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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144화 (144/206)

제144화

episode(16) 죽은 자들#8

왼손에 마력으로 만들어진 방패와 오른손에 조그마한 지팡이를 쥔 보르트몰트. 그는 오롯이 마법만 우대받는 세계에서 용사를 죽이고 살아남은 마왕이었다. 누군가는 그를 이렇게 불렀다.

대현자 혹은 10서클 대마법사라고.

얼굴이 일그러져 그의 표정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감정인지 알 수는 없었다. 다이아나와 권지훈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재앙급의 강자라고.

공격의 개시는 다이아나였다. 어린 소녀의 모습으로 브레스를 쏘아대고 마법을 사용한다고 할지라도, 자신 혼자서는 보르트몰트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이아나가 말했다.

“야, 죽기 싫으면 정신 차려.”

넋 놓고 다이아나의 공격을 보던 권지훈이 다이아나의 말에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어? 어어….”

이세계로 불려갔으나, 용사는커녕 특별한 능력도 없었던 사내. 사기적으로 강해지는 차정우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그였다. 하지만.

“여기서 떨고 있으면…. 나, 난…!”

권지훈은 시스템만 주어진 멸망에서 차정우의 등을 바라보며 강해진 남자였다. 이세계의 이 종족에게 절대 밀리지 않던 사내.

이세계를 평정한 차정우의 측근으로 권지훈 또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가 되어 있었다.

“비켜어!!!!!”

권지훈의 외침에 다이아나가 몸을 휙 피해냈다. 차정우를 비롯해 권지훈까지 셋은 항상 전투의 선두에서 싸워왔으며 서로 간의 합이 가장 잘 맞았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후웅-!!

엄청난 속도의 활이 보르트몰트에게 날아갔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자기 귀에 들렸을 때, 권지훈은 확신했다.

“뒤져, 징그러운 새끼야.”

푸욱.

뜻밖의 기습에 공격을 허용한 보르트몰트는 자기 심장에 박혀 든 화살을 지긋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승리에 찬 눈빛을 지으며 권지훈이 말했다.

“단순하게 박히기만 하면 재미없지? 자, 이제 네 심장은 터질 거야. 영원히 꺼져버려.”

그 순간.

보르트몰트에 박혀 든 화살이 엄청난 폭음을 내며 터져나갔다.

쾅!!! 콰콰콰쾅!!!!

폭음은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터져나갔다. 이것으로 보르트몰트는 죽는다. 라고 생각하는 권지훈이었다. 하지만.

스스스스.

심장과 함께 터진 보르트몰트의 조각들이 연기 속으로 빨려들었다. 눈으로 봐도 이해가 불가능한 상황 속에 다이아나는 외쳤다.

“피해!!!”

피웅-!

한발의 레이저가 권지훈의 어깨에 박혀 들었다. 연기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정확도가 떨어졌군. 재생 후에 쓰는 마법은 항상 이런 식이군.”

연기가 조금씩 걷히자, 다이아나와 권지훈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심장에 박혀 든 화살이 사라진 것은 물론 조각난 온몸이 멀쩡했기 때문이었다.

보르트몰트는 두 사람의 표정을 읽어냈다.

“그래, 궁금한가? 어떻게 심장에 화살이 박히고도, 온몸이 조각났음에도 멀쩡하게 살아있는지?”

물어보지도 않은 말에 보르트몰트는 혼잣말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비밀 하나 알려주지. 네놈들은 날 죽일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내 목숨은 일곱. 한 번은 운 좋게 죽였다고는 해도 두 번은 없을 것이다.”

권지훈과 다이아나의 표정이 경악으로 변해갈 즈음. 보르트몰트는 자신의 지팡이를 허공에 찍으며 마법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콰쾅!!! 콰콰쾅!!!

무자비하게 쏟아지는 마법에 다이아나가 앞으로 나섰다. 그녀 또한 최후룡으로 9서클까지는 사용이 가능했고 더 나아가 용언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파앙-!!!

다이아나의 방어법은 간단했다. 화(火) 속성의 공격이 쏟아지면 수(水)속성으로 방어했다. 상반되는 속성들이 공격을 막아내자, 흥미롭다는 듯 보르트몰트가 공격의 강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녀 또한 최후룡으로 9서클까지의 마법은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10서클 역량의 차이가 너무나도 컸다. 다이아나는 다중 영창을 전개해 양손에 각기 다른 마법을 담아냈다.

