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6화
나의 정면으로 두 룡이 마주 섰다.
수룡과 해룡.
폴리모프는 하지 않아서 그런지, 그 외형은 발톱 하나의 크기가 인간과 비슷할 정도.
그들의 앞에서 나는 벼룩과도 같은 크기였다.
더럽게 크네.
나는 지금부터 결정을 해야 했다.
전력을 다해 레비아탄의 수하들인 사룡들을 처치할 것인지.
함정에 빠져 죽어버린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더 구할 것인지.
순간적으로 든 생각은 사람들을 살리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더 많은 사람이 죽을 수도 있었고 제2차, 제3차 룡과의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 뻔했고 더 나아가 레비아탄과의 결전이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말.
나는 수룡과 해룡과 마주 선 순간, 본능적으로 결정했다.
그 때문인지, 인제 와서 이런 생각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나는.
전력을 다한다.
이것이 내가 지금까지 해온 방식이고 살아온 방식.
그리고 더 나아가 앞으로 해야 할 방식이다.
눈앞에 수룡과 해룡이 나를 신기한 듯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인간인 주제에 제법이구나. 가장 약하다고는 하지만 화룡을 죽이다니.”
죽였다? 아니, 저들은 모른다.
“그렇군. 대단하군. 하지만 우리 두 룡을 앞에 두고 화룡과 같은 일이 벌어지리라 생각하는가?”
“아니면, 우리 둘을 상대로 이길 생각이라도 하는 것인가?”
내가 화룡을 종속으로 거뒀다는 것을.
무엇이 그렇게 궁금한지, 질문은 멈추지 않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들은 사실, 두렵다는 것을.
그들의 관점에서 인간이란 존재는 수없이 많은 행성 속 무수히 많은 벌레와 같은 존재. 관리자들이 억지로 부여한 미션으로 몰살을 일삼았다지만, 브레스 한 방에 수십, 수백만의 인간을 학살할 수 있는 자들.
여태껏 그래왔던 것처럼 학살을 일삼으면 그만인 것을, 화룡과 하위, 중위, 상위룡들 선에서 몰살당한 인간들인 것을, 지금에 이르러 수룡과 해룡은 처음 보는 상황일 것이 분명했다.
한순간에 자신들이 몰살하지 못하는 인류라니, 자신들과 비등하게 싸울 수 있는 인류라니.
어처구니가 없겠지.
나는 그런 수룡과 해룡의 시선이 정확하게 나를 향할 수 있도록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두 룡의 시선이 정확하게 나를 향했다.
“고룡은 어딨죠?”
처음 보는 강함을 가진 인간.
그 인간의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이 자신들의 우두머리 고룡이 어딨냐라니.
수룡과 해룡이 엄청난 소리로 나를 비웃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흡사, 천둥 벼락과 같았다.
“크하하하핫. 어리석은 인간이여. 미친것이냐!”
“고룡이라니, 고룡이라니!”
뭘, 질문을 잘못한 건가? 귀청 떨어지겠네.
한참을 웃던 수룡과 해룡이 웃음을 멈췄다.
“어리석은 인간이여, 그대는 강하다. 하지만, 그 강함을 지니고 있으므로 죽는 것이니라.”
“그럼…. 잘 가게. 지금껏 본 가장 강한 인간이여.”
우리의 계획을 꿰뚫고 함정을 판 수룡과 해룡. 그들의 입장에서 우리의 한계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쿠와아아아!!!!
대화를 끝마친 수룡과 해룡이 물과 얼음으로 된 브레스를 나를 향해 쏟아부었다.
일순간.
나는 사용 가능한 온갖 버프를 사용했다. 이미 선인의 격과 선인의 기운을 사용하는 나였기에 사용할 스킬은 정해져 있었다.
[스킬, [정령화 LV.1]을 발동합니다.]
[스킬, [정령화 LV.1]의 효과로 1분간 모든 능력치와 스킬 데미지가 1,000% 상승합니다.]
[스킬, [동조화(횟수 제한) LV.MAX]을 발동합니다.]
[스킬, [동조화(4) LV.MAX]의 횟수가 (3)회로 변경됩니다.]
[일시적으로 성좌, ‘거품에서 올라온 자’의 힘이 당신에게 깃듭니다.]
[동조화의 제한 시간은 5분입니다.]
[성흔, [ἀγάπη, ης, ἡ ἀγάπη LV MAX]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생명체의 한계를 돌파합니다.]
