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8화
episode(16) 죽은 자들#12
외침과 동시에 윤문과 이재신이 소환되었다. 그들 역시 상황을 알고 있었는지, 재빠르게 움직였고 곧바로 항우의 전신을 옭아매기 시작했다. 윤문이 말했다.
“시간이 얼마 없네!!”
윤문의 외침에 차정우를 향해 눈짓하자, 차정우는 자신이 낼 수 있는 모든 기운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스킬, 용사의 일격.
콰콰콰콰!!!
단 한 번의 휘두름에 엄청난 기세로 검격이 쏟아졌다. 재빠르게 윤문과 이재신을 소환 해제하자, 차정우의 검기가 항우의 전신에 박혀 들었다.
쿠콰콰쾅!!!
하지만 성검은 마왕에게나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상성이 좋은 검이지, 일반적인 사람에게는 성능 좋은 검과 다르지 않았다.
먼지를 훌훌 털며 미소를 짓는 항우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저벅, 저벅.
항우가 말했다.
“이번 건 위험했군. 이게 끝인가?”
전신이 넝마가 되고 입가에 흐르는 핏물에도 항우는 두 발로 서 있었다. 그의 강함은 아직 건재하다는 듯.
차정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본 모습에 당황하며 항우의 강함에 진절머리가 나는 나였다.
항우는 자신의 창을 들어 올렸다.
“이번엔 내가 가도록 하지.”
항우가 차정우에게 달려드는 순간, 윤문과 이재신을 다시 소환했다.
“저놈도 이미 한계야. 전부 쏟아부어!!!”
나의 외침에 윤문이 자신의 무공을 사용했다. 한층 강해졌지만 하나둘씩 시간이 다 되어가는 버프에 윤문과 이재신도 약해지는 중이었다.
윤문이 천마 신공을 사용했고.
이재신이 성흔을 사용해 거북선을 소환했다.
쾅!!! 콰쾅!!!
제법 힘을 회복하고 나의 버프로 강해져서 그런지, 열두 척의 거북선은 포격을 멈추지 않았다. 나름대로 버텨주고 있다고는 해도 나와 차정우 둘 다 한계였다.
“헉… 헉…”
차정우의 거친 숨소리가 내 귀를 맴돌기 시작했다.
“이만 죽거라. 나를 상대로 이 정도 버틴 것도 칭찬해 줄 것이니.”
항우의 창이 차정우의 심장을 관통하려는 순간.
용언 마법, 파멸의 숨결.
쿠콰콰콰쾅!!!!
“감히, 대장을!”
어느 정도 마력을 회복한 다이아나가 브레스를 쏟아부었고.
스킬, 무형시.
스킬, 산탄시.
후웅, 푸욱!!!
푹, 푸욱!!
콰콰쾅!!!!
김도은과 권지훈이 스킬을 발동해 소나기처럼 화살을 날려댔다. 항우는 머리 위로 쏟아지는 화살에 인상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먹혔나!?”
“아니, 얕은 것 같군. 대장 괜찮은가!?”
“네놈들….”
김도은과 권지훈의 공격이 멈추자, 거구의 남성이 방망이를 들고 뛰어들었다. 황금빛은 사라지고 평범한 방망이로 변모하고 말았지만, 결코 위력이 약하지는 않았다.
쾅!!!!!
꽝, 꽝!!!!
여러 차례 이어진 방망이의 일격에 항우가 핏물을 게워내고 있었다.
“안이 씨, 괜찮습니까!?”
“딱 좋은 타이밍에 등장하셨네요.”
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김영광과 김도은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분노한 항우가 스킬을 사용하자, 한순간에 날려져 간 사람들이 자세를 고쳐잡고 있었다.
항우는 우레와 같은 소리로 외쳤다.
“죽여주마. 인간들…!!!”
항우의 외침에도 온몸의 떨림이 사그라들었다. 나에겐 강한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항우를 향해 외쳤다.
“이미 죽은 인간이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다시 나와? 죽어라 제발.”
항우의 전신에서 검은 기운이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모두가 긴장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후대인들은 성격도 급하군.”
“그러게. 어이, 용사! 이놈 조지고 나랑도 한 번 붙자고!”
항우가 발산한 무차별적인 창격을 막아내며 미소를 짓는 유금필과 요시키였다. 두 사람의 모습에 당황한 그는 분노하기 시작했다.
“이놈들…!! 인간들의 개가 된 것이냐!!”
