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0화
140화 episode(16) 죽은 자들#4
차정우와 나의 이견은 좁혀질 줄 몰랐다.
서로의 등 뒤로 서 있는 각 세계의 대표들이 이글거리는 의욕을 내세웠다.
“적의 강함도 파악하지 않은 시점에 전투하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거냐?”
“안다. 하지만, 예언에서 보았듯 네놈과 우리는 함께 싸웠다.”
나는 미심쩍은 눈빛으로 말했다.
“전쟁의 승패도 확인했냐?”
“승패까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까지 예언대로 잘 풀린 것은 우연이 아니겠지.”
차정우의 말뜻이 무엇인지는 단순하게 생각해도 알 수 있었다. 나 또한 ‘명’을 바라보고 바꾸어 지금까지 살아남았으니. 하지만, 지금까지의 적들과 ‘죽은 자들’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내부세계’와 ‘외부세계’가 힘을 합치지 않으면 이기지 못할 정도로.
“네놈 예언이 대단하다는 건 알겠어. 그런데, 네 말대로 전력을 쏟아부은 뒤에 우리가 실패하면?”
“…….”
나는 겁을 먹었는지도 모른다.
불안정한 ‘명’은 변하는 상황에 맞춰서 이야기를 보여주지 않았고 다른 선택 뒤엔 또 다른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 때문인지 전과는 다른 조심스러움이 나의 발목을 잡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책임을 떠넘기듯, 차정우를 향해 물었다.
“두 세계가 몰살당한다면…. 네가 책임질 수 있어?”
순간적인 살기가 차정우와 그의 세계를 대표하는 이들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차정우는 이지은을 흘낏 쳐다보더니 답했다.
“책임질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죽지, 지금껏 수많은 미션에서 그래왔던 것처럼. 우리는 모르는 결말을 향해 뛰어가고 있지 않나?”
“그렇지.”
“각 세계를 대표하는 네놈과 내가 겁먹는다면, 우리는 죽을 뿐이다. 네놈은 겁이 나는가?”
“겁이 안 나는 사람이 있겠어?”
겁이 안 날 리가 없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죽음이 두려웠다.
그것은 차정우 또한 마찬가지 일터. 나는 차정우를 향해 말했다.
“조금만, 우리가 살 수 있는 확률을 높이자는 거야. 가령 적의 전력을 알고 덤비는 것과 무턱대고 덤비는 건 누가 봐도 다르지 않을까?”
이번에도 역시 반박하려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지은이 차정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이지은의 행동으로 차정우도 한풀 꺾이는 느낌이었다.
“방법이 있나?”
차정우의 물음에 나는 잠시, 생각을 이어갔다. 정확하게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 확인하는 게 첫 번째였고 두 번째는 곧바로 전투가 가능한 실력자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저들은 호랑이야, 우리는 토끼고. 토끼가 호랑이를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에게 묻는 것인가? 죽이고 베어낼 뿐이다.”
“토끼는 검을 쥘 수 없지 이 자식아.”
“…….”
이지은이 뒤에서 피식, 하고 웃자 차정우는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차정우가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거지?”
“첫 번째로 그들의 규모와 전력을 조금이나마 알아낼 수 있는 강자가 필요해.”
차정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두 번째로 세계의 강자 만 명 정도를 선별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그들을 유인할 장소가 필요해.”
“네놈….”
차정우와 이지은이 동시에 무엇을 하려는 지 눈치를 챈 것 같았다.
당연하게도 두 세계가 합쳤음에도 전력 면에서 우리는 죽은 자들을 이기지 못한다.
하지만 ‘매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차정우를 향해 쐐기를 박았다.
“매복. 전투가 가능한 인원들로 적당히 치고 빠지는 거야. 저들은 강하기 때문에 우리를 잡으려 하겠지. 그때 우리가 지정한 장소로 퇴각을 시도 할 테고 저들이 잘 따라와 주기만 하면?”
“그렇군. 한 번에 처리하자는 말인가?”
“맞아. 저들은 지나치게 강하기 때문에 매복을 두려워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
차정우가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이지은이 나에게 목을 숙여 인사했다.
