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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156화 (156/206)

제156화

episode(17) 상생의 이유#8

유금필과 요시키는 서로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싸웠다. 이 전과 다른 점은 두 사람은 서로를 등지고 싸울 수 있는 동료가 되었다는 점. 앞뒤로 몰려드는 천궁의 병사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고, 주먹을 날려냈다.

콰쾅!!!

“크하아악!”

천궁의 병사들은 계속해서 죽어 나가는 와중에도 두 사람은 멈추지 않았다. 몰려드는 적에 빈틈을 보이면 두 사람은 말없이 동료를 지켰다.

“헉, 젠장. 끝이 없는데? 이봐, 영감.”

“왜 그러나.”

“도망갈 낌새가 안 보이는데?”

유금필은 천궁의 병사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이미 수백은 거뜬히 죽인 상황에 눈앞에 보이는 숫자는 너무나도 많았다. 계속해서 증원이 몰려오는 이상, 유금필과 요시키의 승리는 장담할 수 없었다.

비장의 수를 남겨놨다고는 하나, 이런 상황이라면 죽는 것이 먼저 일 테니….

“이보게, 요시키.”

“바빠죽겠는데, 왜 불러 영감.”

“내가 길을 트겠네. 그 사이에 자네가 도망가서 내부와 외부인들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건 어떤가?”

“......”

“당연한 소리지만, 그들도 우리를 필요로 할 것이네. 죽게 놔두지는 않겠지.”

유금필의 말이 맞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두 사람 중 한 사람만 있어도 이 안의 계획은 충족될 테니, 애써 구하러 오지는 않을 것이었다.

유금필과 요시키는 필요 때문에 맺어진 사이일 뿐, 그들의 동료도 무엇도 아니었으니까. 요시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유금필의 눈빛이 한껏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자넨 검도 없지 않은가? 굳이 남는다면 내가 버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야.”

“젠장, 그 방법밖에 없나? 영감 괜찮겠어?”

유금필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괜찮지 않을 것이다. 버텨봐야 천궁 병사들의 숫자는 계속해서 느는 중이었고 장군급 이상의 존재와 맞서면 자신은 죽고 말 것이니.

유금필은 필사의 의지로 천궁의 병사들 앞에 나섰다. 그리고. 요시키를 향해 말했다.

“내 목적은 한 가지. 한 사내를 죽이는 것이네.”

“그건 알고 있지. 그놈 말하는 거지? 우리와 함께 있다 성좌가 되어버린….”

“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그 척가놈 만은 그렇게 돼버렸으니.”

“영감도 고생 꽤 했지. 단 한 번도 이겨보질 못했으니까.”

“맞네. 치욕스러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네. 목숨을 구걸한 적도 있었으니까.”

“……”

요시키의 입이 다물어진 순간, 유금필은 멍하니 병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만약, 내가 이곳에서 죽는다면 말이네.”

“재수 없는 소리는 하지 말지? 이미 죽은 영감이 뭘 또 죽는다고 그래?”

“크하하핫. 그렇군. 난 이미 죽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살아있으라고.”

요시키는 알고 있었다. 유금필의 부탁이 무엇인지. 하지만, 부탁을 들어주게 되면 반드시 유금필은 죽게 되리라는 것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목적과 희망을 놓은 군인은 전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으니. 미약하게나마 살기를 바라고 그 사내를 죽일 목적과 내부와 외부의 지원을 기다리는 것이 마지막 남은 희망이었다.

유금필은 호탕하게 웃으며, 자신의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그 순간.

쿠콰콰쾅!!!!!

유금필의 엄청난 일격이 병사들 사이로 길을 만들어냈다. 길은 금방이라도 막힐 듯, 메워졌지만 그 짧은 순간을 놓칠 요시키가 아니었다.

“영감, 살아있어. 금방 올 테니까!!”

“어서 가게나!!”

파앗-!

재빠르게 길을 통과하며 병사들을 베어내자, 길은 더욱 거대하게 열려 요시키 한 사람이 지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멍하니 요시키를 바라보던 유금필은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오지 않겠지. 허허, 올 이유가 없지 않은가.”

유금필은 사실, 목적이라고 할 것은 없었다. 살아생전 태조를 도와 고려를 세웠기에, 미련은 없었다. 그저 늙은이가 조금 더 살 수 있는 목적을 억지로 만든 것이 한 사내를 죽이는 것.

