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4화
당장 죽자는 나의 말에 화룡의 표정이 어리둥절해 보였다.
“그게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롭니다. 이 방법은 당신이 저를 믿고 죽어야지만 가능한 방법이죠.”
설명은 따로 하지 않았지만, 화룡은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는.
그 누구보다 강해짐을 갈망했을 테니.
“그리하면 강해질 수 있는 것인가? 아니, 다르게 물어야겠군. 그리하면… 벽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인가?”
나는 화룡의 대답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뜸을 들이거나 시간을 벌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 또한 이 부분은 알 수 없었기 때문.
이 방법은 내가 살아있는 한. 강해질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죽거나 나의 성장이 멈춘다면 그 방법 또한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에.
“잘 모릅니다. 하지만 기나긴 시간을 이용만 당하던 당신을 구할 수는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제가 강해질수록 당신도 강해지겠죠.”
“……”
강해진다?
강함이란 무엇이기에 나를 포함한 모든 이가 갈망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해진다는 것은….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
나 또한 그 부분은 모르지 않지만. 그 대가를 받아들임에도 강해지고 싶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화룡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대가를 바쳐서라도 벽을 넘고 싶은 마음.
사룡을 이기고 레비아탄의 경지를 넘어서 성좌가 되고 싶은 마음.
억겁의 시간. 자신을 이용한 관리자들에게 한 방 먹이고 싶은 마음.
칠정안(七情眼)을 발동하지 않았음에도 그의 마음이 들리는 것 같았다.
화룡이 생각을 마친 듯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내가 죽으면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 것이지?”
“쉽게 말씀드리죠. 제 종속이 되는 겁니다.”
“종속? 그대의 수하가 되라는 말인가?”
“뭐….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게 맞겠군요.”
수하라는 나의 말에 화룡이 웃기 시작했다.
순간. 움찔할 정도의 소리였기에 당황한 것도 잠시.
“이미 삶에 대한 미련은 없다. 내가 넘지 못한 벽을 넘어선 그대를 본 순간 직감했지. 이 모든 게 관리자들의 농간이고 나는 속아왔다는 것을.”
“그 말은….”
“그대의 말대로 하겠다. 다만….”
말을 이어가던 화룡이 잠시 멈칫. 하더니 이전과는 다른 환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부탁을 한 가지 들어줄 수 있겠는가?”
“부탁…?”
“사룡의 우두머리인 고룡은 내게 맡겨주게.”
아차. 이 말을 안 했구나.
나의 종속이 된다는 것은 현재 내가 가진 힘에 비례하여 수하로 부릴 수 있는 것.
즉. 화룡이 죽고 나서 윤문과 이재신과 같은 상황이 온다면 그는 헤츨링보다 조금 성장한 룡으로 변모할 것이 분명했다.
한 마디로 지금 당장 영혼 흡수로 인한 사역은 화룡에게 독이나 다름없었다.
훗날을 기약한다면 모르겠지만….
“한 가지 말씀드리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당신이 죽고 나면 현재의 강함보다 더욱 약해질 겁니다.”
“당장 강해질 수 없는 것인가…?”
“사실을 말하자면 그렇죠. 종속된다는 것은 제가 강해져야만 종속된 자들 또한 강해지는 법. 지금 당장은 무립니다.”
“지금도 고룡을 이기지 못하는 것을….”
나에게 종속될 생각까지 하는 화룡이었지만, 당장 강해지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듯 화룡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화룡이 내게 종속된다면 그만한 전력이 생기는 것.
나는 그런 화룡에게 조금이나마 한을 풀어줄 방법을 생각해야만 했다.
전력을 조금이나마 늘리기 위해서.
아주 잠시.
나의 스킬들에 대해서 생각을 시작했다.
내가 온갖 버프를 사용하면 용광검이 최종단계가 되어 ‘신살’의 효과가 주어졌다.
성장형의 검이 최종적으로 성장한 것은 일시적이지만, 내가 강해졌기에 가능했던 것.
나는 이 부분에서 힌트를 얻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내가 모든 버프를 사용했을 때, 나에게 사역 된 윤문과 이재신이 강해지는가?
정답은 알 수 없었다.
강해진 시점에서 윤문과 이재신이 함께 한 적은 없다.
