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0화
여러 강자와 싸워왔음에도 게이트가 튕겨낸 충격은 상당했다.
마치, 너 따위가 들어올 곳이 아니라는 듯.
“장난 아닌데 이거?”
꽤 강렬한 충격에 인상을 찌푸린 것도 잠시.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에 집중했다. 네 가지 열쇠가 필요하다는 것 외에는 딱히 얻어갈 정보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이 게이트의 봉인을 풀기 위해서는 어떤 성좌와의 만남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그 성좌는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라는 것을.
나는 더 나아가 계속해서 생각했다.
영혼과 신기가 필요하다는 말은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의 제대로 된 영혼과 그가 사용한 신기라는 것.
특정 스킬은 알 수 없었지만, ‘각성’이라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은 있었다.
이곳에서 얻은 각성이라는 스킬. 이 스킬은 신, 인, 마, 사, 선의 기운을 흡수해 더욱 강해지는 스킬. 나의 배후성이 ‘카르마’까지 소모해가며 나에게 건넨 스킬이었다.
나는 잠시 멍하니 게이트를 바라보곤, 결론을 지었다.
지금 생각해봐야 답도 없는 것.
어느 순간 이후로 연락이 닿지 않는 배후성의 메시지를 기다릴 수밖에.
돌아가자.
* * *
복잡해진 마음을 다잡은 후, 일행들이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지만, 레비아탄과의 전투를 대비해야만 하는 상황.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우리가 살아날 방법에 대해서.
“오라버니, 표정이 안 좋네요…?”
“생각할 건 많은데 정리가 안 돼서요.”
멍하니 앉아 생각을 멈추지 않자, 진선미가 말을 건네왔다.
“오라버니는 강해요. 그래서 더욱 책임지려고 하죠. 근데…. 그게 맞을까요?”
책임감을 내려놓으라는 말이었을까? 진선미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강하다는 건 그에 따른 책임이 따르죠. 오라버니만큼 강한 존재는 이 세계에 아무도 없을 테고요.”
“무슨 말을….”
“전 오라버니를 믿습니다. 무엇이든 해결해 줄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게 당신을 정신적으로 갉아 먹을 거예요.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오라버니는 신이 아니잖아요?”
부담을 덜어주려는 진선미의 말에 쓰게 웃은 난,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생각해줘서 고맙다는 행동이었다.
사실, 진선미의 말도 맞다. 특별하게 나 혼자 ‘명’을 봤다고 해서 나는 이 세계의 주인공도 아니다. 아닌 걸 알고 있음에도 주인공처럼 행동했고 강해졌다는 이유로 모두를 살리겠다는 허황된 꿈을 꾸고 있었다.
지금껏 많은 사람이 죽은 것처럼 누군가는 분명히 죽는다. 레비아탄과의 전쟁 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을지 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 가지.
나와 함께한 모두를, 그리고 나의 ‘명’을 비틀어 더 오래 살아남고 싶었다.
생각을 정리한 나는 진선미를 향해 말했다.
“선미 씨. 모두를 불러주세요.”
“네!”
자신이 도움이 됐다고 생각을 하는 것인지, 환하게 웃으며 자리를 벗어나는 진선미였다.
나는 모두를 구하거나 살릴 수 있는 히어로는 아니지만, 모두와 함께 이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레비아탄과의 전투에서 모두가 죽더라도.
최선을 다하자고.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보자고.
한참을 기다리자, 지구의 인원들과 무림계의 인원들이 한자리에 모여들었다. 누군가는 붕대를 칭칭 휘감고 있었고 누군가는 비장한 표정으로 자신의 병장기를 쥐고 있었다.
이번 전쟁으로 자신들은 죽을 수도 있다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우리에게 레비아탄과의 전투는 최후의 전쟁이나 다름없다.
행여 승리한다고 해도, 다음 미션이 존재한다고 해도.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나는 모두가 들을 수 있게 ‘확성기’아이템을 사용했다.
“이 안입니다. 이번 전투로 다들 고생 많았습니다. 많은 분이 죽었고, 많은 분이 살아남았죠.”
