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8화
막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룡의 최강의 기술 중 하나인 브레스일지라도 이 정도에 당한다면 이후에 상대할 레비아탄의 강함에는 발끝에도 못 미치겠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고룡의 브레스는 느껴지는 강함만으로도 나와 화룡에 상당한 상처를 입힐 것이 분명했다.
나는 곧바로 왼손에 홍염을 가득 담아 고룡의 브레스를 상쇄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 순간.
휘익.
파쾅-!!!
“큭!! 이거 장난 아닌데!? 이봐, 재신! 힘 좀 내보라고!!”
“지금 하고 있지 않은가!! 크하아아아!!!”
익숙한 두 사람이 나의 앞을 막아내며 힘을 썼고, 화룡을 힐끗 쳐다본 나는 그제야 안도의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쿠콰쾅-!!!
거친 폭음이 터짐과 동시에 고룡이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크핫!! 파리 몇 마리가 늘어난다고 내 브레스를… 응?”
고룡이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자신의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
브레스를 막아낸 두 사람에게 미소를 건넨 뒤 화룡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타이밍이 기가 막히네요.”
“이 순간을 기다렸거든요.”
“정말요?”
“장난이죠.”
피식.
고룡이라는 존재를 앞에 두고 있음에도 여유가 넘치는 말투. 나는 그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잘 돌아왔다는 환영의 의미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앞에 두 사람은 투덕거리기 바빴다.
“이봐, 자네가 힘을 더 썼으면 더 쉽게 막을 수 있지 않았나!”
“그 힘은 아무 때나 사용할만한 힘이 아닌 걸 어쩌나!”
서로 힘을 더 썼네, 마네 투덕거리는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재신 아저씨, 문아. 나이스 타이밍.”
“으하하핫. 주인. 잘 있었는가?”
“물론.”
윤문과 짧은 대화를 마치자, 곧 이재신이 나를 향해 말을 걸어왔다.
“안군. 내 딸은 무사한가?”
“물론이죠.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곧 보게 될 테니.”
“음!”
오랜만에 만났으니, 인사라도 할 법한데 아무래도 이민영의 생사가 궁금한 것 같았다.
폴리모프를 한 화룡의 곁에 황금색의 룡. 외형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지만, 나는 황금색의 룡이 누구인 줄 알고 있었다. 성좌, ‘누런 오방의 왕’을 배후성으로 두고 있는, 이제는 나를 돕기위해 게이트를 클리어 하기 위해 떠난 자. 임해든이었다.
“해든 씨. 게이트는 무사히 클리어 하셨나 보네요.”
“네. 두 분이 도움이 됐습니다. 저 혼자 클리어해야 한다며 겁을 주시더니, 이렇게 강한 분들을 붙여주시다니.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해내실 줄 알고 있었습니다.”
“하하. 근데…. 저것부터 해결해야겠군요.”
임해든은 전방을 주시하며, 고룡에게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풍긴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다.
무림계의 복장을 하고 나의 버프 덕분에 이전보다 훨씬 강해진 윤문.
쌍룡검을 쥔 채로 비장한 모습으로 내 앞에 선 이재신.
듀얼 드래곤 슬레이어를 양손에 쥐고 고룡을 향해 이를 가는 화룡.
황금색 룡의 모습으로 폴리모프한 인간, 임해든.
나는 전방을 바라보며 말했다.
“각자. 지키고 싶을 걸 지킵시다.”
내 말에 각자 한마디씩 거들었다.
“난 주인을 지키지. 인제 와서 지키고 싶은 건 없으니.”
“미안하지만, 딸이 보고 싶군.”
“고룡을 죽일 수 있다면 자네에게 힘이 되어 주겠네.”
“다신 배신하지 않겠습니다.”
끄덕.
고개를 끄덕인 나는 고룡을 향해 몸을 날려냈다.
깡!!!
고룡의 단단한 피부에 나의 용광검이 부딪히자, 철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강하게 울려 퍼졌다.
“저 파리들이 네 동료야?”
서로를 마주 본 나와 고룡은 다른 의미로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각자가 생각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고룡의 속 마음이 들려왔다.
‘슬슬…. 지겹군. 망할 파리 놈들 죽여야겠어.’
우리를 죽이려는 생각에 기괴한 미소를 멈추지 않는 고룡. 그와 반대로 내게도 함께 싸울 동료가 있고 죽음이 멀지 않은 나의 ‘명’이 조금씩 갱신되고 있다는 생각에.
