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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155화 (155/206)

제155화

episode(17) 상생의 이유#7

임해든과 다이아나가 묶여있는 상황에도 관심이 없던 그였다. 그랬던 그가 반가운 이름에 귀를 후벼파던 손을 멈추었다.

“너, 그놈을 아는 거냐?”

순간적인 살기에 두 사람의 등줄기가 오싹해지는 순간이었다. 임해든은 말을 잘못 꺼냈을까 싶은 마음에 덜덜거리는 몸을 진정시키고 말을 이어갔다.

나름의 기지를 살리기 위해서 극존칭을 해가면서.

“대사형이라고 들었습니다만….”

기어가는 임해든의 목소리에도 살기는 지독하게 뿜어져 나왔다. 임해든과 다이아나가 목숨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눈앞에 서 있는 이 존재가 손오공이길 바랄 뿐이었다.

손오공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곤 계속해서 귀를 후벼파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가 입을 연 것은 잠시 뒤였다. 손오공이 말했다.

“그놈이 보낸 것 맞는 것 같구먼. 겁먹지들 말거라. 이 손오공 님은 현계의 인간 따위 관심 없으니.”

손오공의 말에 속으로 살았다는 쾌재를 부르는 순간.

“아린이 그것이 가보래서 왔더니, 귀찮구만.”

손오공은 여전히 두 사람에게 관심을 주지 않고 귀를 파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어리둥절한 임해든과 다이아나였지만, 어쩐지 이 존재로 인해 자신들이 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왜?”

“저희를 구해주실 겁니까?”

“고민 중이야. 귀찮은 건, 질색이라서.”

“아….”

임해든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손오공이 결정을 내리고 자신들을 구해줄 때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주변의 요괴들을 모조리 정리한 손오공은 두 사람에게 다가와 말했다.

“별것도 아닌 놈들이 감히 내 구역에서 말이야. 그렇지?”

“네? 네…. 그렇죠.”

얼떨결에 한 대답이었지만, 손오공의 마음에 들었기를 바란 임해든은 식은땀이 계속해서 흘러내리는 중이었다. 그 순간.

촤악!

손오공은 무심하게 황금빛 봉을 휘둘렀고, 당연하게도 두 사람을 포박했던 무언가는 순식간에 풀려 있었다.

“따라와라. 아린이가 기다리고 있으니.”

“아린이라면….”

계속해서 손오공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여성의 이름. 그 이름의 존재를 들은 바 없던 임해든이 질문하자, 손오공은 자기 입에 손가락을 올리며 말했다.

“자세한 건 그 아이에게 듣거라. 이 몸은 몹시 귀찮으니, 한 번만 더 입을 연다면 놓고 가겠다.”

“……”

임해든은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사용해 자신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다이아나는 엄청난 강함을 보이는 손오공의 모습에 그저 말없이 따를 뿐이었다.

“가지.”

손오공의 거주지가 화과산이어서 그런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장소는 신선한 과일과 울창한 숲과 나무들이 임해든과 다이아나를 반기고 있었다.

향긋한 과일 냄새와 아름다운 동굴의 폭포까지, 시선을 빼앗긴 두 사람은 그저 멍하니 주변을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아저씨!! 왜 이렇게 늦게 와요!!”

열두 살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아름다운 신선 복을 입고 손오공을 향해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아니, 저래도 되는 걸까…? 우리는 쳐다도 못 볼 괴물에게….

임해든은 순간적으로 떠오른 말을 내뱉지 않고 속으로 감추었다.

멍하니 아이를 바라보던 중, 입을 연 것은 다이아나였다.

“야, 저 아이….”

“네. 현계인입니다.”

“우리 말고 현계인이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아무래도 안이 씨의 지인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일단, 대화해보자. 저 괴물 원숭이는 말이 안 통하니까.”

다이아나의 말에 분위기가 일 순간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게 아무리 조용하게 대화해도 손오공의 귀에 두 사람의 대화는 너무도 잘 들렸을 테니.

“조용히 해라. 다 들린다.”

