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1화
episode(16) 죽은 자들#5
두 사람의 기운에 주변이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자, 나를 포함한 죽은 자들의 분위기도 변하고 있었다.
이 정도로 성장했다고…? 이거 완전 괴물 아니야?
말도 안 되는 기운에 넋을 놓은 것도 잠시.
차정우가 말했다.
“네놈이 죽은 자들을 이끄는 자인가?”
검정 추리닝의 사내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차정우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만?”
“죽어줘야겠다.”
차정우의 말에 피식 웃은 사내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듯, 자신의 기운을 강하게 방출시켰다.
그 순간.
팡!!!
차정우의 검이 아닌, 왼손의 주먹이 사내의 얼굴을 향해 나아갔다.
공기 터지는 소리와 동시에 사내는 주먹을 피해냈고, 차정우의 안면을 향해 오른발을 차 냈다.
팡!!
두 사람의 공방이 이어질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 공격이 이어졌다.
“으하하핫. 제법인데?”
“……네놈도 제법이군.”
전투가 즐겁다는 듯, 호쾌하게 웃는 사내와는 달리 차정우는 묵묵히 공격을 이어나갈 뿐이었다.
두 사람이 자신의 무투를 뽐내는 사이, 전투를 관람하는 사내들을 향해 물었다.
“저자가 당신들을 이끄는 자입니까?”
나의 물음에 죽은 자들이 기괴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하얀 추리닝을 입은 사내가 말했다.
“그게 중요한가? 그대는…. 강하군. 대장과 싸우는 저 사내만큼.”
흥미롭다는 듯, 눈빛을 흘리는 사내. 나는 그런 사내에게 지지 않고자 강하게 반응했다.
이대로 차정우의 전투를 지켜봐도 상관없을 테지만, 내게 잠재된 본능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사내는 말을 이어갔다.
“걱정하지 말게. 우리는 자네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야.”
볼품없는 추리닝이었음에도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보통이 아니었다. 화안금정을 사용해 확인한 결과. 그들은 대개 역사 속의 고대 무장이거나 차정우와 같은 용사, 더불어 마왕까지 존재했다.
무림의 절대 고수는 기본으로….
말을 걸어오는 사내의 이름은 사묘아리.
누군가는 이 자를 알고 있을 테지만, 한국의 무장이 아닌 만큼 모르는 사람이 더욱 많을 터.
나는 사내에게 물었다.
“왜 공격하지 않는다는 거죠?”
사묘아리는 놀이공원에 놀러 온 아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싸움 구경이 제일 재미있지 않은가!?”
“……??”
그의 입에서 나온 답은 간단했다. 너무나도 간단해 어이가 없을 지경.
나는 차정우와 전투 중인 사내를 향해 화안금정을 사용했다.
화악!
이런 미친…!
뜻밖의 인물이 차정우와 전투를 벌인다는 생각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들은 그러니까, 단순하게 죽은 자들로 치부할 수 없는 자들. 한 명 한 명이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그런 존재들이 저들끼리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난 대장이 이긴다는 것에 한 표.”
“그건 당연한 거고 인마. 대장에 죽도록 퍼 맞는다, 안 맞는다는 것에 거는 게 낫지 않냐?”
“오, 그거 좋구만. 그럼 난 전자에 걸도록 하지.”
자신의 대장으로 내기를 거는 사내들. 저중, 셋 이상이 덤벼들면 나는 죽은 목숨이었다. 그런데도 어디서 가져온지 모를 소파를 나란히 두고 구경만 할 뿐이었다.
덤비지 않는다면 나야 좋지.
나는 차정우와 검정 추리닝을 입은 사내의 전투를 집중해서 바라보았다.
쾅!!!
어디서 배워 온 지 모를 무술을 사용하는 차정우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받아내는 검정 추리닝을 입은 사내.
겉으로 보기엔 호각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화안금정으로 확인한 나는 알 수 있었다.
모든 능력치가 한계치에 다다른 차정우와 달리, 검정 추리닝의 사내는 그 한계를 넘어서 있었다.
