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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127화 (127/206)

제127화

나의 ‘명’에서 레비아탄을 공격하기도 전에 모두를 몰살시켰던 고룡.

그런 고룡의 표정이 기괴하게 변해갔다.

재미라니?

누군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는 중인데, 저놈은 죽고 죽이는 이 상황을 재미란다.

정말이지 어이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그 때문일까? 문뜩 나의 ‘명’이 새삼 어떤 길을 제시하는지 궁금했다.

요즘 들어 갱신도 안 되고…. 이후의 상황은 알 수도 없고 미치겠구먼.

후….

한숨을 길게 내뱉은 난 고룡을 향해 말했다.

“레비아탄은 언제 깨어나는 거죠?”

단순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단순한 나의 질문에 기괴하던 고룡의 표정이 급작스레 사악해지기 시작했다.

입을 쩍 벌리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마에는 두 개의 검은 뿔이 솟아났다.

아. 조졌네.

아무래도 고룡의 심기를 상당히 건드린 것 같았다.

이유야 간단하지 않은가? 눈앞에 사룡의 우두머리인 고룡을두고 레비아탄이라니.

나 같아도 화가 잔뜩 날 것이 분명했다. 아니, 분명히 죽이고 싶겠지.

스아아아.

“감히….”

기껏해야 초등학생 저학년의 외형을 가진 고룡에게서 검 붉은 아우라가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몸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거대한 룡의 모습으로 변한 것은 아니었지만, 머리에는 두 개의 뿔이 있었고 꼬리뼈 부근에는 검고 날카로운 꼬리가 길게 나와 공중을 팔랑거리는 중이었다.

“감히…. 나를 두고 그것을 신경 쓴다고? 너 미쳤구나…!?”

“아니….”

조금은 억울하단 생각도 들었다. 평화롭게 해결할 생각은 없었지만, 질문을 한 이유는 내가 모르는 이야기의 뒷 내용이 알고 싶었을 뿐. 고룡을 도발한다거나 심기를 건드릴 생각을 하지는 않은 나였다.

후. 어떻게든 되겠지. 평화롭게 대화로 끝낼 상대는 아니니까.

애초에 수룡과 해룡을 처치한 시점에서 고룡이 잠에서 깨어났다는 건, 레비아탄도 비슷한 상황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컸다.

문제는….

나의 버프가 레비아탄과의 전투까지 버텨줄 것 인가였다.

지금부터는 속도전이다. 최대한 빠르게…!!

마음을 다잡은 나는 고룡을 노려보며 말했다.

“시비를 걸려던 건 아니었지만, 전력을 다하죠.”

“크큿. 좋다, 좋아!! 오랜만에 본 인간이라면 이 정도는 해야지!!! 자 보여라!!”

“그 말 후회할 겁니다.”

촤악!

고룡의 양 어깻죽지에서 검은 날개가 생성되어 펄럭! 펼쳐졌다. 어린아이의 외형이었음에도 어깨의 날개, 룡의 꼬리 두 개의 뿔. 아무래도 어린아이를 죽인다는 안타까운 감정은 품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럼….

[성흔, [ἀγάπη, ης, ἡ ἀγάπη LV MAX]을 발동합니다.]

[당신의 회복력이 한계를 돌파합니다.]

[당신의 모든 능력치와 스킬의 데미지가 3,000% 상승합니다.]

[당신의 방어력이 가리비의 껍데기와 같이 단단해집니다.]

[제한 시간 – 10분.]

파앗!

외형의 변화와 동시에 일어난 것은 나의 몸이었다. 이전에 마우이의 게이트를 클리어하면서 얻은 ‘흑요석 화’ 그리고 동조화의 버프를 사용하면서 가리비의 껍데기와 같이 단단해진 나의 몸.

만져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의 단단함.

아니, 이것이 단단함이라는 말로 표현이 가능할까 싶었다.

나의 몸은.

이제 어중간한 공격으로는 티끌만 한 상처도 생기지 않는다. 그와 동시에 발현된 회복력의 한계 돌파. 이세계의 용사인 ‘차정우’가 성검을 휘둘러도 자신 있는 나였다.

고오오오.

지금이 내가 낼 수 있는 최상의 강함이었다.

모든 버프를 사용한 나의 변화를 눈치챈 고룡이 자기 턱을 긁으며 말했다.