고룡만 처치하면 레비아탄과 조우할것이고 내게도 다음 미션이 시작될 확률이 높아지겠지.
나는 순간적인 스피드를 이용해 고룡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고룡의 날개를 베어내자, 곧 자기 팔을 들어 나의 용광검을 강하게 쥐어냈다. 그러자 강철보다 단단한 고룡의 피부와 용광검이 맞물려 기괴한 소리가 공중에 울려 퍼졌다.
서걱- 끼기기끼긱!!!
기괴한 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뒤쪽에 대기 중인 자들이 멈춘 고룡의 움직임에 맞춰 달려들었다.
깡!!!
콰쾅!!!
각자의 병장기를 사용하는 화룡과 이재신, 무투를 사용하는 천마, 윤문과 그의 뒤에서 거친 브레스를 뱉어내는 임해든. 각자가 각자의 위치해서 고룡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하찮은 파리들이!! 귀찮게들 하는구나!!”
고룡은 한 번에 덤벼드는 우리가 귀찮았는지, 거리를 벌리고 찢어진 날개를 활짝 폈다. 악마인지 룡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나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어째서 룡의 모습으로 변하지 않는 거지? 룡의 모습으로 변한다면 이 장소에 그 누구보다 거대한 크기로 압살할 수 있을 터. 그런데도 고룡은 본래의 모습으로 변하지 않는 중이었다.
그렇다는 건, 마땅한 이유가 있다는 것.
그 이유는 곧 나의 머릿속에서 정리되어 확정되었다.
힘을 회복하지 못한 것.
본래라면 화룡, 수룡, 해룡 룡들의 상위 존재인 이들이 인간들을 몰살시켜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를 몰살시키지 못했고, 수룡과 해룡을 죽인 시점에서 고룡이 강제로 잠에서 깨어난 것으로 결론 지을 수 있었다. 때문에 본래의 힘을 회복하지 못한 고룡이 어린아이의 형태로 나를 맞이한 것.
죽이려면 지금이 기회다. 나는 일행들에게 외쳤다.
“전력을 다하세요!! 고룡은 힘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나의 외침에 일행들이 각자의 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재신은 영혼 상태였음에도 성좌, ‘무패의 해신’의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곧바로 동조화를 사용해 거북선을 소환한 이재신이 큰소리로 외쳤다.
“덕수 이씨. 충무공파 15대손 이재신. 저의 수명을 사용해 충무공의 힘을 빌립니다.”
성좌, ‘무패의 해신’은 답이 없었지만, 그의 시스템에 내장된 힘 덕분인지 성흔의 사용은 손쉬웠다. 곧, 거북선은 다섯 채나 되어 그 위용을 뽐내기 시작했다.
“포격하라.”
쿠콰콰콰쾅!!!!
“크흡…!! 벌레들이…!!! 감히 나를 뭘로 보고 덤비는 것이냐!!”
엄청난 포격에 고룡이 인상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천마 파멸공.”
우리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이재신의 뒤를 이어 한층 강해진 천마, 윤문이 자신의 무공을 사용하여 고룡의 명치에 장(掌)법을 선사했다.
꽝!!!!
천마의 손바닥이 명치에 닿자, 곧 고룡의 내부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하아아아!!!! 이놈들이!!”
분노한 고룡이 하늘이 찢어져라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본인보다 한참은 약한 인간들이 자신을 타격하고 상처입힌다는 것이 자존심이 상해 보였다.
자존심은 무슨, 죽어라 제발!!
“드디어, 네놈에게 닿았구나. 죽거라 고룡이여.”
이재신과 윤문의 공격이 계속되자, 뒤이어 화룡이 두 개의 검을 제물 삼아 가장 강력한 브레스를 사용하려 준비했다.
“뒤는 맡기겠네. 레비아탄과의 전투를 못 도와 미안하네.”
“……?”
잠깐의 의문이 든 것도 잠시.
화룡은 자신의 두 뿔로 만든 무기를 희생해 엄청난 붉기와 고열의 브레스를 발사했다. 크기는 물론 그 위력이 전과 비교해서 엄청나져 있었다.
쿠콰콰콰쾅!!!!!!
고룡의 양팔에서 검은 브레스가 뿜어져 나왔고, 서로를 향해 덮칠 기세로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해든 씨, 지금입니다!!”
나의 외침에 룡의 모습으로 폴리모프한 임해든이 크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크워어어어어!!!”
룡인지 사람인지 이제는 구분도 안가는 군.