쿠구구구.

땅의 진동으로 그녀의 마법이 얼마나 강대한 힘인지 알 수 있었다. 왼손에 용언 마법. 오른손에 9서클 마법의 발동. 일반적인 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마법들이 보르트몰트를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이아나가 왼손을 공중으로 들었다. 무엇을 하는지 권지훈은 알고 있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벌린 권지훈도 자신의 스킬을 사용해 보르트몰트를 겨냥했다.

용언 마법, 템페스트.

“뒤져.”

다이아나의 음성이 낮게 깔리자, 구름의 색상이 점차 흙빛으로 물들더니 번개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주변 일대를 초토화하는 자연재해에 버금가는 힘.

콰콰콰콰콰콰!!!

번개의 비가 끝은 아니었다. 남은 오른손도 공중에 들어 올린 다이아나가 말했다.

“막을 수 있으면 막아 보거라. 마왕이여.”

메테오 스트라이크.

쿠우우우.

번개의 비가 쏟아지는 상황 속에 다이아나는 9서클 마법을 사용했다. 본래라면 마력의 소모가 크기 때문에 잘 사용하지 않을 테지만, 눈앞의 괴물을 여섯 번이나 더 죽일 바엔 한 방에 날려버릴 생각을 한 것이었다.

엄청난 크기의 운석이 구름을 뚫고 보르트몰트를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누구라도 이 마법에 당한다면 몸 성히 끝나지는 않을 터.

다이아나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꼴좋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콰앙!!!

거대한 폭발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진 보르트몰트였다. 권지훈이 다이아나를 부축하며 물었다.

“해치웠나?”

“글쎄…. 아무리 강해도 두 가지 마법을 섞었는데 살아있을….”

그 순간.

다이아나의 말을 자르고 나타난 보르트몰트가 말했다.

“크하하하핫. 대단하구나, 대단해!! 이 내가 다섯의 목숨을 바쳐야만 막아낼 수 있는 공격이라니.”

“미친…. 괴물 새끼.”

권지훈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오자, 다이아나는 자신을 부축한 권지훈의 팔을 밀어내며 말했다.

“이번 공격이 내 마지막 공격이 될 거야. 두 번은 없다. 망할 놈아.”

권지훈이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마력을 끌어모으는 다이아나의 행동에 권지훈이 앞으로 나서 그녀를 지키기 시작했다.

보르트몰트는 말했다.

“대단한 동료애로구나. 사실, 동료 따윈 필요 없다는 것을. 자, 보거라 이것이 그대들이 느낄 절망이다.”

보르트몰트는 자신의 지팡이를 사용해 허공에 알 수 없는 마법진을 그려냈다. 마법진이라면 다이아나와 자신도 제법 일가견이 있음에도 어떤 마법을 발동할지, 예측조차 하지 못하는 권지훈과 다이아나였다.

두 가지의 마법진을 모두 그려낸 보르트몰트는 허공을 향해 말했다.

“멸망하거라. 그리고 오너라 나의 종속들이여.”

여섯 번의 목숨을 거뒀음에도 멀쩡한 보르트몰트. 그의 마법은 단순한 마법이 아니었다. 세상의 진리를 파악하고도 모자란 세월을 산 자만이 넘을 수 있는 한계. 그것을 넘어선 힘이었다.

메일스트롬(maelstrom)

헬게이트(hellgate)

번쩍!

휘황찬란한 빛이 다이아나와 권지훈의 시야를 가려냈다. 너무나도 환한 빛에 잠시 눈을 감은 두 사람이 다시 눈을 떴을 땐, 절망만이 그들을 반기는 중이었다.

“이런, 제기랄…. 이게 말이 되는 거냐?”

“빌어먹을. 이제야 진정한 친구가 생기나 했더니…!!”

다이아나가 사용한 메테오의 운석보다 몇 배는 더 큰 멸망의 소용돌이, 메일스트롬이 전장의 모든 것을 쓸어 담고 있었다. 고작 하나의 마법진에서 나온 것이 그녀가 사용하는 용언, 9서클 마법을 넘어서는 힘이었다. 그리고.

