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121화 (121/206)

제121화

episode(14) 인류 최후의 날

김영광과 김도은의 성장을 위해 상당히 무리한 것 같았다.

나의 예상대로라면, 한두 시간 정도의 적당한 시간적 여유가 있을 것 같았지만.

우리가 게이트를 빠져 나오고 나니, 미션은 이미 시작된 후였다.

김도은과 김영광이 황당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어떡하죠?”

“하늘에….”

나는 두 사람의 말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생각이 많아진 것이 이유였고 무엇보다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답이 서질 않았다.

이번 미션은 나의 ‘명’에서 내가 죽음을 피하지 못한 미션.

즉, 이 상황이 ‘명’대로 흘러간다면 나를 포함해 지구의 모든 인간은 죽고 말 것이다.

신중에 신중을 가해야만 우리가 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아지는 건 당연했지만, 하늘에 떠 있는 하위룡들의 모습에 암담한 상황에 머리가 아파져 왔다.

왼손으로 관자놀이를 꾸욱. 눌러대자 김영광이 물었다.

“안이 씨. 지금부터 어떻게 움직여야 합니까?”

레비아탄이 지금 당장 나타나지는 않을 테지만, 가장 큰 문제는 하위룡들을 처리해둬야 그나마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

나는 김영광과 김도은을 바라보며 말했다.

“두 분. 절 믿으십니까?”

“그야 당연하죠.”

“물론입니다!”

“두 분은 강합니다. 적어도 하위, 중위급의 룡들은 두 분에게 상대가 되지 않겠죠.”

한참을 묵묵히 생각만 하던 나의 입이 열리자 김도은과 김영광이 집중해서 듣기 시작했다.

“지금쯤이면 무림계 전부가 이주를 완료했을 겁니다. 영광 씨는 무림계를. 도은 씨는 지구의 대표들을 이끌고 룡들과의 전쟁을 준비하세요.”

“……? 안이 씨는요?”

“전 걱정하지 마세요. 따로 움직이겠습니다.”

나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두 사람이었지만, 언제나 그랬듯 걱정하지 말라는 말과 다음 행동에 대해서만 일러두었다.

이 전쟁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방법은 지금의 나에겐 없다.

하지만 가능성을 높일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 강해진 나였고, 무림계의 사람들을 이주시킨 것.

나에겐 크나큰 행운이나 다름없으니, 더욱 가능성을 높여야만 했다.

대략적인 행동 지침과 이번 미션의 클리어를 위한 방법을 두 사람에게 말한 나는 몸을 공중에 띄워 말했다.

“제가 말한 데로만 움직여주세요. 미션의 클리어를 위해서 한 걸음 내디딜 수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안이 씨. 무사하시길…!!”

“잘 다녀오세요. 말씀하신 일은 전부 처리해둘 테니까…. 꼭 살아요!!”

두 사람이 걱정하는 모습에 희미하게 웃어 보인 나는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공중의 룡들이 나를 향해 불을 내뿜고 달려들었지만, 애초에 하위룡들은 나의 상대가 되질 않았다.

베고.

또 베고.

온몸에 피 칠갑을 한 나는 계속해서 나아갔다.

중동과 남유럽 사이에 있는 레비아탄의 둥지로.

이쯤인가?

다짜고짜 전투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레비아탄의 부활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확인하고 싶었을 뿐.

레비아탄의 부활이 이루어지기 전. 하위, 중위, 상위급의 룡들을 처치해야 했고 그 뒤에 모든 인원이 달려들어 레이드를 해야 했다.

나의 ‘명’이 갱신되지 않는 이상 다른 방법은 없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방법이지만, 가장 위험한 방법.

지금까지의 나는 때로는 가벼웠고, 때로는 진중하게 움직였다면….

지금부터는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물론.

나 혼자 살 생각이었다면 다른 방법을 사용하겠지만, 앞으로의 미션을 헤쳐 나가려면 지구와 무림계 전부가 살아남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지중해에 도착한 나는 거대한 블루홀 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레비아탄의 몸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살펴본들 정확한 부활의 시점은 알 수 없었지만, 나에겐 손오공이 준 ‘화안금정’이 있었다.

