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9화
알 수 없는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을 땐, 눈앞의 시스템 창이 동시에 보이고 있었다.
[당신에게 내재된 관리자 ‘A’의 힘이 발동합니다.]
관리자…‘A’의 힘…? 이 전에 힘을 건네받은 적이 있긴 했는데, 그것과 연관이 있는 건가?
의아함도 잠시.
파앗!
빛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이내 잦아들었고 나는 말을 걸어오는 눈앞의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무래도 남자를 보아하니 생각할 틈은 없는 것 같았다.
“잘 잤냐?”
“……??”
처음 보는 얼굴….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 남성. 나는 이 남성이 누구인 줄 알지 못했다.
“잠이 덜 깬 거야? 일어나면 밥을 달라고 찡찡거릴 땐 언제고.”
“……”
“후, 그럴 만도 하지. 어제의 전투는 힘들었으니까.”
남자는 한숨을 쉬며, 하늘을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누굴까. 나에게 친근하게 구는 이 남성은…. 아니, 누구이기 전에 이 남성에게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그립다는 말이 옳은 걸까? 그립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은은하게 풍기는 증오와 함께 이 남성이 밉게만 느껴졌다.
“잠깐 쉬어라. 형이 이 근방 탐색하고 올 테니까. 어디 가면 안 된다?”
형…?
남성은 나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곧바로 자리를 벗어났다. 나는 이틈을 타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여긴….
내가 살던 곳과 다르지 않은 곳이었다.
“고속도로인가…? 이동 중인 건가?”
생각을 정리하자.
이곳은 내가 살던 지구. 여러 번 보았던 광화문 같은 장소는 아니었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쉽게 파악이 가능한 장소. 차들은 멈춰있고 근방에 죽어있는 마물들의 사체. 한 눈에 봐도 멸망한 세계의 일부인 것 같았다.
그럼 저 남자는 누구지…?
주변을 둘러보며 한참을 생각하자, 곧 의문의 남성이 나를 향해 걸어왔다. 키 차이가 큰 것인지, 내가 앉아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꽤 높이 올려다보게 된 나였다.
그때였다. 시스템의 알림이 뜨곤, 남자의 신형이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했다.
[관리자 ‘A’의 힘이 소진되어 갑니다.]
시스템을 확인 한 나는 다가오는 남성을 물끄러미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것이 꿈이라 할지라도 관리자의 힘이 개입된 이상, 의미 없는 꿈은 아닐 터. ‘A’의 힘이 소진되기 전에 조금 더 이 상황에 대해서 알아봐야 할 것 같은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이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이세계의 용사 ‘차정우’의 기억을 아주 잠시 엿봤을 때, 나는 차정우에게 빙의해 차정우의 연인을 보았고 차정우의 상황을 느낄 수 있었으니 그런 상황과 비슷할 거로 생각했다.
나는 다짜고짜 남성을 향해 물었다.
“넌 누구지?”
“응? 넌 누구냐고? 이게 미쳤나. 형도 못 알아보냐?”
“형…?”
“그래, 인마. 너랑 나랑 함께한 시간이 얼만데, 싸가지 없이.”
“……”
싸가지 없다라….
맞다. 나는 상당히 싸가지가 없긴하다. 남성의 말을 수긍하자 할 말이 없어진 나는 곧 남성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남성의 얼굴이 계속해서 흐릿해지기 시작했고 이윽고 시력이 떨어진 듯 모든 것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남성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나를 향해 말했다.
“어제, 혼돈, 도철, 도올, 궁기와의 전투에서 정신적인 타격이 컸나? 조금 더 회복할래?”
남성은 자기 손을 나의 이마에 가져다 대더니, 걱정스러운 눈을 하고 있었다.
“……”
도저히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던 나는 남성을 향해 물었다.
“난 당신이 알던 사람이 아닙니다. 이건…. 환상이나 꿈 같은….”
[관리자 ‘A’의 힘이 소진되어 갑니다.]
남성을 향해 말하자, 곧 시스템의 알람이 같이 떴고, 나는 급한 마음에 말을 이어갔다.
“시간이 없습니다. 당신은 누구죠?”
