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0화
episode(17) 상생의 이유#2
나도 모르게 내뱉은 욕설에 진선미와 이민영의 두 눈이 커져 있었다. 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시스템 로그에 집중했다.
소멸이라, 예상은 했지만….
가장 우려를 했던 부분을 현실로 마주치자, 당황함에 몸이 굳고 말았다. 이 방법이 아니라면, 나는 다른 방법을 사용해 강해져야 했다.
스킬, 냉정의 발동으로 침착함을 금세 되찾은 난 곧바로 다른 사체에 스킬을 발동했다.
[해당 영혼은 ‘소멸’했습니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영혼은 사역할 수 없습니다.]
[스킬의 발동이 취소됩니다.]
젠장.
남은 기회는 네 번.
단 한 번이라도 성공하면 좋으련만.
계속된 실패에 침울한 표정이 눈에 보였는지, 진선미가 말을 걸어왔다.
“오라버니, 괜찮을 거예요. 그 어려운 미션들을 헤치고 지금까지 왔잖아요!”
이민영도 질세라 진선미가 하는 말을 거들었다.
“맞아요. 이 언니가 모처럼 맞는 소릴 하네.”
“꼬맹이가!”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에 마음을 안정시킨 나는 계속해서 영혼 흡수를 발동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기에 동족을 흡수할 필요는 없었다.
시스템의 로그는 계속해서 실패를 말했다.
남은 기회는 항우와 사묘아리의 사체.
나는 침착하게 심호흡을 한 뒤, 사묘아리를 향해 스킬을 발동했다.
[해당 영혼은 ‘소멸’했습니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영혼은 사역할 수 없습니다.]
[스킬의 발동이 취소됩니다.]
……
역시 실패인가…?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하나?
복잡해진 머릿속으로 온갖 잡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항우의 사체에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스킬을 발동했다. 이 방법이 아니라면 다른 방법으로 강해지는 수밖에.
그 순간.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일렁임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항우의 전신이 흐려지더니, 곧 어두운 구체가 공중에 떠올랐다.
성공이다.
[스킬 [영혼 흡수 LV1]을 사용합니다.]
[영혼이 확인되었습니다.]
[영혼이 소멸 직전입니다. 사역에 실패합니다.]
[영혼의 기운을 흡수하시겠습니까?]
이전과는 다른 선택지에 당황하던 나였지만, 나는 어떻게든 성공했다는 것에 큰 의의를 두었다.
수락.
[‘항우’의 영혼이 흡수되었습니다.]
항우의 영혼이 흡수되었다는 시스템 로그를 본 순간, 검은 구체가 내 몸으로 빨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죽은 자의 기운을 흡수했습니다.]
[스킬, [선인의 기운 LV.3]이 진화를 시작합니다.]
[스킬, [선인의 기운 LV.3]이 [선사(仙死)의 기운 LV.1]으로 진화합니다.]
[당신의 모든 능력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해당 영혼의 스킬 한 가지를 습득할 수 있습니다.]
죽은 자들의 최강자여서 그런 걸까. 항우 한 사람을 흡수한 걸로 시스템의 로그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침착하게 스킬을 선택했다.
다음은….
스테이터스.
-
LV98 – 이안 / 26살
힘 - ???
민첩 – ???
마력 – ???
체력 - ???
LV 포인트 - 0
각성 등급 - 미확정
전용 특성 – 자신의 운명을 바라본 자
배후성 – 재미로 삶을 반복 하는 자
성흔 - [홍염(紅焰) LV MAX]
시드 - 60034010 seed
-
조금의 변화가 있었다.
나의 배후성에게 받은 ‘시간 괴리’라는 성흔이 사라져있었다.
죽은 자들과의 전투 이전에 게이트를 클리어했기에 예상한 부분이었지만, 막상 눈으로 보니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스테이터스 창엔 여전히 각성 등급은 보이질 않았고, 모든 능력치가 ??? 변해 있었다.
능력치의 최대치는 분명히 99999.
한데, 모든 능력치가 한계에 다다라서였을까?
