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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134화 (134/206)

제134화

episode(15) 세계의 문#2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생각으로 복부의 고통을 참아냈다.

하지만 고통은 계속해서 몰려오는 중, 쉬었다 날아가기를 반복했다.

“후, 거의 다 왔네요.”

“괜찮겠어요? 전투는 무리일 텐데….”

“그 꼬맹이 놈들은 이대로 두면 위험합니다. 모든 원인은 제게 있으니, 책임져야죠.”

“그래도….”

진선미의 표정은 계속해서 어두웠다.

레비아탄과의 전투가 끝나고 나흘 밤낮을 누워만 있던 나였기에 당장 전투라도 벌어진다면 능력치건 스킬이건 죽을 것이 뻔했다.

내가 입은 상처는 스킬로는 무리였으니, 자연적인 치유를 기다려야만 했다.

잠깐의 휴식 후, 십여 분을 더 날아간 끝에 도착한 곳은 네팔의 룸비니.

흔히들 ‘붓다’ 즉, ‘석가모니’의 탄생지로 알고 있는 유적지였다.

전투의 흔적에 인상을 찌푸린 나는 이미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것에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망할 꼬맹이들이….”

“오라버니, 저쪽에 인기척이 느껴지는데요?”

진선미가 말하는 곳으로 몸을 움직인 나는 죽어가는 사내를 만날 수 있었다.

“사, 살려주세요. 제발…!!”

절박한 표정의 사내는 자신이 살 수 없는 상처를 입었음에도 삶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중이었다.

나는 진선미에게 말했다.

“선미 씨, 적당한 포션을 저분에게 주세요.”

“이미 늦은 것 같은데….”

“압니다.”

진선미는 ‘시드 스토어’를 개방해 사내에게 포션을 건넸다.

“가, 감사합니다…!!!”

사실 포션을 건넨다고 해도 사내는 살지 못한다.

이미 죽음 직전의 상처를 입었기 때문.

풀포션을 건네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포션을 건넨 이유는 간단했다.

정보를 얻으면 좋고 아니면 사내의 희망을 조금이나마 연장해 줄 수 있으니.

사내가 스스로 죽음을 깨닫기를 바랄 뿐이었다.

동정의 가까운 행동이었지만, 안쓰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나 때문에 안재훈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죽지 않았을 테니까.

나는 포션을 들이켠 사내를 향해 질문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습니까?”

사내는 포션 한 병을 모두 삼키더니, 손을 뻗어 사람들이 위치한 방향을 가리켰다.

대답을 들은 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부디 살아남으시길….”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내의 말에 진선미가 씁쓸한 표정을 지어냈다.

몸을 돌린 나는 곧바로 사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날아갔다.

* * *

진선미와 도착한 장소엔 세 개의 진영이 널찍하게 펼쳐져 있었다.

서로를 마주 본 악의.

금방이라도 죽고 죽이는 전투가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였다.

안재훈의 흑아.

김영광, 김도은 그리고 임해든이 이끄는 한국인들과 무림인들.

그리고.

네팔의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를 모시는 사도들과 그 중심이 되는 쿠마리가.

이들이 대립하는 이유는 안재훈의 반란이 가장 큰 이유였고, 더 나아가 네팔의 쿠마리를 영입하려는 안재훈이 실패한 것에서 시작된다.

즉, 모든 것의 시작은 안재훈의 행동 때문에 벌어진 것.

나는 생각을 멈추고 몸을 움직였다.

어느 정도 이동한 끝에 도착한 곳은 한국인과 무림인의 진영이었다.

“다들 괜찮습니까?”

갑작스레 들려오는 목소리에 김영광과 김도은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저 멀리서 나의 기운을 눈치를 챈 소수의 무림인이 한달음에 날아왔다.

“너, 너!!!”

“4일만이네, 백남광.”

“안이 씨, 이젠 괜찮은 겁니까?”

“보다시피 레비아탄에게 입은 상처는 자연치유를 기다려야 해서요. 상당히 아픕니다.”

“어휴….”

한숨을 쉬는 김도은을 향해 미소를 지어냈고.

