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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123화 (123/206)

제123화

30대 초반의 나이에 붉은색의 긴 머리칼.

잘생긴 얼굴에 새하얗고 잡티 하나 없는 피부.

화룡의 폴리모프는 그 어떤 인간보다 아름답고 잘생겼다는 말이 잘 어울렸다.

나는 그런 화룡을 보며 생각했다.

산군도 그러더니, 룡들도 저렇게 잘생긴 건 반칙 아닌가…?

사룡 중 제일 약한 화룡이었기에 부릴 수 있는 여유였다.

내가 부리는 여유가 못마땅했는지, 화룡은 인상을 잔뜩 구기곤 나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양손에 자신의 뿔로 만든 무기를 쥔 화룡이 나를 향해 말했다.

“인간의 몸으로 내게 맞서겠다니….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미션이 시작된 후. 우리는 적입니다. 따로 할 말이 필요합니까?”

대화? 필요 없다.

미션을 클리어해야 하는 우리는 화룡을 포함한 사룡. 아니, 더 나아가 레비아탄을 처치해야 할 테니.

그리고.

레비아탄과 룡들은 우리를 몰살시켜야만 하니.

우리는 섞일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그렇군. 자신감이 너무 과한 것 아닌가? 이쯤하고 고개를 숙인다면, 내 수하로 삼아 줄 수도 있는데?”

“당신의 부하로 살기 위해 지금까지 버텨온 것이 아닙니다.”

“그렇군. 이 정도로 강한 인간은 보기 드문 것을…. 아쉽군. 그럼…!”

여유롭게 대화를 주고받던 화룡과 나였다.

하지만 화룡의 제안을 거부하는 순간.

휘익!

화룡이 엄청난 속도를 뽐내며 나를 향해 두 개의 검을 휘둘렀다.

챙-!!!

나와 화룡의 검이 부딪히자, 강력한 소닉붐과 함께 주변의 공기가 밀려 나갔다.

“그럼, 시작해보지.”

이곳은 전장의 최후방. 전투에 휘말릴까 봐 사람들을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내가 신경 쓸 것은 오직 두 가지. 화룡을 제외한 사룡의 난입과 눈앞의 화룡과의 전투였다.

까드득.

서로의 검이 갈 곳을 잃고 힘 싸움이 시작됐다.

“힘들어 보이는구나.”

“아닙니다.”

조금씩 힘에 부친 나의 얼굴에서 곧 땀이 흘러내렸다.

비슷한 능력치지만, 굳이 따지자면 나의 능력치가 전체적으로 더 높았다.

하지만….

두 개의 검을 휘두르는 화룡에게 조금씩 밀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이유? 굳이 이유를 찾자면.

나의 팔은 한쪽밖에 없다는 것.

같은 인간이었다면 압도적인 능력치로 찍어 누를 수 있는 강함을 지녔지만….

인간을 초월한 존재인 룡과의 전투에서 서로 비슷한 능력치를 지녔다면.

쾅!!!

내가 밀리는 것은 당연했다.

강한 힘으로 나를 저 멀리 날려 보낸 화룡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허. 이 정도의 강함으로 본좌에게 덤벼든 것인가?”

흩날리는 흙먼지와 부서진 잔해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후…. 역시, 한쪽 팔로는 슬슬 한계가 보이는구나.”

역시나 인간들을 초월한 존재들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는 행동부터 말하는 본새까지. 죄다 인간을 무시하는 언행들.

본좌라니? 자기가 뭐라도 되는 것 마냥…!!

나는 용광검을 고쳐 들곤 앞으로 걸어 나갔다.

태연하게 걸어 나오는 나를 바라보며 화룡이 말했다.

“호오…. 이 정도의 공격엔 죽지 않는 것이냐? 제법 튼튼한 인간이로구나.”

그의 말과 행동에서 보이는 것은.

지루함.

입을 쩍쩍 벌려가며 하품을 하는 화룡은.

아직도 내가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게.

나는 지금까지 내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으니.

“실망했습니까?”

“조금 더 보여줬으면 좋겠군. 지루하지 않은가? 이 정도의 강함이라면 뿔을 이용하지 않았어도 될 것을.”

“그렇군요.”

나는 몸에 묻은 흙먼지를 힐끗 쳐다보곤 화룡을 향해 말했다.

“당신이 가장 약한 것은 알지만…. 이 정도라면 안심입니다.”

“뭐, 뭐라…!?”