“아저씨! 우리편한테 왜 살기를 뿜어대고 그래요! 저리 가, 아저씨!!”

“아니, 난….”

손오공의 살기마저 끊어낸 아이는 곧 자신들의 앞까지 다가와 두 사람을 향해 예의 있게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전, 임아린이라고 해요!!!”

* * *

천궁(天宮)

천인들의 거주지이자, 현 상황에 신선들과 요괴들의 동맹을 저지하는 세력. 그들은 옥황(玉皇)이라는 우두머리를 필두로 수천만에 달하는 군대와 강자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그런데….

하필 흩어져도 이곳으로 흩어지다니.

김영광과 김도은 그리고 유금필과 요시키 네 사람은 천궁으로 떨어져 천인들에게 쫓기는 중이었다. 그마저도 두 사람씩 찢어지고 말았지만.

“두 사람 괜찮을까요?”

“저희보다 강하니 괜찮겠죠. 다른 생각을 품지 않는 이상….”

김도은의 말이 맞았다. 내부와의 전투를 피하고자 더 커다란 혹을 달고 온 것은 아닐지. 괜한 걱정이라며 김영광을 달래며, 두 사람은 계속해서 도망쳤다.

천궁의 병사들에게서.

“도은 씨, 이쪽으로!!”

김영광이 소리친 방향으로 몸을 움직인 김도은이 마주한 장소는 신비로운 나무 한 그루가 곧게 뻗어진 장소였다. 나무에는 사람 머리만 한 복숭아가 여럿 달려 있었는데, 다행인지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여긴 어딜까요? 거대한 나무며, 이 기운은 마치….”

김영광이 느끼는 것을 김도은이 느끼지 못할 리는 없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나무에 홀린 듯,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갔다. 자신들도 모르게 나무에 이끌린 두 사람이 손을 뻗으려는 순간. 나무의 뒤편에서 아름다운 여성이 공중에서 천천히 다가왔다.

“손을 내리세요. 당신들이 취할 수 있는 반도(蟠桃)가 아닙니다.”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두 사람에게 다가온 여인은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모습에 두 사람은 자신들을 해치지 않을 거라 생각한 건지, 도망도 치지 않고 여인을 향해 물었다.

“다, 당신은 누구죠?”

정신을 차린 김도은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고, 김영광도 마찬가지로 여인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듯 자기 머리를 주먹으로 가볍게 쳤다.

“죄송합니다. 먹으려던 건 아니고….”

당황하는 두 사람을 향해 괜찮다며 싱긋 웃어 보였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여자인 김도은조차 반할 것 같은 미모였다.

여성은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이곳이라면 더 이상 쫓기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는 침입자인데….”

“알고 있답니다. 전 당신들을 쫓는 천인이 아니니까요.”

쫓지 않는다는 말에 김영광이 끼어들었다.

“하하…. 다행이네요. 당신은 누구길래 이곳에 혼자 계시는 겁니까?”

“글쎄요. 전 단지 이곳의 주인이라고만 해두죠. 제가 누구인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요.”

여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두 사람은 어떤 말을 내뱉어야 할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어째서 이 타이밍에 이 방으로 들어왔으며, 여인은 두 사람을 기다렸다는 듯 행동하던 것일까.

김도은의 의문이 커져만 갈 쯤. 여인은 김도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전 당신들을 도우려고 왔습니다. 그러니, 경계는 풀어도 된답니다.”

경계를 풀라는 여인의 말에 김도은은 오히려 경계가 솟아나는 중이었다. 당연하게 적인지 아군인지 의심부터 가는 존재가 적이 아니라며 다가오는데 이 부분이 더 의심스러울 것이다.

김도은은 경계를 풀지 않고 여인에게 물었다.

“저희 말고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죠?”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만…. 당장 위험하지는 않겠네요.”

김도은은 아차 싶은 표정을 짓더니, 김영광을 향해 말했다.

“도와야 해요. 이번 곤륜산행에 필수는 정우 씨와 안이 씨 그리고 죽은 두 분이라고 그랬잖아요!”