딱히 사내는 죽을만한 행동을 취하지 않았고, 여러 번의 패배로 오기가 생긴 것뿐이지, 그 사내를 만난다고 죽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수많은 일대일 대결에도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사내였으니.

이런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최후까지 살아남은 죽은 자 중, 한 사람이 자신이라니. 이쯤 되면 젊은 청년의 모습으로 절망만을 맛본 요시키를 위해 희생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고 생각한 유금필이었다.

유금필 본인은 많은 것을 이룬 사내였으니까.

“자, 들어들 오게나. 사람들은 고려 최강의 무장을 척가놈으로 알고 있지.”

서걱, 서걱.

유금필은 한 발자국씩 걸어가며 천궁의 병사들을 베어냈다. 매끄럽고 군더더기가 없는 검술에 누구나 입을 떡 벌릴만한 실력.

“그런데, 자네들은 그걸 알고 있는가? 아아, 현계인이라면 알았을 수도.”

서걱.

이미 유금필의 갑옷은 부서지고 전신이 넝마가 된 상태에서 베어내고 또 베어냈다.

“나 또한 고려 최강의 무장이었네.”

콰콰쾅!!!

유금필의 일격이 수백의 병사들을 몰살시키며 앞으로 뻗어나갔다. 단순한 검기에도 진심을 다한 공격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천궁이니 뭐니…. 관심 없겠지만, 노인네의 마지막 유언이니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은가!”

단일 개체로 이미 수백 수천에 가까운 병사들을 몰살시켰음에도 유금필의 눈에 보이는 것은 개미 떼와 같은 천궁의 병사들이었다. 한숨을 내쉴 틈도 없었다.

그저 베어내며 혼잣말을 중얼거릴 뿐.

“자, 누가 나를 막겠는가! 누가 고려 최강의 무장을 상대하겠는가!!!”

전신을 핏물로 가득 채운 유금필이 우레와 같은 목소리로 내뱉었다. 그의 기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던 천궁의 병산들은 조금씩 겁에 질려 뒤로 물러나는 중이었다.

단 혼자서 이 정도의 기백을 보이며 싸운 것은 손오공 이외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손오공은 요괴들의 왕으로 절대적인 신에 버금가는 존재. 그런 존재를 떠오르게 한다는 것은 천궁의 병산들이 보았을 때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그 순간.

꽈광!!!!

엄청난 소리와 함께 병사들을 내치며 다가오는 사내가 있었다. 푸른 머리칼에 이마에는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르게 눈이 하나 더 있었다. 그러니까, 사내는 눈이 세 개였다.

“비켜라!! 내가 상대할 테니, 모두 꺼져라!”

사내는 병사들을 물리며,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동시에 사내의 곁엔 새하얗고 커다란 개가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자네는…?”

유금필의 물음에 사내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천궁의 대장군 중 한 사람이지. 이랑 진군이라 불린다네.”

“대장군이라…. 오랜만에 듣는 말이로군.”

“나 또한 자네만큼 강한 자는 오랜만에 보는군.”

“일기토를 하겠다는 말인가? 이미 자네들의 승기가 정해진 것을.”

“자네 정도 되는 강자라면 본인이 직접 상대해야 예의가 아니겠는가?”

사내의 외형은 젊은 청년과 다르지 않았다. 백금색의 갑옷을 입고 푸른색의 망토를 걸친 사내. 그런 사내에게 있는 특징은 이마의 눈과 은빛으로 고고하게 빛나는 삼첨창이었다.

고오오오오.

사내의 전신에서 엄청난 기운이 일렁거리기 시작하자, 유금필은 크게 심호흡을 마친 후, 자신의 남은 기운을 모조리 끌어냈다.

상대할 수 있다? 아니, 상대할 수 없다.

현 상황의 유금필이라면 일격에 목이 달아나고 말 것이니, 유금필도 이 정도의 격차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이랑 진군은 단순하게 유금필이라는 강한 사내가 명예롭게 죽기를 바라며 앞으로 나선 것뿐이었다. 무장에 대한 예우였다. 비록, 자기 부하를 수천이나 학살했음에도….