사내는 차정우를 향해 말했다.
“이쯤하고 전력을 다해보는 게 좋지 않겠나?”
“좋다.”
붙어봤으니 알 것이다. 차정우 자신이 밀린다는 것을….
나는 차정우를 향해 소리쳤다.
“야, 차정ㅇ…”
그 순간.
소파에 앉아있던 사내들이 흉흉한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어이, 강한 자여.”
병장기를 꺼내 들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기운이 나를 집어삼킬 듯 옥죄어왔다.
위기감을 느낀 나는 고개를 돌렸다.
“뭡니까?”
“방해하지 말게나. 대장의 싸움을 방해한다면 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을걸세. 그리고, 우리뿐 아니라 대장 본인이 가만히 있지 않을걸세.”
“…….”
무슨 말인지는 알고 있었으나, 솟구치는 짜증에 인상을 찌푸렸다.
우리는 목숨을 걸고 임하는 반면에 저들은 이곳에 놀러라도 온 듯 행동하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전투를 바라보았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었으니까.
차정우가 나의 외침을 들었는지, 고개를 조금 숙여 나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차정우는 자신의 성검을 꺼내 들었다.
“나는 불려간 자. 성검, 아르담이여 개방하라.”
저놈. 얼굴이 조금 빨개진 것 같은데….
아직도 자신의 성검을 개방하는 것에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급격하게 상승하는 차정우의 기운에 조금은 승산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쯤.
검정 추리닝의 사내가 말했다.
“오오!!! 대단한데? 질 수 없지.”
검정 추리닝의 사내는 순식간에 기다란 창 하나를 소환해냈다. 넘실거리는 기운을 갈무리하자 사내의 몸에 마초에게 볼 수 있었던 흙빛의 갑옷이 전신을 휘감았다. 사내가 말했다.
“살았을 적, 내 이름은 알려주지. 성은 항(項)이고 이름은 적(籍)으로 자는 우(羽)이니라. 자, 전력을 다해 덤비게나.”
항우….
흔들리는 두 눈빛을 애써 견뎌낸 나는 생각했다.
항우.
삼국지 훨씬 이전에 있었던 역사적 무장으로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힘은 산을 뽑고 기운은 세상을 덮는다, 라는 말로 유명한 사내. 만인지적(萬人之敵), 패왕(霸王) 등 전설적인 무장들에게나 붙을 법한 이명을 최초로 얻어낸 자.
거병 후, 고작 2년 만에 중국을 제패하고 수천의 병사로 수십만 대군을 패주시켰다는 설이 돌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일화가 가득한 사내였다.
현실의 역사적 사실이 아닌, 무협지에나 나올법한 묘사들로 가득 찬 이 자는 죽은 자들을 이끄는 무리의 대장으로 우리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현시점에 항우는 나와 차정우가 동시에 덤벼들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강자였다.
나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전투를 응시했다.
차정우와 항우가 서로를 향해 기운을 내뿜자, 허공에 정적이 돌았다.
죽은 자들도 차정우의 강함이 생각보다 대단하다는 것을 보곤 장난기는 사라지고 없었다.
정적을 깬 것은 차정우였다.
파앗!
엄청난 스피드로 항우에게 다가간 차정우가 자신의 성검을 휘둘렀다.
단순한 휘두름에도 항우의 뒤편으로 거대한 검기가 쏘아져 나갔다.
쿠콰콰콰쾅!!!!
일대가 초토화되는 순간, 항우 또한 질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창을 휘둘렀다.
쿠콰콰콰쾅!!!!
이건 뭐, 괴수 대전도 아니고 한 번의 휘두름으로….
나 또한 버프를 사용하면 가능한 수준이었지만, 그들은 절대 약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부딪힐 때마다 긴장감이 극에 달했다. 그때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보라색 추리닝의 사내가 몸을 일으키더니, 나를 향해 말했다.
“으아아아아!! 안 되겠다. 어이, 너.”
“날 부른 겁니까?”
