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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142화 (142/206)

제142화

episode(16) 죽은 자들#6

차정우와 항우의 전투 이후로 6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차정우와 나는 우선적으로 게이트를 클리어하며 조금 더 강함을 안정시켰다.

두 번째로 남은 시간 동안 최상위권의 강함에 속한 이들과 함께 다시 한번 게이트를 클리어하며 강함을 조금이나마 상승시킬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나에게 남은 성흔은 0회. 더 이상 ‘시간 괴리’를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한층 더 강해진 일행들로 인해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남은 하루.

우리는 연회 중이었다.

마지막일 수도 있는 연회를.

차정우의 반대가 있을 거라 내심 불안했지만, 차정우는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저마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담금주를 꺼내 놓았고 몬스터를 잡은 식자재로 요리를 했다.

네 번째 미션에서 받은 ‘기본 스킬’은 스킬의 사용만으로 분해, 습득, 요리, 제작 등 여러 가지를 사용할 수 있어서 간편하게 연회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연회장 곳곳을 지나다니기 시작했다. 그동안 일행들에게 못다 한 말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나의 첫 동료가 되어 준 김도은과 김영광.

어슬렁거리는 나를 발견했는지, 김도은이 말했다.

“빨리 와요! 왜 혼자 어슬렁거린담?”

연회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조금은 민망해진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다들 잘 즐기고 계십니까?”

“물론이죠. 다시 없을 잔치잖아요?”

김도은의 표정이 한층 밝아진 것이, 처음으로 보는 해맑은 미소였다.

나이도 어린 김도은이 지금까지 살아남으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생각하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도은 씨, 그동안 잘 버텨줬습니다. 지금까지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 했네요.”

김도은이 무슨 그런 말을 하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됐어요. 누구보다 고생한 건 당신이잖아요.”

그런 김도은의 대답에 김영광이 끼어들었다.

“맞습니다. 저흰 안이 씨 덕에 지금껏 살아있는 거니까요.”

부끄러운 기분이 듦과 동시에 괜히 뒷머리를 긁적이는 나였다.

“그래도 두 분이 아니었으면 저 또한 이미 죽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두 분, 앞으로도 잘 부탁드릴게요.”

“음식이나 먹어요.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지 마시고.”

“맞습니다. 자, 자!”

왜 이렇게까지 두 사람이 믿어주는지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도 두 사람의 도움 없이는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영광이 ‘코카트리스’ 고기를 나에게 건넸다.

“책임감은 내려놓고 식사부터 하시죠. 지금은 모두가 즐길 때입니다.”

호탕하게 웃는 김영광이었다.

자리를 잡고 담금주와 식사를 이어가자, 곧 나와 함께 싸워온 사람들이 자리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저씨! 저도 그거 마셔도 돼요!?”

“아니. 아저씨.”

“에잇…!!”

영혼 상태로 연회를 즐기는 이재신이 이민영을 바라보자, 이민영이 툴툴거리며 고기를 먹었다.

“오라버니, 제가 따라줄게요!!”

“이미 거나하게 취하신 것 같은데….”

“조용히 해욧!!”

새하얀 얼굴이 이미 터질 듯 붉어진 진선미가 있었다.

“야 인마. 남자는 원샷 아니냐잉?”

우범혁이 담금주 나에게 건네며 말했다.

“너무 많은데요…?”

“남자 아니냐잉!!!”

“남자도 이런 건 못 먹습니다.”

우락부락한 근육을 뽐내는 우범혁.

별거 아닌 연회였음에도 멸망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모두가 하하, 호호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이지은이 차정우를 억지로 끌고 우리에게 왔다.

“저희 자리도 있죠?”

“물론이죠.”

차정우까지 모여들자, 그를 모시는 권지훈과 나에게 친하게 지내자며 상처를 치료해준 이세계의 최후룡, 다이아나가 자리에 참여했다.

“내 친구!!!”

다짜고짜 나에게 몸을 날려 안긴 다이아나.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나를 노려보는 권지훈.