[용광검이 최종 성장해 ‘신살’의 효과가 주어집니다.]
스아아아.
나의 주변에 휘황찬란한 아우라가 전신을 휘감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전과 같은 현상들이 나에게서 발현되는 중이었다. 없었던 팔이 마력의 형상으로 생겨났고 오른손엔 ‘신기’가 된 용광검을, 왼손엔 마력 형상의 푸른 검을 쥐었다.
그리고.
[스킬, [칠정안(七情眼) LV MAX]을 발동합니다.]
찌잉-!
화안 금정을 사용한 금빛의 눈. 그 반대쪽의 눈이 일곱 가지 빛깔로 빛나기 시작했다.
촤악-!
일순간 모든 스킬을 사용한 나는 가까운 거리까지 발사된 브레스를 양손에 쥐어진 검으로 갈라내며 수룡과 해룡을 향해 달려들었다.
거대한 몸집을 가진 수룡과 해룡에게 다가가는 길은 순식간이었다.
파앗!
나는 적어도 정령화의 제한 시간인 1분이 다 하기 전에 수룡과 해룡을 처치할 생각이었다.
동조화로 사용 가능한 버프가 한 가지 남아 있었지만, 그것은 화룡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수단.
나는 양손에 쥐어진 검을 이용한 칼부림을 멈추지 않았다.
서걱.
서걱, 서걱!
당황하는 수룡과 해룡을 정신없이 베어냈다.
“쿠아아아아아!!!”
“크르르르…!!! 어찌 이런…!!”
정령화의 종료까지 30초.
나는 사용 가능한 온갖 스킬을 사용해 수룡과 해룡을 번갈아 가며 베어냈고 무자비한 공격에 수룡과 해룡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질 못할 때였다.
[스킬, [파천 만뢰공 LV.MAX]을 발동합니다.]
번쩍-!
쿠콰콰쾅!!!
스킬의 사용과 동시에 만 개의 벼락이 수룡과 해룡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헉…허억…. 역시 힘들군.”
쿠구구구.
파천 만뢰공의 여파로 칠흑 같은 먼지들이 일어났지만, 그것은 나에게 중요치 않았다.
모든 공격 궤도와 상대의 마음까지 읽어낼 수 있는 칠정안.
그들이 아직 살아있다는 건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 때문.
“후아!!!”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내뱉은 나는 곧바로 수룡과 해룡을 향해 달려들었다.
스킬을 조합한 공격.
파괴력은 파천만뢰공에 비할 순 없을지라도 ‘신살’의 효과는 거저 얻은 것이 아니었다.
무쌍 난무와 파천 신공을 조합한 나는 신살의 기운을 담아 두 룡의 목을 잘라낼 기세로 양손의 검을 무자비하게 휘둘러냈다.
서걱! 서걱,서걱!!
그들에게 있어서 발톱만 한 크기의 나였지만, 휘두름 한 번에는 모든 것을 갈라낼 힘이 있었다.
남은 시간은 3초.
마지막…!!
촤악-!
무방비로 공격당한 수룡과 해룡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그리고, 동시에 정령화가 풀렸고 시스템의 메시지가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섯 번째 ‘히든미션’이 개방됩니다.]
[수룡과 해룡의 영혼을 대가로 ‘고룡’이 잠에서 깨어납니다.]
파앗-!
메시지와 함께 수룡과 해룡이 위치한 자리에 뿌연 연기가 일어났다.
이윽고 연기는 거대한 빛의 구체로 빨려 들어갔고 내 눈에 보였던 수룡과 해룡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찌이이이잉!
하늘 전체가 찢어지는 듯 알 수 없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룡이 아닌 인간 외형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지런히 정리해 위로 묶어낸 검은 머리칼. 새하얀 도포에 성장기가 미처 오기도 전으로 보이는 어린아이의 외형이었다.
저게… 고룡…?
사실, 나는 명에서도 고룡을 보지 못했었다.
이유를 따지자면 간단하다. 나의 ‘명’에서는 고룡을 보기도 전에 지구의 모든 이가 몰살당했기 때문. 물론, ‘명’에서의 언급으로 ‘고룡’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이름만 알고 있을 뿐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내가 본 것은 화룡 그리고 수룡과 해룡뿐. 히든미션이 존재한다는 것도 지금 안 사실이었다.
