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3화
episode(17) 상생의 이유#15
이전과는 다른 특별한 눈을 얻었음에도 열세에 몰리는 건 손오공이었다. 분신술을 사용한 것은 조금이나마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생각뿐.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은 들지 않는 그였다.
손오공은 두 분신이 홍해아와 철선 공주를 상대하는 동안 나타와의 전투를 끝내야만 했다.
“막내야, 이놈아. 언제 올 것이냐…!”
사제 간의 정은 없었다. 그러나 자신이 다섯째로 맞이하겠다는 말은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더불어 강자아의 말을 들었을 땐, 이 안은 모든 것의 열쇠가 될 수도 있었다.
화륵!
나타의 불창이 손오공을 향해 쇄도했고, 엄청난 열기와 함께 온몸이 불타는 듯한 고통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손오공은 이보다 더한 열기를 이겨내 화안 금정을 얻은 적이 있었다. 손오공이 말했다.
“그것도 불이라고 사용하는 게냐? 무기도 없는 놈이 어디서!”
팡!! 파앙!!
손오공은 거리를 벌려 자신의 여의봉을 늘렸다 줄이기를 반복. 그 결과 제대로 된 접근을 하지 못하는 나타였다.
“크하악!! 빌어먹을 원숭아, 비겁하게 도망만 치는 거냐!!”
나타의 악에 받친 외침에도 손오공은 한쪽 입꼬리를 올릴 뿐, 계속해서 여의봉을 줄였다 늘리기를 반복했다.
그 순간.
나타의 빈틈이 보이자, 손오공이 외쳤다.
“커져라, 여의!”
쿠웅-!!
화를 참지 못한 나타였기 때문이었을까. 순식간에 엄청난 크기로 변모한 여의의 여파에 나타는 저 멀리 날아가 처박히고 말았다.
콰콰콰쾅!!!
수백 개의 나무가 무너지고 거대한 산에 처박힌 나타. 손오공은 자신의 분신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얼마 못 버티겠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손오공은 곧바로 나타를 향해 돌진했다.
“근두운!”
근두운에 올라타 경이로운 속도를 보이며 나타에게 도달한 뒤.
“이것으로 끝이다. 내리쳐라, 뇌전.”
번쩍.
손오공이 올라탄 근두운이 하늘로 모여들더니, 그것들은 곧 검게 변해 천둥 벼락을 동반했다. 나타가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쿠쾅!!!
쿠콰콰쾅!!!
천둥 벼락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나타 한 사람만을 위해 내리쳤다.
“더, 더! 더 쳐라!! 막 쳐라!!”
쿠쾅!!!
콰콰쾅!!!
허공에 손을 내리긋는 손오공. 그의 행동과 말에 근두운이 쏟아붓는 뇌전은 지독하게 내리쳤다. 주변의 모든 것이 그 형태를 알 수 없을 정도의 힘.
이것은 자연재해라 불러도 무방한 그런 것이었다.
손오공은 화안 금정과 감정안을 사용 중이기에 나타가 죽지 않았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감정안에 비친 나타는 분노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젠장!! 제기랄!! 내 화첨창만 있었어도 네놈은!!!”
온몸이 넝마가 된 나타가 부서진 잔해들 사이에서 몸을 드러냈다. 휘황찬란한 갑옷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뇌전에 당해 몸 구석구석이 검게 그을린 모습.
손오공은 나타를 바라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어냈다.
“화첨창이라…. 그것이 있다고 한들 무리였을 게다. 힘은 분산한 나에게 당할 정도니.”
“개소리마라!!”
나타는 손오공의 말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화염을 가득 실은 주먹을 날려댔다. 날리는 족족 허공을 그어대는 주먹에 이성마저 날아가 버린 듯.
“죽이기는 싫다만, 이 전쟁에서 살아남는 것은 몇 없을 테지.”
꽈앙!!!
손오공은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며 나타를 향해 여의봉을 내리쳤다. 정확하게 머리통 중앙을 맞은 나타는 휘청거리면서도 쓰러지지 않았다.
“끄, 끄아아….”
투신(鬪神) 나타.
천인 중,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최강자이며 싸움에 있어서 그 누구보다 진지하게 임하는 자. 다른 것은 그렇다고 쳐도 전투에 있어서는 엄청난 자존심을 세우는 사내. 그런 사내가 온전한 힘을 사용하지도 않는 자에게 졌다는 것은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죽어라.”
자비는 없다는 듯, 손오공의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길어져라, 여의.”
손오공의 여의가 나타의 심장을 꿰뚫으려는 순간.
“불태워라, 삼매 진화.”