사람들 모두가 입을 닫고 나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전투가 그래왔듯, 레비아탄과의 전투는 힘들 겁니다. 누군가는 반드시 죽겠죠. 이 뒤에 뭐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여기 있는 모두가 죽을 수도 있지만….”
‘명’에서의 확실한 죽음 덕분에 자신감을 잃은 나는 말의 끝맺음을 하지 못한 채, 입을 꾹 닫고 말았다. 이미 고룡을 처치하면서 ‘명’은 내가 보지 못한 이야기로 흘러가고 있었지만.
다 같이 싸우자고. 목숨을 걸자고 말하고 싶었다.
이 말이 왜 이렇게 어려웠을까 싶던 순간.
탁!
누군가 나의 뒤통수를 강하게 후려쳤다.
“……?”
순간적으로 화가 난 것도 잠시. 고개를 돌렸을 땐, 백남광과 진예화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뒤통수를 매만지며 백남광을 향해 말했다.
“너 미쳤냐?”
“정신 안 차릴래? 우리가 왜 널 믿고 여기까지 온 거라고 생각하는데?”
“……”
할 말이 없던 나는 백남광을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대답이 없자, 곧 진예화가 나를 향해 말했다.
“혼자서 모든 걸 떠안으려고 하지 마세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두 세계가 당신과 함께 할 거예요.”
그렇다.
진예화의 말이 맞았다.
멸망이 시작되고 미션이 이어지며 누군가는 나를 미워하고 누군가는 나를 도와 싸웠다.
그렇게 동료들이 생겼고 지키고 싶은 것들이 생겼다. 인정받았고 동료들은 나를 믿어 주었다. 그런데도 모두를 믿지 않은 건 ‘명’에서의 죽음이 무서워서였을까?
이제야 답답했던 머릿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나 혼자가 아니야. 모두와 함께.
“예화 씨 말이 맞습니다. 전 혼자가 아니죠. 그걸 알면서도 모른 척했네요.”
진예화를 향한 말에 몸을 돌려 다시 한번 ‘확성기’아이템을 사용해 말했다.
“다 같이 싸웁시다. 우리는 이길 겁니다.”
내가 그들을 믿음으로써 그들도 나를 믿어줄 것이다.
나는 마지막 말을 내뱉으며, 한쪽뿐인 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나의 말만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일제히 소리치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아!!!!]
두 세계의 사람들이 한 번에 내지른 환호성은 곧 광화문 일대에 거하게 울려 퍼졌다.
* * *
그로부터 3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누군가는 더욱 강해지기 위해서 게이트를 클리어했고 누군가는 게이트에서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자 휴식을 취했다.
나와 일행들은 후자였다.
3일이라는 각자의 시간을 보낸 후, 레비아탄이 봉인된 장소에서 다시 모인 우리는 시스템에 뜨는 시간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남은 시간은 1분.
레비아탄이 잠에서 깨어날 시간이었다.
긴장되는 상황 속에서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고, 나는 용광검을 빼 들어 전투 태세를 취했다. 고요한 긴장감이 흘렀고 사람들은 그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한 무리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게이트를 늦게 클리어한 사람들인가…?
의문이 든 것도 잠시. 가까워진 무리의 중심엔 내가 아는 얼굴이 자리하고 있었다.
“대왕마마!! 나 기다렸어?”
“너 이 새끼 어디 있다가 이제 온 거야?”
나의 물음에 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어린 사내가 머쓱하게 웃었다.
“이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어!?”
안재훈이었다. 성운, <타카마가하라>의 지원을 받으며,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던 그 아이.
안재훈은 뒤쪽에 자리 잡은, 어려 보이는 얼굴의 무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모은 병력이야! 전 세계를 돌았다고.”
“병력…?”
“그 이름하여, 흑아! 라고 들어는 보셨나? 으하하핫!”
안재훈은 해맑게 웃으며, 나를 향해 말했다. 젠장…? 흑아라니?
