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153화 (153/206)

제153화

episode(17) 상생의 이유#5

가만히 생각할 틈도 없었다. 삼족오의 환영은 계속해서 홍염은 내 목숨을 위협하고 있었기에….

단순한 방법으로는 안 죽을 텐데….

저 멀리 상황을 지켜보던 진선미와 이민영이 나에게 다가오려 했지만, 나는 두 사람을 향해 소리쳤다.

“오지 마세요!! 이건 제가 알아서 할 테니.”

두 사람의 움직임이 멈추자, 나는 홍염을 회피하며 생각을 이어갔다. 각성 덕에 버티는 것에 아직까지 큰 무리는 없었지만, 성좌의 환영인 만큼 시간이 지체될수록 손해를 보는 것은 나였다. 그 증거로 홍염에 당한 옆구리가 아려오기 시작했으니까.

삼족오는 공중으로 날아오르더니,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어?”

화아아악!!

엄청난 숫자의 홍염이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방 한방이 위협적인 공격에 당황하던 것도 잠시.

쾅!!!

엄청난 숫자의 홍염을 피해내지 못한 채 수십 발의 홍염이 나에게 부딪히자, 온몸이 익을 듯한 고통과 함께 지상으로 추락했다.

“커 헉…!”

용광검을 지지대 삼아 몸을 겨우 일으켰다. 그런데.

이상했다. 삼족오의 환영이 공격을 멈춘 채, 나를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공격을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하는 건가? 이 나무 때문인가?

의문은 필요 없었다. 지나치게 쏟아지는 홍염에 위험할 지경이었으니.

나는 곧바로 바로 옆에 우둑하게 서 있는 거대한 나무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콰앙!!!

엄청난 울림이 숲 전체로 울려 퍼짐과 동시에 삼족오의 환영이 조금 흐려졌다.

이거다!

거대한 나무가 삼족오의 환영을 붙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바로 시스템의 메시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신단수(神壇樹)는 평범한 힘으로는 피해를 줄 수 없습니다.]

신단수…?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시스템의 메시지와 함께 가격한 부분이 금세 치유되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용광검을 강하게 쥐었다. 신살(神殺)의 힘이 담긴 용광검이라면….

지금의 나는 용광검을 최종 단계로 성장시켰기에 아주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화륵!

용광검에 홍염을 가득 실어낸 후, 삼족오의 환영을 잠시 바라보았다. 아직까지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것이 삼족오의 환영은 신단수를 거스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런 식이라면…. 나야 감사하지.

서걱.

강한 힘을 실어내 신단수를 베어버린 뒤 거리를 벌려, 삼족오의 환영을 바라보았다.

스스스스.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곧바로 사라지는 삼족오의 환영을 보아하니, 이번 시험은 신단수를 베어낼 수 있는 힘이 필요했다.

즉, 신살(神殺)의 힘이 담긴 무언가가 없다면 이 시험은 통과할 수 없는 시험. 간단하면서도 아무나 클리어할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사라지는 삼족오의 환영과 함께 시스템의 메시지가 떠올랐고, 곧이어 두 개로 분리된 신단수가 하나로 모여들어 새로운 환영을 만들어냈다.

[당신은 ‘히든 미션’을 클리어하였습니다.]

[해당 미션의 보상으로 ‘오룡거(五龍車)’을 획득하였습니다.]

파앗!

번쩍이는 빛이 내게 스며들기 시작하더니, 세 가지 아이템이 공명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신단수의 환영에 빨려 들어갔고 한 남성의 신형이 나를 반겼다.

[자네인가? 시험을 통과한 것이…?]

“당신은…?”

처음 보는 남성이었다. 지금껏 죽은 자들부터 수많은 적을 상대해왔음에도 어쩐지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신비로움. 아니, 바라볼 수 없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사내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더니, 환한 웃음을 지으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래, 자네가 친우의 뒤를 이은 것인가.]

“친우요?”

당최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나를 향해 사내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시간이 얼마 없으니, 간단하게 설명해 주겠네. 나는 ‘해동의 천왕랑’을 수식언으로 가지고 있는 <안락국>의 성좌네.]

“......”

[놀랐는가?]