“호오…. 대단한데? 인간의 몸으로 그 정도의 강함이라니. 처음 보는걸?”

아직도 여유가 있어 보이는 고룡의 모습에 괜한 긴장감이 흘렀다.

나는 그런 고룡을 향해 말했다.

“앞으로도 볼 일 없을 겁니다. 그리고….”

팡-!!

지나치게 높아진 능력치 때문인지, 허공을 팍. 차고 나가는 곳에서 공기가 터져나갔다.

“!!”

순식간에 벌어진 일인지 당황한 고룡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곤 나의 공격을 겨우 회피했다.

하지만.

서걱.

그마저도 반응 속도가 나에 비해 뒤떨어졌는지, 가슴팍을 조금 베인 고룡이었다.

“으하하핫!!! 진짜 재밌네!!”

공격에 당한 것은 고룡이었음에도 고룡의 웃음소리는 끊임없이 공중을 퍼트려나갔다.

자신이 낼 수 있는 최상의 강함은 아직도 선보이지 않았다는 듯.

“좋아. 놀이란 이런 거지. 다음은 내 차례지?”

고룡이 두 주먹을 허리춤에 당기더니, 환한 웃음을 지었다.

저 자세…. 극진가라데…?

가슴팍에 흘러내리는 검은 핏줄기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나를 향해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자신의 뿔을 부러트려 무기로 사용하지도 않았고, 수룡과 해룡처럼 기후의 변화를 일으키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고룡은 강했다.

파파파사!!!!!

고룡의 주먹과 양발이 나를 향해 사정없이 날려져 오기 시작했다.

동조화를 사용했을 땐 정령화와 같이 마력의 형상으로 잘려 나간 팔이 생성되지는 않았지만, 한쪽 팔로도 이 정도의 공격은 막을 수 있는 정도.

“크흡…!!!”

몰아치는 공격에 나도 모르게 신음이 터져 나왔다.

“크하핫!!! 진짜 재밌네!! 내 공격을 이렇게까지 버틴다고? 너 대단한데!?”

극진 가라데를 사용하는 고룡의 일격들을 하나하나 막아냈다.

현대의 무술이어서 그런지 나름대로 천마와 파천의 무공으로도 쉽게 파훼할 수 있었다.

작은 신음만 터져 나올 정도로 여유를 보이던 나를 향해 고룡이 외쳤다.

“더 보여줄 거 없는 거야!? 기껏 인간들이 사용하는 무술이니 뭐니를 사용했는데!!”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내가 무시당하는 듯한 기분이 들 때였다.

칠정안이 아직은 미숙한 탓인지, 지금까지 들려오지 않았던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우웅-

무언가 나의 귀와 정신 속에서 외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명은 아니었다.

고룡의 속마음 소리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가 알아챌 수 있는 소리도 아니었다.

이건…. 무슨 소리지…?

우웅- 우우웅-

진동 같은 알 수 없는 소리가 계속되자, 순간적으로 멍해진 나를 향해 고룡이 달려들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소리가 나의 머릿속에서 팡! 터지는 소리를 내더니, 고룡의 속마음이 강하게 들려왔다. 그동안 나의 의지로 사용하지 못했던 ‘칠정안(七情眼)’이 강자와의 전투 속에서 각성이 시작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명치. 옆구리. 관자놀이….’

막연하게 든 나의 생각일 뿐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들려오는 고룡의 속마음을 토대로 공격을 막아냈고, 화안금정에 보이는 약점들을 향해 용광검을 휘둘렀다.

촤악-!

서걱, 서걱.

‘이놈이…!!’

한 번의 휘두름은 고룡의 가슴팍을 다시 한번 베어냈고 두 번, 세 번의 휘두름은 고룡을 당황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치명타는 아니었지만, 적당한 공격을 퍼부은 나에게 고룡의 속마음이 다시 한번 들려왔다.

‘슬슬 보여야겠군. 건방진 놈이…!!’

자신의 놀이 상대라고만 생각했던 인간에게 공격당한 것이 화가 났는지, 이제야 제대로 된 힘을 사용할 것 같았다.

“너무 놀았나? 크큭, 보여줄게. 이게 내 최대의 힘이야.”

고룡이 나와 거리를 벌리더니, 흉흉하고 어두운 아우라를 사방팔방으로 퍼트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고룡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변신 기다려주는 놈이 어디 있냐?

