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2화
거친 폭음에도 나는 침착했다.
우리가 모인 이 장소를 급습할 수 있는 자는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다들 조심하세요.”
나의 말에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무거운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동요하는 각 나라의 대표들과 나의 일행들이었지만, 이곳을 급습한 자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던 나는 천막 밖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저벅, 저벅.
이미 이곳으로 이동하기 전.
나는 확인했었다.
내가 날 수 있는 공중의 더 높은 곳에 대기 중인 엄청난 룡들의 병력을.
그 때문인지, 우리가 쳐들어가지 않으면 저들이 올 것이라는 걸 조금은 예상했던 부분이었다.
물론… 임무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이 시점에 쳐들어온 것은 예상할 수 없었지만.
천막 밖으로 몸을 움직인 나의 시야에 비추는 것은 룡들의 브레스가 이리저리 쏟아지는 중이었고 대기 중이던 사람들의 전투였다.
누군가는 큰 상처를 입어 쓰러져 있었으며, 누군가는 용감하게 룡들에게 맞서 싸웠다.
그리고.
그들의 중심에서 진두지휘하는 것은 무림계의 인간들이었다.
기보의 주인.
천하오절.
사파의 지존이라는 천마.
그들의 강함에 절대 밀리지 않는 세외 사천 왕들.
상위룡들과의 전투에도 자신들의 강함을 믿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무림인들을 보자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내가 할 것은 한 가지.
최소한의 피해로 상위룡들의 부대를 격퇴하고 레비아탄을 소멸시키는 것.
그뿐이었다.
촤릉.
용광검을 꺼내 든 나는 수 천의 상위룡과 수만의 하위, 중위룡들을 향해 나아갔다.
[스킬, [선인의 격 LV.1]을 발동합니다.]
[스킬, [선인의 격 LV.1]의 효과로 10분간 모든 능력치가 230% 상승합니다.]
스아아.
한 걸음씩 내디디며 그동안 사용해왔던 버프를 사용했다.
[스킬, [선인의 기운 LV.3]을 발동합니다.]
[스킬, [선인의 기운 LV.3]의 효과로 버프의 효율이 상승합니다.]
[스킬, [화안금정 LV.3]을 발동합니다.]
[스킬, [속성부여 LV. MAX]을 발동합니다.]
[스킬, [속성부여 LV. MAX]의 효과로 당신에게 네 가지(火 ,風, 水, 土)속성이 깃듭니다.]
비장의 수단인 정령화, 동조화를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제법 강한 기운을 풍기는 나였다.
무엇보다 이제는 제법 강해져 이 정도 버프에도 능력치의 상한선에 가까워졌다.
금빛으로 빛나는 왼쪽 눈의 화안금정.
선인의 격과 선인의 기운으로 일렁이는 푸른색의 아우라.
그리고.
나의 용광검엔 네 가지 속성이 깃들어 은빛의 검신이 다양한 색상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버프를 사용한 나는, 곧바로 앞으로 치고 나갔다.
파앗!
스걱.
일격은 아주 간단하게 하위룡들을 베어냈으며, 이격은 중위룡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리고.
이상한 낌새를 파악한 상위룡들이 서서히 자신들의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강해진 위력의 브레스가 나를 향해 쏟아졌다.
쿠와아아-!!
일순간에 쏟아지는 브레스들은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
푸른색과 붉은색. 흙빛을 띠는 브레스들.
아무래도 상위룡들은 개체 수만큼이나 종족도 다양한 것 같았다.
화안금정으로 확인해봐야겠어.
나는 왼손으로 쥔 용광검을 강하게 움켜쥐고 쏟아지는 브레스를 향해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 [파천일검(破天一剣) LV. MAX]을 발동합니다.]
후웅-!
위에서 아래로 그어지는 용광검의 검격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상위룡들의 브레스들을 두 갈래로 갈라냈다.
그 순간.
나의 뒤에서 대기 중인 각 나라의 대표들과 나의 일행들이 기회라는 듯. 상위룡들을 향해 움직였다.
타탓!