천마, 윤문은 연회가 마음에 들었는지, 어디서 배워왔는지 모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으하하하핫!!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술이 들어간다! 쭉 쭉쭉쭉!!!”

“아니, 저건 어디서 배운 거지…?”

안재훈과 일본의 대표인 히로시가 없는 점이 조금 신경이 쓰였지만, ‘흑아’는 곧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이번 전투가 끝나는 대로 임아린을 데리고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연회가 무르익자, 드래곤으로 폴리모프한 임해든이 불꽃놀이를 가장한 불 쇼를 선보이고 있었다.

저러려고 강해진 것은 아닐 텐데.

‘내부지구’의 이 종족들과 무림인들이 담금주로 배틀을 이어갔고 마유리가 김영광에 호감을 보이는 둥, 모두가 연회를 즐기는 것 같았다.

물론, 마유리의 등장에 김도은의 표정이 제법 볼만했다.

저러다 한 판 붙는 건 아닌지….

김도은과 마유리 두 사람이 활을 사용한다는 점에서도 경쟁심리가 제법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차정우에게 물었다.

“이길 수 있겠냐?”

“해보지 않고는 모른다.”

“그렇지. 억지로 일대일로 붙을 필요는 없다. 자기 부하들을 몰살시키고 소수 정예로 나타난 것은 저들의 선택이니까.”

차정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도 알고 있을 것이다. 게이트 하나를 클리어한다고 강함의 격차가 눈에 띄게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가능성은 충분했다.

원래라면 ‘내부지구’와 무림계를 편입한 ‘외부지구’의 모든 이를 합한 수만큼이나 대규모의 군대를 이끌던 ‘죽은 자들’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항우는 그들을 몰살시켰고 열두 명의 죽은 자들이 우리와 맞서고 있었다.

이길 수 있겠지….

불안한 마음과 이기고 난 다음에 대해서 생각하던 나는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죽은 자들과의 전투에서 승리한다면 그다음은 ‘내부지구’와 싸워야 했다.

무림계와 같은 편법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한숨을 내 쉬고 말았다.

‘명’이라도 갱신되면 좋으련만.

불안한 마음과 함께 연회의 밤은 저물어갔다.

* * *

모처럼의 연회로 친해진 각 세계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지금부터는 목숨을 건 전투가 벌어지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다.

차정우가 앞으로 나섰다.

“나는 살 것이다. 내가 살아있는 한, 전력을 다하겠다.”

장황하게 말하는 차정우가 아니었기에 저 정도만 해도 많은 의미가 전달되었을 것이다. 제 할 말만 하고 몸을 돌린 차정우를 향해 피식. 웃은 나는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엄청난 수를 형성하는 연합군이 열두 명의 죽은 자를 상대하기 위해 자리를 이동했다.

로스앤젤레스로 이동하자, 엄청난 수의 몬스터가 산을 이루고 있었다.

기다리기 지루한 죽은 자들이 근방의 몬스터들을 죄다 몰살한 것 같았다.

침착하게 우뚝 선 차정우가 말했다.

“온다.”

차정우의 말에 저 멀리서 열 두 가지 색상의 추리닝을 입은 사내들이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김정은 항우, 하얀색은 사묘아리, 노란색은 마초, 나에게 싸움을 걸던 사내와 마초의 부하라 불린 사내. 한 명 한 명의 강함이 한 세계를 대표하는 자와 비슷할 정도의 강함이었다.

마초의 부하라 불리는 사내는 그리 강하지 않았지만.

나와 차정우가 동시에 앞으로 나섰다.

“너? 나?”

“내가 한다.”

“고집은.”

차정우는 자신의 성검을 꺼내 들어 죽은 자들을 향해 겨누었다.

항우는 기다림이 지루했다는 듯, 입을 쩍쩍 벌려대며 하품하기 시작했다.

“너무 오래 걸리지 않았느냐!!”

“일주일이라 말했을 텐데?”

