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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158화 (158/206)

제158화

episode(17) 상생의 이유#10

엄청난 폭음과 함께 천존의 거처가 흔들렸다. 누군가의 공격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장내에 사람들은 무언가가 떨어졌다는 생각 할 뿐이었다.

천존이 말했다.

“진정들 하게. 백학, 다녀오거라.”

“예, 스승님.”

천존의 명을 받고 폭음의 원인을 확인하러 나선 백학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 죽어가는 사람을 부유시켜 들어왔다.

“스승님, 이 자 때문인 듯합니다만.”

“그자는….”

천존은 무언가 의아한 표정으로 자기 턱수염을 어루만지기 시작했고. 동시에 장내에 현계인들은 동공이 커다래져 상처투성이로 부유 된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앞으로 나선 것은 김도은과 김영광이었다.

“요시키!”

“이럴 수가…!!”

죽어가며 일말의 신음만 내뱉는 요시키는 의식이 없었다. 그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천존은 현계인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자는 자네들의 일행인 겐가?”

여전히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상황을 일관하는 천존이었다. 장내에 아무런 현계인도 천존의 물음에 답하지 않자, 답답함을 못 이긴 김영광이 앞으로 나섰다.

“저희 일행이 맞습니다.”

“그런가?”

천존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자신의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 순간 자그마한 빛이 구체에 형태로 요시키에게 빨려 들어갔으니.

요시키가 입은 부상이 치료되고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했다.

“어…? 여, 여기는….”

재빠르게 달려 나가 요시키를 부축한 김영광이 물었다.

“장군님은 어찌 됐습니까!?”

요시키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아차 싶은 표정을 지으며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어냈다. 당장 자신이 이곳에 온 연유도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자, 잠시만 정리할 시간을….”

요시키는 아주 잠시 생각의 정리를 한 뒤, 장내에 모두를 향해 입을 열었다.

“여, 영감! 영감이 위험하다. 어서 구하러 가야 해!!”

다급한 요시키의 말투에도 장내는 잠잠하기만 할 뿐, 그 누구도 몸을 일으킨 사람은 없었다.

“아, 아니…. 영감이 위험하다니까?”

차가운 반응에 당황한 요시키는 급박한 목소리로 자신을 부축해준 김영광을 향해 소리쳤다.

“이봐, 너 영감을 돕기로 했다면서!! 영감이 위험해!!”

요시키는 시선을 이리저리 돌려대며 현계인들을 향해 외쳤다. 하지만….

조금씩 움찔거리는 김도은을 제외하곤 아무도 유금필의 생사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안의 계획에는 요시키 한 사람만 있어도 충분했으니까.

“제, 젠장….”

고개를 떨구는 요시키의 모습에 마음이 불편해진 김도은이 앞으로 나섰다. 그 모습에 동조한 것은 김영광도 마찬가지였다.

“상황을 제대로 설명해주시죠. 그래야 저희가 움직일 수 있어요.”

김도은의 말에 조금의 희망이라도 봤을까. 요시키는 그간의 상황을 압축해 모두에게 전했다. 김도은과 김영광을 살리기 위해 요시키과 유금필이 시선을 끈 것과.

요시키를 살리기 위해 수백, 수천의 병력을 홀로 상대하는 유금필의 이야기까지. 그리고 어떤 여인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이곳에 떨어지게 된 것까지.

그렇다.

요시키는 유금필 덕분에 자리를 이탈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천궁 병사들에게 포위당했고 전력을 다한 전투를 벌이던 중 서왕모의 도움으로 이곳에 떨어지게 된 것이었다.

이야기를 들은 현계인들의 표정은 각자가 다른 표정이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오공에게 같은 편이면 구하러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는 임아린.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강자아와 손오공. 차정우를 비롯해 다이아나와 이지은은 묵묵부답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앞으로 걸어 나와 모두를 향해 입을 연 사람은 임해든이었다.

