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0화
난감하다 못해 황당했다.
마우이가 죽은 이유가 마땅히 있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동속도가 느려 지옥을 벗어나지 못했다니….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곧바로 마우이와 마주쳐 밀려오는 지옥의 악취를 밀어내는 중이었다.
“괜찮습니까?”
“음! 물론이네. 자네는 괜찮은가?”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정령화의 남은 시간은 10초 남짓.
사실상 정령화는 끝났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았다.
“자넨, 참으로 강하군. 나대신 이 심장을 주민들에게 사용해주는 건 어떤가?”
마우이의 말에 잠시 솔깃하긴 했지만, 마우이의 한을 풀어 주려면… 주민들에게 불멸을 주고 마우이를 살려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요. 당신이 해야 합니다.”
“음…. 역시, 그런가?”
“네. 당신이 벌인 일. 당신이 마무리하세요. 그게 당신이 해야 할 일입니다.”
마우이는 호탕하게 웃으며, 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어깨를 툭툭 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무언가…. 인간인 나에게 한 수 배웠다는 긍정의 행동인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마우이를 향해 쓰게 웃자, 정령화가 종료되는 시점이 다가왔다.
스스스
“자네…. 힘이 다한 것인가? 왼팔의 형상이 사라졌군.”
“본래 외팔이라서요. 일시적인 힘이었을 뿐입니다.”
“이제 사용할 수 없는 건가?”
“네. 지나치게 강한 힘은 계속해서 사용할 수 없는 법이죠.”
“그렇군.”
마우이는 자기 턱수염을 어루만지며, 몽둥이를 강하게 쥐어, 자기 어깨에 걸쳐냈다.
“자, 뚫어볼까?”
“심장은 잠시, 저에게 맡겨두시지요.”
“보관할 곳이라도 있나 보군. 알겠네.”
마우이는 나에게 히네누이테포의 심장을 건넸다.
쓸데없는 질문은 오가지 않았다.
히네누이테포의 심장을 얻는 것에 힘을 써줘서 그런지, 마우이는 나를 믿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곧바로 인벤토리에 히네누이테포의 심장을 집어넣고 용광검을 강하게 쥐었다.
정령화의 종료로 다른 최상위급의 주신이 우리를 덮쳐온다면,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핀치에 몰리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나의 ‘명’대로 나는 이곳에서는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든 헤쳐 나간다는 뜻이겠지.
걱정은 됐지만, 그래도 나를 기다려주는 동료들이 존재했고, 내 옆에 있는 마우이 덕분에 걱정은 조금씩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자네, 아직 싸울 수 있겠는가?”
“당연하죠. 그런 건 왜 물어봅니까?”
“앞….”
마우이는 몽둥이를 들곤, ‘앞’이라는 한마디만을 남긴 채 달려 나갔다.
왜 저렇게 뛰는 걸 좋아하는데…?
나는 마우이가 사라진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워어어억…!!”
“우워어아!!”
아…. 젠장.
아무래도 히네누이테포의 성흔인 ‘망자 소환’이 발동한 것 같았다.
죽어서도 우리를 곱게 보내줄 생각이 없어 보이는 지옥의 여신이었다.
지옥의 옥졸들과 악귀 그리고 좀비와 비슷한 망자들이 나와 마우이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쿠구구구구.
지옥이 계속해서 붕괴하는 시점에, 전투까지 벌여야 한다니.
머리가 지끈 아파져 왔다.
나는 초속 비행을 사용해 마우이를 따라나서 옥졸, 망자, 악귀들을 처치하기 시작했다.
공격은 잘 먹혀들었지만, 유령과 흡사한 것들에게는 홍염과 용광검에 냉기 속성을 부여해 한 걸음씩 걸어 나갔다.
* * *
“후….”
“헉… 헉…. 역시 대단하군. 숨 하나 거칠어지지 않았다니.”
나와 마우이는 수천은 돼 보이는 지옥의 군세와 전투를 치러냈다.
동시에 지옥은 상당히 무너져 수복할 수 없는 상황.
우리에게 쉴 틈은 없었다.
죽고 죽이는 전투 속에서 마우이와 나의 외형은 찢어지고 상처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거의 다 왔습니다.”
“그렇군! 나 혼자였으면 이 정도까지 못했을 것이야.”
마우이의 칭찬에 무언가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지만, 나는 아무 말 없이 희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직 힘은 남아있습니까?”
“물론이네. 날 뭐로 보고!”
“그 정도는 해주셔야죠.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음…?”
이 게이트의 내용과 어찌 될지 알고 있는 나와 다르게, 마우이는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나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말 그대로 지금부터였다.
