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9화
episode(16) 죽은 자들#3
당장 스킬을 사용할 수 있음에도 두 사람은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본인의 창술이 더 대단하다는 듯, 대화를 하는 것처럼.
나는 백남광을 향해 물었다.
“도진이라는 저분. 기보의 주인이 된 시간이 짧은데, 괜찮겠어?”
백남광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괜찮을 거야. 저놈,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거든.”
“그것만으로 가능하겠어? 천재는 어디에나 있을 텐데.”
“경험이지. 마초라는 저 사내와의 전투에서 죽지 않는다면, 도진은 더 강해질 테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백남광의 말이 맞기도 했고 천재라 불리는 도진이라는 사내가 성장해준다면, 죽은 자들과의 전투에서 엄청난 도움이 될 테니까.
화안 금정.
스아아아.
한쪽 눈이 금빛으로 번뜩이며, 그들의 동선과 전투 방식을 뇌리에 때려 박기 시작했다. 마초라는 사내는 죽은 자들. 이후의 전투에서도 마초의 전투 방식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스킬 없는 순수한 창술이 서로의 목을 향해 쏟아졌다. 곧 전투의 향방은 마초에게 기울고 있었다. 마초가 말했다.
“어린 나이에 제법이군. 대단해.”
마초의 입에서 칭찬이 쏟아지자, 도진이 머쓱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칭찬에 약한 건가…?
도진이 말했다.
“어이, 형씨. 치, 칭찬해도 안 봐준다고.”
“큭큭. 그렇게 하거라.”
마초는 자세를 고쳐잡더니, 도진을 향해 한쪽 손바닥을 까딱거렸다.
“하아아압!!!”
도진이 기합을 내지르며 마초를 향해 뛰어들자, 마초는 여유롭게 도진의 창을 흘려냈다. 겨우 손가락 한 마디의 차이로 공격을 피해내는 마초였지만 전투에 능한 무림인이라면 알 것이다. 겨우 피하는 것이 아닌, 본인 스스로가 전투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것을.
마초는 여유로웠다. 그에 반면 도진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지는 것이, 스킬의 사용이 시작된다면 틀림없이 마초의 승리로 끝날 것이 분명했다. 도진의 공격을 피해내며 마초가 입을 열었다.
“자네는 너무 정직한 공격을 하는군. 그렇게 해서는 분명 한계가 올 것이네.”
“거참, 말 많은 형씨네.”
“슬슬 끝을 내볼까 하는데, 괜찮겠나?”
“흥!”
마초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도진이 기운을 방출시키기 시작했다. 그의 주변에서 아우라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그 순간.
“나, 기보의 주인이 명한다. 백호 오창은 주인의 부름에 답하라. 진 개방.”
파앗!
도진의 전신에서 푸른 빛이 발아하더니, 그의 등 뒤로 백호의 형상이 일렁였다. 백호의 형상은 곧 다섯 개의 창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어서 자아를 가진 것처럼 다섯 개의 창이 공중에 떠올랐다.
전력을 다하려는 도진의 모습에 마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호, 그것이 너의 창술인가? 그렇다면 나 또한 보여주지. 이것이 우리 ‘무신 집단’이 쌓아온 무이니라.”
스스스스스.
마초의 전신에서 금빛의 마력이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이내 금빛의 마력은 마초의 전신으로 빨려들었고 그의 외관에 변화가 생겨났다. 노란색 트레이닝복의 위로 은빛으로 빛나는 갑옷이 만들어졌다. 마초는 말했다.
“내가 바로 금마초.”
한눈에 봐도 느낄 수 있는 마력의 향연이 마초의 전신에서 일렁였다. 그가 입은 은빛의 갑옷과 머리에는 은빛의 투구를 쓰고 있었다. 금빛의 마력이 다시 한번 일렁이자, 마초에게 씌워진 은빛의 투구를 금빛으로 보이는 착각을 만들어냈다.
이것이 살아생전 서량의 금마초라 불린 그의 저력이었다.
“자, 오너라! 내 너에게 창술의 끝을 보이겠다.”
“간다!!!”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자, 마초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공격을 도진에게 쏟아냈다. 스킬이 아닌 힘.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초 본인이 평생에 걸쳐 익혀낸 [마가창법(馬家槍法)]이었다.
챙-!!! 까드드득.