일단, 합격인가…?
“좋다. 이쪽에서 강자들을 선별해놓겠다. 첫 번째 정찰은 누가 할거지?”
“정해져 있잖아.”
“…?”
차정우의 물음에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명’을 바꾸려다 임해든을 살리고 권민재를 잃었다. 내가 움직였다면 둘 다 살릴 수 있음에도 잘못된 판단의 결과였다.
이번에는…. 그런 일은 없어야 해.
“나랑 너.”
“겁쟁이 치곤 과감한 결단이군. 좋다. 강자들을 선별해서 다시 오도록 하지.”
성격 급한 놈 같으니라고.
차정우와 이지은이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몇 분이나 허공을 쳐다본 나는 마음을 굳힌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일행들과 각 나라의 대표들 그리고 최상위권의 강자들을 한자리에 모아둔 채, 차정우와의 이야기에 대해서 말하는 중이었다.
“해서 첫 번째 정찰은 저와 차정우가 직접 갈 겁니다.”
진선미가 물었다.
“괜찮겠어요? 저들…. 강한 것 같던데.”
“전투는 벌어지겠지만, 금방 돌아올 겁니다. 죽으러 가는 게 아닌, 확인하러 가는 거니까요.”
“……”
진선미의 물음에 답한 나는 두 번째 작전에 필요한 인원수를 말했고 세 번째 작전에 필요한 장소와 총력전에 대해서 하나하나 말해주었다.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였고 누군가는 걱정스러운 표정이 눈에 확연하게 보였다.
실패하면 조그마한 타격으로 끝나지 않을 테니….
모든 작전과 두 번째 작전에 필요한 인원을 선별한 나는 차정우가 오길 기다렸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저 멀리 엄청난 인원수가 다가오고 있었다.
“빨리도 온다. 성격 하나는 더럽게 급하네.”
아직 반나절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기에 차정우의 등장에 당황스러운 나였다.
“준비는 마쳤나?”
“어. 작전은 잘 말해줬고?”
차정우 성격에 잘도 말해줬을까 싶어 물었다. 하지만 질문에 답한 건 차정우가 아니었다. 이지은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제가 설명해줬어요.”
“아,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또 한 번 차정우의 시선이 날카롭게 박혀 들어왔지만 나는 그 시선을 애써 무시했다.
“바로 갈 거지?”
“물론이다.”
“치고 빠지는 게 중요해. 저들은 당장 이 세계에 적응하느라 움직이지 않을 테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차정우를 뒤로하고 일행들에게 이동한 나는 김영광과 김도은에게 지휘를 부탁하며 자리를 벗어났다.
나와 차정우가 돌아와야 비로소 다음 작전의 시작이었다.
이동 스킬의 숙련도가 MAX가 된 이후로는 세계 각지로 이동하는 데 큰 힘이 들지 않았다. ‘전이의 깃털’을 사용하면 금방이었지만, 서로 생각하는 게 다르면 적진 한복판에 떨어질 수 있는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굳이 사용하지 않았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현재 죽은 자들이 거점으로 삼은 장소였다.
이 때문에 미국의 세력은 줄어있었고 그들의 대표도 죽지만 않았을 뿐, 상당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얻어낼 정보라도 있으면 좋았을 건만, 너무나도 순식간에 당한 탓에 조그마한 정보도 얻어낼 수 없었다.
나는 놀리는 듯한 목소리로 차정우에게 물었다.
“미국 와봤냐?”
“처음이다.”
“촌놈이네.”
“네놈은 와봤나?”
“아니, 나도 처음인데.”
“……전쟁이 끝나면 네놈부터 죽여주겠다.”
“무서워라.”
잠깐의 말장난이 오가는 중, 어느새 흉흉한 기운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피부 겉면이 따끔따끔한 것이, 금방이라도 우리를 향해 이를 드러낼 것 같았다.
맹수들….
“조심해라. 다 대 일은 어지간하면 피해야 해.”
“상관없다. 나는 강하니까.”
“……죽으면 그게 뭔 소용이냐. 최대한 일대일로 몰아가. 우리 중 한 사람이 죽은 자들의 리더와 싸우면 좋고, 아니면 2순위, 3순위도 좋아.”
