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6화
한가롭게 메시지를 보내오는 ‘작은 섬의 대영웅’의 행동은 조금 의아한 나였다.
성운 간의 전쟁이 벌어지는 이 시점에 널널해 보이는 것이 궁금했을 뿐이었다.
“한가합니까?”
[성좌, <작은 섬의 대영웅>이 자신은 인간들의 편일 뿐, 전쟁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합니다.]
“모든 카르마가 소모되면 죽을 텐데요?”
[성좌, <작은 섬의 대영웅>이 카르마는 언제든 모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저것 떠본 나였지만, ‘작은 섬의 대영웅’은 그럴싸하게 넘길 뿐, 아무런 정보도 주지를 않았다. 상황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는 하면서도 내심,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의 법칙상, ‘작은 섬의 대영웅’은 나에게 게이트에 대한 정보를 줄 수 없었다.
그런 부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게이트에 관련된 내용을 묻지 않은 나였지만, 성운 간의 전쟁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는 궁금할 뿐이었다.
그런 정보도 ‘작은 섬의 대영웅’은 감출 뿐이었지만.
“갑시다. 영광 씨의 배후성께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없을 듯하니.”
“그런가요? 하하…. 언제나 제 메시지는 바빠서 이것저것 알려주실 줄 알았는데.”
“말이 많은가 봐요?”
“네. 심심한 건지, 할 일이 딱히 없는 건지…. 요즘 들어 안 보이는 성좌들의 메시지에도 제 배후성님은 혼자서 잘만 떠들더라고요.”
어이가 없었다.
전쟁이란, 서로 죽고 죽이는 것.
그런 상황에서 혼자 느긋하게 현세의 인간을 주시하다니.
말도 안 되는 행동이었다.
그 강한 제우스조차도 현재 상황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빠르게 자리를 벗어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성좌 놈은 어째서, 무엇 때문에 혼자 널브러져 놀고 있는지….
나름대로 궁금했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가시죠. 계속해서 영광 씨를 귀찮게 해도 무시하세요. 이 게이트의 내용은 알고 있으니.”
“알겠습니다. 안이 씨가 그렇게 말한다면, 이유가 있겠죠.”
“가시죠.”
계속해서 성좌, ‘작은 섬의 대영웅’이 서운하네, 시무룩하네, 메시지를 보내왔지만, 나는 그런 메시지를 모조리 무시하며, 계속해서 이동해 나갔다.
* * *
기나긴 이동 끝에 도착한 곳은 마우이의 섬마을.
이곳에 온 이유는 간단했다.
성좌, ‘작은 섬의 대영웅’이 반인반신의 시절에 인간들을 위해 지내오던 장소.
그곳이 마우이란 섬이었다.
마우이의 업적은 성운, <올림포스>의 ‘헤라클레스’와 비슷하게 말도 안 되는 업적들을 자랑한다.
여러 가지 업적이 있지만, 간략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할머니가 죽고 난 후, 마우이는 사랑하는 할머니의 등뼈로 낚싯바늘을 만들어 바다의 바닥을 들어 올려 섬을 만들었다.
두 번째로 하늘을 높이 들어 올려 사람들이 고개를 들고 살 수 있게 해주었고, 세 번째로 태양의 햇살에 자기 머리카락을 묶어 해의 속도를 늦춰 낮의 길이를 늘여주었다.
네 번째로 너무 높이 불던 바람을 바다 위로 끌어내려 돛단배로 항해할 수 있게 해주었고, 다섯 번째로 장어의 내장을 거름으로 땅속에 묻어서 코코넛 나무가 자라게 해주었다.
여섯 번째로 지하세계의 불을 훔쳐, 인간들에게 가져다주었다.
이 모든 업적이 인간들을 위해 행한 것.
마우이는 악동 중의 악동이었고, 반인반신이라는 완벽하지 않은 삶 속에서도 인간들을 위해 힘썼다.
그리고
우리가 행해야 하는 클리어 조건은 마지막 일곱 번째와 관련이 있었다.
마우이의 바람은 인간들의 생명을 늘려 불멸을 주는 것.
하지만, 마우이의 업적은 여기서 끝나게 된다.
인간들에게 불멸을 선물해주지도 못할뿐더러, 마우이는 그 과정에서 죽게 된다.
그 증거로 자신의 한을 풀어달라는 ‘작은 섬의 대영웅’이자, ‘마우이’의 부탁은 간단했다.