자신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과 아무런 타격도 없어 보이는 나를 향한 화룡의 시선이 금방이라도 나를 꿰뚫을 듯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이놈이…!! 하찮은 인간 주제에…!!”

분노에 가득 찬 화룡이었지만, 나는 그런 화룡을 바라보며 콧방귀를 뀌고 말았다.

“하찮다라….”

사실, 화룡의 공격은 아무런 데미지가 없었다.

미션이 시작되기 전.

나는 ‘마우이’의 게이트에서 기여도 1위의 보상으로 ‘흑요석’의 단단함을 얻었었다.

즉, 내 몸은 인간이지만 그 누구도 부술 수 없는 강도를 가지고 있는 샘.

화룡의 공격은 나에게 티끌만 한 상처도 입히지 못했다.

“당신이 가장 자신 있는 걸로 상대해드리죠.”

“크하핫. 미쳤구나, 미쳤어!! 네놈은 진정 미친것이냐!!”

나의 말에 화룡이 우레와 같은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내가 자신 있는 것? 네놈은 모르는 것이냐! 나는 화룡이니라!!”

화룡이 가장 자신 있는 분야는 화(火) 속성을 다루는 것에 있어서 그 누구도 쉽게 이기지 못할 강자. 이 말은 같은 화(火) 속성을 사용하는 한 화룡을 이기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나는 까마귀인 삼족오에게 받은 성흔.

홍염(紅焰)이 있었다.

화(火) 속성의 절정의 단계. 홍염(紅焰)은 단순한 불이아닌, 태양신의 힘.

화룡이 가지고 있는 힘보다 더욱 상위의 힘이었다.

나는 가장 먼저 네 가지 속성을 부여할 수 있는 스킬을 취소했다.

[스킬, [속성부여 LV MAX]의 발동이 취소됩니다.]

그리고.

[스킬, [홍염(紅焰) LV MAX]을 발동합니다.]

[용광검에 홍염(紅焰)의 힘이 깃듭니다.]

화륵!

처음 시도해보는 행동이었지만 나름대로 내 생각은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았다.

한쪽 팔이 없는 탓에 여러 가지 전투법을 모색해야 했던 나에게 용광검과 홍염을 따로 사용하는 것은 비효율적이었다. 그로 인해 생각할 수 있는 전투법.

속성부여와 같은 방법으로 용광검에 홍염. 즉. 태양신의 힘을 용광검에 부여한 것이었다.

“이, 이놈…!! 그 힘은!!! 어찌 네놈이!!”

화(火) 속성의 절대 강자여서 그런지, 화룡의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인간을 초월하고 몇천, 몇만 년을 살아온 존재.

이 존재가 뛰어넘으려 해도 넘지 못할 벽이 있다는 것을 안 것은 아주 오래전의 일.

화룡은. 성좌가 되지 못한 룡들중에 하나.

오랜 시간을 살아왔지만, 사룡중 최약체였고 무엇보다 자신들을 이끄는 레비아탄조차 성좌들의 힘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로 인해 미션의 수레바퀴에서 여러 행성을 부수고 생명체를 몰살하며 카르마를 쌓아온 그들이었다.

그가 보고 싶었던 벽 너머의 힘을….

인간이라는 하찮은 존재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 화룡을 좌절하게 만들고 있었다.

“어찌 네놈이 그 힘을….”

화룡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가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전투 의지가 상당히 떨어진 것 같다.

어쩐지 허탈감이 묻어있는 화룡의 말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굳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기 싫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들에게 연민을 느끼기 싫었을 뿐.

나에게, 인류에게 있어서 화룡을 포함한 사룡과 레비아탄은 적일 뿐이니.

화룡을 베는 것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타탓!

스킬, 질주를 사용해 순식간에 간격을 좁혀낸 나는 화룡을 향해 홍염이 깃든 용광검을 내리그었다.

스걱-

추진력을 얻은 나의 공격은 화룡의 팔뚝 부근을 강하게 그어냈지만.

“큭…!!”

화룡은 재빠르게 나와의 거리를 두었다.

나름대로 최대 속도로 공격한 나여서 그런지, 치명타를 입히지 못한 것은 내심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화룡은 전투 의지를 상실한 것인지, 자신이 뛰어넘지 못한 벽에 대해서만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어찌 네놈이 그 힘을 가지고 있느냐!!”

가까스로 공격을 피해낸 화룡은 나를 향해 쏘아붙였지만 나는 그런 화룡을 무시하곤 공격을 이어나갔다.

스걱, 스걱. 스걱.

“헉…. 헉….”

베고.

다시 베고.