그래도 살아남아 다행이라는 김영광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은 어떻습니까?”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듯 질문하는 나였기에 백남광이 의아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무슨 상황인 줄은 아냐?”

“알지. 꼬맹이 놈들이 난리를 치고 있는 거 아니야?”

“이놈은 대체….”

이미 익숙해진 김도은과 김영광이었지만, 백남광은 어떻게 알았냐는 듯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진선미는 내내 나와 함께 있었고, 이 장소는 한국과는 거리가 있는 네팔이니까.

이런 상황을 눈을 뜬 내게 알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더욱 단단해진 근육이 돋보이는 김영광이 앞으로 나섰다.

나는 김영광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젠 근육을 넘어선 것 아닙니까? 돌덩이 같습니다.”

“하하, 더 단단해져야 모두를 지킬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치며 대답하는 김영광.

무언가 뿌듯해 보였다.

“그래서, 상황은요?”

“아시겠지만, 꼬맹이의 흑아와 네팔인들 그리고 저희가 대립 중입니다.”

“뜬금없는 삼파전이네요. 네팔이라….”

나는 일전에 마주친 ‘쿠마리’라는 아이를 떠올렸다.

아무런 말도 없이 죽은 이의 눈을 가지고 있는 아이.

감정이 메말라 살아있는 인형에 가까웠던 그 아이를.

“알 것 같네요. 네팔은 저희와의 협력을 거부했었죠. 지키기 위한 싸움일 겁니다.”

“네. 안 그래도 이곳을 벗어나 주라고 여러 번 말을 해왔지만…. 꼬맹이가 거부했죠.”

“네팔의 ‘쿠마리’를 영입하지 못했으니까요. 사춘기가 찾아온 아이의 자존심이겠죠.”

“역시, 모두 알고 계셨네요.”

김영광과의 대화에 김도은이 불쑥 끼어들었다.

알 수 없는 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음에도 이젠 그 어떤 의문을 표하지도 않았다.

나는 한 가지 생각에 빠져들었다.

이기려면 쉽게 이길 수 있음에도 이런 식의 대치를 유지하는 것인지.

‘명’을 보아 상황은 알 수 있었지만, 사람 개개인의 마음까지는 모르는 나였다.

“무림인이 같이 있는데, 이런 식의 대치를 유치하는 이유는요?”

“아무래도…. 그 꼬맹이는 안이 씨가 살려 둔 아이지 않습니까? 아직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죽이기엔 조금….”

“맞아요. 게다가 무림인은 남광 씨를 비롯해 백여 명밖에 오지 않았거든요.”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가던 중, 백남광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할 거냐? 방법은 있고?”

“응.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지. 나 좀 도와줘라.”

백남광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덤벼들진 않겠지만, 날 지켜주기만 하면 돼.”

“그거면 되냐?”

“응. 복부에 구멍이 뚫려서 아무것도 못 하겠거든.”

“그 정도쯤이야.”

어깨를 으쓱거리며 답하는 백남광이 조금은 든든해지는 순간이었다.

공중으로 떠오른 나는 곧바로 일행들에게 말했다.

“다들 대기하세요. 금방 끝날 겁니다.”

“같이 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맞아요. 전 세계 미성년자들의 집단이지만, 세력이 상당히 큽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전투는 없을 테니까요.”

“……?”

걱정스러운 눈빛의 일행들이었지만, 나는 괜찮다는 의사만 표할 뿐.

그 어떤 말도 해주지 않았다.

뭐, 솔직히 할 말은 없지. 오직 나만이 가능한 방법이니까.

그때였다.

저 멀리서 폭음 비슷한 것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선인의 기운’을 펼쳐 기척을 우선적으로 감지했다.

안재훈의 흑아와 네팔인들의 전투가 시작된 것이었다.

“저 망할 꼬맹이가 그새를 못 참고…!!”

“내가 먼저 갈까?”

“응. 네팔의 쿠마리는 절대 죽게 해서는 안 돼.”

“알겠다.”

보지 않아도 듣지 않아도 알 법한 상황이었다.

