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2화
episode(17) 상생의 이유#4
“으악! 깜짝이야!!”
진선미의 놀람에 윤문이 허허 웃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진선미를 계속 지켜봐 온 윤문이었기에, 호통을 치면서도 진선미가 귀여운 듯 장난을 치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진선미의 배후성이 자신과 같은 무림계여서 였을까….
어쩐지 그리운 표정으로 진선미를 바라보는 윤문이었다.
“이봐요, 아저씨!! 놀랐잖아요!”
진선미의 호통에도 그저 웃기만 하는 윤문.
불투명한 상태로 공중에 떠 있는 모습은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귀신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외형이었다.
호쾌하게 웃던 윤문이 장난스레 말하자, 진선미 또한 지지 않고 대응하기 시작했다.
그런 둘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던 것도 잠시.
나는 몸을 일으켜 저 멀리 보이는 산성의 끝자락을 바라보았다.
오룡거와 오우관이 있어야 할 텐데.
걱정스러운 마음에 두 눈을 감자, 마지막으로 갱신된 ‘명’이 머릿속에 넘쳐나기 시작했다. 어떤 것은 이미 해결한 내용이었고 어떤 것은 앞으로 겪게 될 미래.
앞으로의 이야기가 남아 있었지만….
“일단 쉬죠. 재신 아저씨와 민영이가 올 때까지 눈 좀 감고 있을게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진선미였지만, 어쩐지 씁쓸해 보이기도 했다.
* * *
눈을 감고 적당한 휴식을 취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재신과 이민영이 돌아왔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야기는 많이 나눴습니까?”
흐뭇한 표정의 이재신,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귀에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꽂은 이민영이 보였다.
“물론이네. 자네 덕에 딸을 보살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맞아요! 두 분이 싸우기는 했지만, 결론적으로 우리 아빠를 죽인 사람은 아저씨도 아니고…. 뭐, 아무튼 고마워요!!”
두 사람의 말에서 느껴지는 것은 진심이었다. 죽이지는 않았지만 죽을 만큼의 전투를 치른 것은 사실이기에, 또한 나를 이기려 수명을 사용했기에….
나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두 사람을 향해 희미하게 웃었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물론이네. 걱정하지 말게나. 요즘 윤문 저자에게서 무공이란 것을 배우고 있으니, 지금보다 더욱더 도움이 될 것이야.”
“아저씨, 저도요! 열심히 할 테니, 우리 아빠 잘 부탁해요!!”
운이 좋아 두 사람이 일행이 되었지만, 어쩐지 미안한 마음은 거둘 수가 없었다. 나는 일행들에게 말했다.
“윤문과 재신 아저씨는 들어가 계세요. 이제 출발합시다.”
얼마나 이동했을까, 오녀산성이 보이는 장소에서 휴식을 취해서 그런지 곧바로 ‘해동의 천왕랑’이 지상에 내려왔다는 곳에 당도하게 되었다.
단 두 가지 물건만 찾으면 되기에 오랫동안 머무를 필요는 없었지만, 이곳에 온 이상 오룡거와 오우관을 찾아 삼족오가 찾는 성좌의 행방을 찾아야만 했다.
스아아아.
나는 곧바로 화안 금정을 발동해 반대쪽 눈을 감았다. 조금 더 ‘히든 피스’의 기운에 집중하기 위함이었다. 문제는 오우관과 오룡거가 아이템으로 분류되어 있느냐인데.
“잠시….”
공중에 날아올라 이곳저곳을 둘러본 나는 두 가지 장소에서 ‘히든 피스’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오녀산성.
절벽으로 이루어진 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직사각형 모양에 주변에는 압록강의 지류인 혼강과 동가강이 흘렀다. 200m 높이 절벽 위에 산성이 존재해 그야말로 천혜의 요새라 부를 수 있는 장소였다.
그리고. 오녀산성 안에는 천지(天池)란 연못이 있었는데, 화안 금정에 비춘 히든 피스의 흔적도 천지란 연못의 중앙과 산성의 끝자락에 있었다.
나는 곧바로 두 사람에게 말했다.