“그, 그렇죠. 두 분이 죽으면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두 사람은 갑작스레 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인은 그런 그들의 모습에 조금 난감하다는 듯, 말을 건넸다.

“절 믿어 줄 수는 없는 건가요? 이대로 가시면 두 분은 죽고 말 겁니다.”

“그 두 분이 없으면 저희가 살아도 산 것이 아닐 거예요.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으니까….”

“그럼 이대로 당신들을 곤륜산으로 내려 보내드릴게요. 먼저 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두 사람은….”

“걱정하지 마세요. 이곳에서는 반도원의 주인일 뿐이지만, 그저 하찮은 여자는 아니랍니다. 호호.”

싱긋 웃으며 말하는 여인에게서 적대감이라곤 사라지고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두 사람도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한명 한명이 괴물 같은 강함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죽이려면 진즉에 죽여버렸을 테지.

“도은 씨 어떻게 할까요?”

“먼저 합류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두 분도 약하지는 않으니, 버틸 수 있을 겁니다. 이 여인이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면…. 구해주시겠죠.”

여인은 공중으로 날아올라 싱긋 웃으며 답했다.

“물론이죠. 그 사람과 다시 보기로 했으니, 이 정도는 도와야죠.”

“……”

그 이라니. 누구를 말하는 걸까 싶던 김도은과 김영광이었지만, 여인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 가세요. 다시 만났을 땐, 반도를 선물로 드리도록 하죠.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이곳에서 절 만난 건 우연이 아닙니다. 제가 당신들을 살리기 위해 기다린 것이죠.”

“그, 그게 무슨…”

여인은 아무런 대답 없이 나풀거리는 옷소매와 함께 팔을 휘적거렸다. 곧바로 두 사람의 앞에 포탈이 생겨났고 어디로 가는 포탈인지는 모르겠지만, 김도은은 여인을 믿고 싶었다. 아니, 지금 당장 여인의 도움 말고는 아무런 힘도 방법도 없는 그녀였다.

“부디…. 그분들을 도와주세요.”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두 사람은 냉큼 포탈로 들어갔다. 도와주지 않는다면 본인들의 지원군을 이끌고 다시 와야 할 테니, 1분 1초가 시급한 상황이라 판단한 것이었다.

파앗!

* * *

천궁(天宮)의 외곽지역.

쿠콰콰쾅!!!

엄청난 폭음과 함께 백여 명의 병사들과 두 사람은 전투 중이었다. 그다지 강하지 않는 병사들이었기에 버티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장군급이라도 온다면….

두 사람은 이곳에 처음 떨어지고 장군급과의 전투를 생각했다.

“빌어먹을, 그놈이랑은 절대로 마주쳐선 안 되네. 이보게 요시키! 괜찮은가!?”

“당근!”

“……?”

“괜찮다고!!”

유금필과 요시키는 긴박한 상황임이 분명했음에도 김도은과 김영광을 위해 미끼 역을 맡았고 그 증거로 백여 명에 달하는 천궁의 병사들과 전투를 벌이게 된 것이었다.

“어서 해치우고 합류를 해야 할 것 같네만.”

유금필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김도은과 김영광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단순히 후대인이어서 걱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도와줄 중요한 인간들이었으니.

유금필이 말했다.

“죽이면 또 등장하고, 이것 참 끝이 없구먼.”

“어이, 영감. 한 번에 쓸어버릴 테니, 도망치자고.”

요시키가 양손에 마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범위가 상당한 스킬을 사용하려는 듯. 하지만 유금필이 그런 요시키의 앞을 막아섰다.

“그 힘은 넣어두게. 그렇지 않으면 당장 급할 때는 사용하지 못할 테니.”

“크흠….”

요시키는 유금필의 말과 행동에 금세 마력을 집어넣곤, 달려드는 병사들을 향해 말했다.

“제기랄, 이곳엔 좋은 무기가 많다고 하던데. 하나 얻어갔으면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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