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1화
레비아탄의 말투는 인자하면서도 강직했다. 마치, 자신만이 이번 미션을 끝낼 수 있다는 듯. 나는 그런 레비아탄을 바라보며 생각을 끝마쳤다.
이번이 내 마지막이자,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인간 형상의 레비아탄에게 조금씩 다가가던 나는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버프를 사용했다. 사룡과의 전투에서 정령화와 동조화를 따로 사용했다면 이번에는 달랐다.
스스스슷.
모든 버프에 이어, 동조화. 이미 한계를 돌파한 나의 능력치에서 정령화까지 사용하자, 잘리고 없었던 왼팔이 투명한 마력의 형상으로 나타났다.
이것으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버프를 사용한 셈이다.
내가 낼 수 있는 최상의 강함이었다.
“호오…. 흥미로운 인간이구나.”
정령화의 남은 시간은 1분.
남은 버프야 그렇다고 쳐도 1분 안에 끝내야만 한다.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계속해서 말을 걸어오는 레비아탄이었지만, 그에게 일일이 대답해줄 여유는 없었다.
전력을 다해도 이길 수 있을지 모르는 미지의 강함.
나는 그런 강적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레비아탄이 눈빛을 희번덕이며 나를 향해 말했다.
“좋다. 나를 쓰러트리고 넘어서거라. 이것이 인간들인 그대들에게 내리는 마지막 시험이니라.”
쾅!!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파열음은 내게서 시작됐다.
“말해 뭐합니까?”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수십만에 달하는 지구의 인간들과 무림계의 인간들이 레비아탄을 향해 덤벼들었다.
누군가는 순식간에 죽을 테지만, 모든 인간의 마음은 단 하나였다.
멸망에서 살아남는 것.
살고자 하는 각자의 목적성이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었다.
단단한 레비아탄의 피부와 용광검이 맞물리자, 듣기 싫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까드드득.
동시에.
꽝!!!
자기 육체에 자신 있는 자들이 레비아탄을 향해 돌진했다.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그 공격을 시작으로 모든 인간이 일제히 레비아탄을 향해 쏟아붓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마력을 담은 마법으로.
누군가는 자신의 병장기를 휘두르며.
콰쾅!!!!
전투의 시작은 순조로웠다. 나는 순간순간의 빈틈과 허점을 공략해 레비아탄을 베어나갔고 홍염을 가득 담은 용광검은 상처를 남기기 충분했다.
정령화의 남은 시간은 30초.
이 안에 승부를 내지 못한다면, 자칫 위험해질 수도 있다.
전투하면서도 머릿속에 온갖 잡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은 의미 없었다. 더욱더 강하게, 더욱 빠르게 몰아치는 수밖에.
공격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레비아탄이 아니지.
“이번 미션은 재미있구나.”
“재미?”
“이것이 재미가 아니면 무엇이겠느냐.”
레비아탄의 말에 인상을 찌푸린 나는 말했다.
“우린 생존이다. 이 뱀 새끼야.”
순간적으로 욱해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우리에겐 하루하루가 죽고 죽이는 삶이었다.
누군가의 죽음을 묵인하고 그 죽음을 발판 삼아 성장한 우리였다.
그런 우리에게 재미라니.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레비아탄은 불나방이라도 보듯, 인간들을 향해 안쓰러운 눈빛을 보이기 시작했다.
“무엇이 그리 분하느냐? 죽고 죽는 삶이 있어야 새로운 삶이 있지 않겠느냐? 그래, 물론 그 새로운 삶 속에서도 그대들은 죽고 말테지만.”
맞는 말이다. 이 세계가 끝나지 않는 이상, 우리는 반복되는 삶 속에서 미션을 시작할 테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다 또다시 죽어갈 테니.
하지만, 그런 삶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자들이 존재한다. 성좌들. 그들은 우리와 같은 미션을 헤쳐 나가 신이 된 자들이니, 우리 또한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낼 수 있는 최대한의 기운을 몸에서 뽑아내기 시작했다.
