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3화
episode(15) 세계의 문#1
꿈.
과도한 힘의 사용 이후, 정신을 잃으면 알 수 없는 꿈을 꾼다.
처음에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꿈이라고 생각했다.
꿈의 내용은 별거 없었지만, 모두가 나를 사랑해 준다.
“비켜라. 빌어먹을 꼬마 놈.”
이놈만 제외하고는….
지금도 나는 그 꿈속에 있는 것 같다.
어린 남자아이의 몸. 일인칭의 장면으로 내 꿈은 시작됐다.
“형보다 약한 주제에!”
“……지금은 내가 더 강하다.”
“풉!”
하얀색 풀 플레이트 아머에 붉은색 망토.
새하얀 칼집에 담긴 검.
단순하게 봐도 지구인이 아닌 것 같은 모습.
내 의식, 생각과는 다르게 사내를 적대시하는 나였다.
아니, 내 전생은 이 꼬마가 맞는 걸까?
꼬마는 사내를 놀리며 조금씩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형아 덕분에 산 주제에!!”
타 탓!
사내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음에, 위기감을 느낀 꼬마는 재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망할 자식. 제 주인을 꼭 빼닮았군.”
상대해봐야 본인만 피곤하다는 듯, 사내는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났다.
꿈속 세계는 인원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무리의 핵심이 되는 인물들이 보였고, 부족을 상징하는 타투.
여러 나라의 인간들이 한 무리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모두의 사이는 좋아 보였고, 나는 그 속에서 자라왔다.
꼬마는 열심히 음식을 만드는 여성에게 말을 걸었다.
“누나!!”
“응? 왔어? 어딜 다녀오는 거야?”
“헤헤. 건방진 용사 놈한테 한 방 먹이고 왔지롱!!”
여성은 자신의 아이라도 되는 듯, 꼬마를 향해 방긋 웃었다.
“그러면 안 돼. 형이랑 같이 싸운 동료잖아. 그분도 많은 고생을 하셨다고.”
“칫. 그래도 마음에 안든다구!”
엄마라고 느껴지진 않았지만, 여성은 꼬마를 좋은 말로 타일렀다.
머리를 쓰다듬는 것도 잠시.
여성은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기 시작했다.
“곧, 그분들이 오실 거야…. 준비는 된 거니?”
여성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응! 형아가 없으면 내가 해야지!! 나 간다, 누나! 이따 봐!!”
“그, 그래….”
씩씩하게 대답한 꼬마는 여성에게 손을 흔들며 자리를 벗어났다.
* * *
이 꿈속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을까?
꿈속의 도시는 평화로웠다.
미션도 마물도 없는 세계.
다른 것이 있다면, 이 세계의 사람들은 이 도시 말고는 아무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여러 번 꿈을 꾼 내가 내린 결론이었지만, 하나의 세계에 이 정도의 수밖에 살지 않는다니, 조금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꿈이 이어질수록 보지 못했던 내용이 이어졌다.
그리고 나는 꼬마에게 점점 스며들었다.
내가 꼬마였고, 꼬마가 바로 나였다.
그때였다.
평화로운 날을 보내던 어느 날.
내가 알고 있는 인물이 이 장소에 찾아왔다.
환한 빛과 함께.
“오셨습니까, 천존.”
무리에 속한 사내가 곤륜산, 신선 중의 왕 ‘천존’에게 인사를 건넸다.
천존이라니.
뜻밖의 인물이 등장한 것에 놀랐지만, 나는 반응 할 수 없었다.
의식만 꼬마에게 있을 뿐, 꿈을 꾸는 것에 지나지 않았으니.
“음. 그때를 위해 왔네만, 준비는 된 것인가?”
“물론입니다.”
“그 아이는?”
천존의 물음에 나는 씩씩한 걸음으로 앞에 나섰다.
“할배! 나 여기 있어!!”
천존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너의 ‘운명’은 외롭고 힘든 길이 될 것이야. 그래도 하겠느냐?”
“응. 형아가 그랬어.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꼬마의 대답에 불쑥 끼어든 사내가 입을 열었다.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입은 사내.