이곳에 있는 모든 인원은 자신들이 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나는 곧바로 선인의 기운을 넓게 퍼트려 기척을 감지해냈다. 이곳을 급습했다는 것은 상위룡들 중에서도 그들을 지휘하는 존재가 있을 터.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획기적인 계책이 필요한 것은 당연했지만, 이 정도의 급습을 받은 상황이라면 말이 달라졌다.
적들의 수장을 치는 것.
그리고, 그런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존재는 이곳에서 나 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리.
오만한 생각이었지만, 내가 강해진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가장 먼저 나의 ‘명’을 비틀어 내가 살아야 했고 내가 살아야 내 사람들을 지킬 수 있다.
화악!
순식간에 기척을 감지한 나는 저 멀리 상황을 주시하는 한 개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룡들이 인간들을 몰살하는 것을 지켜보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건방진 새끼…!
아, 물론 내가 말하는 건방진 새끼는 한 놈이 아니다.
사룡.
사룡이란, 룡의 한 개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레비아탄의 수호자들.
나의 ‘명’에서 우리는 그들을 사룡이라 불렀다.
인간과 대화가 통하지 않고 지능이 낮은 하위,중위룡.
대화가 통하고 지능이 뛰어난 이름이 없는 상위룡.
그보다 더 많은 세월을 살아온 고대룡인 네 마리의 사룡.
이들은 레비아탄을 지키기 위해서, 레비아탄의 부활을 위해서 싸우는 수호자들이었다.
그리고.
사룡 한 개체의 강함은 현시점에서 버프를 사용한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미세하게 강한 정도였다.
화룡, 해룡, 빙룡 그리고 그들을 지휘하는 고룡.
엄청난 세월을 살아온 덕분인지, 인간들에 대해서 그리 좋은 마음은 가지고 있지 않다.
이유? 간단하다. 인간은 자연을 파괴했고, 그들이 존재할 수 있는 자리를 밀어내고 있었으니. 당장이라도 몰살시키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런 그들이 시스템의 가호를 받고 우리의 눈앞에 있는 것이다.
나는 선인의 기운을 지구 전체로 퍼트려 사룡의 위치를 감지했다.
전투가 벌어지는 지상에 한 마리.
그보다 높은 하늘에 대기 중인 세 마리.
이 새끼들 봐라?
기척 감지에 느껴지는 사룡의 행동은 특이했다.
한 마리가 전장의 끝에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질 않았고, 나머지 세 마리도 별다른 행동을 취하질 않았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이 전투는 간만 보고 떠날 가능성이 컸다.
나는 전장에 존재하는 한 마리의 사룡이라도 잡고자, 빠른 속도로 치고 나갔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사룡을 향해 화안금정을 사용했다.
스아아-
-
이름 : 화룡 / 레벨 : ???
나이 : ???/ 개체치 : ???
힘 : 90000
민첩 : 90000
체력 : 90000
마력 : 90000
스킬 : ???
종합평가 : 주인인 레비아탄의 봉인으로 자신의 힘을 상당 부분 잃어버렸다. 레비아탄의 종속인 화룡은 화(火) 속성을 사용하는 드래곤 중 가장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 레비아탄의 종속 중 서열 4위에 해당하는 강함을 가지고 있다.
# 레비아탄의 봉인이 풀리는 순간. 해당 마물은 더욱더 강해진다. (각성)
# 폴리모프를 사용할 수 있다.
# 화룡의 브레스는 모든 것을 태울 수 있고 모든 것을 재로 만들 수 있는 강함을 지녔다.
-
능력치만으로는 버프를 사용한 내가 더욱더 강하다. 그런데 이놈이 서열 4위라고…?
이 정도 되는 능력치였음에도 서열 4위라는 것에 상당히 놀란 나였지만, 나는 침착하게 용광검을 휘둘렀다.
챙-!!!
나름대로 강하게 휘두른 용광검이었지만, 화룡의 꼬리에 간단하게 막히고 말았다.
“호오…. 네놈이로구나?”
반쪽뿐인 화안금정이어서 그런지, 어떤 것은 확인할 수 있었지만 어떤 것은 확인할 수 없었다.
아쉬움도 잠시.
나는 화룡을 향해 조용히 물었다.