“여러분, 제 말 좀 들어주시죠.”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킨 임해든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전, 저 때문에 중요한 전력을 죽게 만든 적이 있습니다. 그를 질투했고 그의 자리에서 인정받기 위함이었죠. 그런데 말입니다….”

고개를 푹 숙인 임해든은 곧 다시 고개를 들어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들의 계획이 어떻든, 두 사람의 계획이 어떻든 저희를 믿고 따라온 사람들입니다. 이 전에 전쟁을 벌이며 서로를 죽인 건, 잠시 묻어두시는 게 어떻습니까?”

“맞아요!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고요! 어른들이 그런 것도 몰라요!? 우리 아저씨라면 구하러 갔을 거예요!”

임아린이 임해든 곁으로 달려 나가 불쑥 제 생각을 내뱉었다. 그런 임아린의 말을 김도은과 김영광이 지지했으며.

“요시키과 유금필 두 사람은 분명 저희에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리고 안이 씨의 계획에는 두 사람이 필요할 거예요.”

임해든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그 모습에 고개를 숙인 요시키가 차정우와 다이아나를 향해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말했다.

“이 전에 내부의 대표들을 죽인 일은 미안하다! 사과한다고 해결될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도와주라. 영감은…. 아무런 죄도 없다고…!!”

누군가를 위해 허리를 숙인 적은 단 한 번도 없던 요시키. 그런 요시키가 무엇 때문인지 자신을 살리려 목숨을 바친 유금필을 구하려 하고 있었다.

차정우는 이지은을 힐끗 쳐다보았고. 그 모습에 이지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정우야.”

이지은의 대답을 듣기 위함은 아니었다. 이지은의 허락을 구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선택으로 이지은이 위험에 빠질까 걱정이 되었던 것뿐이었다. 차정우가 입을 열었다.

“이봐, 천존이라고 했나?”

“그렇네만.”

“아직 도착하지 못한 일행이 있다. 이안 그놈의 계획에는 꼭 필요한 존재이고, 우리는 그자를 구하겠다.”

“이곳을 벗어나, 천궁으로 가겠다는 것인가? 죽고 죽이는 전쟁이 자네들을 기다리고 있네만?”

“어차피, 이안 그놈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죽고 죽이는 전쟁을 해야 한다.”

차정우의 말에 얼굴빛이 변한 요시키가 보였고. 일행들은 그제야 희미한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천존은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안이라…. 그자가 또 이변을 불러오는 겐가.”

천존은 자신의 지팡이를 들었다 놓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더니, 마음을 굳힌 듯 입을 열었다.

“기회는 단 한 번뿐이네. 자네들은 천궁의 병사들에게 죽게 만들 수는 없으니…. 백학아.”

“예, 스승님.”

“저들을 지키거라.”

“스승님의 명을 받습니다.”

자기 제자에게 명을 한 것은 허락했다는 것. 천존이 허공에 지팡이를 그어내자, 푸른색의 포탈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자를 구하면 백학이 자네들을 다시 돌려보내 줄 걸세. 누군가는 죽을 수도 있네만, 괜찮겠는가?”

“상관없다.”

차정우의 말에 모두가 비장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무거운 긴장감과 함께 발걸음을 뗀 현계인들이 포탈 앞으로 모여들자, 차정우는 성검을 꺼내 들었다.

스릉.

“내가 먼저 들어가겠다.”

저벅, 저벅.

포탈에 발을 디딘 순간, 이상한 현상이 발생했다.

천존이 만든 포탈 뒤로 다른 색의 포탈이 나타났다. 푸른색이 아닌, 노란빛이 감도는 작은 포탈. 그 속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천존을 포함한 모두가 상황을 지켜보자, 의문의 남성이 포탈을 넘어섰고. 넝마가 되어버린 갑옷과 그사이에 흥건하게 묻은 피. 팔과 다리는 이곳저곳 베이고 관통상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사내는 모두를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 날 구하러 가려던 참인가? 허허, 고맙게도 살아왔네.”