“내가 하겠다. 내가 할 수는 없는 건가?”
이미 생각을 마친 듯, 각오가 느껴지는 사내였다.
천존은 그런 사내를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건 피닉스, 주작, 드래곤의 심장을 흡수한 이 아이밖에 할 수 없다네. 자네는…. 기다릴 수밖에 없다네.”
“……”
강제가 아닌, 특수한 조건이라는 무언가에 얽혀있다는 듯한 천존의 말.
꼬마는 고개를 돌려, 여성을 향해 말했다.
“누나! 내가 형아, 데려올게.”
“……”
여성을 포함해 여러 인물이 나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려댔다.
누군가는 가지 말라고 통곡을 하기 시작했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들의 무력함에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그려지지들 마! 누나, 형들도 우리 형아 기다리고 있잖아. 천존 할배 말처럼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니까.”
당차게 말하는 꼬마였음에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꼬마의 감정을….
무섭고도 슬펐으며, 이 장소의 모두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것 같은.
그런데도 꼬마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나도 형아가 보고 싶으니까. 그럼…. 다녀올게.”
꼬마의 결심이 선 순간. 천존은 꼬마를 향해 말했다.
“준비된듯하니, 그 모습을 풀게나.”
“아, 하핫! 맞다. 이건 내 모습이 아니지?”
천존의 말에 꼬마는 스킬을 사용하더니, 환한 빛에 휩싸였다.
꼬마의 전신이 더욱더 작아지기 시작했다.
새하얀 무언가로 변하는가 싶더니, 나의 의식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기나긴 여정이 될 것이야. 부디, 힘내주길 바라네. 우리 곤륜의 기록자들과 자네 형을 구할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니.”
천존은 빛에 휩싸인 꼬마에게 손을 뻗는가 싶더니, 동시에 나의 시야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젠장, 조금만 더…!!
무언가 알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조금 더 버텨보려 했으나, 내 의지는 꿈속 세계에 머물 수 없었다.
번쩍.
동시에 나의 시야는 엄청난 빛에 휩싸여 빙그르르 돌기 시작했다.
* * *
“으읍…!!”
엄청난 격통속에 잠에서 깬 나는 인상을 한껏 찌푸려댔다.
“여기는….”
나의 복부는 하얀 붕대로 칭칭 감겨있었고,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각 대표들과 회의를 진행했던 천막 안에 뉘어져 있는 나였다.
아, 레비아탄은 무사히 쓰러트렸구나. 나…. 살아남은 건가?
생각을 정리한 나는 몸을 일으켰다.
“큭….”
인간들 중엔 이민영과 같이 치유가 가능한 사람이 있을 텐데도 레비아탄에게 당한 상처는 낫지 않은 것 같았다.
너무나도 강한 존재여서 그랬을까.
무언가 이유가 있음만을 지레짐작할 뿐이었다.
복부를 부여잡고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천천히 천막 밖으로 몸을 움직였다.
저벅, 저벅.
입구를 지나, 천막 밖으로 몸을 내밀자, 따사로운 햇살이 내게 쏟아졌다.
눈을 뜰 수 없는 햇빛이 나의 시야를 가렸지만 나는 억지로 눈부신 하늘을 계속해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윽고 나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렸다.
이길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당연하게 나는 죽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살아남았다는 것이 그간의 힘듦을 보상해주는 것 같았다.
미션의 끝은 레비아탄이 아닐지언정 지금까지 버텨낸 것이 뿌듯했고 감동적이었다.
“후, 앞으로가 핵심이겠지. 그동안의 정보를 종합하면 ‘세계의 문’이 열리는 건 금방일 테니까.”
혼잣말을 조용히 내뱉은 나는 눈물을 닦아내고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음…? 다들 어딜간거지…?
지구와 무림계의 인간들은 전투가 끝나면 이곳에 모이곤 했다.
하지만 내 시야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큭…!!”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복부의 통증이 강하게 밀려들었다.
한쪽 무릎을 땅에 떨구고 복부를 부여잡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인기척이 느껴졌다.