이제 막 기보의 주인이 된 도진의 실력도 제법이었다. 두 손에 쥐어진 창으로 마초의 창을 막아냈고, 자아가 존재하는 남은 세 개의 창이 마초를 공격했다. 다소 당황스러운 표정이 마초에게서 흘러나왔지만, 도진은 마초에게 치명상을 가하지 못하는 중이었다.
전력을 다하는 도진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거친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헉… 허억… 뭐 이런 괴물이…!!”
마초는 숨을 헐떡이는 도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의 재능은 실로 아쉽군. 살아생전에 만났다면 좋았을 것을. 슬슬 끝내봄세.”
마초는 자신의 창을 허공에 휘휘 그어내더니, 자세를 낮추고 창의 끝이 도진을 향하게 가로로 눕혀냈다.
“죽이지는 않겠네. 기회가 된다면 다시 만나지.”
[마가창법(馬家槍法) 제3식 심장 찌르기]
파앙!
가로로 눕혀진 마초의 창이 순식간에 도진을 향해 뻗어나갔다. 화안 금정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너무나도 빠른 속도에 입을 떡 벌리곤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컥…!!”
쿠콰콰쾅!!!
외마디의 비명과 함께 도진이 저 멀리 튕겨 나갔다. 말 그대로 창이 심장에 박혀든 것은 아니었으나, 너무나도 거한 공격력에 바닥에 드러누운 도진은 꿈틀거릴 뿐이었다. 말 문이 막힌 것은 백남광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싸워도 장담할 수 없겠는데?”
“질 것 같냐?”
“아니, 당연히 이기지. 하지만, 서로 좋게는 안 끝날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존심 강한 무림의 일인자나 되는 놈이 단 한 번의 공격에 이런 소리를 하다니. 새삼 죽은 자들이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깨달음을 주는 순간이었다.
마초는 자신이 사용한 힘을 풀어내자 가장 먼저 갑옷이 사라졌다. 그 뒤를 이어 아우라가 서서히 멎어 들었다. 고개를 돌려 나에게 말했다.
잘생긴 놈이 강하기까지 하니, 조금 재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나였다.
불공평한 세상이네.
“죽이지는 않았네.”
“감사하다고 해야 할까요?”
가시가 돋친 나의 말에 마초가 피식. 하고 웃었다.
“재미는 충분히 보았네만, 날 이대로 보내주는 것은 어떠한가? 다른 세계의 실력을 보겠다고 간 이와 만나야 하네만.”
마초의 말로 파악할 수 있는 건 한 가지였다. 차정우의 진영에도 실력자가 갔다는 것을.
“……”
마초의 말에 아주 잠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마초를 보내지 않고 상대한다면 죽은 자들의 전력을 조금이나마 깎아낼 수 있었다. 분명하게 이길 수 있는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 또한 이 상황을 알고 있을 테고 여기서 마초를 죽인다면 세계의 부딪힘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무리할 필요는 없겠지…. 우리는 차정우의 ‘내부지구’와 동맹이니 그때 싸워도 늦지 않을 테니.
나는 마초를 향해 말했다.
“가십시오. 대신…. 제 사람들을 다치게 한 일은 기억해 두겠습니다.”
“기대하지.”
마초가 공중으로 떠오르는 순간. 저 멀리 누군가 날아오고 있었다.
어? 차정우?
진영을 구축하고 오겠다는 말은 했지만, 차정우가 직접 올 것이라는 건 생각지도 못한 나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놀란 부분은 차정우가 온 것이 아니었다. 그의 손에는 뒷덜미를 움켜잡은 누군가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
마초의 표정이 일순간 일그러졌다. 마초가 말했다.
“저자는 자네의 동료인가?”
마초의 목소리에 분노가 서려 있었다.
쿠당탕!
대답을 하기도 전, 차정우는 어느새 다가와 목덜미를 움켜쥔 사내를 바닥에 내던지며 말했다.
“아직도 처리하지 못한 건가?”
고작 한 놈을 아직도 처리하지 못했다는 듯, 차정우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넝마가 되어 쓰러진 사내를 보니, 할 말이 없어진 나였다.
아주 곤죽을 만들어놨네.
그 순간. 마초의 기운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네놈. 감히….”
“넌 뭐지?”
차정우는 마초 따윈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내 부하를 저 지경으로 만든 것이 네놈인가…?”