“기다렸습니까?”
“어찌 그리 생각하느냐?”
화룡의 표정은 온화해 보였다.
무엇하나 불편해 보이지 않았고 나라는 존재를 마주한 것이 오히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엄청난 크기였기에 한참을 올려다봐야 화룡의 얼굴이 보였지만, 잠시 본 그의 표정엔 나를 아주 오랜만에 만난 놀이 상대라 생각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뭐, 심심했을 것 같은데요.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었을 테고.”
별 관심 없다는 듯 툭. 내뱉는 나의 말에 화룡은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엄청난 몸 크기만큼이나 그 소리도 대단했다.
근방에 전투 중이던 하위,중위,상위의 룡들은 움직임이 멈췄고 인간들도 자신의 병장기를 내 던지고 양쪽 귀를 틀어막고 있었고, 나는 능력치가 높은 탓인지, 인상을 조금 찌푸리고 말았다.
너무나도 쩌렁쩌렁한 소리.
순간적으로 전투 자세를 취한 나였다.
“그래, 그래. 너희들의 말로 말하자면, 심심했다. 라고 하면 되는 것이냐?”
“맞습니다만.”
화룡은 자신에게 덤비는 작은 인간이 귀엽기라도 하다는 듯. 나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숙였다.
“그래, 이 상태는 불편하지. 그럼….”
파앗!
화룡의 전신에서 엄청난 빛이 번쩍이더니, 곧 그의 외형이 작아지기 시작했다.
스스스.
번쩍!
이내 그 빛은 강하게 반짝! 하더니, 사라지고 그 자리엔 엄청난 크기의 화룡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나의 시야에 비춘 것은 붉은 머리칼의 미청년이었다.
김도은과 김영광 그리고 임아린과 백두산에 산군을 잡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폴리모프.
폴리모프를 마친 화룡이 나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기다렸느냐?”
“기다리긴요.”
외형의 변화만 있을 뿐. 화안금정에 비치는 화룡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아무래도 크기가 큰 룡인지라, 더욱 재미나게 전투를 즐기려는 화룡의 배려인 것 같았다.
그런 배려도 전투가 시작되면 쏙. 들어가고 말테지만.
나와 비슷한 크기로 변모한 화룡을 바라보며 말했다.
“혼자서 괜찮겠습니까?”
“......? 그게 무슨 말이지?”
아무래도 화룡은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엄청난 세월을 살아온 화룡이 한낮 인간보다 약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
화룡의 눈에는 조금 강한 인간 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래서 성좌건, 정령이건 오랜 세월을 살아온 자들은 마음에 안 들어…!!
“당신 혼자가 아니지 않습니까? 사룡은…. 총 넷.”
“그걸 어찌…!!”
당황하는 화룡이었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 올리곤 말을 이어갔다.
“그중에 당신이 제일 약하고요.”
“이놈…!!”
아무래도 화룡의 심기를 건드린 것은 ‘약하다’라는 말인 것 같았다.
그 증거로 화룡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비루하기 짝이 없는 인간 주제에….”
콰직!
화룡이 자기 머리에 자란 두 뿔을 부러트려 양손에 쥐었다.
“무슨…!”
“보아라. 인간이여. 평생을 가도 절대 보지 못하는 진귀한 장면이니. 경배하고 숭배하거라.”
화악!
화룡이 부러트린 뿔은 곧. 희뿌연 연기와 함께 무기로 변했다.
“뿔이 느리게 자라 내 잘 안 보이는 것이지만, 네놈은 나의 심기를 건드렸으니 벌을 받아야겠지.”
심기를 건드렸다? ‘약하다’라고 말해서 그런 건가…?
“안 아픕니까?”
“……”
계속해서 여유로움을 보이는 나의 모습에 화룡은 조금씩 당황하기 시작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양손에 쥐어진 화룡의 무기는 ‘듀얼 드래곤 슬레이어’ 그리고, 다른 사룡이 도움을 주지 않는 이상. 나는 화룡에게 지지 않는다.
나는 전투 자세를 취하고 화룡을 향해 말했다.
“빨리 끝내죠. 할 일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