이 게이트에서나마, 자신의 한을 풀어 마우이섬의 주민들에게 불멸을 선사하는 것.
그뿐이었다.
게이트가 사라지면, 그의 한을 풀어주는 것과 동시에 마우이섬 주민들의 삶도 사라지고 말 테지만, 일시적인 상황을 이루어줌으로써 ‘작은 섬의 대영웅’의 한도 풀리는 것.
나는 그런 마우이가 아직도 인간들의 삶에 미련이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반인반신, 마우이가 인간을 너무나도 사랑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바보 같은 반인반신이었다.
현 상황에 마우이가 메시지를 보내오는 이유가 인간들을 생각해서인지, 자신의 미련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마우이가 성운 간의 전쟁이 발발하는 중요한 시점에,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쉽게 알 것 같았다.
제 죽음을 돌이킬 수 없더라도, 자신의 바람을 이루어주기를 바라는 것.
그것이 자신의 ‘카르마’를 소모하고 영원한 소멸로 빠져드는 길이라도, 그에게는 꼭 필요한 일이었다.
게이트라는 일시적인 상황이었음에도 마우이는 자신의 마지막 사명을 이루고 싶은 것이다.
그런 그의 부탁에도 솔직하게 말하자면, 성좌인 그가 죽든지 말든지 상관없었지만, 김영광이 강해지려면 당연하게 지나쳐야 할 수순이었다.
나는… 아직도 나의 죽음 외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영광 씨. 마우이의 기운이 느껴지십니까?”
“네? 아니요. 지금은 조금 평온해졌지만, 아직 아무런….”
“영광 씨만이 느낄 수 있는 기운입니다. 무언가 다른 것이 느껴지면 말씀해 주세요.”
나는 김영광에게 마우이와 관련된 어떠한 기운이 느껴지면 말해 달라 부탁했고, 김영광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 배후성 님을 볼 수 있다니, 마음이 조금 이상하네요.”
“그런가요? 전 제 배후성의 정체도 모릅니다. 좋게 생각하세요.”
“아….”
그렇다.
언제부터인가 메시지를 보내지 않는 나의 배후성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다.
알려줄 생각이 없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도 영…. 알 수 없는 배후성이었다.
망할 놈 같으니.
이상하게도 나의 배후성만 생각하면, 무언가 나에게 떠넘긴 것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감이었지만, 그런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언제쯤 나타날까요?”
“글쎄요. 곧 나타날 겁니다. 사건의 중심은 이 섬이니까요.”
“그런데, 이 섬의 이름과 배후성의 이름이 같네요?”
“본떠 지은 섬의 이름이니까요. 뭐…. 이 시기엔 이 섬의 이름이 마우이는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마우이섬이라 부르는 게 편할 테죠.”
나의 말을 들은 김영광이 무언가 납득이 간 듯, 고개를 끄덕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김도은이 주변을 경계하며, 김영광을 지키기 시작했다.
“도은 씨. 뭐합니까?”
“영광 씨 지키는데요?”
“왜요?”
“영광 씨, 배후성의 게이트잖아요. 혹시 위험할 수도 있을까 봐….”
“아…. 그럼 계속해서 지켜주세요.”
“……?”
김도은이 왜 이렇게 오바를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 게이트에서 이 장소는 김영광과 마우이에게 큰 위험이 되는 장소는 아니었다.
그들에게 위험이 되는 것은 장소를 이동해서였다.
나는 그런 김도은의 비장한 모습에 웃음을 지으며, 계속해서 경계를 부탁했다.
딱히, 할 필요는 없었지만.
하고 싶다는데 어쩌겠는가?
“도은 씨. 듬직합니다.”
“지금 저 놀리는 거죠?”
“설마요.”
“쏠게요. 잘 피해요.”
후웅-!!
“응?”
그동안 장난인 줄만 알았던 김도은이 정말로 자신의 선기 ‘오호’를 사용해 나에게 무형시를 한 발 날렸다.
하지만.
꽤 강해진 김도은이었음에도 나에게는 간단한 공격이었다.
휙!
“처음과 비교해서 꽤 강해진 것 같습니다.”
“아으!!! 약 올라!! 맨날 입만 살아서는!!”
“여러 번 말하지만, 그게 제 매력입니다. 이쯤 되면 이해할 때도 된 것 같은데요.”