“그렇지. 뭐, 사실 우리에게 시간은 무의미하다. 자, 누가 날 즐겁게 해줄 텐가!”

항우가 소리치자, 우레와 같은 목소리에 전신이 저렸다.

목소리만으로 이 정도의 기백이라니, 새삼 항우에게 상처입힌 차정우가 대단해 보였다.

“같이 하자.”

“……”

자존심이 강한 차정우였음에도 같이 하자는 나의 말에 긍정을 표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이미 상대해봐서 자신 혼자로는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스릉.

용광검을 꺼내 든 나는 공중으로 몸을 띄워 말했다.

“가시죠. 상대해드리겠습니다.”

말없이 차정우가 따라나서자 항우 또한 우리의 뒤를 쫓았다.

당장 전투를 벌여도 상관없을 테지만, 이곳에서 나와 차정우 그리고 항우가 힘을 개방한다면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 것 같았다.

나는 곧 사용 가능한 모든 버프를 사용해 전신의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동조화와 정령화는 최후의 수단.

급작스럽게 강해지는 기운에 항우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해갔다. 항우가 말했다.

“호오…. 네놈도 제법이군.”

버프를 사용한 나에게 관심이 쏠리자, 차정우도 지지 않겠다는 듯, 자신의 기운을 한껏 방출했다. 성검을 개방하고 자신이 사용 가능한 버프를 시전한 차정우.

그 모습에 항우가 환하게 웃었다.

“그땐 전부 보여주지 않았던 것이냐?”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군. 나 또한 절반의 힘도 사용하지 않았다. 자, 진심으로 가겠다.”

세 사람의 전신에서 기운만으로도 어지간한 사람은 압살할 정도의 힘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전투가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나를 포함한 두 사람은 말없이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의 고요가 흘러들었다.

그 순간.

쿠콰쾅!!!

저 멀리서 전투를 알리는 폭음이 나자, 나와 차정우가 동시에 항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콰드드득!!!

성검, 아르담과 용광검이 항우의 창에 부딪히자, 쇠가 깎여나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와 차정우의 합은 나름대로 잘 맞았다. 이미 없는 나의 왼팔을 향해 항우의 창이 날려져 오면 아르담이 공격을 막아주었고 그 틈에 파천신군의 무공을 사용해 항우를 공격했다.

누구 하나 치명상을 입지 않은 채, 전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후…. 징글징글하게 강한데?”

“이 정도면 해볼 만하다.”

나와 차정우의 대화에 항우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직 절반의 힘도 사용하지 않았네만, 더 보일 것이 있는가?”

“괴물 새끼.”

“……”

이대로 버프를 날려 먹는다면 우리에게 승기는 없었다.

나는 곧바로 동조화와 정령화를 동시에 사용했다.

그리고, 동조화의 버프를 차정우와 나에게 걸었다.

파앗!

차정우의 표정이 확신에 차 있었다. 내가 이런 스킬을 사용할지 생각지도 못한 것 같았다.

“쓸만하지?”

“괜찮군.”

이 전과는 다른 엄청난 기운이 동시에 솟구치더니, 항우는 놀랍다는 듯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항우가 말했다.

“이 나를 뛰어넘을 생각인가!!! 대단하구나, 대단해!! 후대의 인간들이여 나를 쓰러트려보거라!!!”

항우도 자신이 낼 수 있는 모든 기운을 방출해냈다. 일 전에는 없었던 검은색의 투구가 항우에게 씌워졌으며 항우의 창이 더욱 검게 변했다.

“자, 전력을 다하거라.”

쿠구구구.

항우의 기운에 땅이 진동했다. 온몸의 털끝이 바짝 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두려웠다. 하지만 나 혼자가 아닌 차정우와 함께하는 전투여서 그런지, 조금은 기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내 생각을 읽었는지 차정우가 말했다.

“내가 기회를 만들겠다.”

금방이라도 터질듯한 기운들이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나는 차정우의 말에 답했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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