유금필은 이랑 진군을 향해 물었다.

“천궁이란, 자네만큼 강한 자가 여럿인가?”

죽을 때가 되어서 한다는 질문이 강자들이 많냐니. 유금필은 본인이 질문하면서도 피식 웃음을 짓고 말았다. 무장으로 죽을 수 있다는 것에 장수의 품격을 보이는 듯.

“죽기 전의 질문이라면 답해주겠네. 천궁의 강자는 나 이외에도 많다네.”

“그렇군, 자네는 그중에 얼마만큼 강한지 물어봐도 되겠나?”

이랑 진군은 아주 잠시, 고민하더니 유금필의 물음에 답했다.

“글쎄, 직접 싸워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열 손가락 안에는 들 수 있을 것 같군.”

이랑 진군의 말에 유금필이 환하게 웃었다. 그 정도로 강한 사내에게 죽는다면 아무런 미련이 없다는 듯.

“다행이군, 마지막 순간에 강자에게 죽는다면 이보다 명예로운 죽음은 없겠지.”

“그런가? 내 배려가 마음에 들었나 보군.”

이랑 진군이 삼첨창을 쥐곤, 유금필을 향해 뻗어내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도망친 자네의 동료는 내가 죽이겠네.”

요시키를 말하는 것 같은 이랑 진군의 말에 일 순간 당황한 유금필이 물었다.

“잡은 것인가…?”

“아니, 잡을 예정이네만.”

“그렇군.”

다행스럽게도 요시키는 잡히지 않았다. 길을 터주었고 무사히 천궁을 빠져나가길 바랄 뿐이었다. 그마저도 못했다면, 자신과 함께 천궁에 죽는 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유금필이었다.

“그럼, 한 수를 양보하겠네.”

“후회할 것이야.”

“오게나!!”

이랑 진군의 말에 전력으로 힘을 뽑아낸 유금필은 자신의 검에 막대한 기운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내 보는 전심전력(專心專力)이었다.

쿠구구구구.

주변 대기가 조금씩 요동치기 시작하자, 이랑 진군도 한껏 진지해진 표정으로 삼첨창을 고쳐 들었다.

살아생전 무신의 경지에 달한 유금필이 죽어서도 검술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은 끝에 도달한 경지.

이것은 한 사람의 생애(生涯)와 죽어서 이룬 절대적인 일격이었다.

“인간은 바다를 가를 수 없고, 하늘을 가를 수 없지.”

“……?”

“자, 받아보게나.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은 검이네.”

이 검술은 평생을 바친 유금필이 자신이 맞수라 생각한 사내이자, 성좌가 되어버린 ‘척준경’을 상대로 뽐낼 일격이었다.

유가 검법 제11식 천해참(天海斬)

빛이 유금필의 검에 물들더니, 곧 푸르른 검기가 검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 크기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것이 이 검술이라면 거대한 룡들의 목을 베어도 단숨에 베어질 것 같은 크기였다.

촤아아아아!!!

검기는 유금필의 손을 떠나, 엄청난 속도로 이랑 진군을 향해 뻗어나갔다. 그리고.

쩌적.

파캉-!!

유금필의 검이 일격의 힘을 못 버티고 산산조각이 났다. 더 이상 유금필에게 아무런 힘도 남지 않았다. 자신의 애검은 부서졌고 죽음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후우….”

유금필은 전방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죽이지는 못할지라도 조그마한 상처는 남길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었다.

콰콰콰콰!!!

“크흐읍…!!!”

이랑 진군이 삼첨창을 휘둘러 유금필의 검기를 막아내기 시작하자, 주변에 병사들은 이미 자리를 이탈하고 보이지 않았다. 공격에 휘말리면 자신들은 한순간에 죽고 말 테니.

한참을 막아내던 이랑 진군이 위험함을 감지한 순간.

촤악!!

유금필의 천해참이 이랑 진군의 가슴팍을 강하게 베어냈다.

쿠구구구.

공격의 여파가 조금씩 걷히자, 유금필의 눈에 두 발로 서 있는 이랑 진군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대단하군, 이 몸에 상처를 입히다니.”

이랑 진군은 먼지를 훌훌 털며 천천히 걸어 나와 말했다.

“자네는 내가 기억해주겠네. 인제 그만 죽어 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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