유금필.

요시키는 조금 울먹이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영감!! 살아있었구나!? 안 그래도 가려고 했는데…!!”

“허허, 노장은 죽지 않는다네.”

상처와는 다르게 호쾌하게 웃는 유금필의 모습에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존의 힘으로 상처를 치료한 뒤, 다시 한번 좌우에 놓인 의자로 착석했다.

천존은 현계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소모전이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네, 자칫 자네들 중 여럿을 잃을 뻔했어. 서왕모가 큰 결정을 해주었군.”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으면서도 흐뭇한 표정이 확연하게 보이는 천존이었다.

사실, 천존은 자신의 ‘명’에서 죽은 자들을 본 적이 없었고, 그들의 기운을 느끼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 때문에 그들의 존재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니….

이안의 계획에 존재하는 자들이라면 힘을 써서라도 살리는 것이 당연했다. 그 역할을 서왕모가 해결해 준 것이 고마울 뿐이었다. 그러니까, 천존은 자신의 실수로 자신의 ‘명’마저 이루지 못할 뻔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천존이 입을 열었다.

“주역들은 다 모였으니, 자네들에게 말해주겠냬.”

천존의 말 한마디에 장내에 조용하게 울려 퍼졌다. 힘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조용히 내뱉는 말은 모두가 집중하기엔 충분했다.

“현재, 세 개의 세계는 전쟁 중이네. 그건 알고 들어온 것인가?”

“모릅니다만….”

전쟁이라는 천존의 말에 여러 사람이 당황하기 시작했고. 그의 말에 답한 것은 김도은이었다.

“그렇군, 이안 그자는 알고 있었을 텐데…. 자네들을 이곳에 보낸 것은 이유가 있어서겠지.”

이안이라는 이름이 등장하자, 무엇이 불편한지 인상을 찌푸린 차정우. 그 모습에도 천존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마지막 기록자를 남기기 위한 전쟁을 벌이는 중이네. 정확하게 천궁을 상대로 신선계와 요마계가 동맹 중이지.”

“그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지?”

차정우의 말에 답한 것은 천존이 아닌, 손오공이었다.

“건방진 놈 같으니. 천존은 나조차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존재다. 조심해라. 죽기 싫으면.”

손오공이 기운을 방출시키고 양쪽 눈이 핏빛과 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엄청난 기운에 현계인 모두가 움찔했고. 차정우도 그 기운을 직접적으로 받아들였는지, 조금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본능적인 공포란 이런 것이었다.

“그만, 그만하게. 요마계의 왕이여.”

천존의 말에 콧방귀를 뀐 손오공은 황금빛 봉을 허공에 휘두르며 자신의 자리로 이동했다.

“아무튼, 말을 이어가자면 전쟁에 승리하자면 자네들의 힘이 필요하네. 개개인의 힘은 우리 신선들에게 한참은 못 미치지만, 가능성이란 그런 것이지.”

손오공의 기운을 일순간 맛본 차정우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김도은이 입을 열었다.

“저희의 힘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죠? 아니, 정확하게는 저희가 목적을 이루고 이곳을 빠져나갈 수는 있는 건가요?”

“그것 이전에 해줄 말이 있네. 새로운 우주가 태어나면서 ‘명’을 받는 이가 몇이나 되는 줄 알고 있나?”

“명…. 이라니요?”

김도은의 물음에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지, 말 문이 막힌 천존은 고민을 끝마치고 입을 열었다.

“명은 하늘이. 운은 사람이 직접 정하는 것. 즉, 정해진 명을 바꿀 수 있는 존재를 말한다네. 운명이란 그런 것이니.”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더 알아듣기 쉽게 말해주실 수는 없는지….”

천존은 하늘을 바라보며 길게 숨을 내뱉었다.

“이안 그자는 ‘운명’을 받은 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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