하지만 용광검이 성장한 것은 그들 또한 순간적으로 강해졌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확인해 보자.
나는 나와 이어져 있는 윤문에 메시지를 보냈다.
- 윤문.
‘장거리 전음’과 같은 아이템을 사용하지 않아도 가능한 방법.
나와 사역 된 자들이 이어졌기에 텔레파시와 같은 방법으로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 어어! 주인인가!? 으앗!!!
당장 전투라도 벌어지는 중인지 윤문의 대답은 다소 정신 사나웠다.
- 급해 보이니 짧게 말한다. 혹시 해든 씨를 도우면서 순간적으로 이전의 강함을 뛰어넘은 적이 있나?
한참 동안 대답이 없어 보채려는 찰나.
- 아아! 그것 말인가!? 역시 주인이 강해져서 그런 것이었군. 있다!! 으아악!! 미친 거북이!
된다.
더 이상의 대답은 듣지 못했지만, 윤문의 말로 예측할 수 있었다.
- 아. 수고해라. 거북이의 약점은 뱀부터 죽이고.
- 대답이 되었나? 다음에 연락…. 으아아이!!!
오랜만에 대화하는 윤문이 어쩐지 안쓰럽게 느껴졌다.
고생이 많네. 짜식.
윤문은 현재 임해든의 게이트를 클리어하기 위해서 ‘오방신’의 게이트에 들어가 있을 테니.
거북이라는 존재가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현무. 아아, 아무튼.
나는 눈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화룡을 향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좋은 방법이 생겼습니다. 순간적이긴 하지만 적어도 고룡은 이길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이 사실인가!?”
“네. 죽어야 하는 것은 변함없지만. 하시겠습니까?”
“물론이네!! 헌데….”
“……?”
“레비아탄은 무리겠는가…?”
“욕심이 과하십니다. 일단, 고룡부터 해결하시죠.”
“크흠. 알겠네.”
화룡과의 대화를 끝마친 나는 곧바로 마무리를 짓기 시작했다.
“눈을 뜨면 새로운 세상이 보일 겁니다. 그럼….”
“믿어도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이용만 당하느니 인간의 손을 빌려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 잘 부탁하네.”
끄덕.
나는 홍염이 깃든 용광검을 화룡을 향해 그어냈다.
촤악-!!
“커 헉….”
용광검에 치명타를 입은 화룡은 인간보다 더욱 검은 빛이 감도는 검은 듯 붉은색의 핏물은 거하게 내뱉은 뒤. 자리에 쓰러졌다.
그리고. 나는 그런 화룡을 들쳐메고 전장의 중심으로 날아갔다.
당장 벌어지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음에 최대 속력으로 순식간에 도착한 전장은 아주 미세하게 룡들이 밀리는 추세였다.
그 모습을 확인한 나는 지상으로 내려가 소리쳤다.
[화룡을 죽였다!!!]
‘시드 스토어’는 아직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임에도 ‘확성기’ 아이템을 미리 구비해둔 덕분에 나의 목소리는 전장의 이곳저곳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나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는 듯. 전장의 모든 이가 우레와 같은 함성으로 나의 말에 호응하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아!!!!!]
[룡들을 죽이자!! 우리가 이겼다!!!]
한순간이었다.
아주 미세하게 룡들이 승기를 잡았으나, 나의 말 한마디로 인간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당황한 상위룡들이 나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크르르르…!!!”
“어찌 인간이 ‘화룡’님을…!!!”
공격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나의 어깨에 들쳐멘 화룡의 사체를 본 상위룡들이 당황하기 시작했고, 하위와 중위룡들은 겁에 질려 뒷걸음질 치는 중이었다.
“다른 사룡이라도 데려오지 그래?”
“하찮은 인간이!!”
나의 말에 하찮다며 일갈하는 상위룡들이 야단법석을 피웠지만, 하위, 중위, 상위룡들까지 포섭해 나의 종속으로 부릴 필요는 없다.
촤악-!
나는 곧바로 가장 선두에 있던 상위룡의 목을 베어내고 말을 이어갔다.
“다음?”