어이없는 표정으로 사내를 바라보자, 사내는 자신의 병장기를 소환해 어깨에 툭툭 치기 시작했다. 사내가 말했다.
“한 판 붙자!”
앞뒤 자르고 한 판 붙자는 말에 내가 아닌, 사묘아리가 말했다.
“야이 미친놈아. 대장이 가만히 있으라는 말 못 들었어?”
“네놈은 저걸 보고도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느냐!”
“근질근질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사내와 싸우면 우린 대장한테 죽도록 퍼 맞을걸?”
“…으아아아아!!!”
사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씩씩거리기 바빴다. 자신들이 강하다고 한들 항우에게는 미치지 못할 테지. 사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리에 앉았다.
그 순간, 항우의 창이 차정우의 허벅지를 그어냈다.
촤악!
“큭….”
나지막한 신음이 차정우에게 흘러나오자, 항우는 희미하게 웃었다.
“계속할 텐가?”
“물론이다.”
“남자답군. 좋다. 나에게 상처를 입힌다면 자네와 저 사내를 돌려보내 주겠다.”
“그건….”
파앙!
차정우의 성검이 항우의 급소들을 노리고 쏘아져 갔다.
“내가 정한다!”
허벅지에서 엄청난 핏물이 터져 나옴에도 표정 변화가 없는 차정우.
불안한 감정이 강하게 들었지만,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제발, 한 방만 먹여라…!!
공격을 계속해서 쏟아부은 차정우는 순식간에 항우의 뒤편으로 이동했다.
샤삭.
“자신 있으면 받아봐라.”
[스킬, [용사의 일격 LV. MAX]을 발동합니다.]
차정우가 스킬을 발동하자 성검, 아르담이 환한 빛에 휘감겼다. 너무나도 눈부신 빛에 잠시 눈을 감은 순간이었다.
까가가가각!!!
차정우의 성검이 항우의 갑옷에 닿아 기괴한 소리를 내며 갈라내고 있었다.
촤악!
엄청난 일격에 당황한 항우가 거리를 벌려냈다. 하지만, 이미 그의 갑옷은 반쯤 넝마가 되어 검붉은 핏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항우가 호쾌하게 웃기 시작했다.
“으하하하하!!! 좋구나, 좋아. 이곳에 오길 잘했어. 아주 강하군.”
차정우는 항우를 향해 물었다.
“만족했나?”
“물론이다. 약속대로 보내줄 생각이네만.”
나는 긴장되는 마음으로 차정우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기다리는 중이었다.
저놈 성격상 덤벼들지는 않을까…? 불안한데.
차정우는 자신의 성검을 검집에 넣은 후, 항우를 향해 말했다.
“일주일 뒤, 다시 붙는 게 어떤가.”
“그때는 나만 싸우지 않을 것이야. 내 부하들은 강하다네.”
“바라던 바다.”
차정우는 목 짓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놈 또한 나만큼 강하다.”
차정우의 말에 항우가 온몸을 부르르 떨며 나를 바라보았다.
“크크하하하. 재밌구나. 기다리고 있겠다.”
* * *
다행인지, 차정우와 항우의 전투로 나까지 나설 일은 없었다.
그 순간 나까지 합세해 전투를 벌였으면 죽은 자들 전부를 상대해야 했기에 일분일초가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후하….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상처는 괜찮냐?”
나의 물음에 무슨 말을 하고 있냐는 듯, 차정우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 저놈 ‘자가 치유’같은 스킬은 언제 배웠담…? 말도 안 되는 괴물이구만….
자리를 벗어나는 동안 차정우는 말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자신의 강함을 믿고 있는 차정우였기에 자신보다 강한 항우와의 전투에서 많은 것을 깨달은 것 같았다.
나는 차정우를 향해 말했다.
“넌 배후성한테 성흔 안 받았지?”
“그렇다.”
“난 받았거든. 시간 괴리라고.”
성흔에 대해서 설명한 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 더 강해져야 하지 않겠냐?”
차정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말했다.
“너 정신과 시간의 방아냐?”
“모른다.”
나는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수련 좀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