지요.”
“…… 알았다. 얼마나 강해졌는지 내 눈으로 확인해 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반고부에 밀리면서도 잠깐의 대화를 나눈 뒤, 나는 손오공을 향해 고개를 숙였고 다시 한번 거대한 도끼에 시선을 집중했다.
손오공이 말하는 이들이 언제 올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내가 믿을 건 이것뿐이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난 기합을 내지르며 반고부를 향해 온 힘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하지만.
까가각.
용광검과 여의봉이 갈려 나가는 소리가 들려오며 반고부는 우리를 향해 조금씩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쿠구구구.
손오공의 힘 덕분에 움직임을 막은 것뿐, 당장 반고부 자체는 막지 못했다.
“제기랄, 힘을 너무 많이 사용했더니…!!”
한스러운 목소리의 손오공. 나타, 홍해아, 철선 공주와의 접전으로 대부분의 힘을 사용한 것이 분한 듯….
절대적인 강함을 지니고 있음에도 우레와 같은 목소리를 내지르며 반고부를 조금 밀어내기 시작하는 손오공. 난 그의 힘에 동조해 동시에 이를 악물고 반고부를 밀어냈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일말의 시간일 뿐, 반고부는 신공표의 힘에 동조해 더욱더 우리를 짓이겼다.
“크학…!!”
“큭!”
나와 손오공의 입에서 작은 신음이 터져 나왔고.
“더는 무리. 사, 사라진다!!”
“안 군. 미안하네!!”
윤문, 이재신의 신형이 거의 안 보일 정도로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혼돈을 베어내는 힘을 가진 이 선기의 특성 때문인 것 같았다.
당연하게도 영혼도 베어낼 수 있겠지.
나는 재빠르게 소환을 해제했다. 남은 것은 나와 손오공뿐. 두 사람의 소환이 해제되고 조그마한 균열에 온몸에서 핏줄기가 터지기 시작했다. 나와 손오공은 한계였다.
“빌어먹을 신공표!!!”
손오공을 악에 받쳐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나 들려오는 것은 자신의 목소리가 메아리쳐 돌아올 뿐, 신공표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반고부가 나와 손오공을 짓이기려는 그 순간.
“어?”
쿠구구구.
알 수 없는 힘에 짓이기던 몸이 가벼워지며 반고부를 저 멀리 밀어내기 시작했다. 완전히 밀어낸 것은 아니었지만. 반고부가 밀려나자, 나와 손오공은 동시에 뒤를 바라보았다. 아주 잠깐 고개를 돌리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 잠깐의 시간에 확실히 볼 수 있었다.
“빌어먹을 놈들, 빨리빨리 안 오고 무얼 했던 것이냐!”
손오공의 일갈에 듣는 둥 마는 둥, 하품하는 돼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돼지 요괴로 삼장의 두 번째 제자, 오능이었다.
“대사형, 역시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것이 보기 좋지 않겠소?”
“넌, 이따 뒤졌어.”
“…… 젠장.”
오능이라는 법명을 하사받은 저팔계는 자신의 선기인 상보심금파(上寶沁金耙)를 사용해 더욱 강한 힘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조금씩 밀리던 반고부는 한순간에 저 멀리 밀려났지만.
누군가의 개입을 눈치챈 신공표가 더욱 더 강대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신공표였기에 이 정도가 한계라고 생각했거늘.
손오공은 급박한 목소리로 물었다.
“오정은 안 온 것이냐!?”
“기다려 보오, 대사형. 곧 올 것이니.”
“흥, 네 놈들이 늦은 건 나중에 보자고.”
분노가 서린 손오공의 목소리에 움찔한 저팔계는 두 동공이 흔들리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맞기는 싫은 모양이다.
“대사형! 우린 천인을 돕는 중이었소. 그들과 관계를 끊고 이곳에 온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시오!”
맞는 것이 싫었는지, 자신들이 늦은 이유를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저팔계. 그 모습에도 손오공은 찌푸린 인상을 펴지 않았다.
“나처럼 조용히 지내면 될 것을, 무엇하려 천인을 도왔단 말이냐! 그것도 마음에 안 든다, 이놈들아.”
“스승의 부탁이지 않았소!? 우리는 스승께 귀의해 신선, 천인, 요괴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않기에….”
저팔계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자, 손오공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됐다, 이놈아. 안 때릴 테니 저 도끼나 막아내거라.”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저팔계에게서 터져 나왔다. 정말 맞기는 싫었던 모양이다.
저팔계는 때리지 않는다는 소리에 자신의 품에서 거대한 만두를 하나 집어 들었다. 이 상황에 처먹다니. 돼지는 돼지다.
“힘은 먹어야 나오는 것! 크하하핫. 잘생긴 팔계 님의 힘을 받아라!!”
쿠왕!!!
거대한 만두를 한입에 털어놓은 저팔계가 자신의 모든 힘을 개방해 반고부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온전한 힘을 가지고 있었기에 조금이나마 밀려나긴 했지만….
그것뿐이었다.
“으하하핫. 대사형, 아무래도 여기까지인 것 같소!!”
“널 믿은 내가 병신이다.”
쿠구구구.
저팔계의 힘에 조금 밀려났던 반고부는 분노라도 한 듯, 다시 한번 우리를 찍어 내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힘에 조금 밀려난 것일 뿐. 두 사람이 세 사람이 되었다고 변하는 건 없었다.
그 순간.
“대사형!! 내가 왔소!!”
