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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146화 (146/206)

제146화

episode(16) 죽은 자들#10

검을 쥔 유금필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자신 혼자서는 이기지 못하는 상대임을 알고 있었다.

죽으면 소멸임에도 유금필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죽더라도 자신을 모욕한 성좌 놈을 찢어발기고 싶을 뿐이었다. 그런 유금필의 모습을 보던 용사는 혀를 차며 말했다.

“이봐, 영감. 내가 누군지 알고는 있지?”

용사는 자신의 기운을 한껏 방출시키기 시작했다.

스아아아.

그 모습에 유금필은 자신도 모르게 몇 발자국 뒷걸음질 쳤다.

본능적인 공포란 이런 것이다.

그저 강하기만 한 존재가 아닌, 하나의 세계를 멸망으로 빠트린 장본인.

그의 이름은 시미오카 요시키.

요시키는 일본인으로 차정우와 같이 이세계로 불려간 자였다. 처음에는 죽을 위기를 몇 번이나 겪어가며 이세계를 구하려 애썼다. 결국, 마왕을 처치하며 이세계를 구한 요시키.

하지만….

그가 마왕을 처치하고 돌아갔을 땐, 이미 100년이 흐른 뒤였다. 가족과 친구들 그 누구도 그를 반길 수 없었다. 아니, 이미 죽고 난 뒤였다. 당연하게도 사람들은 그를 이상하게 여기기 시작했고 철저한 마녀사냥으로 요시키의 정신은 피폐해져만 갔다.

그 결과.

요시키는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용사의 능력으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파괴하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세계 자체를 파멸에 빠트리게 된다.

그렇게 하나의 세계는 요시키의 타락으로 무너졌다.

용사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 이세계를 구한 요시키는 자기 세계는 지키지 못했다. 다시 돌아간 그에게 남은 건 절망뿐이었으니.

요시키가 점점 유금필을 향해 걸어왔다.

저벅, 저벅.

이전의 그였다면 성검을 꺼내 들어 단숨에 베어 죽였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이미 용사의 자격을 박탈당한 요시키는 성검을 소환할 수 없었으니까.

그 때문에 이 종족 대표들이 사용하는 무기를 빼앗아 사용해야만 했다.

“영감이 사용하는 검 좋아 보이네? 당분간 그걸 써야겠어.”

“검은 내 분신과도 같은 것을, 빼앗기겠는가? 덤비게. 어른 공경이 필요한 소년이여.”

“개소리를.”

파앗!

요시키가 유금필을 향해 달려들었다.

동시에 땅에 처박힌 이종족 대표들이 사용하던 무기가 공중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엘프의 활, 다크엘프의 단검, 드라고뉴트의 창까지.

수십 개에 달하는 병장기가 공중에 떠오르더니, 유금필을 향해 날려져 갔다.

쏴아아아!!!

유금필은 침착하게 병장기들을 일도양단하기 시작했다. 신기나, 선기같은 강력한 무기가 아니어서 그런지, 수십 개에 달하는 병장기들은 단숨에 부서졌다.

그 순간.

병장기에 한 눈이 팔린 유금필은 순간적으로 요시키를 놓치고 말았다.

빡-!!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요시키의 묵직한 주먹이 유금필의 등을 타격했다. 갑옷은 점점 으스러지더니, 거리를 벌린 유금필이었다.

유금필은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 조그마한 부딪힘에도 이 정도의 격차라니. 말도 안 되는 요시키의 힘에 마땅한 대책이 생각이 안 나는 중이었다.

조금의 시간이라도 벌어보고자, 유금필이 입을 열었다.

“자네의 강함은 이질적이로군.”

“그렇지? 세계는 내게 이런 강함을 주고 왜 전부 가져가 버린 걸까?”

“……”

“정의를 실현하고자, 세상을 구했더니 내 세계는 없더라고. 왜일까?”

알 수 없는 요시키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유금필.

요시키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난 아직도 모르겠단 말이야. 그렇게 절망만 보여줘 놓고 인제 와서 뭘 이루라는 거지? 나는 왜 또 싸우고 있는 거지? 영감, 당신은 알아?”