“에이, 뭘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당신도 인간이었잖아.”
요시키가 놀리듯 항우를 향해 답하자, 유금필도 지지 않고 한마디를 거들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네 편 내 편 가르는 것이 무엇이 나쁘겠는가? 안 그런가? 고대의 무신이여.”
항우는 두 사람을 향해 이를 바득바득 갈기 시작했다.
“기필코, 기필코 네놈들을 죽여버리겠다!!”
“그렇게 쉽게는 안 될 거야.”
“물론이네.”
요시키과 유금필이 항우를 상대하기 시작하자, 나는 김도은과 김영광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게 무슨….”
“당분간 저희를 돕기로 했어요. 그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저희가 필요하다나….”
걱정스러운 표정을 읽었는지, 김도은이 말을 이어갔다.
“저분들이 아니었으면, 저흰 이곳에 오지 못했을 거예요. 여차하면 안이 씨가 더 강하니 죽이면 되잖아요?”
“……일단 알겠습니다.”
김도은의 말이 맞았다. 나와 차정우가 힘겹게 싸우는 항우보다는 요시키과 유금필이라는 자가 훨씬 약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동조화를 비롯해 모든 버프의 시간이 끝나자, 이 전투를 이기는 방법에 대해서 결론을 내리기 시작했다.
방법은 단 한 번뿐.
“다들 싸우세요. 전, 여러분에게 힘을 드릴 겁니다.”
나의 말에 차정우가 답했다.
“네놈, 방법이 있나? 마지막 타격을 위한 것인가?”
“아니. 난 마지막을 타격하지 않을 거야. 내가 강해질 방법은 이미 전장 속에 수두룩하니까.”
“그럼….”
“날 믿고 싸워. 이게 최후의 수단이야.”
“……”
차정우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성검을 고쳐 쥐었다. 그리고.
유금필과 요시키가 분전 중인 곳으로 일행들이 병장기를 휘두르며 나아갔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스킬창을 열었다. 그동안 얻은 스킬들이 나의 시야에 들어오자, 마음을 굳게 먹은 나는 한 가지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 [동조화(횟수 제한) LV MAX]을 발동합니다.]
[일시적으로 성좌, ‘거품에서 올라온 자’의 힘이 당신에게 깃듭니다.]
[동조화의 제한 시간은 5분입니다.]
[성흔, [ἀγάπη, ης, ἡ ἀγάπη LV MAX]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파앗!
5분이면 충분하지.
본래라면 쿨타임 때문에 사용하지 못했을 스킬이었다. 그런데도 내가 이 스킬을 다시 한번 사용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횟수 제한]이라는 제한적인 동조화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
동조화의 횟수는 조금 전 사용으로 소멸하고 말았지만, 이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관련이 없는 성좌와 두 번의 동조화를 사용하자, 두통이 밀려들었다. 엄청난 고통에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나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한 번만…!!
나는 모두를 향해 외쳤다.
“이기세요!!”
후방에서 나의 목소리와 함께 일행들의 전신에 거품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성흔, [ἀγάπη, ης, ἡ ἀγάπη LV MAX]을 사용합니다.]
3,000% 능력치와 스킬 데미지의 상승, 온몸이 가리비의 껍데기와 같이 단단해지는 방어력.
회복력의 한계 돌파.
이것으로 내가 할 일은 끝이다.
나 한 사람에게 사용해도 버프의 후폭풍은 엄청났기에, 유금필과 요시키를 비롯해 총 일곱 사람에게 사용하는 동조화의 버프는 나의 정신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번쩍!
버프를 받은 자들에게서 엄청난 기운이 샘솟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래도 죽이지 못하면, 우리들의 패배라고.
엄청난 고통과 함께 항우를 몰아붙이는 일곱 사람을 향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의식은 날아가고 말았다.
털썩.
[당신의 ‘명’이 갱신됩니다.]
이 안이 쓰러진 뒤.
갑자기 강해진 자신의 힘에 당황하며, 서로를 향해 눈짓을 주고받았다.
가장 먼저 입을 연 차정우.
“쓸만하군.”
이미 한 번 이 안에게 버프를 받아본 차정우였기에, 자기 몸에 일어나는 변화를 가장 먼저 눈치챈 차정우였다.
“안이 씨, 고생 좀 하겠는데요?”
“어서 해치우고 가시죠.”
김도은과 김영광이.
“이 힘은…. 그놈인가?”
“역시 내 친구야!!”
