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7화
episode(16) 죽은 자들#1
단순하게 느껴지는 기세만으로 세계 하나쯤은 집어삼킬 수 있는 자들. 그들은 다시 한번 생(生)을 얻고자 현현(顯現)한 지옥의 망자들이었다.
살아생전 수많은 생명체를 도륙하고 그 죄로 인해 수백,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자신의 무를 관철해낸 자들로 이루어진 집단.
우리는 그들을 이렇게 불렀다.
투신들.
그들은 모두가 투신이었고 무신의 경지에 다다른 자들. 살아생전 무장이었고 무림의 초절정 고수였으며 세계의 왕인 자들.
성좌가 되기를 바랐으나 그 바람을 이루지 못한 망자들….
한참을 멍하니 생각하던 중.
누군가 막대 사탕 같은 것을 내게 내밀었다.
“이거 줄까?”
불쑥 나타난 하얗고 작은 손. 목소리는 임아린을 떠올리게 하는 여린 톤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작은 손의 주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다이아나. 이세계의 최후룡이 내 곁에 서 있었다.
나는 다이아나가 건넨 사탕을 입에 쏙 집어넣고 말했다.
“무슨 볼일이라도 있습니까?”
다이아나는 보이는 외모와는 다르게 수천 년을 살아온 이세계의 최후룡. 나름대로 예의를 갖추고 말하는 나였다.
가시가 돋친 말투가 분명했음에도 다이아나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생글생글 웃는 중이었다.
“너 강하다며?”
“누가 그럽니까?”
“대장이 그러던데! 본인 못지않게 강한 힘을 가진 이가 ‘외부지구’에 존재한다고!!”
차정우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것에 놀란 것도 잠시, 잘려 나간 왼팔을 바라보는 다이아나의 시선이 느껴졌다. 입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하던 다이아나가 말했다.
“나도 날개 한쪽이 잘렸는데, 나랑 같네? 헤헷.”
“……”
“그런데, 거머리랑 덤볐을 땐 힘을 안 쓰는 것 같던데.”
“거머리?”
“권지훈 그놈! 대장 옆에만 붙어사니까!! 내가 거머리라고 부르지!”
아하, 어울리네.
생각할 것이 많았던 나는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그래서, 용건이 뭡니까?”
“별거 아니야! 아무래도 그 복부의 상처 때문에 힘을 쓰지 못한 건 아닐까 하고.”
“맞습니다.”
“내가 고쳐줄 수 있는데. 히히”
“정말입니까?”
그 어떤 스킬을 사용해도, ‘시드 스토어’의 포션을 사용해도 회복이 어려운 상처였다. 이 상처는 레비아탄이라는 상위 존재에게 입은 상처였기 때문.
다이아나가 자신의 양손에 마력을 모으더니, 새하얀 빛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내가 고쳐주면 부탁 하나 들어줄 수 있어!?”
당장 권지훈과 싸워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연치유를 기다리기엔 지옥의 군세가 어떻게 나올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물론이죠. 정말 고칠 수 있는 겁니까?”
“당연하지! 나 다이아나라구. 엣헴.”
행동이니, 말하는 투니 어린애와 다르지 않았지만 최후룡쯤 되는 존재니 같은 최후룡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 같았다. 물론, 다이아나의 부탁이란 것을 들어봐야 하겠지만.
“그래서…. 부탁이 뭡니까?”
나의 물음에 다이아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대답이 없었다. 무슨 부탁을 할까 예상조차 가지 않았다.
“그… 나랑 친구… 할래…?”
“예…?”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 다이아나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황당함에 두 눈이 커졌다.
나는 고개를 숙인 다이아나를 향해 말했다.
“지금 뭐라고….”
“상처 고쳐줄 테니까, 나랑 친구 하자구!!”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황당함에 가득 찬 내게 다이아나가 말을 이어갔다.
“대장은 재미없고, 거머리는 꼰대 같으니까…. 넌 대장이 인정한 강자니까!!”
그다지 어려운 부탁은 아니었지만, ‘친구’라는 단어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는 의구심이 들었다.
“친구가 뭔지는 압니까?”