“……”
남자는 당황한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지그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 나 성공한 건가? 하하….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는데, 다행이다.”
“무슨….”
“걱정하지 마, 형이 알아서 할 테니까. 것보다…. 지금의 넌 어느 정도인지 잠시 보자.”
파앗!
남성이 나의 상태 창이라도 훔쳐보듯 나를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오, 꽤 강해졌는데?”
자신의 할 말만 하는 남성이 꼴 보기가 싫어 한 대 쳐줄 생각도 잠시. 남성은 계속해서 혼잣말을 이어갔다.
“이건 너의 전생이야. 난 네 형이고. 시간이 없다는 건, 관리자의 힘이 떨어지고 있다는 소리겠지…. 뭐, 딱 봐도 알겠다. 그동안 힘들었지?”
남성은 환하게 웃으며 나를 끌어안았고 그 모습에 어쩐지 눈물이 흘러내린 나였다.
모든 것을 두루뭉술하게 말하는 남성의 말뜻을 정확하게 알아낼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남성과 나는 무언가의 이유로 강하게 얽혀있다고만 결론지을 수 있었다.
“형이 미안하다. 너한테 이런 역할을 맡겨서 근데 너도 알잖냐. 내가 너 말고 누굴 믿냐?”
“……”
“우린 곧 만날 거야. 네가 그 힘을 얻었다는 건, 무사히 ‘환생’했다는 뜻이고 나는 아직도 그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거니까. 다시 만나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자. 미안하다, 동생아.”
“형…. 이라니…?”
“지금 해줄 수 있는 말은 없지만…. 아! 우리가 이렇게 만났다는 건, 그 게이트도 존재한다는 거겠지. 그 게이트의 봉인을 해제해. 그게 너와 나의 만남의 중요한 열쇠가 될 거야.”
남자의 말이 끝맺기도 전에, 나의 시야에 빛이 들기 시작했다.
번쩍!
남성의 말과 함께 관리자의 힘이 소진된 것인지, 곧 남성의 신형이 사라지고 주변 모든 것들이 하얀색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시야가 서서히 회복되는가 싶더니, 나는 다시 한번 정신을 잃었다.
* * *
다시 눈을 떴을 땐, 주변이 시끄러웠다.
“안이 씨 왜 이러는데요? 사룡과의 전투에서 당하기라도 한 겁니까?”
“저도 잘….”
“오라버니!!!”
“사내놈이 이렇게 허약해서 쓰겄냐? 언능 안 일어나 이 새끼야!?”
의식은 들었지만, 눈을 뜨지 않고 주변의 소리를 듣던 나였다. 김영광의 목소리가 가장 먼저 들렸고 그 뒤를 이어 난감한 말투의 임해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선미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목소리였고 그 뒤를 이어 우범혁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사투리를 거나하게 내뱉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다들 시끄럽습니다. 사람이 쓰러졌는데, 무슨, 휴식도 못 하게.”
“오라버니!!”
정신을 차린 뒤, 말을 하자 진선미가 나를 향해 달려들었고 김도은과 김영광이 나의 곁에 섰다.
“아무래도 무리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미션은 어떻게….”
“어휴, 저 미션 변태. 걱정하지 말아요. 고룡이 죽으면서 카운트 다운이 시작됐어요. 레비아탄의 부활까지 대략…. 3일 정도 남았네요.”
김도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말을 이어갔다.
“시간은 충분하네요. 다들 밖에서 대기해주시겠습니까? 바로 나가도록 하죠.”
“그래요. 그럼….”
걱정스러운 눈빛의 일행들을 보니, 내가 얼마나 일행들을 위해 힘쓰고 그들 또한 나를 믿어주는 것인지에 대해서 깨닫는 중이었다. 우리는 모두 공동체나 다름없었다. 일행들이 천막을 나간 뒤, 나는 생각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누구일까부터 그 사람이 한 말과 행동.
그 사람이 말한 전생과 게이트의 봉인을 해제하라는 말.
핵심적인 부분은 이 부분이었다. 환생에 성공했다?