화안금정이라면…. 대략 알 수 있을 거야.

다행스럽게도 레비아탄의 주변은 조용했다.

자칫 자신들의 왕을 실수로 깨운다면, 룡들 또한 무사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스킬, [화안금정 LV3]을 사용합니다.]

스아아-

왼쪽 눈의 동공이 금빛으로 변해가며 잠들어있는 레비아탄을 바라보았다.

-

이름 : 레비아탄 / 레벨 : ???

힘 : ???

민첩 : ???

체력 : ???

마력 : ???

종합평가 : ???

# 봉인상태.

# 봉인 해제까지 ??? 남았습니다.

-

아?

젠장.

화안금정에 비춘 레비아탄의 정보는 알 수 있는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봉인되어 아직은 눈을 뜨지 않는다는 것.

이마저도 봉인이 해제되기까지 한 시간이 걸릴지 두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었다.

어쩐다…?

호기롭게 레비아탄의 둥지로 온 것은 좋았다.

하지만 알 수 있는 정보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 나를 좌절하게 했다.

한참을 멍하니 잠들어있는 레비아탄을 바라보았다.

순간적으로 모든 버프를 사용해 공격을 시도할 생각도 했지만, 자칫 실수로 레비아탄의 잠을 깨워 공격당한다면 나는 죽고 말 것이다.

무엇보다 레비아탄이 어느 정도로 강할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나의 ‘명’에서는 덩치가 큰 인간 한 사람만 한 발톱에 찢겨 죽고 말았으니.

걱정이 되고 불안한 건 사실이었다.

이제 막 미션이 시작된 만큼 시간은 조금 남아있을 테지만…. 어쩌지?

어? 아!!

문뜩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은 어째서인지 메시지를 보내지 않는 성좌들.

그중에도 나의 후원자가 되어 준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생각났다.

나에겐 성흔, [시간 괴리 LV MAX]가 존재했다.

당장의 시간을 벌 수 있는 건 물론이거니, 운이 좋으면 게이트를 하나 정도 클리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자리를 비웠을 때 룡들과의 전쟁이 벌어지거나 인간들이 몰살당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동이었다.

효율이 높기는 했지만, 지금 사용할 성흔이 아니라고 생각한 나는 문뜩 떠오른 생각을 거두었다.

일단, 움직이자.

봉인상태로 잠을 청하는 레비아탄을 뒤로한 나는 몸을 움직였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으니, 김도은과 김영광이 대부분의 인원을 모아놨을 테니.

* * *

‘전이의 깃털’을 사용하면 순식간에 이동했지만 나는 공중을 나는 중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레비아탄의 둥지를 제외하고는 어느 지역을 가던 룡들이 하늘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동하며 숫자를 줄이거나 룡들의 동태를 살피기 위함이었다.

“크르르.!!”

“질리지도 않고 나타나네.”

촤악-!

룡들은 강했다.

그 때문에 무리해서 강해진 나였지만, 지금의 나조차도 레비아탄과의 전투는 장담할 수 없었다.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룡은 하위, 중위, 상위급의 룡들 뿐이었다.

나를 향해 공격해 오는 하위룡들을 간단하게 베어냈다.

베어내는 것은 간단했지만 아주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하위와 중위급의 룡들은 이동하는 내내 마주쳤지만, 상위급의 룡들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것.

‘명’에서 본 상위급의 룡들은 지능이 있었다.

이 말은…. 어디선가 우리와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으로 생각했다.

합류는 나중에 하고, 상위룡들부터 찾아야 하나…?

달려드는 하위와 중위급의 룡들을 간단하게 처리한 나는 기척을 감지하기 위해 한 가지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 [선인의 기운 LV3]을 사용합니다.]

화악-!!

어느 정도 강해진 나였기에,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느낄 수 있는 나였다.