처음 기척을 느낄 때 고룡의 기운이 같이 느껴진 것은 수룡과 해룡 때문이라는 것도 지금에서야 깨달은 나였다.
내가…. 강해지긴 했나 보군. 수룡과 해룡을 일순간에 제압할 정도라니.
1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정령화가 이 정도의 힘을 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나였다.
움직임이 없는 고룡을 물끄러미 바라본 나는 다음 행동에 대해서 시뮬레이션을 이리저리 돌려대는 중이었다.
정령화가 끝나며 마력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팔은 이미 사라졌고 전투력의 감소도 가파르게 이어졌다. 하지만 정령화보다 더욱 강한 힘을 내게 해주는 버프는 존재했다.
남은 버프의 시간을 늘려줌과 동시에 정령화보다 세 배는 강하게 만들어 주는 버프.
정령화와 같이 마력의 형상으로 왼팔이 만들어지지는 않겠지만, 나에겐 동조화로 인한 아프로디테의 버프가 남아있었다.
지금 쳐? 아니, 기다려보자. 기회는 충분하니까.
뒷짐을 어디를 바라보는지 모를 시선. 나는 고룡의 다음 행동이 궁금했다.
“뭘 하는 거죠?”
“……”
고룡은 답이 없었다.
어린아이의 외형인 것은 어째서일까? 호기심도 생겨났지만, 그것도 잠시.
고룡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후아아암…. 잘 잤다.”
……???? 잘 못 들었나?
고룡의 한 마디에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침착하게 고룡의 혼잣말에 입을 열었다.
“당신이 고룡입니까?”
“나? 응. 내가 고룡인데, 넌 누구야?”
외형과 같은 말투. 성좌와 오랜 세월을 살아온 다른 룡들과는 다른 말투에 황당함이 먼저 일어났다.
누구냐니…? 지금 상황을 모르는 건가?
애초에…. ‘전 이안입니다. 미션으로 당신과 레비아탄을 죽일 지구의 생존자죠.’ 라고 하면 ‘아하! 그렇구나!’라고 할 건가? 무엇이라 대답을 하기도 애매한 나였다.
“미안, 미안! 내가 잠을 너무 오래 자서 상황 파악이 안 되네? 하핫. 설명 좀 해줄래? 아니, 그것보다 수룡, 해룡, 화룡은 어딜 간 거야?”
내가 처치한 사룡의 무리를 찾으며 이리저리 둘러보는 고룡의 모습이 마냥 어려 보이기만 했다.
이거 설마…? 이용해 먹을 수 있는 거 아니야?
나는 설마 하는 생각으로 고룡과의 거리를 유지하며 말했다.
“이곳에 그들은 없습니다.”
“뭐? 에이, 그놈들이 약해빠지기는 했어도 누구한테 당할 정도는 아닌데…? 성좌들이 개입한 건가?”
“……”
“그것보다 넌 누군데?”
“전…….”
고룡을 이용하겠다는 생각도 잠시. 누구냐는 질문에는 아무런 답이 나오질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는 수밖에.
“전 지구의 인간입니다.”
“인간? 아아, 너무 오랜만이라서. 하하핫. 못 알아봐서 미안한걸?”
해맑게 웃는 고룡이 순간적으로 귀여워 보인 것도 잠시.
갑작스레 고룡의 분위기가 한껏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미션이 진행 중인 거구나?”
“그, 그렇죠.”
강압적이고 차가운 분위기였다. 대답을 잘못하면 한순간에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든 것은 스킬, 냉정이 있음에도 등골이 오싹해져 왔다.
“그럼…. 인간아. 잠시만 기다려볼래?”
……?
알 수 없는 행동을 취하며 공중 동서남북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던 고룡이 순식간에 내 앞으로 이동해 멈춰 섰다.
“내 아이들은 저쪽에서 난리고, 저쪽에는 ‘레비아탄’이 잠들어있고…. 음…. 아하 하핫! 이제 알겠다!”
손바닥을 짝! 치며, 나를 향해 방긋 웃은 고룡이 갑작스레 기괴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향해 기다란 송곳니를 보였다.
“너. 적이구나?”
젠장. 이용은 무슨. 안 죽으면 다행이지. 이럴 줄 알았다.
고룡에게서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살기가 순식간에 쏟아져 나오더니, 한껏 기분이 좋아져 나를 향해 말했다.
“아하하핫! 덤벼봐! 날 어떻게 재밌게 해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