한 놈씩 차례차례 등장하는 모습에 손오공의 인상은 붉으락푸르락 터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 손오공을 바라보면서도 해맑게 웃는 오정.
아직도 지능은 조금 모자란 모습이었다.
손오공은 오정을 향해 고개를 까닥, 움직였고,
“크하아아압!!!”
재빠르게 반고부를 향해 돌진했다. 저팔계의 등장 때와 마찬가지로 조금 밀려나긴 했지만, 아직도 힘이 부족한 듯, 완전하게 밀어내지는 못하는 중.
오정은 자신의 선기인 항요보장을 사용해 낼 수 있는 모든 힘을 끌어냈다.
까가가각.
용광검을 비롯해 여의봉, 항요보장, 상보심금파 최상위급의 선기와 신기가 있음에도 반고부 하나를 밀어내지 못하는 것이 천존의 선기가 얼마나 강한지를 한순간에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으랴라라라!!”
돼지 요괴인 저팔계와는 다르게 완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온 힘을 쏟아내는 사오정. 오정은 힘을 사용하면서도 나와 눈이 마주쳤다.
찡긋.
……? 저놈이 내 사형인가. 제기랄.
한쪽 눈을 찡그리는 사오정. 아무래도 억지로 막내가 된 나를 향한 인사인 것 같았다. 예의상 목 인사를 한 나는 시선을 피하고자 고개를 돌려 냈다.
“옥룡, 이놈은 어딜 간 것이야!”
백룡마로 변모해 기나긴 미션 내내, 삼장을 태우고 다닌 옥룡. 그는 어느새 백룡마가 더욱 편한 것인지, 백마의 모습으로 지내던 이였다.
“대사형이 요구한 것을 이루기 위해 잠시…. 곧 올 것이오!”
분노한 손오공의 모습에 몸을 떨던 사오정은 상당히 겁이 나 보였다. 나에겐 잘해주던데, 자칫 잘못하면 골로 가겠군.
오정, 오능이 겁을 먹는 모습에 아주 예전에 손오공에게 사기를 친 것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반은 사기고 반은 거짓이니….
괜찮겠지, 뭐.
그때였다.
저 멀리서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하얀 백마가 달려오고 있었다. 화안 금정이 존재하기에 한눈에 봐도 내가 말한 첫 번째 방법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사형~!! 둘째, 셋째 사형! 내가 왔소!!”
느긋하게 달려오는 백룡의 모습에 나를 제외한 세 사람이 인상을 한껏 찌푸리곤 동시에 외쳤다.
“빨리 안 와. 이 새끼야!?”
“으하하핫, 너무 그러지들 마시오. 보고 싶었다는 것 다 알고 있소.”
아무래도 내 사형들은 전부 나사가 빠져 있는 것 같다. 젠장.
백룡은 거대한 도끼를 바라보며 말했다.
“음…. 다시 가도 되겠소? 알다시피 본인은 전투형이 아닌지라….”
백룡의 말에 손오공은 호탕하게 웃으며 살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으하하하핫. 역시 백룡이구나, 죽고 싶으면 가도 괜찮다! 걱정하지 말고 가거라!!”
저게 가란 거야, 말란 거야?
손오공의 모습에 백룡은 들쳐멘 무언가를 바닥에 툭 던지더니, 각 잡힌 목소리를 내며 반고부를 향해 돌진했다.
“내가 돕겠소. 대사형!”
“큭큭.”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오자, 손오공은 나를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다 같이 모이면 즐겁다는 듯. 그러나 그의 미소에는 무언가 씁쓸함도 느껴졌다.
“막내야, 우리가 막고 있을 테니, 네놈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거라.”
“물론입니다. 그럼….”
백룡이 던져놓은 무언가로 이동하자, 힘의 균형 덕분에 반고부는 지상에 가깝게 붙었다. 손오공은 전장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든든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막내가 힘을 쓰겠다는데, 안 도울 것이냐 이놈들아!!”
손오공의 말에 자신들이 낼 수 있는 힘을 모두 끌어내는 오능, 오정, 백룡. 그 모습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나기 시작했다. 장난은 치고 있었지만, 저들은 삼장과 함께한 미션을 클리어한 후, 틀을 벗어난 존재가 되었기에.
오능, 오정, 백룡은 나를 처음 봤음에도 손오공의 말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분신술.”
펑! 펑펑펑펑!!
손오공이 천 명의 분신을 소환했다. 그들의 손에는 가짜지만 여의봉이 들려있었다. 마지막 힘을 짜낸 최후의 보루였다.
“커져라, 여의!”
쿠콰아아아아!!!
천 명의 분신들은 동시에 전장이 떠나가라 외쳤고 천 개의 여의가 반고부를 상대했다. 그리고.
“우리도 질 수 없지.”
오능, 오정, 백룡이 동시에 한 목소리로 외쳤다.
“막내야, 우리를 믿거라!!”
쿠콰앙!!!!
틀을 벗어난 네 존재가 내는 힘은 반고부에 금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멀리서 봐도 한눈에 보이는 미세한 금은 내가 사용하는 방법으로 인해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제기랄, 사형들 잘 부탁합니다.”
나는 혼잣말을 조용하게 내뱉으며, 백룡이 들고 온 무언가에 집중했다. 상·하체가 분리되어 죽음을 맞이한 은각의 시체였다.
“이 방법이 안 되면 두 번째 방법을 쓸 뿐, 해보자!”
영혼 흡수
[스킬, [영혼 흡수 LV.1]을 발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