나는 하나하나 퍼즐의 조각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관리자 ‘A’와 남성은 아는 사이라는 것이고 모종의 계약 같은 것을 통해 나에게 도움을 줬다는 것. 더 나아가 나의 존재는 환생자라는 것과 게이트의 언급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남성이 말한 부분 중, 두 가지 부분에 집중해서 생각을 이어갔다.
환생과 게이트.
핵심은 이 두 가지. 나는 이 두 가지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이 생각했다.
단순하게 생각해도 환생이란 단어의 주인공은 나였을 것이고, 봉인된 게이트는 이전에도 한 번 언급이 있었다. 나의 배후성인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의 말. 지금은 봉인된 게이트라는 EX+ 등급의 게이트.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은 상황 속에서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말한 EX+등급의 게이트를 하루빨리 클리어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는 중이었다.
지금은 일단, 미뤄두자. 당장 레비아탄과의 전투가 코 앞인데…. 그나저나 내가 환생자라고?
나의 존재가 환생자라는 말에 싱숭생숭해진 마음을 어쩌지도 못한 채 천막 밖으로 움직였다.
당장은 미션이 우선이었기 때문이었다.
저벅, 저벅.
천천히 걸음을 옮겨 천막 밖으로 몸을 움직이자, 곧 환한 빛과 함께 지구와 무림계의 인간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천막 바로 앞에 대기 중이던 김영광을 향해 물었다.
“다친 분들은 많습니까?”
“아, 안이 씨 나오셨군요. 룡들의 함정과 곧바로 전투를 이어가서 그런지…. 대략 30~40%의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었습니다.”
“그렇군요. 나름대로 피해를 최소화한다고 한 행동이었는데….”
힘이 빠진 채, 목소리가 기어들어 가자 김영광이 말했다.
“안이 씨의 선택을 나무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군가는 죽었을 전쟁이죠.”
“룡들의 함정에서 후퇴했다면 더 살았을 수도 있죠.”
“아니요. 전쟁은 계속해서 벌어졌을 겁니다. 안이 씨가 희생해서 사룡들을 저지해준 덕분에 이정도로 그친 겁니다.”
“그런가요?”
김영광의 말에 멋쩍게 웃은 난 멸망한 이 세계에서 온순하고 어린아이를 좋아하는 이 남자도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영향을 받은 것도 있지만, 본인도 알고 있을 테지. 마음을 다잡고 강하게 먹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전, 잠시 다녀올 곳이 있습니다. 부상자를 부탁드립니다.”
“네.”
김영광에게 말을 건넨 나는 이곳에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말한 EX+등급의 게이트가 위치한다는 장소로 몸을 이동했다.
경복궁 내부에 있는 모든 세계에서 단 한 곳만 존재하는 EX+등급의 게이트.
어째서 그런 게이트가 경복궁 내부에 존재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레짐작으로 예측할 수 있는 것은 나의 배후성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와도 연관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메시지조차 보내오지 않는 성좌를 향해 하늘을 힐끗 쳐다본 나는 경복궁 내부에 존재하는 게이트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3일이라는 시간이 존재했기에, 당장 조금의 조사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여긴가?
한참을 경복궁 내부를 날아다닌 결과.
단순히 하얀색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게이트가 눈에 보였다.
EX 등급의 게이트라면 하얗기만 할텐데, 이 게이트는 하얀 것을 떠나 빛이라는 것에 더 가깝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차피 못 들어갈 텐데, 가까이 가볼까?
저벅, 저벅.
게이트까지 한 걸음. 긴장되는 마음으로 게이트에 발을 들이밀자, 시스템의 메시지와 함께 나의 몸이 저 멀리 튕겨 나갔다.
[해당 게이트는 봉인된 상태로 입장이 불가합니다.]
[해당 게이트의 봉인 해제는 ‘네 가지 열쇠’가 필요합니다.]
[첫 번째 열쇠, 게이트 주인의 ‘신기’]
[두 번째 열쇠, 인간을 넘어선 ‘각성’]
[세 번째 열쇠, 게이트 주인의 ‘영혼’]
[네 번째 열쇠, 특정 스킬의 획득]
“크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