안재훈 본인이 만든 ‘흑아’보다 세력이 작은 네팔인들을 먼저 공격해 세력을 흡수하고 우리와 맞서려는 것이겠지.

꼬맹이가 생각할 수 있는 단순한 방식이었다.

나는 전투가 벌어지는 장소로 몸을 움직였다.

* * *

콰콰쾅!!!!

전투는 당연하게도 ‘흑아’가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인원이 적은 네팔인이었기에 당장 막아내는 것이 전부일 뿐, 누군가 중재하지 않는다면 금방이라도 끝날 것 같은 전투였다.

나는 기척 감지와 화안금정을 사용해 안재훈의 위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핑!

기척을 감지한 그 순간.

“이안이다!!”

“오!! 내가 잡는다!!!”

어린놈의 자식들이.

후웅-!

흑아에 속한 아이들이 나를 발견하곤, 다짜고짜 공격해오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아파 죽겠는데. 젠장맞을 놈들.

나는 재빠르게 용광검을 꺼내 들어 ‘태극검’을 사용했다.

부드러운 움직임을 뽐내며 최소한의 힘으로 상대의 힘을 이용하는 태극검이라면 복부의 통증이 조금은 줄어들 것 같았다.

휘릭.

꽝!!!

“컥… 괴, 괴물….”

“죽기 싫으면 덤비지 마라.”

“대장한테 알려!! 우리는 못 이겨!!”

나름대로 짬이 차오른 아이가 주변에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하나의 무리를 이끌어간다는 것이 나름대로 대단해 보였다.

제법이네.

천천히 걸음을 움직여 도달한 곳은 쿠마리를 공격하려는 안재훈과 내 말대로 쿠마리를 지키려는 백남광 거센 전투를 이어가고 있었다.

아무리 안재훈이 천재라는 포지션으로 엄청난 성장을 이룰지라도 무림계의 일인자라 불리는 백남광은 이길 수 없을 정도.

더욱 성장했을 때의 안재훈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무리였다.

아락바락 덤벼드는 안재훈의 모습을 보자, 미안한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민재 씨….

머릿속이 복잡해진 나는 상황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 몸을 움직였다.

이깟 고통 참아내면 그만.

두 사람의 전투가 격렬해지고 있었다.

콰콰쾅!!!!!

“제법 이긴 한데, 꼬꼬마들 전부가 덤벼도 난 안 죽는다.”

“재수 없는 소리 하시네! 이 아저씨?”

“말하는 싸가지 하고는….”

“캭, 퉤다!!”

<타카마가하라>의 힘을 사용하지 않는 안재훈이 백남광을 이길 확률은 조금도 없었다.

다시 한번 두 사람이 부딪히려는 순간.

재빠르게 달려 나간 나는 두 사람의 중심에서 태극검을 사용했다.

휘리릭.

후웅.

공격의 궤도를 바꾼 것이었다.

“왔냐?”

“어. 지금부턴 나한테 맡겨. 쿠마리 잘 지키고.”

백남광이 백스탭을 해, 쿠마리 곁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돌려 안재훈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분노에 가득 차,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안재훈의 얼굴이 보였다.

“너…. 들었구나?”

나의 첫마디에 안재훈이 그간 쌓아온 분노를 표출하며 나를 향해 외쳤다.

“왜!!! 왜 그랬어!!! 민재 형 살릴 수 있었잖아!!”

“……”

“당신 강하잖아!! 왜 그랬는데! 당신이 갔으면 안 죽었을 거야…!!!”

아무 말도 못하는 내게, 안재훈은 계속해서 몰아붙였다.

알고 있다.

내가 갔으면 권민재도 임해든도 살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가지 않았고 ‘명’을 바꾸겠다는 생각에 권민재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었다.

“난, 이제 당신을 따르지 않을 거야. 그러니 전력을 다해 덤벼. 민재 형의 복수는 내가 한다.”

안재훈의 전신에서 엄청난 기세의 아우라가 일렁였다.

“미안하다. 내 판단이 옳지 못했어.”

“됐거든. 그런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나?”

“……”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다는 듯, 안재훈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나는 안재훈을 바라보며 말했다.

“왕의 이름으로 말한다. 멈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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