권지훈과 다이아나가.
“말도 안 되는군. 저자는 괴물인가…!?”
“하, 나조차도 이 정도의 버프는 사용하지 못하는데…. 저 용사 놈보다 관심이 가는데?”
유금필과 요시키가.
각자가 한마디씩 거들며 항우에게 달려들었다. 이미 지쳐있는 그였기에 단시간에 이 정도로 강해진다면 항우에겐 위기였다.
차정우가 성검을 휘두르며, 자신의 스킬을 발동했다.
스킬, 무한의 검격.
파팟, 사사사사삭.
엄청난 수의 검기가 항우의 몸에 치명상을 입히기 시작하자, 김도은과 권지훈이 다시 한번 모든 것을 쏟아부은 화살을 날려냈다.
두 발의 화살이 항우의 몸에 박혀 드는 순간.
다이아나는 모든 마력을 쥐어 짜냈다.
9서클 마법, 화룡.
엄청난 크기의 룡이 마력의 형상으로 만들어지더니, 화(火) 속성이 깃들어 붉은 룡으로 변모해 날아갔다.
항우는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네놈들은 최후의 1인이 될 수 없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넘지 못할 산이 있다는 걸 모르느냐!!!”
유금필이 검을 높이 치켜들더니, 항우를 향해 말했다.
“그딴 것에 관심 없네. 이만 죽게나.”
검도술, 천지 가르기.
번쩍!
유금필의 검에서 번쩍이는 빛이 항우를 향해 쏘아졌다.
서걱.
불필요한 움직임을 모두 제하고 단 한 번의 휘두름으로 항우의 오른팔을 잘라낸 유금필이었다.
“크하악…!!”
오른팔과 함께 자신의 창을 놓쳐버린 항우. 요시키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항우의 창을 쥐어 올렸다.
“앞으로 이 창은 내 거다. 대장, 잘 가라고.”
웨폰 마스터 (Weapon Master)
모든 모기를 다룰 수 있는 요시키의 일격이 항우의 복부를 관통했다. 보통 사람이면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치명상을 입었지만, 항우는 멀쩡하게 서 최후의 일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김영광이 말했다.
“안이 씨가 찬 바닥에 누워서 기다립니다.”
이 정도면 광신도라 해도 믿을 정도의 충성에 김도은이 혀를 차기 시작했다.
스킬, 대영웅의 힘.
사람 몸체만 한 몽둥이는 스킬을 사용하자, 곧 성인 남성의 크기만큼 커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몽둥이를 항우를 향해 휘둘렀다.
후웅-!!
빡!!!
온몸의 뼈가 으스러질 정도의 일격에도 항우는 거칠게 피를 토할 뿐, 쓰러지지 않았다. 이것이 자신의 마지막 자존심이라는 듯.
항우는 비틀거리는 몸에 힘을 줘, 우뚝하게 서서 말했다.
“우희여, 유방이여. 나는 무엇이 부족해 또 지는가….”
한이 맺힌 항우의 말을 모두가 듣는 순간.
서걱.
차정우는 성검을 휘둘렀다. 몸과 분리된 항우의 얼굴이 포물선을 그리며 허공으로 날아갔다.
털썩.
전투는 분명하게 내부와 외부의 승리였지만 이번 전투는 희생이 너무나도 컸다는 생각에 차정우는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사묘아리와의 전투로 기보의 주인 한 사람과 사파의 지존인 무림계의 천마가 사망하였으며.
마초와 그의 부하와의 전투로 우범혁은 생존했지만 외부지구의 생존자들이 절반 사망하였다.
그리고 요시키의 힘에 이 종족 대표들이 전멸하였고, 남은 다섯과의 전투로 임해든과 진선미는 겨우 목숨을 구했을 뿐, 대부분의 내부지구인과 세외 사천왕, 천하 오절이 죽음을 맞이했다.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더 많은 전투에 전장은 숙연하기만 했다.
* * *
정신을 차린 이 안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요시키와 차정우의 말다툼이었다.
“같은 용사니까 이해해줄 수 있잖아!! 난 네 놈들을 도왔다고!!”
“도왔지. 하지만, 네놈이 이 종족 대표들을 몰살한 것은 사실이다.”
“아오!! 이 새끼, 말이 안 통하네. 난 네 놈들과 적이 될 생각이 없다니까?”
“그건 네놈 생각이겠지. 내가 신경 쓸 건 아니다.”
아, 무슨 상황인지 대충 알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