“응, 응!! 같이 놀고, 대화하고, 맛있는 것도 나눠 먹는 사이잖아!!”
“뭐, 비슷하긴 하지만 왜 나한테…. ‘내부지구’에도 강자들은 많을 텐데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최후룡쯤 되는 존재가 처음 보는 내게 친하게 지내자니. 그녀의 의도를 알아채는 것은 물론 아무런 답이 나오질 않았다.
“그야, 그놈들은 날 무서워하는걸…? 대장만큼 강한 자라면 날 무서워하지 않을 테고!”
아하.
다이아나의 말뜻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세계라 할지라도 그녀는 수천 년을 살아온 최후룡. 생명체 대부분이 그녀에게 공포를 느낄 것이 분명했고 차정우를 제외하곤 그녀만큼 강한 자 또한 없을 테니까.
거절당할까 봐 표정이 어두워진 다이아나를 보니, 임아린이 생각났다. 피식. 웃음이 흘러나온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습니다.”
“응? 뭐라고 했어!?”
“친구 하자고요.”
“진짜? 진짜지!?”
수천 년을 살아왔음에도 그녀는 고독한 룡. 친구도 가족도 없는 자. 그 때문인지 외로움이 극에 달한 그녀였다. 나의 말에 방방 뛰는 다이아나를 보니, 하루 빨리 임아린을 데리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가 된 기념으로 그 상처는 내가 치료해줄게! 잠시만….”
다이아나는 자기 손에 모은 마력에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외우더니, 나에게 마력을 쏘아냈다.
용언…?
번쩍!
새하얀 빛이 내 몸속으로 깃들더니, 이내 따스한 무언가가 나의 몸 안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것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웅장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나의 복부의 통증은 가라앉았다.
“허….”
통증이 사라지자,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지구나 무림인 그리고 시스템을 사용한 ‘시드 스토어’의 포션들도 상처를 완화 시킬 수조차 없었던 것을 한 번의 움직임으로 치료한 것이 놀라웠다.
“안 아프지!? 그치?”
“안 아픕니다. 대단한데요?”
“헤헷. 이제 우리 친구지!?”
해맑게 웃는 다이아나가 무척이나 귀여웠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나보다 몇백 배는 더 살아온 룡이었지…?
아차, 싶은 생각이 들 때쯤 다이아나는 말했다.
“친구니까 내 본 모습을 보여줄게! 이건 아무한테나 보여주는 게 아니라고!”
스스스슥.
대답을 하기도 전에, 다이아나는 공중으로 몸을 띄우더니 커다란 무언가로 변하기 시작했다. 전신이 백색으로 뒤덮이고 이마에는 두 개의 뿔이 솟아났다. 거대한 날개는 한쪽밖에 없었지만, 그 크기가 사룡에 못지 않았다. 다이아나의 본 모습. 아름다운 룡이었다.
한쪽뿐인 날개를 바라보던 나는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날개는 어쩌다….”
“이거? 이건, 마왕과의 전투에서 잃었어. 대장이랑 함께 싸웠는데도 엄청 엄청 강했거든.”
“아….”
“대장이 엘릭서를 주지 않았으면, 난 죽었을 거야. 친구니까 특별히 보여주는 거야. 헤헷.”
물어보지도 않은 말을 구구절절 해대는 다이아나였지만, 거대한 날개가 한쪽밖에 없는 것이 조금은 신경이 쓰이는 나였다. 인간으로 치면 한쪽 팔이 없는 나와 비슷했기에 동질감을 느껴서였을까.
파앗!
다이아나는 다시 어린아이의 외형으로 폴리모프했다. 다이아나가 말했다.
“사실, 그때 이후론 대장한테도 안 보여주던 건데, 이제 우린 친구니까!!”
해맑게 웃는 다이아나였지만, 잘려 나간 날개를 봐서 그런지 나는 웃을 수 없었다.
“그 날개는 고칠 수 없는 겁니까? ‘내부지구’에는 ‘엘릭서’같은 최상위급 포션이 있을 텐데요.”
