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1화
내가 원하던 상황은 아니었다.
이 게이트의 내용은 ‘트로이 전쟁’ 그 자체가 아닌, 아르테미스의 굴욕을 풀어주는 것.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그리스군이 출항 전 아르테미스를 모욕했고, 자신의 오빠 아폴론이 트로이 편을 듦으로써 아르테미스도 트로이 편을 들게 된다.
하지만, 상대측 진영에는 포세이돈을 비롯해 헤라와 아테나가 각자의 사정으로 참전한 상황.
제우스는 중립에서 아르테미스에게 마음껏 전투에 참여해도 좋다고 허락까지 들은 상황에서 아르테미스는 신이 나서 날뛰었다.
하지만.
전장에서 날뛰는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남매를 본 포세이돈이 도발을 하자, 아폴론이 숙부와 싸우기 싫다며 정중히 거절하게 된다.
아르테미스는 자신의 오빠인 아폴론이 포세이돈을 피하는 모습에 매섭게 비난한다.
그 모습을 보던 헤라한테 걸려 전에 없던 모욕을 들었으며, 자신의 화살통을 뺏기고 폭풍 싸대기를 시전 당한다.
어찌나 세게 맞았는지, 화살통에서 화살이 우수수 빠져나왔고 결국, 헤라를 어쩌지 못한 아르테미스는 활과 화살통을 버려둔 채로 울면서 자신의 아버지인 제우스에게 이르게 된다.
하지만, 제우스도 아내인 헤라를 워낙 무서워하는지라 그저 달래는 게 전부였고 아르테미스의 친엄마 레토는 딸이 흘린 무구들을 조용히 회수한 사건이 있었다.
남들이 보았을 땐 별거 아닌 이야기일 수도 있는 이 사건은 12주신의 한자리를 꿰차고 있는 아르테미스에게 모욕을 준 헤라를 향한 복수심이 만든 게이트였다.
아르테미스가 모든 신화 속 이야기에서 유일하게 망가진 에피소드.
그 때문에, 이 게이트는 어느 한쪽의 승리와는 전혀 상관없이 아르테미스가 굴욕을 당하지 않게 도움을 주고 그 뒷감당을 해결해야 하는 게이트였다.
한마디로 헤라와 싸우든 눈앞에 세 성좌와 싸워 이기라는 것.
말은 쉬웠다.
성운, <올림포스>는 성운 중에서도 그 크기와 규모가 굉장히 큰 곳이었다.
우리나라의 신화를 주로 다루는 <안락국>과는 그 크기를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지금 당장, 성좌들이 개입할 가능성은 없었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무엇보다 나에게 남은 버프 시간은 고작 5분 남짓.
생각을 해야만 했다.
나는 눈앞에 아웅다웅 말다툼을 하는 일곱 명의 성좌들을 조용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좋은 방법이….
“안이 씨?”
“어떻게 할 겁니까?”
“제 생각이지만… 냅다 헤라와 포세이돈 그리고 아테나를 처치하는 게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어렵지 않을까요…?”
“네. 어려워요. 당장 저희 측 성좌들에게 도움을 받는다고 쳐도 포세이돈은 절대 약하지 않습니다. 저도 장담 못 할 정도로….”
“그럼….”
뜻하지 않은 난처한 상황에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강한 놈을 끌어들이는 마가 꼈나…? 젠장.
갑작스레 떠오른 생각에 잠시 생각이 많아졌다.
이 방법은… 도박이나 다름없는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김도은과 김영광을 불러들였다.
“두 사람 시간 좀 끌어주세요.”
“어쩌시게요?”
“두 분이 시간을 끌어주는 동안 포세이돈을 제거할 겁니다. 상황이 쉬워지면 도은 씨가 헤라를 처치하는 겁니다. 간단하죠?”
“그렇게 간단히 될까요?”
“네. 당장 이 방법이 가장 쉽습니다. 운이 좋으면 빠르게 해결하고 영광 씨의 게이트도 갈 수 있겠네요.”
“좋아요.”
“해보죠. 까짓 거.”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들의 선기를 꺼내 들었다.
오랜만에 보는 김도은의 ‘오호’라는 활과 김영광의 ‘화첨창’이었다.
신기와 부딪힌다면 그 급수는 한참 아래였지만, 이곳은 가상의 장소. 말 그대로 성좌들도 성좌들이 사용하는 신기도 가짜라는 말이었다.