“큰 위험은 없는 것 같네요. 가시죠.”
화안 금정에 보이는 두 곳의 장소는 별다른 낌새는 없어 보였다. 자칫 게이트에 휘말리거나 흘러나온 몬스터들이 있을까 걱정도 해보았지만, 괜한 걱정이었던 것 같았다.
가장 먼저 이동한 장소는 오녀산성 안에 있는 천지라는 연못이었다.
“이곳에서 기운이 느껴졌는데…. 약해졌네요. 조금 둘러봐야겠습니다.”
진선미와 이민영 그리고 나는 연못을 중심으로 이곳저곳 수색에 나섰다. 히든 피스라고 뜬금없는 장소에 나타나는 것이 아닌, 무언가 특별한 조건이 있어야 한다면? 그 장소를 찾기 위함이었다.
한참을 뒤적여도 별다른 낌새가 보이지 않던 순간.
연못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피잉-
검은 물체가 엄청난 속도로 내 시야에 잡히더니, 곧 그것은 연못의 중앙을 여러 바퀴 돌기 시작했다. 몸을 이동해 잡으려는 순간 물체는 곧바로 오녀산성의 끝자락으로 이동하고 말았다.
“저건, 뭐지…?”
능력치의 상승과 화안 금정에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니. 말도 안 되는 속도에 당황하는 나였다.
“오라버니, 저쪽!”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오녀산성의 끝자락을 바라보던 내게 진선미가 소리쳤다. 곧바로 내 시선은 진선미가 손짓한 방향으로 향했고 그 방향은 검은 물체가 여러 바퀴를 돌았던 연못의 중심지였다.
번쩍이는 무언가가 연못의 중심지에 떠올라 있었다.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이려는 찰나, 연못의 중심지에서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격이 없는 자, 돌아가라.]
인간의 말투로 중후한 목소리에 고개를 좌우로 돌려가며 확인하자, 아무런 기척이 없다는 것에 내 시야는 금세 연못의 중심으로 향했다.
그 순간.
[다시 한번 말한다. 자격이 없는 자, 돌아가라.]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나는 이끌리듯 연못의 중앙으로 날아갔다. 반짝이는 구체에 담긴 무언가. 그것을 향해 손을 뻗으려는 순간 목소리는 다시 들려왔다.
[자격을 보여라.]
화악!
하얀 구체의 무언가는 갑작스레 인간의 외형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항우와 비슷한 고대 무장의 모습으로 인형에 가까운 무표정으로 나를 맞이했다.
[그대의 강함, 확인해 보겠다. 원하는 것을 얻어가려면 자격을 증명해라.]
목소리는 텔레파시처럼 퍼지는 것이, 구체 스스로가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마치, 어떤 것에 프로그래밍이 되어 자동으로 녹음된 말을 하는 듯….
챙-!!!
빠른 속도로 용광검을 꺼내든 나는 인간의 외형으로 변한 구체에 물었다.
“당신, 누구지?”
아는 얼굴은 아니었기에 원초적인 질문이었다. 누구인들 궁금한 것은 아니었지만.
인형은 말없이 검을 휘두를 뿐,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자격을 보이라는 것만이 그가 맡은 일이라는 듯.
나는 곧바로 용광검을 사정없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콰콰콰콰!!!
엄청난 수의 검기가 인형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공격을 막으려는 인형의 행동이 멈춘 순간. 나는 곧바로 틈을 파고들었다.
파천신공 검 초식, 제 4검 일도양단(一刀兩斷)
서걱.
순식간에 전개된 파천신군의 일격이 인형을 두 동강 내 버렸다.
[자격을 갖추었군. 이것을 가지고 내가 처음으로 내려왔던 장소로 오거라. 그곳에서 두 번째 시험을 치르겠다]
인형이 두 동강 났음에도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허공을 응시하자, 곧 인형이 다시 합쳐져 하얀 구체로 변했다. 번쩍이는 빛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하얀 구체는 하나의 아이템으로 변모해 내게 떨어졌다.
[‘히든 피스’ 오우관(烏羽冠)을 획득하였습니다.]