흑아는 본래 나의 ‘명’에서 최악의 범죄집단이 되어 활동한 미성년자들의 집단이었다. 권민재를 붙여 흑아가 되는 것을 방지했던 것인데, 아무래도 나의 착각인 것 같았다.
시간이 미뤄졌을 뿐, 어차피 만들어질 집단이었나…?
“그래서 그 촌스러운 이름은 누가 지은 건데?”
“아…. 촌스러워? 내가 지은 건 아닌데….”
촌스럽다는 말에 표정이 어두워진 안재훈이 자신의 옆을 바라보곤 말했다.
“야, 히로시. 것 봐!! 촌스럽다고 했잖아!!!”
“히로시?”
18살밖에 안 된 일본의 대표 히로시가 안재훈과 함께한다니. 뜻밖의 상황에 계속해서 놀라는 나였다.
“넌 안재훈 찾으라고 보냈더니, 왜 그러고 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하하….”
“후…. 일단, 눈앞에 적부터 신경 쓰자.”
당장 나눌 대화가 있었지만, 시스템의 시간은 5초. 나는 몸을 돌려 선두로 이동했다. 동시에 안재훈이 나의 곁으로 따라와 물었다.
“대왕마마, 민재 형은? 만나지 못한 거야?”
“……”
“이 형 이거 안 되겠네! 어디 가서 숨은 건 아니야!?”
권민재의 행방을 묻는 안재훈에게 나는 아무런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명’을 보고 확실하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나의 오판으로 권민재는 죽고 말았으니.
“민재 씨는…. 전투가 끝나면 말해줄게.”
“하, 참! 이 형 겁먹고 도망친 거 아니야!? 지금은 내가 더 강할 테니, 아주 혼쭐을 내줘야지. 킥킥.”
“……”
함께 행동하면서 꽤 친해진 모양인지, 스스럼없이 말하는 안재훈이었지만 그런 그의 모습에 미안한 감정만이 맴돌았다.
그리고.
미안한 감정을 마저 느끼기도 전에 시스템의 알림이 눈앞에 나타났다.
[최후룡, ‘레비아탄’이 잠에서 깨어납니다.]
짧은 메시지와 함께 지상의 모든 것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엄청난 지진과 함께 블루홀이 거칠게 날뛰기 시작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거대한 블루홀에서 사룡들보다 두 배는 거대한 무언가가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것은 다른 룡들과는 달리 날개가 없었고 이마에는 하나의 뿔을 달고 있었다.
룡과 뱀이 합쳐진 형상에 청록색을 띠는 거친 피부. 얼굴에는 수십 개의 눈이 우리를 향해 번뜩이고 있었다.
수십만에 달하는 두 세계의 인간들은 순간적으로 겁에 질려 움츠러들 때였다.
“내가 잠에서 깰 때까지 미션을 진행하다니. 실로 오랜만이구나.”
너무나도 거대한 탓인지 어디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오는지 헷갈릴 정도. 나는 곧바로 레비아탄의 정면에 서서 수십 개의 눈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대인가. 그대로구나. 나의 잠을 깨운 것이.”
인자하면서도 어둠 속 깊이 깔리는 칙칙한 목소리였다.
너무나도 거대한 크기여서 그런지, 레비아탄에게 우리 인간들은 날파리와 같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아, 걱정하지 말거라. 이것은 미션. 그대들과 같은 모습으로 변하도록 하지.”
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레비아탄이 점점 작아지더니 곧 사룡들과 같이 ‘폴리모프’를 사용했다.
파앗!
번뜩이는 빛이 나의 시야를 가리더니, 엄청난 크기의 레비아탄은 사라지고 적당한 크기의 인간 형태로 변모했다.
“자, 이 정도면 되겠는가?”
“딱 좋군요.”
나의 대답에 호탕하게 웃기 시작한 레비아탄은 금세 웃음을 멈추더니, 성인 남성의 키를 훌쩍 넘기는 장창을 소환에 허공에 띄워냈다.
“자, 대화는 더 이상 필요 없지 않으냐? 다음 미션으로 가고자 한다면 날 뛰어넘거라 인간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