물론, 실제로 성좌들의 개입이 일어나면 감당하지 못할 상황이 다가오고 말 것이지만.
“제 정령화의 시간은 1분뿐입니다. 그 시간 안에 포세이돈을 죽여야 해요.”
“긴장되네요. 포세이돈은 제우스라는 주신만큼 강하지 않나요?”
“맞아요. 정확히 제우스급이지만, 제우스보다는 아래죠. 그렇다고 해도 강한 건 사실입니다. 힘을 내기 전에 처치해야 상황이 쉽게 돌아갈 거예요.”
“그럼… 제가 먼저 나서겠습니다.”
김영광이 자신의 힘을 개방해 앞으로 나섰다. 전투가 벌어지는 상황이 아니었던지, 우리 측 진영의 성좌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인간이여, 진정 숙부님을 상대로 싸우려는 건가? 미치지 않고서야…!!”
“위대하신 그리스의 신들이여, 이것은 전쟁입니다. 부디, 저희 인간을 가엾게 생각하시어 도움을 청합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김영광의 말에 속으로 감탄하는 나였다.
신들이란, 그 존재를 더욱 높여주면 으쓱하는 존재들.
김영광의 선택은 좋은 방법이었다.
“그렇긴 하네만… 헤라와 포세이돈은 강해요. 당신 혼자서는 힘들지 않을까요?”
“으하하하하!!! 자네의 사내다움이 마음에 드는군. 좋다. 난 돕도록 하지.”
아프로디테의 걱정에도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아레스가 김영광의 옆에 섰다.
“저도 돕겠어요.”
“영광입니다. 배후성님.”
“네? 배후성이라니요?”
“아, 아닙니다. 아무튼 영광이에요.”
다음은 아르테미스가 김도은의 옆에 섰고, 그 모습에 조금은 감동한 듯한 김도은이었다.
자신의 배후성과 함께 싸우다니.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게이트 속의 아르테미스는 김도은의 존재를 처음 보는 것이었지만.
“휴. 저 근육 바보는 그렇다고 쳐도… 누이까지 그런다면 어쩔 수 없지.”
“쳇. 이 자리에서 나만 빠지면, 모양 빠지잖아요? 저도 참전하겠어요.”
“감사합니다. 위대하신 그리스의 신들이여.”
마지막으로 아폴론과 아프로디테가 참전을 선언했고, 멀리서 지켜보던 포세이돈이 헛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겁도 없군. 좋다 전부 덤벼라, 이놈들아!!”
포세이돈의 일갈에 전장의 모든 성좌가 자신들의 신기를 소환해내기 시작했다.
처음 아테나와 마주쳤던 강함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힘을 조금 숨기고 있었던 듯, 가짜 신기를 소환해낸 성좌들의 힘은 버프를 사용한 나와 견줄 수 있는 상태였다.
그런 성좌들이 여섯이고 포세이돈 한 명은 그야말로 괴물에 어울리는 강함을 지니고 있었다.
“자…. 후회하거라.”
파앗!
전투의 시작은 포세이돈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되었다.
엄청난 양으로 범람하는 바닷물은 우리를 향해 쏟아졌고, 그 모습을 보던 아폴론이 태양을 담은 힘을 발동해 바닷물을 증발시켰다.
찰나의 순간 벌어진 일이었지만, 놀라고 있을 틈은 없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돕고자, 전투에 가세했고 아테나가 나의 앞을 가로막았다.
“처음과는 다를 겁니다.”
“하하…. 그렇겠죠?”
“한쪽 팔이 없다고 봐주지도 않을 겁니다. 당신은 강한 인간이니까요.”
“쉽게 흘러가지는 않겠네요.”
“그럼….”
아테나의 모습은 처음 봤을 때와는 달리, 황금색의 갑옷과 날개가 달린 투구, 화려하게 빛나는 황금색 검과 알 수 없는 문양이 새겨진 방패를 들고 있었다.
아니… 문양이 아니었다.
저건, ‘메두사’다.
나는 메두사의 힘이 발동하기 전, 화안 금정과 칠정안을 사용해 방어하기 시작했다.
메두사.
마주치는 모든 것을 돌로 만들어 버리는 마녀였다.