요시키의 말에 유금필은 답을 할 수 없었다. 자신도 목적이 있어 싸워 왔지만, 결국 그 목적 뒤에는 무엇이 남아있을지 본인도 모르는 것이었다.

말이 없는 유금필을 향해 요시키는 씁쓸한 표정을 지어냈다.

“그것 봐. 당신도 모르네. 참, 내부지구라는 곳엔 차정우라는 용사가 있다던데. 그놈은 알까? 그놈도…. 모든 걸 잃어봤을까?”

이미 죽은 자인 요시키의 감정 없는 눈빛이 허공을 맴돌았다. 유금필은 그런 요시키에게 무언가를 느낀 듯, 말했다.

“자네, 그 모든 걸 알 수 있다면 어떻게 할 텐가?”

“영감. 나는 하나의 세계를 멸망시키고 지옥이라는 곳에서 수없이 많은 세월을 보냈어. 그러다 변방으로 쫓겨나 이런 상황인 거지. 지금 와서 그런 게 중요할까?”

유금필의 말에 조그마한 희망이라도 본 것일까. 요시키의 말투가 조금은 온화해진 것 같았다.

유금필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이미 죽은 자들이네. 하지만, 산 사람들은 방법이 있지 않겠나?”

“……”

“잘 생각해보게. 이대로 가면 우리는 장기 말로 죽을 뿐이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사실, 요시키의 사정에 이유는 없었다. 어쩌다 보니 이세계의 용사가 된 것뿐이었고 어쩌다 보니 시간 축이 어긋나 모든 걸 잃은 것뿐이었다.

유금필은 그 부분을 놓치지 않았다. 사람은 목적이 없으면 망가진다. 유금필은 요시키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잘만 말하면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장기 말로 쓸 수도 있겠다고.

목적을 심어줄 수만 있다면, 요시키를 자기 생각대로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

유금필이 말했다.

“자넨 들어봤는가? 곤륜산이라고.”

“곤륜산…?”

“그래, 그곳은 기록자들과 수많은 신적 존재들이 거주하는 장소라고 들었네만.”

전혀 처음 듣는다는 표정을 짓는 요시키였다. 유금필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기록자들은 모든 곳의 역사와 신화를 기록한다더군. 그곳에 가면 자네가 그렇게 된 이유를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유금필이 말한 것은 하나의 방법일 뿐, 가능성은 희박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요시키를 이용할 수 있다면….

“나는 이미 외부지구의 두 사람을 포섭했네. 날 도와주기로 했지.”

“아하, 그래서 영감이 나한테 덤벼든 거였군.”

“그렇지.”

요시키는 잠시 생각을 이어가더니, 유금필을 향해 말했다.

“영감의 목적은 뭐지?”

“난, 한 사내를 죽이는 것. 그것만이 지옥에서 내 목표였으니. 그 사내를 찾는 것이 내 목표겠지.”

“그렇군.”

유금필은 긴장감을 머금은 채, 요시키의 말을 기다렸다. 그의 목적은 자기 삶의 이유를 찾는 것.

조그마한 가능성은 무한한 희망을 주는 법. 요시키의 마음은 이미 기울었을 가능성이 컸다. 간단한 이유였다. 요시키는 전투 의지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요시키는 잠시간 말이 없더니, 결심을 했다는 듯 유금필을 향해 이동했다.

“영감이 도와줄 거야…?”

요시키의 물음에 유금필은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물론이네.”

“날 배신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꼭 도와줘야 해. 알겠지?”

“내가 자네를 도울 테니, 자네도 날 돕는 건 어떠한가?”

“뭐, 그 정도쯤이야.”

자기 생각이 먹혀들었다는 생각에 유금필은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요시키는 스무 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죽어서 그런지, 정신 연령은 아직도 그 나이대에 머무른 것 같았다. 그도 그럴게, 유금필 본인도 지옥에서 기나긴 시간 동안 정신적인 면은 성장하질 않았으니까.

요시키가 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건데?”

“이 전투는 죽은 자들의 패배로 끝나야 하네. 그렇게 되려면 어찌해야 하겠는가?”