용광검을 재빠르게 집어넣고 오우관을 받아든 나는 화안 금정을 사용해 아이템을 확인했다.
별다른 설명이나 아이템의 효과는 없었지만, 분명하게 적혀있는 아이템명.
서둘러 일행들에게 이동한 나는 희미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일이 잘 풀릴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시험이란 건, 쉬운 것 같고.”
“오라버니가 찾는 물건이 그건가요?”
“네, 별다른 효과는 없지만, 확실합니다.”
어느덧 화안 금정에 신뢰가 생겨서였을까. 아니, 단순하게 보이는 아이템명으로 확신한 것은 아니었다. 들리는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기운과 이 아이템에서 느껴지는 것은 비슷했다. 심지어 나의 용광검이 아까부터 윙윙거리기를 반복하며 무언가에 반응하기 시작했으니.
그나저나…. 인형은 누굴 본떠 만든 거였을까.
인형의 외형이 어떤 자일 것이냐는 의문과 함께 이동한 나는 오녀산성의 끝자락으로 이동했다.
“여기인 것 같은데….”
처음과 다르게 화안 금정에는 히든 피스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나무와 풀 그리고 누군가 가꾸어 놓은 꽃밭이 시야에 보였다.
나는 천천히 발을 떼 중심지로 걸어갔다.
저벅, 저벅.
온갖 꽃들로 둘러싸인 중심지엔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나를 반겼다. 그 순간, 나무에서 이상한 기운들이 여러 개의 형상을 만들며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스스스스스.
기운들은 순식간에 변모해 윤문과 이재신과 같은 불투명한 상태로 나의 앞에 나타났다. 그들의 모습은 다섯 마리의 룡과 한 마리의 까마귀였다.
“삼족오…?”
당황스러움에 고개를 갸웃거리자, 연못에서 들었던 목소리가 다시 한번 울려 퍼졌다.
[자격을 갖춘 자여, 시험에 통과하거라. 그대가 원하는 답이 이곳에 있을지니.]
알 수 없는 자의 목소리와 함께 다섯 마리의 룡과 삼족오의 기운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중심에 거대하게 솟은 나무의 힘이라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곧바로 용광검을 꺼내 들었다.
촤릉.
은빛으로 고고하게 빛나는 용광검은 이곳에 와 더욱더 울림이 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울림은 다섯 마리의 룡과 삼족오가 나타나자 더욱 거세져 있었다.
화악!
엄청난 홍염이 나를 향해 쇄도했다.
“크흡…! 이건…!!”
갑작스러운 삼족오의 성흔에 놀란 나는 순식간에 거리를 벌렸다. 그러자 사방팔방에서 다섯 마리의 룡들이 나를 향해 브레스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콰콰콰콰!!!!
엄청난 위력에 눈살을 찌푸린 나는 버프를 사용할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나 자신의 힘으로 이겨내고 싶은 생각에 화안 금정만 사용한 채로 환영들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촤악!
엄청난 속도로 앞으로 치고 나간 뒤, 룡들을 향해 용광검을 휘둘렀다. 그다지 강한 적이 아니어서 그런지, 룡들의 환영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쿠화악!!
소멸한 룡들과는 달리, 엄청난 고열을 내 뿜는 삼족오가 나를 공격하고 있었다. 성좌의 환영이어서 그런지 공격에 당하면 상당한 상처를 입을 것을 염려한 나는 같은 홍염으로 삼족오의 공격을 방어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위력의 성흔이 서로를 집어 삼키려 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꽃은 불타고 나무와 푸른 숲은 어느새 불길에 사로잡혀 모든 것이 불타는 중이었다. 그 모습에 빨리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든 나는 곧바로 삼족오를 향해 용광검을 휘둘렀다.
촤악-!
“어?”
분명하게 베어졌을 삼족오였지만, 룡들과는 다르게 사라지지 않았다. 삼족오의 환영은 계속해서 홍염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큽…!”
홍염이 나의 옆구리를 스쳐 지나감에 나도 모르게 신음이 터져 나왔다.
“이것은 시험…. 그러니까, 단순하게는 안 끝난다 이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