“아니요. 이쯤 되니, 계속해서 쏘고 싶은 기분뿐이네요.”
“그 마음 이해합니다.”
“아니요. 이해 못할 거예요.”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투덕거리는 나와 김도은이었지만, 김영광은 평소와 다르게 웃는 모습이 아니었다.
지나친 부담감.
그 부담감이 김영광을 사로잡고 있었다.
자신이 강해져야 김도은을 지킬 수 있을 텐데, 그 강함을 이루지 못한다면 어찌하나… 라는 생각. 나는 어쩐지 그런 김영광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영광 씨. 괜찮을 겁니다. 긴장 푸세요. 재수 없는 말이지만, 언제나 그랬듯 제가 있지 않습니까?”
“하하. 대놓고 말씀해주시니 재수 없지만, 듬직합니다.”
“그렇죠?”
“그렇긴, 개뿔.”
“자…. 슬슬 나타날 겁니다.”
억지로 말장난을 치는 김영광과 툴툴거리는 김도은이었지만, 긴장감을 알게 모르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조차도 느낄 수 있는 기운이 저 멀리서 퍼져 나오고 있었다.
마우이.
“아직까진 괜찮습니다. 긴장 풀고 그의 행동을 주시하세요.”
“네?”
“그래도 돼요?”
“네. 여기서는 별일이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나는 이 게이트에서 마우이의 한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계속해서 불안해하는 김도은과 김영광이었지만, 조금씩 마우이는 다가왔고, 곧 주민들과 마우이가 접촉하게 되었다.
“마우이여, 저희 딸이 죽어갑니다. 제발… 제발 살려주십시오.”
섬의 주민은 마우이를 향해 기도하듯, 부탁했다.
부탁한다고 절대적인 신도 생명 자체를 살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마우이는 남자다움을 뽐내며, 성큼성큼 주민의 딸에게 이동했다.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섬의 주민을 그 무엇보다 사랑하는 마우이는 망설임이 없었다.
“아가, 괜찮으냐?”
“아저씨…?”
“그래, 그래. 나 마우이다.”
“헤헤…. 전 죽나요? 아저씨는 신이잖아요. 절 살려줄 수는 없겠죠?”
“…….”
마우이는 답이 없었다.
“아저씨, 제가 죽으면 우리 엄마…. 잘 부탁해요.”
“조용히 하거라. 내 반드시 너를 구해줄 것이니.”
마우이는 길게 말하지 않고 등을 돌렸다.
터벅, 터벅.
마우이는 죽어가는 소녀를 뒤로한 채, 묵묵히 걸어 나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우리 세 사람은 조용히 마우이의 뒤를 쫓았다.
“지금부터 긴장하세요. 이전에 보았던, <올림포스>의 성좌만큼 강한 존재들이 있을 테니….”
두 사람은 나의 뒤를 쫓았고, 나는 그런 두 사람을 이끌어 마우이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 도착한 곳은 지도에서조차 볼 수 없던 외딴 섬이었다.
“여긴. 어디죠…? 읔…!!”
“안이 씨. 이상한 기분과 함께 지독한 악취가 풍겨옵니다.”
“이곳은 지옥입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죽음의 여신인 히네누이테포가 거주하는 장소입니다. 이곳의 주민들이 죽으면 이곳으로 오게 돼 있죠.”
“그러니까, 지옥 맞네요?”
“네. 지옥이죠.”
“하…. 영광 씨 배후성은 도대체 누구길래 지옥을 들쑤시는 거예요?”
나는 김도은의 질문에 아주 잠시, 생각하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입을 열었다.
“영광 씨의 배후성은 폴리네시아에서 하와이 그러니까, 마우이섬의 영웅이자, 반인반신인 ‘마우이’입니다.”
“아니, 그… 헤라클레스 같은?”
“네. 그보다 더한 악동이죠. 인간을 위해서라면 자기 몸을 사리지 않던….”
“안이 씨의 말을 들으니, 무언가 뿌듯하네요. 제 배후성님이 그런 분이라니.”
“뿌듯해도 좋을 겁니다. 막 나가기는 했지만, 자신보다 하찮은 인간들을 그 누구보다 사랑했으니….”
“그럼 이제, 어떡합니까?”
김영광은 이제야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물었다.
“언제나 그랬듯, 간단합니다. 게이트는 비틀어야 제맛이죠. 마우이를 살리면 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