최대치는 사라지고 기존에 한계치 가깝게 상승했던 능력치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능력치를 계속해서 바라보았지만, 마땅히 답도 나오질 않았기에 스테이터스 창을 끄곤 스킬창을 열었다.
[만인지적(萬人之敵) LV.1] - 희대의 무장들만이 얻을 수 있는 스킬로 공격력과 스킬 데미지가 1,500% 상승한다.
꽤 쓸만한 버프를 얻었음에도 아직도 한참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을 초월한 능력치, 온갖 버프와 갖가지 스킬들. 그런데도 무엇이 부족했을까.
나는 스킬창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건….
[각성 LV.2] - 선의 기운을 흡수했다. # 신, 마, 사 세 가지 기운을 추가로 흡수하면 봉인이 해제된다.
배후성의 도움으로 얻은 스킬.
다행스럽게도 곤륜산에서의 수행으로 ‘선’의 봉인을 해제한 나였다.
그 때문에 온몸이 부서지는 격통 속에 ‘환골탈태’의 경지에 이른 나.
나는 진화에 성공한 [선사(仙死)의 기운 LV.1]을 물끄러미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거라면….
죽은 자인 항우를 흡수하며 진화한 스킬.
이 스킬이라면 선인의 기운을 사용하며 각성의 단계를 높였기에, 한 단계 더 강한 힘을 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진선미와 이민영을 불렀다.
“두 분 잠시만 절 지켜주시겠어요?”
갑작스러운 나의 말에 두 사람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해볼 게 있어서요. 제가 소리치거나, 이상 행동을 해도 그대로 내버려 두세요. 다만, 몬스터나 제 몸에 해를 끼칠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에서 절 지켜주시면 됩니다.”
“그게 무슨….”
진선미와 이민영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계속해서 짓자,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부탁드릴게요. 설명은 나중에 해드릴 테니.”
부탁한다는 말에 진선미와 이민영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계속해서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해보자.
이미 인과 선의 기운을 흡수한 나였기에 사의 기운까지 흡수한다면 더욱 강해질 것이 분명했다.
현 상황에 내가 강해질 방법은 이뿐이었다.
나는 진선미와 이민영이 안 보이는 장소로 이동해 스킬을 준비했다. 이 전에 각성을 얻으며 ‘환골탈태’를 했을 때, 나는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단순하게 끝날 리는 없겠지.
나는 심호흡을 하면서도 긴장감을 풀지 않았다.
그 상태로 곧바로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 [선사(仙死)의 기운 LV.1]을 사용합니다.]
번쩍!
[육체의 재구성이 시작됩니다.]
엄청난 빛과 함께 무언가 나의 전신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다지 큰 고통은 없었기에 이대로 각성의 단계가 올라가나?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까드드득.
처음 각성 때 느꼈던 고통이 계속해서 밀려들기 시작했다. 뼈가 뒤틀리고 분해했다 다시 끼워 넣는듯한 그런 고통. 이미 겪어본 고통이었지만 능력치의 한계를 돌파한 나였기에 이 정도는 참을만했다.
한데….
고통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각성을 이루고 ‘환골 탈태’의 경지에 올랐을 때, 온몸의 뼈를 다시 끼워 맞췄다면 이것은 그 정도의 고통이 아니었다.
몸속에 모든 장기와 뼈를 새것으로 갈아 끼워 넣는듯한 그런 고통.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고통에 나도 모르게 신음이 터져 나왔다.
“끄… 끄어억….”
신음과 함께 지나친 역류 감에 위장을 게워낸 나는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진선미와 이민영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기 싫은 것은 물론이고 이 고통은 나 스스로가 이겨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지난번과 같이 재구성은 계속되었다. 발끝에서부터 조금씩 올라오는 고통은 한계를 돌파한 능력치를 가졌음에도 고통은 더해져만 갔다.
[육체의 재구성까지 3분 남았습니다.]