파앗!

고룡이 기운을 최대치로 끌어내는 순간.

나는 고룡을 향해 치고 나갔지만, 다시 거리를 벌리고 멈춰 섰다.

아? 나 혼자 개고생할 필요는 없지.

영혼 소환. 룡

스스스스.

나의 언령에 소환된 룡이 주변을 힐끗거리더니,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약속대로 고룡의 앞에서 소환시킨 것에 감사를 표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주인이 강해지면 사역된 자들 또한 강해지는 법.

나의 버프로 인해 생전의 강함을 뛰어넘은 화룡이 하늘이 찢어지라 울부짖었다.

“크와아아아아아!!!!!!”

그 오랜 시간을 사룡의 최약체로 수룡과 해룡도 넘어서지 못한 화룡이, 자신이 하찮다고 생각한 인간의 품에서 그들의 우두머리 고룡에 닿는 순간이었다.

나는 룡을 향해 소리쳤다.

“지금!”

용광검을 집어넣고 오른 주먹을 강하게 쥐어낸 나는 정권과 같은 자세로 고룡을 향해 주먹을 뻗어냈다.

[스킬, [홍염(紅焰) LV MAX]을 발동합니다.]

파쾅!!!

동시에 전보다 훨씬 강해진 룡이 고룡을 향해 자신의 브레스를 뿜어냈다.

쿠콰콰콰쾅!!!!

공중에서 펼쳐진 홍염과 룡의 브레스는 주변의 모든 것을 붉게 물들이기엔 충분한 화력이었다. 인간을 초월한 존재인 룡의 브레스. 그리고 그들을 초월한 성좌의 성흔이 동시에 고룡을 집어삼켰다.

거대한 폭음에 이은 후폭풍의 여파가 붉은 연기가 되어 고룡의 주변을 맴돌았다.

쿠구구구.

거대한 룡의 본모습에서 벗어나, 어느새 폴리모프를 한 룡이 나의 곁으로 이동해 말을 걸어왔다.

“끝은 아니겠지?”

“물론이죠. 이 정도로 끝날 거면 애초에 시작될 미션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렇군.”

룡의 표정이 어두워질 무렵. 붉은 연기는 조금씩 사그라들었고 곧 고룡의 모습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고룡의 속마음이 내게 들려왔다.

‘죽여버리겠어…!!! 죽여버릴 거야. 망할 인간 놈!!’

‘개자식. 감히…. 감히 나를!!!’

.

.

.

고룡의 속마음이 멈추지 않고 들려오자, 곧바로 전투 태세를 취했고 나를 본 화룡이 자신의 듀얼 드래곤 슬레이어를 만들어 양손에 쥐었다.

나는 그런 화룡을 향해 쓰게 웃으며 말했다.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습니다.”

“자네 덕에 고룡에게 타격을 주었으니, 이제 여한은 없네.”

고룡을 죽이지는 못할지라도 그에게 타격을 주었다는 것이 그동안의 설움이 조금 풀린 것 같았다. 나는 그런 화룡을 향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긴장하세요. 저흰 고룡을 잡고 레비아탄까지 처치할 겁니다.”

“……가능하겠는가?”

“물론이죠.”

화룡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나에게 종속되었으니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

아니, 하기 싫을 리가 없지. 그 긴 세월을 사룡들과 레비아탄을 뛰어넘고 싶어 했으니.

“준비하세요. 옵니다.”

화악!

붉은 연기가 모두 걷히고 고룡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홍염과 화룡의 브레스에 날갯죽지가 이곳저곳 구멍이 나고 불에 타 있었다.

고룡은 순식간에 날아와 나와 화룡을 향해 공격했다.

이전과 같은 장난기는 사라진 지 오래.

우리를 기필코 죽이겠다는 의지가 고룡의 두 눈에 깃들어있었다.

“죽어라. 쓰레기들.”

공격이 올 것임을 짐작하고 있었음에도 분노한 고룡의 강함은 우리를 웃돌았고 순식간에 나와 화룡을 향해 양손을 뻗어냈다.

“자, 네놈들도 받거라. 브레스란 이런 것이지.”

칠흑 같은 브레스가 고룡의 양손에서 뻗어 나왔고, 공중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기세로 나와 화룡에게 쏟아졌다.

쿠콰콰콰콰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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