스아아아.

엄청난 악취가 풍겨오는가 싶더니,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어둠이 소환되었다. 보르트몰트는 다이아나와 권지훈을 향해 말했다.

“이것이 그대들이 말하는 멸망이니라.”

깊은 어둠 속에서 기괴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그것들은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악마.

누가 보아도 그것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악마의 외형이었다. 이마에 솟아난 두 개의 뿔, 호리호리한 몸에 새까맣게 그을린 피부들. 기다란 꼬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기괴한 웃음소리가 퍽 듣기 싫었다.

보르트몰트는 말했다.

“10서클의 경지에 도달하면 이런 것도 가능하지. 나는 허무의 공간을 창조해 나만의 부대를 그곳에 대기시켰지. 그 수는 1만 자, 절망하고 또 절망하거라. 크크큭”

다이아나와 권지훈을 향해 다가오는 멸망의 소용돌이의 뒤로 1만의 달하는 악마들의 군세가 깊은 어둠 속에서 기어 나오자, 두 사람은 넋이 나가고 말았다.

이세계의 최후룡인 다이아나. 그녀 또한 9서클과 용언 마법을 깨우치며 넘을 수 없는 한계를 넘어섰음에도 눈앞의 괴물을 이길 수 없다는 확신만이 가득 차고 있었다.

“저건… 모, 못 이겨…….”

권지훈도 마찬가지였다. 괴물이라 자부할 수 있는 용사, 차정우의 뒤를 바라보며 성장했음에도 그를 넘어서지 못한 것처럼, 보르트몰트는 자신이 넘어설 수 없는 벽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여기까진가….”

압도적인 강함에 포기하는 순간.

“벌써 포기하면 안이 씨한테 혼날 겁니다.”

“활 사용법을 알려드려야 하나?”

활과 몽둥이를 든 두 사람이 다이아나와 권지훈의 앞에 섰다.

“저 소용돌이는 제가 막아보죠.”

“그럼 꼬리 달린 괴물들은 내가.”

* * *

김도은과 김영광이 자리를 벗어난 곳은 광활한 평지였다. 활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방해물이 없고 조금의 바람만 부는 이곳이 제격이라고 생각해 이동한 것이었다. 김영광은 아무 생각이 없었겠지만.

그녀 본인에게 유리한 장소로 이끌었음에도 사내는 인자하게 웃을 뿐이었다. 김도은이 물었다.

“뭐가 좋아서 그렇게 헤실헤실 웃는 거예요?”

“허허, 당돌한 처자일세. 후손들의 강함이 이렇게 대단하니 뿌듯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후손…?”

김도은의 표정에 의아함이 가득 차고 있었다. 김영광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르신께서는 한국과 관련이 있는 분이신지.”

예의를 가득 차린 김영광이 사내에게 물었다. 사내는 인자하게 웃으며 그런 김영광의 태도가 나쁘지 않다는 듯, 손사레를 치며 말했다.

“자네들이 내 이름을 알고 있을지 모르겠군….”

사내는 부끄럽다는 듯, 말꼬리를 흐리더니 김도은과 김영광을 향해 말했다.

“살아생전, 나의 성은 유. 이름은 금필이었다네.”

역사를 잘 모르는 김영광이 어디서 들어봤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기 시작했다. 그에 반면 김도은의 표정은 제법 볼만했다.

“하…. 이건 뭐….”

유금필.

고려 초기의 장군이며, 고려 초대 대왕인 왕건(王建)을 도와 후삼국 통일을 이뤄내고 고려를 세운 개국공신으로 혁혁한 공을 세운 고려 최고의 용장이었다.

한국사 최강의 무장 중, 무패의 무장으로 흔히들 알고 있는 이름이 있다. 해상에서 단 한 번의 패배도 하지 않은 이순신. 고려 최강의 무장 척준경. 그들에 비해 유명세는 떨어질지언정 유금필 또한 무패의 무장으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존재였다.

유금필이 인자하게 웃으며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

스르릉.

“날 아는가? 허허허, 부끄럽군. 후손들의 힘을 확인해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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