그 때문인지 스킬을 사용하자, 엄청난 위압감과 함께 온몸의 털들이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다.

공중…?

감지되는 기척은 공중.

내가 위치한 공중보다 더욱더 높은 곳에 있었다.

수 백. 아니, 수 천마리에 가까운 숫자를 이루고 있는 상위룡들과 중위룡들이 대기 중인 것 같았다.

미친…. 지금 달려드는 건 죽으러 가는 거나 다름없겠는데…?

너무나도 많은 숫자에 할 말을 잃은 나는 몸을 움직여 김도은과 김영광을 만나기로 한 장소로 움직였다.

슈아아-!!!

한참을 이동한 나는 엄청난 숫자가 모여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광화문.

언제나 그랬듯 이곳은 우리들의 아지트이자, 다시 모일 수 있는 장소였다.

웅성, 웅성.

룡들의 피를 지나치게 뒤집어쓴 나의 등장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보이는 인물은 김도은이었다.

“오셨네요!”

“다들 모였습니까?”

“네. 근처에 있는 룡들도 전부 잡았어요.”

“잘했습니다. 그럼…. 대표들을 소집해주세요.”

나의 말에 김도은이 재빠르게 움직여 각 나라의 대표들을 불러 모았고, 소식을 들은 김영광과 나의 일행들 그리고 무림계의 대표들이 자리에 나섰다.

“다들 모였으니,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나의 한마디에 긴장감이 흘렀다.

그 누구도 앞으로 나서지 않았으며, 대표들의 눈에는 비장함이 묻어있었다.

“이번 미션은 공통 미션입니다. 즉, 살아있는 모든 이가 힘을 합쳐야만 클리어할 수 있죠.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나의 말에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선 사람은 이 전에 보았던 ‘마크’라는 사내였다.

온몸의 타투는 여전했고 나의 말대로 게이트를 무난하게 클리어한 마크는 이 전보다 덩치가 커 보였다.

“우리는 자네 덕에 강해졌네. 각 나라의 대표라고는 해도 솔직히 말하자면, 지구에서 가장 강한 자는 자네겠지.”

마크라는 사내는 호쾌하고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는 가족을 위해서 싸우겠네!”

팡팡!

지켜야 할 것.

마크는 자신이 지켜야 할 것들을 말하며 주먹을 쥐고 자기 가슴을 쳐댔다.

그 모습은 흡사…. 고릴라와 비슷한 것 같았다.

“좋습니다. 저 또한 목숨을 걸 겁니다. 하지만…. 이번 전투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진짜는 따로 있으니까요.”

나와 마크의 대화에 모든 대표가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대표, 오세아니아 전체의 대표 그리고…. 네팔의 대표들은 참여하지 않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들 또한 어딘가에서 자신들과 가족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는 것을.

세계 연합이 결성되는 순간이었다.

그때였다.

시끄러운 좌중을 압도하며, 진예화에 이어 무림계의 대표가 된 백남광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백남광은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엄청난 성장을 이루고 있었다.

요 며칠 사이에 이전보다 강해진 것이 한눈에 보였다.

방법은 단 한 가지.

공중전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상위룡들과 전쟁을 시작하고 공중전을 하지 못하는 자들은 지상에서 하위와 중위룡들을 요격하는 것.

단순하지만 지금은 이 방법밖에 없었다.

“간단해. 레비아탄이 잠에서 깨어나기 전. 모든 룡들을 처치하는 것.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장 쉬운 방법이야.”

“……”

백남광은 말이 없었다.

이번 전쟁으로 모두를 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는 싸워야 했고 그 누군가는 죽게 될 테니….

“실패하면 죽는 이가 많아질 거야. 그래도 해야 하나?”

“물론이지. 비정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야.”

“그렇군….”

씁쓸한 표정을 짓는 백남광이 고개를 푹. 숙일 때였다.

콰쾅!!!!!

대표들이 모여있는 천막 밖에서 엄청난 폭음이 들려왔다.

“크르르…. 보기 좋게 모여들 있구나. 마치, 죽여달라는 듯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