다섯 번이라는 미션을 헤쳐나오면서 쌓아온 카르마. 성좌들이 볼 땐 위협이 될 정도의 카르마는 아니었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힘.
지금, 이때를 위해 아껴둔 힘이었다. 정령화의 시간은 10초 남짓.
나는 결정해야 했다. 이 정도의 힘을 사용했음에도 고작 작은 자상이 남은 정도.
이대로는 못 이긴다.
레비아탄과 대화를 주고받던 나는 순간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전투를 중단시키거나, 살아남기 위해 잔머리를 굴리는 건 아니었다. 그저, 모든 것을 쏟아부을 시간이 온 것뿐이었다.
카르마는 다시 쌓으면 그만이다. 아니, 애초에 지금 죽는다면 그동안 쌓아온 카르마는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나는 ‘확성기’아이템을 사용해 말했다.
“전원.”
전장의 모두가 들을 수 있게.
“오늘을 삽시다.”
별다른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 순간, 이 말은 나의 신호나 다름없었다. 레비아탄에게 치명상을 입히거나 승기가 보일 때 하려던 행동이었다.
하지만, 몇 번의 부딪힘으로 깨달았다.
모든 버프를 사용했음에도 치명상 하나 입힐 수 없는 상황에서 시간을 끌어봐야 우리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파앗!!
수십 만의 사람들에게서 각자가 낼 수 있는 힘을 개방시키기 시작했다. 미션을 진행하면서 기여도는 카르마의 수치를 환산해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 그렇다는 건, 역시나 카르마가 제일 많은 건 나일 것이 분명했다.
선두에 있는 내가 가장 먼저 ‘카르마’를 사용했다. 생명체라면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힘. 그것으로 성좌가 되어 영원을 살 수 있는 힘이었다.
그런 힘을 사용하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을 리 없었다.
전신에서 하얀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동그란 구체가 머리 위로 떠 올랐다. 이것이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카르마의 양이라는 듯.
사람의 머리 크기보다 작은 정도였음에도 나의 몸에서 느껴지는 힘은 이전과는 달랐다.
정령화의 남은 시간은 3초.
“무슨….”
모든 인간이 카르마까지 불태우자, 당황한 레비아탄이었다.
나는 레비아탄을 향해 두 손을 교차해서 베어냈다.
동시에 정령화의 시간은 다하고 말았다.
번쩍!
두 개의 검은 베어지는 순간, 엄청난 빛이 레비아탄을 향해 쏟아졌다. 나라는 단 한 사람에게서 나온 힘. 그 힘이 레비아탄을 집어삼켰고 이내 빛은 조금씩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그 어떤 스킬도 사용하지 않은 단순한 휘두름이었다.
그 순간.
빛이 사라지고 넝마가 되어 소리치는 레비아탄이었다. 한쪽 팔은 잘려 나가고 꼬리의 절반은 빛과 함께 사라지고 난 후였다. 절대로 상처 입을 것 같지 않던 레비아탄이 치명상을 입는 순간이었다.
“크하아아악…!! 말도 안 된다…!!!”
빛이 사라지고 난 자리엔 고통에 몸부림치는 레비아탄이 울부짖고 있었다.
“이, 내가!!!!”
인간을 무시한 레비아탄의 방심이 낳은 결과였다.
레비아탄은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대며,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여유로웠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죽여주마…. 망할 벌레 같은 놈들아.”
분노한 레비아탄의 머리 위에 나와 같이 하얀색의 구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카르마를 사용해 힘을 증폭시켰다.
젠장, 막을 힘이…!!
나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는 중이었다.
그때.
처음 듣는 목소리가 나의 뒤에서 말했다.
“당신이 제일 강하다면서요? 죽지 마세요.”
“……?”
처음 듣는 목소리에 당황한 것도 잠시.
레비아탄이 하늘을 향해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전신에서 어두운 무언가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자, 받아 보거라. 이 몸이 선사하는 안식이니라.”
파앗!
브레스…?
쿠콰콰쾅!!!!