“이젠 놀라는 것도 지겹죠.”

스킬, 냉정으로 침착함을 되찾은 나는 천왕랑을 향해 답했다. 조금 이상한 부분은 이 사내가 성좌의 진체라면 나조차도 무사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아아, 걱정하지 말게. 지금 내 모습은 진체이면서도 진체가 아니니.]

“무슨 말이죠?”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친우와 함께 봉인되어 있네. 이건 환영일 뿐이지. 그래서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이야.]

천왕랑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용광검은 잘 사용하고 있는가?]

“덕분에요. 어째서 이걸 초급 게이트에 숨겨놓았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하하하. 그 부분은 친우의 부탁이었네. 자네, ‘환생자의 재림’은 잘 읽었는가?]

환생자의 재림.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할지 머릿속이 조금 어지러웠다. 무한한 환생을 반복하며 매번 새로운 삶을 보여준 소설이었다. 물론, 그 이야기의 끝을 보지는 못했지만.

나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천왕랑을 향해 물었다.

“지금 그러니까, 당신의 말을 종합해보자면…. 친우의 부탁으로 용광검을 얻을 수 있게 도운 것이고 나만 알고 있는 ‘환생자의 재림’을 성좌인 당신도 알고 있다는 것입니까?”

[그렇지. 그 소설을 자네가 읽게 돕고 용광검을 얻게 해준 대가로 친우와 함께 봉인 당한 거라면 알아듣겠는가? 덕분에 꽤 많은 카르마를 소모했지.]

천왕랑의 몸이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나의 답도 듣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이곳에 머무를 힘이 얼마 남지 않았군. 빠르게 말 할 테니 잘 기억하게나.]

“……”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천왕랑은 나를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 모습이 조금은 정겹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잠시.

[오룡거는 이후의 미션에서 자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야. 오룡거는 아주 먼 옛날, 지상에 당도할 때 타고 내려온 것이지. 반대로 말하면 올라갈 수도 있다는 것. 자네라면 이해했으리라 믿겠네.]

천왕랑은 아주 잠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음에도 무엇을 먼저 말해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인 것 같았다. 물론, 나의 감일 뿐이었지만.

[그 이전에, 자네는 게이트의 봉인을 해제해야 하네. 그때 서야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야. 물론, 나의 친우도.]

“그러니까, 그 친우가 도대체 누구길래…!!”

[미안하네. 그건 세계가 지켜보고 있어 말해줄 수 없네. 성운 간의 전쟁이 벌어지는 이 시점에 그들의 시선을 피해 조금이나마 말해줄 수 있는 것이니.]

무언가에 코 꿰였다는 것이 이런 것이었을까. 내 ‘명’은 누군가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 생각 덕분인지, 영문을 몰랐던 나는 아주 조금 불쾌한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천왕랑은 그런 나를 바라보며 계속해서 말했다.

[곤륜산의 기록자들도 자네를 도울 것이야. 참, 삼족오 그놈은 잘 있느냐?]

“거기까지 알고 있는 겁니까? 곤륜산은 무슨….”

[두서없는 이야기는 자네가 스스로 정리해보길 바라네. 그리고, 삼족오를 비롯해 해와 달 그리고 안락국의 성좌들도 자네에게 힘이 되어 줄 것이니, 곤륜산의 기록자들과 안락국의 성좌들을 포섭하게.]

파츳, 파츠츠츳.

천왕랑이 말을 끝마치자, 곧 전신에서 노란 스파크가 강하게 튀기 시작했다. 천왕랑은 허공에서 조금씩 희미해지더니, 마지막이라는 듯 나를 향해 말했다.

[마지막 게이트는 열쇠가 필요하네. 자네가 강해짐에 따라 자네의 ‘명’은 열쇠의 완성을 향해 달려 나가겠지. 부디…. 자네가 모든 것을 이루길….]

완전히 옅어진 천왕랑의 모습에 손을 뻗어내자, 그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듯, 나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이게 무슨….”

단순하게 삼족오 그리고 해와 달이라는 성좌의 부탁을 들어주려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알게 된 것 같았다.

“오라버니! 괜찮아요!?”

“아저씨!!”