바닥에 쓰러져 꺽꺽거리기를 수십여 분. 고통은 계속해서 올라와 목 주변까지 이르렀다. 숨이 턱 막히고 눈과 코, 입에서 침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들이 계속해서 터져 나왔다.
이제는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나는 가까스로 시스템의 로그를 확인했다.
[육체의 재구성까지 10초 남았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강해지는 고통은 계속해서 나를 옥죄였다. 고통에 정신을 잃을만하면 더욱 커다란 고통이 밀려들어 나의 정신을 붙잡았다.
“꺼어….”
온몸의 힘이 빠져들어 바닥을 기는 순간.
[육체의 재구성이 완료되었습니다.]
[당신은 <조화경(造化境)>의 경지를 이루었습니다.]
새로운 경지에 눈을 떴다는 메시지와 함께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이런 고통을 두 번 더 느껴야 하는 건가?”
내가 바닥을 구른 장소는 온갖 분비물과 위액들이 섞여 있었고 지나치게 많이 흐른 땀 덕분에 바닥은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끝난 건가…?”
[스킬 [각성LV.2]의 봉인이 해제됩니다.]
[스킬 [각성LV.2]의 레벨이 1 상승 합니다.]
시스템의 로그에 정확하게 적혀있었다. 각성의 단계는 당연하게 상승했고, 무엇보다 전신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이로써 스킬, 각성은 LV.3에 도달했고 스킬 창엔 선의 기운 흡수, 인의 기운 흡수, 사의 기운 흡수 했다는 말이 적혀있었다.
남은 기운은 신, 마.
나는 바닥에 드러누워 두 팔을 길게 늘어트려 생각을 정리했다.
“인의 기운은…. 기본적으로 있었던 것이고 선의 기운은 곤륜산에서의 수행 덕분이었지. 사의 기운은 운 좋게 죽은 자를 흡수해서 해결했고 남은 건, 신과 마….”
신과 마.
단순하게 생각해도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신’은 성좌들을 말하는 것이고 ‘마’는 확실하게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번뜩 떠오른 것은 요괴들의 왕, ‘손오공’ 혹은 관리자들.
지금으로선 손오공과 관리자들 말고는 ‘마’에 대해서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결국, 성좌들과도 죽고 죽여야 한다는 건가….”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선 건 사실이지만, 나는 당연하게도 그들과 싸워야만 하는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살아남았으면 그 점이 마음 편할 테니까.
“후, 두 사람에게 가야겠다.”
나는 몸을 번쩍 일으켰다. 그런데.
가볍게 일으켰다고 생각한 내 몸이 공중으로 붕 뜨기 시작했다.
“어어??”
당황스러움에 온몸에 힘을 빼자, 곧 내 몸은 추락하기 시작했다.
척.
“뭐가 이렇게 가벼워?”
아무래도 각성의 탓이겠지만, 이 몸에 적응하려면 상당한 컨트롤이 필요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온몸에 힘을 빼고 천천히 움직였다.
당장 강해졌다는 기분이 들거나 스테이터스의 변화가 눈에 띄게 이루진 것은 아니었지만, 조그마한 행동에도 완연하게 다른 움직임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얼마나 강해진 걸까…?
넘치는 기대감으로 진선미와 이민영에게 이동하자, 두 사람이 인상을 찌푸리곤 코를 막기 시작했다.
진선미와 이민영이 동시에 물었다. 그것도 널찍이 떨어져서.
“오라버니, 혹시 시궁창에 들어갔다 오신 거예요...?”
“웩…. 아저씨. 이게 무슨 냄새야. 으악…!!”
한 발자국씩 내디딜 때마다 뒷걸음질 치는 두 사람.
나도 모르게 두 사람을 향해 발 걸음을 떼는 순간.
휘익!
엄청난 속도로 순식간에 두 사람 앞에 섰다.
“응? 이게 아닌데….”
역시 각성 때문인가…? 힘 조절이 필요하겠어.
나는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일단, 씻고 옷부터 갈아입을까요…?”
멋쩍은 미소로 말하자, 두 사람이 동시에 답했다. 그것도 단호하게.
“네.”
“당연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