본래는 아름다운 여성이었지만, 그리스의 신들 중 누군가에게 저주받아 저런 모습이 되어버린 것으로 알고 있다.
자세한 내막은 중요한 게 아니었지만, 메두사의 얼굴이 문양처럼 박힌 아테나의 방패는 쳐다만 보아도 돌로 변하고 말 것이었다.
“두렵나요?”
“글쎄요. 저한테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 같은데요?”
“그럴 리가…!!”
무지개색의 칠정안과 붉은색의 화안 금정을 개안한 나의 모습에 아테나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신기 그 자체인 아테나의 방패와 부딪혔다면, 칠정안과 화안 금정으로도 힘들었을 수도 있었지만, 눈앞의 방패는 가짜나 다름없었다.
‘그럴 리가 없어. 인간이 어찌…!!’
역시나 그랬듯, 칠정안을 사용하자, 아테나의 속마음이 조금씩 들려오기 시작했다.
파파파팟!!!
나는 그녀의 속마음을 비웃으며, 용광검을 휘둘러 검기를 난사했다.
“크흑…!! 당신, 인간 맞아요?”
“네. 인간입니다.”
당황하는 아테나는 나의 검기를 막으면서도 너무나도 강한 힘에 감탄하듯 물었다.
그러면서도 아테나의 강함은 그저 그렇지 않았다.
나의 검기를 모조리 쳐낸 아테나가 공격을 이어갔다.
후웅!!
휘두를 때마다 엄청난 빛이 일어났다.
성검과 비슷한 힘을 내는 아테나의 무기였지만, 마물이 아닌 나에겐 그 효과가 미미했다.
나는 그런 아테나의 모습에 지지 않고, 공격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검술로는 아테나가 조금 우위였지만, 천마와 파천의 검술을 사용하는 나는 밀리면서도 태극검을 사용해 아테나의 검을 흘려내기 시작했다.
“인간이!!!!”
‘이대로는 내가 위험하다. 죽여야겠어.’
겉으로 내뱉는 말과 아테나의 속마음이 동시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테나는 위기에도 주눅이 들지 않았다.
공중에서 소환된 하나의 창이 아테나의 손에 쥐어졌다.
“그건….”
“제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힘입니다. 신에게 대항한 것을 죽어서 후회하도록 하세요.”
아테나는 황금빛의 검을 창으로 바꿔 들곤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수웅-!!
아테나가 창을 휘두를 때마다 전장은 폐허가 되기 시작했다.
땅은 갈라졌고, 하늘의 날씨는 천둥 벼락을 동반하며 울부짖었다.
“이런 미친…!”
대장장이 중 가장 실력이 좋다고 알려진 헤파이스토스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창.
가짜 신기였음에도 그 강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아테나의 공격을 막아내면서도 주변을 둘러 김도은과 김영광의 생사를 챙기기 바빴다.
생각보다 이 전투는 힘들어질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었다.
아테나가 전력을 다하자, 나 또한 전력으로 그녀와 전투를 이어갔다.
오고 가는 스킬은 서로에게 치명상을 줄 수 있을 정도로 강렬했다.
그리고
우리들의 전투에 아프로디테가 개입했다.
“제법, 강하네요. 그 정도로 아테나를 이길 수 없답니다. 제가 돕도록 하죠.”
“어?”
갑작스레 나타난 아프로디테는 나에게 버프를 걸기 시작했다.
이민영이 걸어주던 버프와 비슷했지만, 가짜여서 그런지 그 효과는 조금 약했다.
“감사합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모든 체력과 마력이 회복되며 나의 능력치가 상승했고, 내가 사용하던 버프의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울부짖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테나를 향해 말했다.
“끝내야겠습니다. 할 일이 많아서죠.”
“자신감이 넘치는 인간이구나. 해보거라!”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스킬 중 가장 강한 스킬이었다.
하지만, 아테나의 힘으로 울부짖고 있는 상황에 이 스킬을 사용한다면 더욱 강한 힘을 낼 것이었다.
[스킬 [파천 만뢰공 LV MAX]을 발동합니다.]
쿠릉- 쿠르릉!!!!
“갑니다. 위대한 지혜와 전쟁의 여신이여.”
용광검을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리긋자, 만개의 천둥 벼락이 아테나를 향해 쏟아졌다.
그리고
모든 천둥 벼락을 받아들인 아테나는 넝마가 되어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제, 제법…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