차정우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음? 우릴 찾아올 손님은 없을 텐데, 네놈들은 누구냐?”
노란 추리닝을 입은 마초와는 달리, 붉은 추리닝을 입은 사내가 말을 걸어왔다.
단체복인가…?
몸을 움찔거리며 검을 뽑으려는 차정우를 제지한 나는 앞으로 나서 말했다.
“당신들은…?”
“아, 먼저 소개하는 것이 이 세계의 예의라고 누가 그러던데….”
“유금필 그놈이겠지. 깐깐한 놈 같으니.”
붉은 추리닝의 뒤로 또 한 사람이 말을 하고 있었다. 이번엔 초록색이었다.
외형만으로는 어떤 존재인지 가늠조차 가지 않았다. 나는 두 사람을 향해 물었다.
“두 사람뿐입니까?”
나의 물음에 답이 오기도 전, 엄청난 기운의 파도가 우리를 향해 쏟아졌다. 그리 멀지 않은 장소였기에 그가 누구인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야, 아무래도 둘러싸인 것 같은데?”
“그렇군.”
여유로운 차정우와는 달리,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한명 한명이 마초와 호각이거나 그 이상인 존재들.
나는 차정우에게 물었다.
“근데…. 수가 너무 적지 않냐?”
“이상하군. 죽은 자들의 군세라기엔 스무 명도 안 된다니….”
차정우도 이상한 낌새를 느낀 것 같았다. 나와 차정우는 감지를 더욱 넓게 퍼트렸다.
파앙-!!
거센 마력이 사방으로 소리 없이 날려져 가자, 동시에 눈을 마주쳤다.
“아무래도 우리가 잘못 생각한 것 같다.”
차정우는 답이 없었다. 기운은 총 열둘. 그중에는 마초와 그의 부하라 불리던 이의 기운도 있었다.
‘명’에서 본 기억을 다시 생각해 본 나는 이럴 리가 없다며 감지를 멈추지 않았다. 매복? 아니, 이건 정말로 열두 명밖에 없는 것이다.
원래라면 ‘내부지구’와 ‘외부지구’의 생존자만큼 많은 군대를 거느리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느껴지는 기운엔 군대는 무슨, 열두 명의 기운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나와 차정우의 주변을 둘러싼 기운들이 천천히 움직이더니, 붉은색과 녹색의 추리닝을 입은 사내 뒤로 모여들었다.
정확하게 열두 명.
침착하자, 침착하게….
나는 그 중, 가장 강해 보이는 사내를 향해 물었다.
“당신이 이곳의 리더입니까?”
검정 추리닝을 입은 사내. 아무래도 단체복은 확실한 것 같다.
사내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리더? 아, 이놈들은 나를 대장이라 부르는데, 그걸 말하는 건가?”
“맞습니다.”
가지각색의 추리닝을 입은 사내들 사이로 검정 추리닝의 사내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저벅, 저벅.
“네놈들이구나?”
“음?”
“…!?”
파앗!
엄청난 속도로 나와 차정우를 향해 주먹을 뻗어낸 검정 추리닝의 사내. 그리 어렵지 않게 막아내긴 했지만, 엄청난 파괴력에 몇 미터는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대장, 우우우!! 또 혼자 싸우려고!!”
“그러니까!! 부하 놈들도 다 죽여버려서 피곤해 죽겠는데.”
저들끼리 장난식으로 말하는 와중에도 마초는 무거운 분위기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마초는 약한 편에 속하다는 듯.
검정 추리닝의 사내가 자기 주먹을 허공에 원형으로 돌리며 말했다.
“크, 역시 강하구만. 요즘 어린애들은 성장이 빨라요. 안 그러냐 이놈들아!”
사내가 한껏 여유를 부리자 자존심이 상한 건지, 차정우가 기운을 대폭 방출시키고 있었다.
쿠구구구구.
너무나도 강한 기운이었을까, 지면이 거세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차정우는 자신의 성검을 꺼내 들었다.
“네놈이 대장이라고 했나?”
“호오? 그렇다만?”
“덤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