흑요석.
엄청난 강도를 자랑하는 돌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돌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까?
멸망한 이 세계에서 흑요석은 다이아몬드와 비슷하거나 절대 뒤지지 않는 강도를 지니고 있었다.
정령화를 사용해 전신이 흑요석인 히네누이테포에게 상처를 낼 수 있었지만, 정령화가 끝난 현시점엔 나의 용광검으로 대처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였다.
그리고
지옥의 군세 뒤편에는 흑요석으로 만들어진 최후의 방어진을 통과해야 했다.
단순하게 형태를 변환해 공격해오는 흑요석이라면 피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형태를 변환한 흑요석과 같은 흑요석으로 만들어진 갑옷과 무기를 지옥의 군세가 장착하고 나타난다면?
상태는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질 것이 분명했다.
“가시죠. 이것만 이겨내면 나갈 수 있을 겁니다.”
“이곳이 무너질 걱정은 없겠는가?”
“제 생각일 뿐이지만, 이곳을 무너뜨리는 것은 최후의 최후까지 가야 이루어질 겁니다. 저흰 빠르게 흑요석 무덤을 통과해 벗어나야 합니다.”
“그렇군. 흑요석이라….”
마우이는 잠시 흑요석에 생각하는 듯 보였지만, 기대한 내가 바보였다.
생각은 무슨.
“으하하하핫!! 그깟 돌덩이 부수고 가면 그만이네!! 당장 나가도록 하지. 주민들이 나를 기다린다!!!”
“…….”
젠장할 놈.
타타타탓!
또 뛰어?
뛰쳐나가는 마우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래서 죽은 거였군….
고개를 좌우로 흔들던 나는 곧바로 초속 비행을 통해 마우이를 뒤쫓았다.
파팟!
“우워워어!!!!”
“키릭, 키리릭.”
다시 한 번 나타난 지옥의 군세와 사방에서 쏟아지는 날카로운 형태의 흑요석이 우리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휙!
콰쾅!!!
간단하게 피해내는 나와는 다르게, 마우이는 신이라도 난 것인지 자신의 몽둥이를 휘둘러 흑요석을 쳐내고 있었다.
“역시, 깨지지는 않는군.”
“음. 이깟 돌덩이쯤이야!”
흑요석의 날카로운 공격을 흘리거나 막을 수는 있어도 최종 단계가 아닌 용광검으로 흑요석을 부러트리는 것은 무리인 것 같았다.
“헉… 허억….”
거친 숨을 몰아쉬는 마우이였지만, 지치지도 않는지 몽둥이를 거침없이 휘두르며, 조금씩 지옥의 군세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이 마지막이라 생각했던 나와 마우이였지만, 금세 지치기라도 한 모양인지 마우이의 몸에 상처가 늘어나는 중이었다.
“컥…. 헉…. 헉….”
“괜찮습니까?”
“아…. 아직 괜찮다. 나는 마우이야!!”
이대로는 안 된다.
아직 흑요석으로 무장한 지옥의 군세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날카로운 형태의 흑요석들.
나 혼자서는 어찌저찌 살아남을 수 있지만, 마우이까지 살리려면 이 방법밖에 없는 것 같았다.
젠장, 어쩔 수 없지.
나는 혹시 모를 생각으로 남겨둔 ‘동조화’를 사용했다.
하와이 신화의 카네(Kane), 마오리 신화의 랑이누이(Ranginui)의 난입을 생각하며 남겨둔 것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껴두다 똥 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스킬, [동조화(횟수 제한) LV MAX]을 발동합니다.]
[일시적으로 성좌, ‘거품에서 올라온 자’의 힘이 당신에게 깃듭니다.]
[모든 능력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동조화의 제한 시간은 5분입니다.]
[성흔, [ἀγάπη, ης, ἡ ἀγάπη LV MAX]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동조화를 사용하자, 곧 나의 주변에 거품 같은 것들이 일렁이며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개껍데기 같은 단단한 무언가가 나의 전신을 갑옷처럼 휘감았다.
“자네…. 외형이 변했군.”
“…? 그런가요?”
“얼굴이… 미묘하게 여성 같아졌군.”
“…….”
왜인지는 알 것 같았다.
내가 사용한 ‘동조화’는 미의 여신의 힘.
예뻐졌다거나, 잘생겨진 것에 거부감은 없었다.
다행인 점은, 여성으로 변한 것이 아니라는 점.
나는 이 부분은 위안 삼으며, 마우이의 앞으로 나섰다.
“미안하지만, 제 뒤에 계시죠.”
“음…?”