“힘만 믿고 대장 놀이하는 항우 그놈부터 조져야지.”

“아닐세. 현재 전장의 기운을 느껴보게.”

유금필이 말하자, 요시키가 전투를 치르는 장소로 기운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세 곳….”

“맞네. 세 곳은 아직도 전투가 이뤄지고 있지. 기운으로 보아, 항우와 사묘아리 그리고 그놈일세. 다른 곳은 이미 우리들의 패배로 전투가 끝났으니.”

“음. 그래서?”

요시키는 유금필의 생각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는 듯, 말을 잘라냈다.

유금필이 답했다.

“내부와 외부의 최강자가 항우를 상대하고 사묘아리는 죽어가고 있네. 그렇다면 우리는 그놈을 처치해야 하지 않겠나? 내가 포섭한 인간들도 그놈과 상대 중이니.”

유금필이 말하자, 요시키는 인상을 찌푸리곤 조용하게 말을 내뱉었다.

“아, 그놈은 나도 조금 껄끄러운데….”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걸 누가 모르나. 그런데 한 가지 신경 쓰이는 게 있는데.”

“말해 보게.”

“내가 이놈들을 모조리 죽여버렸는데…. 날 도와줄까?”

“……그걸 생각 못 했군.”

유금필은 바닥에 널브러진 이 종족 대표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당장 도움을 받아야 할 이들의 동료를 전부 죽여버렸으니….

“어쩌지…?”

요시키는 난감한 듯,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물었다.

“일단, 그들을 도우세. 당장 위험한 건 그들이니.”

“흐음, 알겠어. 영감이 알아서 해주길 바라지.”

“……이럴 때만 날 의지 하는군. 죽이겠다고 달려들 땐 언제고.”

“가자!!”

난감해하는 유금필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이동하는 요시키였다.

요시키가 먼저 공중을 날아 이동하자, 유금필은 괜스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린아이의 보호자가 된 기분이라던가.

“내가 어쩌다가….”

* * *

이동한 유금필과 요시키는 초토화된 전장에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그놈은….”

“아직 전투는 한창이네. 우리 둘이 합세하면 가능성은 있을걸세.”

유금필이 말하자, 요시키는 한쪽 눈을 찡그리며 물었다.

“영감, 우리보다 약한 놈을 돕는다고 우리가 목적에 다가설 수 있을까?”

요시키가 이런 의문을 표한 것은 당연했다. 자신보다 약한 이들이 무슨 도움이 될 것이냐는 단순한 물음이었다. 자신이 살아온 세계는 강함만이 전부였기에.

유금필이 답했다.

“그들은 죽은 자들과는 다르게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네. 당장, 항우와 싸우는 그들의 강함이 안 느껴지는가?”

“음…. 확실히 그놈들은 나보다 강하군.”

“분명 도움이 될걸세. 날 믿게.”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요시키가 고개를 끄덕이자, 순간.

다른 전장에서 기운이 하나 사라졌다.

“영감. 사묘아리 그놈 죽었나 본데?”

“그것 보게나, 인간들은 강하네.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야.”

“쳇. 알겠다고. 죽지나 말라고.”

“허허허, 걱정하지 말게나. 죽어도 목적을 이룬 뒤에 죽을 테니.”

“그놈이 뭐라고 목숨까지 거는지, 이해는 안가지만….”

유금필의 목적이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는 건 요시키도 대강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해가 가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유금필의 말을 따르는 건 본인의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게 전투가 벌어지는 장소로 이동한 요시키와 유금필.

파앙-!!!

여기저기서 공기가 터져나갔고 여기저기 널브러진 괴생명체가 두 사람을 반기고 있었다.

“영감, 저쪽!!”

요시키가 외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유금필의 시야에 보르트몰트와 네 사람이 전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누구 하나 죽지는 않았지만, 보르트몰트는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는지 필사적으로 네 사람을 막아내는 중이었다.

누구 하나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요시키가 말했다.

“저놈 저거, 이미 죽어가는데? 그렇다면…!”

요시키가 기운을 방출시키더니, 순식간에 보르트몰트의 뒤로 이동했다.

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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