“그렇다.”
“죽여 마땅한 놈이로군.”
“덤벼들기에 싸웠을 뿐이다.”
“감히…!!”
금방이라도 서로를 향한 검과 창이 부딪히려 하자, 나는 두 사람의 중간으로 끼어들어 말했다.
“이쯤 하시죠. 부하분은 아직 살아있으니 데려가서 치료하면 살릴 수 있을 겁니다.”
“……”
차정우가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있어 봐. 아직은 아니야.”
“네놈….”
결국 싸워야 할 놈들인데, 이대로 보내줄 생각이냐는 듯. 나는 마초를 향해 말했다.
“당신이 여기서 다치거나 전투를 이어가면 당신의 부하는 반드시 죽는 말테죠. 죽은 자들의 죽음은 소멸이라는 것. 당신도 알고 있을 텐데요?”
나의 말에 마초의 기운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마초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이대로 싸우면 자신을 포함한 부하는 죽고 말 것이다. 당연하게도 혼자서 이 모든 사람을 상대하고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마초 본인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차정우를 죽일 듯, 노려보는 마초가 입을 열었다.
“좋다. 이대로 물러가겠지만, 복수는 반드시 하겠다. 네놈의 이름은?”
“차정우다.”
“기억하도록 하지.”
마초가 자기 부하를 짊어지고 공중에 날아오르는 순간. 차정우가 말을 이어갔다.
“네놈의 부하가 다치는 건 화가 나고, 다른 세계인 우리가 다치는 건 당연한가?”
“……”
맞는 말이다. 저놈이 이럴 때도 있군.
마초 또한 할 말이 없었는지, 나를 바라보곤 고개를 까딱거렸다. 나름의 사과인 것 같았지만, 이러든 저러든 우리는 싸워야만 하는 운명이었다. 그래도 무인으로써 예의는 갖추고 있는 듯했다.
마초는 조용하게 말을 내뱉었다.
“다음에 다시 보지.”
그 말을 끝으로 마초와 그의 부하는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차정우는 여전히 인상을 쓰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놈 정도의 강함이라면 손쉽게 이길 수 있었을 거다. 어째서 그냥 보내준 거지?”
여차하면 한 대 칠 기세였다. 나는 침착하게 답했다.
“잘 들어. 마초라는 사내는 죽은 자 중, 어느 정도 위치에 자리 잡은 사내일 거야. 그런 사내를 죽인다면 죽은 자들은 우리를 표적으로 잡을 것이고.”
“당장 그들을 상대로 싸울 여력이 부족해서 보낸 것인가?”
“맞아. 우리 ‘외부지구’는 너희 ‘내부지구’와 동맹이야. 그렇다는 건 지금 싸우지 않더라도 더욱 안정적으로 싸울 무대가 반드시 존재할 거야.”
인상을 조금 풀어낸 차정우는 자신의 성검을 검집에 넣은 후, 몸을 돌렸다.
“쉽게 말하자면 겁을 먹었다는 게 맞겠군.”
차정우의 말이 맞았다. 레비아탄과의 전투에서 나는 죽을 뻔했다. ‘명’에서의 죽음도 이겨낸 나였지만, 나는 내심 무서웠는지도 모른다.
아무 말도 못 하는 내게 차정우가 말했다.
“정령의 둥지에서 본 네놈은 이렇지 않았다. 이런 식이라면 동맹을 끊어버릴 테니, 정신을 차리는 게 좋을 것이다. 다시 오도록 하지.”
제 할 말만 하고 사라지는 차정우의 뒷모습을 바라보자, 생각이 많아지고 있었다.
재수 없는 놈. 그걸 누가 모르냐?
폭풍이 한차례 몰아친 우리는 저마다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누군가는 부상자를 돌보았고 누군가는 못다 한 게이트의 클리어에 집중했다.
그리고, 폭풍전야와 같은 시간만이 우리 곁을 맴돌았다.
* * *
마초와 도진의 일대일 결투 이후, 이틀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차정우와 이지은이 다시 찾아와, 대화가 시작되었다.
“네놈의 ‘외부지구’인들과 나의 ‘내부지구’인들 전부가 전면전을 펼치면 된다.”
“그러니까 지금 네 말은 한 번에 쳐들어가서 한 번에 끝을 보자 이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