어두운색의 브레스는 순식간에 전장의 모두에게 쏟아졌다. 블래스트와 같은 형태가 아닌, 인간 하나하나를 노린 듯 레이저 같은 형태의 공격.
한 발 한 발이 치명상이나 다름없는 공격이 인간들의 심장을 향해 쏘아졌다.
“커헉…!!”
“사, 살려줘…!!”
“꺄아아악!!!!”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다들 피하세요!!!!”
나의 외침에도 피하지 못한 인간들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거나, 일말의 신음을 외치고 죽어 나갔다. 그야말로 약한 자의 말로였다.
적당히 강한 무림계의 인간들이나 김도은과 김영광등 나의 일행들 또한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단순한 상처로 끝나지 않을 강한 공격이었다.
그리고 그 공격은 방심하는 나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후웅-!
“젠장…!!”
용광검을 급하게 휘둘러 레비아탄의 브레스를 막을 때였다.
팅-!!
끼끼기긱!!
응? 뭐,뭐야?
바로 앞에서 갈 길을 잃은 것처럼 브레스의 공격이 멈추어 서 있었다.
“뭐해요!! 지금이에요!!”
내 등 뒤에 있던 여성의 목소리였다. 아무래도 자신의 힘을 사용해 나를 지킨 것 같았다.
그보다 배리어라니, 사기적인 방어 스킬에 뒤를 돌아보려던 찰나.
“그것부터 어떻게 좀 해봐요!! 힘이….”
쩌적, 쩌저적.
금방이라도 깨질듯한 배리어.
나는 여성의 말에 따라 나의 심장을 향한 브레스의 궤도를 바꿔 공중으로 날려 보냈다.
휘익.
정령화는 종료됐지만, 카르마의 사용으로 막지 못할 공격은 아니었다. 물론, 배리어 덕분인 것이 컸지만.
쿠구구구.
공격의 여파는 조금씩 잦아들었고, 수십만에 달하는 사람은 절반 이상이 죽고 난 뒤였다.
나는 뒤쪽을 힐끔 쳐다보며, 여성을 향해 말했다.
“괜찮습니까?”
“그럴 리가요. 저 괴물 어떻게 못 해요? 이래서는….”
허리까지 오는 기다랗고 검은 머리칼을 가진 그녀. 모델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만한 큰 키를 가진 그녀였다. 힐끔 본 덕에 자세한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당장 얼굴은 중요하지 않았다.
“덕분에 쉽게 막았네요.”
“당신이 죽으면…. 우리 모두 죽는 건 기정사실이잖아요? 너무 고마워 마세요.”
조금은 까탈스러운 그녀의 말투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힘. 얼마나 사용할 수 있습니까?”
“기껏해야 세 번이 한계일 것 같은데….”
그렇겠지.
레비아탄의 브레스를 잠시나마 막을 수 있을 정도의 배리어인데, 무한정 사용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사기나 다름없었다.
“엄호를 부탁드립니다. 어떻게든 해볼 테니.”
“가능하시겠어요?”
“안돼도 되게 해야죠. 전부 죽기 싫으면요.”
미친놈처럼 웃고 있는 레비아탄을 한 방 먹여주고 싶었지만, 목숨을 건 일격 말고는 다른 방법이 생각나질 않았다. 이마저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여성의 배리어가 없다면 불가능하겠지만….
이대로 죽는 건가…? 진짜 방법이 없나…?
한순간에 죽은 인간들의 모습에 순간적으로 겁이 났던 것일까? 마음이 약해지는 순간이었다.
포기하는 게 좋을까…?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못 이기는 거라면, 내 잘못은 없지 않을까….
“이봐요….”
마음이 약해진 나를 부른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왜…. 어? 당신….”
처음 보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동안은 살아남기 바빠서 찾지 못한 여성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훗날 차정우와의 만남을 이어가려면 꼭 필요한 여성.
“왜요? 저 알아요?”
이세계의 용사, 차정우의 연인 ‘이지은’이었다.
이 여성이 갑자기 왜 여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