“날려버려라, 파초.”
화륵! 파앙!!
엄청난 열기의 화염이 손오공을 향해 날아오고. 길어지던 여의봉이 경로를 잃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당황하던 것도 잠시.
손오공은 두 요괴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법이군, 이 몸의 분신을….”
홍해아와 철선 공주였다. 두 요괴는 손오공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원숭아, 네놈이 강해지는 동안 우리 또한 강해졌다. 현재의 난, 아버지를 뛰어넘은 지 오래다.”
“오공, 이만 끝을 내야겠군요.”
두 사람의 난입에 머리가 지끈거리는 손오공이었다. 다행인 점은 나타는 전투를 이어갈 수 없다는 점. 하지만 그만한 힘을 사용한 그였기에 두 사람과의 전투는 장담할 수 없었다.
홍해아는 저 멀리 강자아가 있는 방향을 힐끗 쳐다보더니, 손오공을 향해 말했다.
“왔군. 아무래도 현계인들은 진 모양이야. 큭큭.”
홍해아의 말에 손오공은 순간적으로 기척 감지의 범위를 넓혀냈다. 강자아가 있고 죽은 자라 불리는 존재가 임아린을 지키고 있어서 크게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아, 아린이! 젠장!!”
손오공이 느낀 것은 금각, 은각 형제의 기운이었다.
“근두운!!”
재빨리 근두운을 소환한 손오공이었지만….
“어딜! 삼매 진화!”
화륵!
다섯까지 속성인 오행을 전부 불로 바꿀 수 있는 화염계 스킬 중 최상위 스킬인 삼매 진화에 근두운은 갈 곳을 잃고 말았다.
그 순간.
철선 공주가 삼매 진화에 파초선을 휘둘렀다.
후웅-!!!
한 번 부치면 강풍이 일어나고, 두 번 부치면 비가 내리고, 세 번 부치면 태풍이 일어나는 부채. 강력한 선기임이 분명했지만, 삼매 진화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불길이 손오공의 앞을 가로막았다.
“당신은 죽어야 합니다.”
차갑게 식은 철선 공주의 시선이 손오공을 향했다.
“제, 젠장…!!”
손오공은 난감했다. 당장 움직여도 모자랄 상황에 두 요괴를 먼저 상대해야 한다니. 결국 이기는 건 자신이 되겠지만, 그때가 되면 임아린을 포함한 현계인들은 금각, 은각 형제와 신공표에게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계속해서 기운을 느끼던 손오공에게 무언가 희미한 기운들이 한곳에 모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들은 미약하지만 살아있었고 금각, 은각 형제를 따라 한 대 모여들고 있었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가 강자아와 신공표를 중심으로 모여든 것이었다.
“모두 살아있구나, 조금만 버텨다오…!!”
현계인 전부가 살아있다는 생각에 희미한 미소를 지어냈다. 손오공은 두 요괴를 바라보며 금빛과 핏빛의 두 눈을 더욱 빛내며 말했다.
“저 불길이 너희들의 무덤이 될 것이야. 자비는 없을 테니 그리 알거라.”
한순간에 변한 손오공의 기운에 몸을 움칫거린 것도 잠시. 홍해아와 철선 공주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 * *
신공표는 강자아의 결계를 깨기 위해 지독하게도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그것도 이 뇌공편은 천둥과 번개를 불러올 뿐 아니라 그림자와 혼백까지 녹여 버리는 어마어마한 무기로.
훔친 무기이긴 했지만, 살상력이 지나치게 높은 이유로 보관된 선기. 천존의 허가 없이는 그 누구도 사용하지 못하는 무기였다.
“이보게, 사제! 자아야!! 언제까지 막기만 할 것이냐!?”
파앙-!!
신공표는 한마디를 던지면서도 뇌공편을 휘둘러 벼락을 떨궈냈다.
“사형, 이쯤 하시죠!! 당신은 이길 수 없습니다. 모든 이의 명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단 말입니다!!”
“그놈의 명. 개나 줘버리지.”
“사형!!”
강자아는 쏟아지는 벼락에도 결계를 더욱 굳건히 만들었다.
만일을 대비해 임아린을 지키는 유금필이 존재했고 요시키까지 합류한 시점에 버티기만 해도 승기는 자신들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투가 시작된 지, 얼마나 지났을까. 현계인들이 상대하던 금각, 은각형제가 합류하고 만 것이었다. 그렇다는 건….
“아아, 현계인들은…. 안아 이놈아, 어서 오지 못하겠느냐…!!”