“어? 오라버니!!”
엄청난 고통에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연분홍의 머리칼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선미 씨?”
“힝…. 얼마나 걱정했다고요!!”
동그랗고 커다란 눈에 맺힌 눈물이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 울먹이는 진선미였다.
“운이 좋았습니다. 조금만 위에 박혔다면, 죽었겠죠.”
진선미는 나를 꼬옥 끌어안았다.
“아, 아아악!!!!”
복부의 고통이 더욱 심해지자, 아차 싶었는지 진선미가 몸을 떼어냈고 나는 그런 진선미를 향해 미소를 지어냈다.
“저 괜찮습니다. 선미 씨만 아니면 더 괜찮을 것 같은데.”
“칫….”
“그래서, 다들 어딜 간 겁니까?”
나의 물음에 난감할 표정을 짓는 진선미.
순간적으로 무슨 일이 생겼을까 싶은 마음이 강하게 일렁였다.
설마, 세계의 문이 벌써 열렸나?
나는 시스템을 확인했다.
[남은 시간 19시간 3분 24초]
응?
시간을 확인한 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진선미에게 물었다.
“제가 의식을 잃은 지, 얼마나 된 겁니까?”
“음…. 4일 정도요.”
“아….”
무슨 일이 생겨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시간이었다.
다행인 점은 ‘세계의 문’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는 점.
정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적들을 맞이하기엔 우리는 아직도 약했으니까.
그때였다.
짧은 순간이지만, 내가 보지 못한 미래가 조금씩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명’…?
한동안 갱신되지 않은 ‘명’의 내용이었다.
그것도 레비아탄 이후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오라버니? 괜찮….”
“잠시만요.”
진선미의 말을 잘라낸 나는 ‘명’에서의 내용을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했다.
다섯 번째 미션 이후의 이야기.
나에겐 이 이야기가 무엇보다 중요했었다.
……
한참을 ‘명’에 대해서 생각했고, 그동안의 퍼즐을 끼워 맞추자, 모든 이야기가 하나의 이야기고 누군가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구나, 그래서 내가 그 꿈을…. 형…!
중요한 일이라도 떠오른 것처럼 정신을 번뜩 차렸다.
하지만 나중 일은 나중 일.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다.
“선미 씨. 안재훈의 ‘흑아’가 반란을 일으켰죠?”
“그, 그걸 어떻게….”
부상당한 몸이지만, 권민재를 죽음으로 밀어낸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이었다.
“가야 합니다. 제가 막지 않으면 누군가 죽고 말 테니….”
“오라버니 부상이….”
“그간, 혼자서 절 지켜주셔서 고맙습니다.”
“……”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진선미가 주먹을 불끈 쥐곤 내게 말했다.
“같이 갈게요! 도움이 될 거예요. 저도 제 배후성의 게이트를 클리어한 강자 중의 한 명이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당장 눈으로 봐야 할 수 있는 부분들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상태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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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98 – 이안 / 26살
힘 - 88294 / 99999
민첩 – 90846 / 99999
마력 – 88708 / 99999
체력 - 90522 / 99999
LV 포인트 - 0
각성 등급 - 미확정
전용 특성 – 자신의 운명을 바라본 자
배후성 – 재미로 삶을 반복 하는 자
성흔 - [시간 괴리 LV MAX], [홍염(紅焰) LV MAX]
시드 - 60034010 s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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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의 상한은 알 수 없었지만, 레비아탄을 잡으며 모든 능력치와 스킬 데미지가 상승한 것.
나는 곧바로 상태창을 끄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당장 복부의 고통이 밀려들었지만, 지금 내 능력치는 한계에 가까웠으니.
안재훈의 ‘흑아’에 지지 않을 강함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건 내 경우의 이야기고 전 세계 스무 살이 되기 전의 인원을 흡수한 ‘흑아’는 모두를 위기에 빠트리기엔 충분했다.
죽기야 하겠어? ‘명’에선 살아남았으니까. 뭐, 괜찮겠지.
* * *
진선미와 한참을 날아 이동했다.
우리들의 목적지는 ‘네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