임해든의 울부짖음이 멈추자, 화룡과 비교해도 지지 않을 법한 브레스가 금빛을 띠며 고룡에게 뻗어나갔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순간적으로 멈칫한 나는 고룡의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그 순간.
성좌, ‘누런 오방의 왕’ 황룡의 성흔을 부여받은 임해든의 금빛 브레스와 화룡의 브레스가 동시에 고룡을 집어삼켰다.
스아아아-
나는 그런 고룡에게 마지막 공격을 하기 위해 위에서 아래로 용광검을 내리그었다.
“마지막이다. 젠장맞을 새끼야.”
[스킬, [파천 만뢰공 LV.MAX]을 발동합니다.]
쿠구구구.
만개의 번개가 고룡을 찢어발기듯, 그 위용을 뽐내기 시작했다. 이제는 인간의 한계를 가뿐히 초월해 이전과는 다른 만뢰공의 번개 크기가 더욱 커져 있었다.
“죽어라.”
번쩍!
이윽고.
고룡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만개의 번개는 고룡에게 집중되어 쏟아졌다.
쾅!!! 콰쾅!!! 쾅!!!!
만개의 번개가 쏟아지는 동안. 나는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 용광검에 홍염을 가득 담아냈다.
그리고.
“제발, 죽자. 도마뱀 새끼야.”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추진력으로 파천 만뢰공이 쏟아지는 틈새로 고룡을 향해 날아갔다.
“이, 이놈드을!!!!”
촤악-!
고룡의 외침이 하늘에 울려 퍼졌지만, 동시에 나의 용광검은 고룡의 머리를 베어냈다.
휘이이익.
모든 공격이 멈추자, 우리가 있던 장소는 허전한 바람만이 불 뿐이었다.
잠시간의 적막이 흐른 뒤, 그 적막을 깬 것은 본의 아니게 화룡이었다.
퐁!
“역시. 너무 많은 힘을 사용했나 보군. 당분간은 도움이 되질 못하겠어.”
“해츨링…. 이라니, 상당히 귀여운 모습이네요.”
안 그래도 붉은 화룡의 얼굴이 더욱 빨개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들 고생했습니다. 소환 해제 할 테니, 이야기는 다시 나누도록 하죠.”
소환 해제.
영혼 소환을 해제하자, 곧 윤문과 이재신 그리고 화룡의 모습이 서서히 흐려지더니, 이내 나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그리고.
시스템의 메시지가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섯 번째 ‘히든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전장의 모든 이에게 보상이 주어집니다.]
번쩍-!!
시스템의 메시지와 함께 알 수 없는 선물상자가 눈앞에 나타났다.
“이건 또 뭐야?”
“하하, 히든미션의 보상인가 봅니다. 음…. 가챠 같은 것 아닐까요?”
“가챠…?”
임해든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가챠라는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미션의 보상은 기여도별로 달라지는 것. 그런데도 모든 사람에게 주어졌다는 건 이번 보상은 기여도가 아닌, 모두에게 확률로 지급되는 것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확률…. 이라는 건가? 개똥을 뽑을 수도 있는 거네. 젠장.
나는 고개를 돌려 함정에 빠진 백남광 일행들이 전투를 벌이는 장소로 선인의 기운을 넓게 퍼트렸다. 느껴지는 기운은 다행스럽게도 생존자들 뿐.
고룡이 사라지며 하위, 중위, 상위룡들은 소멸한 것 같았다.
후…. 다행이다. 상자나 까볼….
[우와아아아아아!!!!! 이겼다!! 인류가 승리했다!!!]
저 멀리서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목소리를 들으니, 정말 나의 ‘명’을 이겨내고 고룡을 처치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실감이 난 것도 잠시, 보상으로 받은 상자를 열어보려던 때였다. 갑작스레 나의 시야가 이리저리 튀며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팅-!
순간적으로 나의 머릿속의 무언가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흐릿해지는 의식 속에서 힘을 잃고 지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안이 씨!!!!”
갑작스레 낙하하는 나를 잡으려 날아오는 임해든의 신형을 본 순간, 나는 의식과 멀어졌다.
제, 젠장. ‘명’대로 이렇게… 죽는 건 아니겠지…?
* * *
정신을 차렸을 땐,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꿈…?
순간적으로 꿈이라는 것을 인지한 나는 눈을 떠 주변을 돌아보았다.
“야, 시도 때도 없이 자고 또 자도 잠이 오냐!? 아이코. 드디어 일어나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