홍염이 깃든 용광검이 한순간에 상위룡을 베어내자, 곧 주변의 모든 룡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단 한방에 목이 잘려 나간 모습에 겁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기세를 놓치지 않고 룡의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용광검을 허공에 휘두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어느 정도 거리가 좁혀지자, 사기가 떨어진 룡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때였다.
“크르르…!! 전원 후퇴하라! 사룡들께 이 상황을 알리거라!”
제법 지위가 있어 보이는 상위룡 한 마리가 룡들에게 말하니.
곧 일사불란하게 룡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백남광이 나를 향해 뛰어왔다.
“야!! 이대로 보내게?”
“응. 더 이상의 피해는 우리에게 손해야.”
“그건 그렇지만….”
“이기고 있던 것도 아니잖아.”
“네놈이 합류하면 전세는 기울 텐데?”
“다른 방법이 있어. 믿어주라.”
“쳇. 알겠다.”
이참에 하위, 중위, 상위 룡들을 몰살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지만, 당장 우리 측 인원을 줄이고 싶지는 않았다.
내게는 화룡이라는 카드가 존재했고, 무엇보다 전투는 한 두 번 만에 끝나지 않을 테니.
순식간에 퇴각하는 룡들을 바라보던 나는 몸을 움직였다.
맨바닥에 쓰러져 죽어가는 인간들을 바라보며 인상을 구긴 나는 조금 더 전장의 중심지로 걸어갔을 무렵. 저 멀리서 김도은과 김영광이 보였다.
“무사하셨군요.”
“당연하죠. 후!”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영광 씨. 아주 도은 씨 옆에만 붙어계시는군요.”
“크흠….”
정곡이라도 찔린 모양인지 김영광이 괜스레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딴청을 피워댔다.
“전쟁은 이걸로 끝이 아닙니다. 두 분도 아시겠지만 이제 시작이죠.”
“그렇겠죠…?”
“백남광과 합류해 부상자를 돌보세요. 전 잠시 다녀올 곳이 있습니다.”
자리를 비운다는 나의 말에 김도은이 괜히 툴툴거리기 시작했다.
“혼자 뭐 그리 바쁘셔…? 어깨에 들쳐멘 그 곱상한 남자는 누구고?”“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빛이 조금은 보이기 시작했거든요. 이 사람은 아니, 이 룡은 적들의 수장 중 하나인 화룡이구요.”
화룡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란 김도은이 화룡을 구경이라도 하는 듯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했다.
“죽었습니다. 곧 살아날 테지만.”
“또 이상한 계획을 꾸미고 있는 거죠? 알겠어요. 다녀와요.”
“믿어줘서 고맙습니다.”
나는 김도은에게 고개를 까딱이곤 공중에 떠올랐다.
“참. 이번엔 저희의 반격입니다. 모두에게 일러두세요. 금방 올 테니.”
반격이라는 나의 말에 김도은과 김영광의 표정이 한껏 진지해졌다.
그리고 김영광이 두 주먹을 불끈 쥐더니 나를 향해 말했다.
“안이 씨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사람들은 제가 지킬 테니, 어서 다녀오십시오!”
피식.
김영광의 저런 우직한 모습을 보는 것이 든든한 나는 속도를 내 한적한 장소로 이동했다.
* * *
전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장소.
아무도 없는 공터에 화룡의 사체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동안 동족의 영혼을 흡수하며 사용 조건을 채워낸 나는 스킬, [영혼 흡수]를 화룡의 사체에 사용했고 사역은 올바르게 이어졌다.
윤문과 이재신을 사역할 때처럼.
[영혼을 소환합니다.]
화악!!
거대한 불꽃이 일렁이더니, 곧 불꽃의 형상이 폴리모프를 하기 전. 룡의 형상으로 변모해갔다.
크기는 그 전보다 훨씬 작았지만, 사역은 성공이었다.
[해당 영혼의 이름을 지어 줄 수 있습니다.]
이름은…. 중요하지 않으니, 내가 부르기 편한 것이 좋겠지.
룡.
[사역사에 의해 해당 영혼의 이름은 ‘룡’으로 각인되었습니다.]
파앗!
거대한 빛이 번쩍이더니, 곧 화룡이 눈을 뜨고 말했다.
“크르르…. 나, 나는…. 살아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