“응. 아무리 좋은 명약이라도 잘려 나간 신체를 복구할 수는 없어. 성좌들의 힘이라면 모를까. 너도 그 팔… 고치지 못하고 있잖아.”
“그렇죠.”
다행인지 ‘폴리모프’한 다이아나는 한쪽 팔이 없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인간의 모습으로 지내는 것이 편해 보였다. 인간으로 변모했을 땐, 전투력이 그만큼 떨어지겠지만 다이아나는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날개가 잘려 나간 것을 보여주기 싫었던 것. 나는 그런 다이아나에게 말했다.
“방법이 있을 겁니다. 제 팔도, 당신의 날개도 재생시킬 방법이.”
“응! 있을 거야 분명히. 참! 난 볼일이 있어서 가봐야 하는데, 또 볼 수 있겠지?”
“물론이죠. 우리가 적이 되지 않는 이상.”
“그럴 일 없을 거야!”
순식간에 자리에서 벗어나는 다이아나는 저 멀리 이동해 나를 향해 두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럴 일 없을 거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다이아나였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여차하면 ‘내부지구’와 ‘외부지구’인 우리는 죽고 죽여야 한다는 것을.
“그러지 않기를 바라야지.”
* * *
차정우와 이지은의 만남 이후, 두 사람의 만남을 방해하기 싫었다.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에게 전부인 그들의 만남은 어쩌면 기적과도 같았으니까. 두 사람이 해후가 끝나야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해가 저물어가자, 차정우가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지은 씨는?”
“잠들었다.”
“이야기는 잘했냐?”
고개를 끄덕이는 차정우. 그의 표정엔 많은 것들이 담겨있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구해준 나에게 조금은 미안해서였을까 싶던 순간. 차정우가 말했다.
“고맙다.”
“어?”
“……”
두 번은 말하지 않다는 듯, 고개를 돌린 차정우는 나지막하게 말을 이어갔다.
“네놈은 우리와 동맹을 맺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지?”
“그렇지. 지옥의 군세는 두 세계가 힘을 합쳐야만 하니까.”
“알고 있다.”
“아는 놈이 날 죽이려고 달려드냐?”
“……”
미안하긴 한가 봐?
기계 같고 차갑기만 하던 차정우의 행동이 이지은과의 만남 이후, 조금씩 사그라지는 것을 본 나였다.
앞으로도 지금과 같으면 좋을 것을.
나는 차정우와 한참을 이야기했다. 차정우가 본 ‘예언’과 나의 ‘명’을 조합해 지옥의 군세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가 살아남을 방법에 대해서….
“그럼 난 간다. 거점을 만들고 다시 연락하라고.”
차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여유를 가질 수 있던 것은 미션이 시작되지 않았다는 것과 지옥의 군세는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당장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나의 ‘명’은 언제나 그랬듯, 이지은을 데리고 이곳에 온 것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 * *
여차하면 전투가 벌어질 수도 있었기에, 남극으로 불러 모았던 모든 인원에게 이동한 나는 모두와 함께 우리의 거점으로 이동했다. 딱히 거점이라고 할 것은 없었지만, 전투가 끝나면 항상 모이던 장소. 광화문의 거리였다.
무너진 건물들과 여기저기 널린 마물의 시체는 온데간데없이 깨끗했고, 특수 스킬을 지닌 자들이 만든 천막과 쉴 수 있는 공간들이 보였다. 근사한 건물 같은 건 없었지만, 이제는 이 장소가 우리들의 보금자리나 다름없었다.
무거워진 분위기에 가장 먼저 말을 내뱉은 건 진선미였다.
“전투가 벌어지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어색함을 견디지 못해서 한 말이었지만, 진선미의 말과 동시에 사람들의 표정을 더욱 어두워지는 중이었다. 간단한 이유였다.
거점에 도착한 우리들의 눈앞에 시스템의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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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섯 번째 미션 : 최후의 전쟁
- 당신들이 사는 지구엔 세 개의 세계가 존재합니다. 당신들은 세계를 통합해 하나의 세계로 존속해야 합니다. 그때가 바로 당신들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제한 시간 – X
#클리어 조건 – 세계의 통합
성공 시 – ???
실패 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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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떠오르는 미션창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