진선미와 이민영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도 그럴게, 전투에 참여하지 못했으니 저 멀리서 얼마나 걱정을 해주었을지, 괜스레 미안함이 몰려들었다.

“전 괜찮습니다. 잘 해결됐고요.”

“다행이네요…. 그 상처는….”

진선미의 말에 이민영이 곧바로 움직였다. 삼족오의 환영이 사용한 홍염이 옆구리와 전신을 강타한 흔적이었다. 성좌의 성흔답게 스치기만 했던 옆구리가 검게 그을려 있었다.

이민영은 조금 울먹거리며 나의 상처를 향해 두 손을 뻗어냈다.

“아저씨, 잠시만 있어 봐요. 내가 치료해줄게요!”

스아아아.

이민영이 두 손에 마력을 모아 상처에 대자, 곧 따듯하고 온화한 기운이 천천히 스며들었다. 빛 속성 공격 마법을 익힌 것도 대단한데, 결코 쉽게 사용할 수 없는 치유의 힘을 이 정도까지 사용하는 이민영에 감탄만 나올 뿐이었다.

“대단하네. 그동안 고생 많이 했겠는데?”

“헤헤, 물론이죠.”

이민영의 치료에 눈을 감은 나는 생각을 정리하며 다음 행선지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면 곤륜산으로 가 일행들을 돕는 것이 우선이었지만, 어쩐지 차정우와 일행들이 알아서 잘해주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곳에는 강제로 나의 사형이 되어 준, 투전승불(鬪戰勝佛) 손오공이 있으니, 임아린과 일행들은 당분간 걱정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는 눈을 번뜩 떠, 진선미와 이민영을 향해 말했다.

“아무래도 다음 목적지를 변경해야겠습니다.”

“네? 갑자기요? 곤륜산으로 가는 것 아니었어요?”

진선미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곳은 시간 괴리가 커서 아직까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어디로 가실 건데요?”

아주 잠시, 고민을 한 나는 결정을 마치고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어차피 ‘인티’에게 돌려줄 아이템도 있었으니.

“태양신들을 포섭하러 갈 겁니다.”

* * *

곤륜산(崑崙山)

신선들이 거주하고 요괴들과 천인들이 거주하는 신비한 장소.

그들은 기록자이며, 한명 한명이 성좌에 버금가는 강자들.

차정우는 이곳에 들어온 후, 내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 안’이라는 놈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야 하는 것이 조금 자존심이 상해 보였다.

“빌어먹을 놈.”

“제법 친해진 거 아니야? 그래 보이는데. 후훗.”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차정우의 말에 답한 것은 이지은이었다.

“그런 거 아니다.”

“풋. 아니기는.”

서로 다른 세계에 속했음에도 두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는 건, 이 안 덕분이었다. 차정우도 그것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이 안이 바라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었다.

“너무 그러지 마. 너도 안이 씨도 노력하고 있는 거잖아.”

“그렇지.”

“다 같이 살아남아야지. 안 그래?”

“……”

차정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다른 분들을 찾아보자. 가장 높은 곳으로 모이기로 했으니까, 우리도 저 장소로 가야 해.”

이지은이 저 멀리 가장 높게 솟아오른 봉우리를 향해 손짓했다.

현재, 곤륜산에 진입하며 대부분 일행은 흩어졌기에 상황은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는 중이었다. 당장 이 안의 말대로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시급했지만, 지금은 모이는 것이 우선.

차정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놈은 역시 알고 있었나 보군.”

이지은이 피식 웃었다.

당연하게도 이 안은 곤륜산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일행들과 흩어지지 않았지만, 본래는 사소한 문제로 이곳저곳으로 흩어지는 것이 이곳이었다.

그 당시보다 더욱 강해진 힘을 가지고 너무 많은 인원이 진입해서 그런지, 좌표가 어긋나버린 것이었다.

차정우가 툴툴거리기를 반복하던 그 순간.

화악-!

내내 이 안을 욕하던 차정우의 시야에 엄청난 속도로 다가온 사내가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 아니, 무언가를 느낄 새도 없었다. 사내는 싱글벙글한 표정을 감추지 않고 차정우를 향해 말했다.

“너, 강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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