마우이를 보호하듯 앞으로 나선 나는 아프로디테의 성흔을 사용했다.
[성흔, [ἀγάπη, ης, ἡ ἀγάπη LV MAX]을 사용합니다.]
[당신의 회복력이 한계를 돌파합니다.]
[당신의 모든 능력치와 스킬의 데미지가 3,000% 상승합니다.]
[당신의 방어력이 가리비의 껍데기와 같이 단단해집니다.]
[제한 시간 – 10분]
파앗!
성흔을 사용하자, 버프의 효과가 나에게 스며들며 푸른색의 아우라와 거품을 비롯해 은빛의 아우라가 전신을 휘감기 시작했다.
고오오.
그리고
아우라는 곧 나의 주변에서 안정된 느낌으로 자리를 잡았다.
“자네…. 인간이 맞기는 한가…?”
“네. 인간입니다.”
사실 정령화보다 월등한 버프의 효능에 할 말을 잃은 것은 나였다.
정령화도 사기였지만, 아프로디테의 버프를 직접 사용하니 말도 안 되는 능력치의 상승이 이루어졌다.
나는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가 쏟아져 오는 흑요석을 맨몸으로 받아내며 지옥의 군세를 모조리 베어냈다.
촤악!
파천만뢰공.
홍염.
화륵!
파직, 파지직!
엄청난 힘의 상승에 나조차도 자제가 되질 않았다.
이 힘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횟수 제한이 없더라면….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었지만, 지금 당장은 지옥을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었다.
두 가지 스킬의 사용으로 순식간에 초토화된 지옥의 군세와 흑요석이 바닥을 나뒹굴기 시작했다.
“허…. 반인반신인 나를 이리 놀라게 하다니…!!”
“나가시죠.”
상황은 순식간에 종료되어 나와 마우이는 지옥의 밖으로 발걸음은 내디뎠다.
“안이 씨!!”
“안이…. 응? 그 몰골은 또 뭐에요?”
“아…. 뭐, 나중에 설명하겠습니다.”
“잘생겨지신 것 같은데…. 기분 탓일까요?”
“일시적인 현상입니다.”
우리가 지옥에서 벗어나자, 김영광과 김도은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고생 많았습니다. 그럼….”
나는 인벤토리에 보관해둔 심장을 마우이에게 건넸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자네 덕에 심장을 가지고 나올 수 있었네.”
“별말씀을. 그럼 다시 보도록 하죠.”
“음! 나는 주민들에게 가보도록 하겠네.”
[성좌, <작은 섬의 대영웅>이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합니다.]
어린아이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엄청난 속도로 자리에서 마우이가 벗어났다.
그리고, 아주 다행스럽게도 그 어떤 난입도 없이 우리들의 눈앞에 시스템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다행이다. 지금 누군가 난입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게이트를 클리어하셨습니다.]
[기본 보상으로 모든 능력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당신은 기여도 1위입니다.]
[기여도 1위의 보상으로 당신의 몸은 흑요석과 같은 단단함을 지닙니다.]
[능력치의 상승으로 용광검의 등급이 6단계로 상승합니다.]
“영광 씨. 이제 도은 씨 잘 지켜줘야 합니다.”
“물론이죠!”
파앗!
게이트는 무난하게 클리어되었다.
아주 조금 위기가 있었고, 아주 조금의 가능성이지만 카네(Kane), 마오리 신화의 랑이누이(Ranginui)가 난입하지 않은 점에서는 아주 큰 다행이었다.
그리고….
환한 빛과 함께 게이트를 나선 우리였지만, 지나치게 게이트 속에 오래 머물러 시간을 계산하지 못한 것 같았다.
“안이 씨, 지금 잘 못 보고 있는 거 아니죠…?”
“저도 보입니다. 아무래도 시간 계산을 잘못한 것 같습니다.”
“이거….”
우리들의 눈앞에 시스템의 메시지가 다시 한 번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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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번째 미션 : 최후룡과의 전쟁
- ‘외부지구’에 잠들어있는 최후룡이 깨어났습니다. 그동안 시스템을 이용해 강해진 당신들은 최후의 전쟁에 승리하여, 모든 세계의 문을 열자격을 갖추십시오. 이것은 윗단계의 미션으로 올라갈 수 있는 생명체로서의 마지막 시험입니다.
#제한 시간 – X
#클리어 조건 – 최후룡, ‘레비아탄’의 소멸
성공 시 – 모든 세계의 ‘문’ 개방, 각성 등급 확정 및 그에 따른 보상
실패 시 – 영혼과 카르마의 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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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벌써? 이러면 안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