강자아는 망연자실하게 신공표의 공격을 계속해서 받아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임아린을 지키고 신공표의 계획을 저지하기 위해 시간을 끄는 것뿐.
“오공, 자네라도 빨리 오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결계를 더욱 강화하는 강자아. 그런 그를 바라보던 두 형제는 비릿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금각이 신공표를 향해 물었다.
“어이.”
“왜 그러지?”
“저 강자아라는 놈. 우리가 먹어도 되겠나?”
“허허, 그래도 내 사제인 것을…. 좋다, 저 결계를 열어주면 먹든 말든 신경 쓰지 않겠다!”
신공표는 금각의 물음에 인심이라도 쓰는 듯 호탕하게 말했다. 그 순간, 금각은 신선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은각을 향해 손짓했다.
“아우야, 오늘의 만찬은 신선이니라!”
“좋소, 형님!!”
칠성검, 특수 능력.
“오너라, 나의 부하들이여.”
금각이 칠성검을 치켜들고 말하자, 곧 알 수 없는 공간이 생기며 수천의 요괴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들은 하나하나가 하위급 이상의 개체였다.
스스스스스.
거미, 백골, 각종 동물의 형상을 띈 요괴들의 등장에 강자아의 표정을 굳어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신공표의 공격을 언제까지 막아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던 강자아였기에.
금각은 소환된 요괴들에게 말하며 칠성검을 앞으로 뻗어냈다.
“가거라, 나의 부하들.”
금각의 지휘에 수천의 요괴들은 강자아를 향해 달려들었고. 곧 결계를 부수기 위해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은각이 말했다.
“형님, 힘 뺄 필요 없이 나도 가겠소.”
“파초를 쓸 것이냐?”
“물론!”
은각은 철선 공주가 사용하는 것과는 다른 파초를 들고선 공격이 닿는 원거리에 자리를 잡았다.
은각의 파초는 불을 지피는 것, 철선 공주의 파초는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불태워라, 파초.”
화륵!
삼매 진화까지는 아닐지언정, 선기는 선기. 절대 약하지 않은 화염의 구가 결계를 부수기 위해 비처럼 쏟아졌다.
강자아의 불안감이 계속해서 커져만 갈쯤. 요시키가 입을 열었다.
“이봐, 영감. 이대로면 전멸 아니야? 요격하는 건 어때?”
“저 많은 숫자를 누가 상대하겠는가? 자네 둘로는 무리일세. 더군다나, 본인은 전투계열이 아니기에….”
“그럼 어쩌자는 건데, 계속 여기 숨어있자는 거야?”
“……”
요시키의 말이 맞았다. 숨어있는 건, 시간을 벌기 위한 수단일 뿐. 요시키과 유금필이 나선다면 결계를 조금이나마 더 유지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때였다.
쩌적, 쩌저적.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기 시작했고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한 강자아는 금이 가는 결계를 바라보곤 나지막하게 말했다.
“끝이네….”
강자아는 자신의 ‘명’이 여기까지라는 것을 깨달았고. 임아린을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할배…!! 포기하지 말아요!!”
“아린아….”
결계에 금은 계속해서 커졌고 쩌적 거리는 소리가 극에 달했다. 그 순간.
쩌적, 쩌저적.
파캉-!!!
은각과 수천에 달하는 요괴들의 합공에 결계는 깨져버렸다. 그 순간, 유금필은 임아린을 들쳐메곤 거리를 벌려냈고 요시키는 무형검을 만들어내 요괴들을 요격하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영감, 뒤로 빠져. 내가 시간을 벌어 볼 테니까.”
“자네….”
망연자실한 강자아의 눈빛이 요시키를 바라봤을 때였다.
쿠콰콰콰쾅!!!
성검, 아르담 용사의 일격. 차정우의 일격이 요괴들을 갈라냈고.
“으랴아아아앗!!!”
쿠콰콰!!!
무형 산탄시, 대영웅의 힘. 마력을 전부 소진한 김도은과 김영광이 겨우겨우 힘을 짜냈으며.
“뒤져 이 새끼들아.”
“입이 거치십니다. 다이아나 씨.”
쿠와아아아아!!!
멸망(滅亡)의 브레스, 파멸(破滅)의 브레스. 다이아나와 임해든이 룡의 모습으로 변모해 브레스를 뿜어냈다.
그리고.
파앙!
성흔, 절대방어. 이지은의 성흔이 모두를 감싸며 요괴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일회성의 스킬이었지만 덕분에 모두가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고 시간을 벌기엔 충분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여섯 명의 현계인이 요시키의 앞으로 이동해 자신들의 스킬을 사용했다, 강자아는 환희에 찬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자네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