또 베고.

계속해서 베어나갔다.

그런 화룡의 몸은 검붉은 피투성이였다.

당장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강점을 살렸다면 이 정도로 수세에 몰리지 않았을 것을.

자신이 죽어가는 상황에도 화룡은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알려다오. 그 힘을 어떻게 얻은 것이지?”

“……”

얻었다라.

사실을 말하자면 삼족오라는 성좌에게 힘을 부여받은 것일 뿐.

내가 강해서 벽을 넘어 얻은 힘이 아니었다.

절박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화룡이 조금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도 잠시.

홍염이 깃든 용광검을 화룡을 향해 그어내려 할 때였다.

“나는….”

멈칫.

최후의 일격이 가해지려 할 때도 화룡은 입을 열었다.

“넘어서고 싶었다. 사룡들을, 레비아탄을….”

나는 자리에 멈춰 화룡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한껏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화룡의 말은 이러했다.

본래. 화룡은 인간들을 지키는 수호신으로서 어느 행성을 지키며 살았었다.

하지만 그의 세계는 관리자들의 농간과 함께 멸망하게 되었고. 관리자들의 계략에 사룡의 무리에 편입되어 생명체를 죽이는 미션을 이루며 살게 된 것.

미션의 클리어로 카르마는 계속해서 쌓였고 무한한 삶을 얻은 화룡이었지만….

그런 과정이 계속해서 이어지자, 자신이 사랑했던 인간들이 이유 없이 미워진 화룡이었다.

계속해서 죽이다 보니 이제는 인간들이 하찮아 보인 화룡.

인간을 지키는 수호신의 역할을 잊은지도 긴 시간.

화룡의 목적성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런 화룡에게 남은 것은 강해지겠다는 열망.

레비아탄과 사룡들의 강함을 뛰어넘지 못하는 화룡은 강함만을 추구하며 기나긴 세월을 살아왔다. 인간들을 몰살시키며. 수많은 행성의 생명체를 몰살시키며.

하지만.

그런 세월 속에서도 화룡은 자신이 가진 강점인 화(火) 속성의 벽을 넘지 못했다.

아니, 넘지 못했다가 옳았을까?

벽을 넘기 위해서는 성좌가 되어야만 했고, 성좌가 되지 못한다면 넘어설 수 없는 태양신의 힘. 미션을 완수하고 레비아탄의 자리까지 올라선다면, 자신이 살던 행성을 부활시켜 준다는 관리자들의 말. 그 말을 믿어서였을까.

화룡은 관리자들에게 속아 영혼을 팔아넘기고, 지금껏 생명체를 몰살시키며 살아온 것이다.

무한한 시간을 성좌가 될 수 없음에도 언젠가는 성좌가 되어 자신의 행성을 부활시키고 레비아탄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다는 열망을 하며.

지금까지도 자신을 속인 관리자들을 믿으며.

나는 그런 화룡을 안쓰럽게 바라보면서도 솔직한 내 생각을 말했다.

“관리자들은 당신을 이용한 겁니다. 무한한 시간 속에서 미션의 장기 말로.”

“……”

“어느 순간부터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을 텐데요?”

“……”

정곡을 찔린 화룡은 입을 열지 않았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 표정.

그 속에 담긴 관리자를 향한 분노.

“난…. 무엇을 위해 지금까지….”

“당신의 세계를 멸망시킨 것은 관리자들. 그런 세계의 수호자를 이용한 것도 관리자들.”

화룡 본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을.

자신은 성좌가 될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런 화룡이 살아가려면 이유가 필요했다.

그 때문인지 아닌 걸 알면서도 믿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챙그랑.

자신의 두 검을 바닥에 떨군 화룡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렇군. 난 지금까지 이용만 당했던 거였군….”

“관리자들에게 영혼을 넘긴 존재는 결코 성좌가 될 수 없죠.”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렇군. 이대로 벽을 넘어선 인간에게 죽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어.”

죽음을 받아들이는 화룡이었지만, 나는 화룡을 죽일 생각이 없었다.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만.”

“……?”

삶을 포기하려는 화룡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방법이라는 나의 말에 화룡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리고 그의 눈에 이채가 깃들기 시작했다.

나의 말에 아주 조그마한 희망이라도 본 것인지.

“바, 방법이 있다는 것인가?”

이 방법은.

화룡을 구제하면서도 나의 전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이고.

수많은 생명을 이용해 자신들의 카르마를 채운 관리자들에게 한 방 먹이는 방법.

오롯이 나만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일단, 죽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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