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8화
다른 예언들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의 충격이었다.
‘이럴 수가….’
“이 기억 확실한 겁니까…?”
“확실하네. 이 예언은 ‘조율자’님의 힘이 깃들어 있으니까 말일세.”
욕이 나올 것 같았다.
내가 ‘이지은’이 아닌 다른 세상을 지키고 이겨 나가는 사이에 ‘이지은’은 죽었다.
그것도… 처참하게 갈기갈기 찢어져 죽었다.
‘망할 새끼들이…!!!’
당장 돌아갈 방법을 찾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마왕’을 죽이고 ‘미션’의 진행으로 ‘외부세계’로 돌아가는 방법뿐이었다.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하루라도 빨리 ‘이지은’에게 가야만 했다.
“시작하죠. 무엇부터 하면 됩니까.”
“용사여, 무엇이 그리 급한가? 용사로서 자네의 힘을 키워 강해지는 게 당연한 일인 것을.”
“아닙니다. ‘마왕’을 물리치면 됩니까? 지금 제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제가 죽더라도 용사라는 것은 하지 않을 겁니다.”
“허허…. 고집이 센 용사군…. 알겠네. 메리야, 용사에게 필요한 것들을 지급하고, 시스템에 대해 알려 주도록. 그리고 용사와 함께 온 자를 동행 시키도록 하여라.”
“알겠습니다. 아버님.”
잠시간 대기하라는 말에 처음 눈을 뜬 곳에 서 있었다.
시스템에 대해 간략하게 들은 나는 대략적인 걸 파악한 후 이동할 채비를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즐비했지만, 게임과 비슷한 이 시스템에 대해서 나는 간단히 이해하고 말았다.
‘빨리 끝내고 지은이를 살려야 해….’
상황을 냉정하고 이성적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예언을 보고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지은’을 잃는 것은 나의 모든 것을 잃는 것과 같았다.
나를 버릴지라도 살려야만 했다.
끼이익.
“용사님 이분입니다.”
“당신이군요. 제 이름은 신지훈. 당신이 일어나기 전, 공주에게 모든 걸 들었습니다. 용사가 아닌 이상 당신만큼 강하진 않겠지만 같이 가겠습니다. 저 또한 찾아야 할 게 있으니 앞으로 ‘대장’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차정우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이름만을 알려 주었다.
당장, 이지은을 살려야 하는 나였기에 신지훈의 목적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도… 그만의 사정이 있겠지 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용사님 저희 측에서 대마법사 ‘멀린’님과 회복을 위한 최고위급 성녀님이 같이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됐습니다. 저자만 있으면 됩니다. 빨리 끝내고 돌아오죠. 누군가를 붙여 준다면 불편하기만 할 뿐입니다.”
“....알겠습니다. 예언에서 무엇을 봤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당신의 무사 귀환을 바랍니다.”
“다녀오겠습니다.”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나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나는 ‘마왕’을 죽이고 최대한 빠르게 ‘외부세계’로 돌아가야만 했다.
내가 의식이 없을 때, 이미 ‘시스템’이 활성화되었지만, 예언을 본 것만으로 모든 걸 파악 할 수 있었다.
‘시스템과 여러 가지 정보를 종합적으로 알게 된 내 첫 번째 목표는 7일의 기간 동안 ‘마왕’을 죽이고 다음 페이즈에 도달하는 것.’
내가 본 스킬들은 용사만의 특혜인지는 모르겠으나 꽤 많은 것들이 있었다.
그중에 나는 [대현자의 지식 LV MAX]을 사용했고, 이내 시스템의 알림이 울리기 시작했다.
[대현자의 지식 LV MAX]의 효과로 인해 ‘내부세계’의 지식을 깨우칩니다.]
깨우친다는 게 이런 것이었을까?
내가 알지 못하는 지식은 내 기억인 것처럼 ‘내부세계’의 모든 걸 알 수 있게 되었다.
준비를 모두 마친 후. ‘신지훈’에게 말했다.
“가지.”
“네, 대장.”
* * *
“신지훈이라고 했나? 정확히 지금은 며칠 차라는 거지?”
“저희는 현재 1일 차에요. 대장이 정신을 차리기 직전에 ‘미션’이 시작됐습니다. 저희가 살던 ‘외부세계’는 이미 2일 차라고 하더군요.”
“왜 차이가 나는 건지 알고 있나?”
“각 세계 간 강함의 차이로 밸런스를 조절한다고 들었습니다만, 저도 정확한 건 모릅니다.”
예언을 보았고 여러 가지 지식들이 나에게 들어 왔다고는 하나, 정확하게 모든 미래를 아는 것은 아니었다. 확실한 건, 눈앞의 저 마물들은 ‘이지은이 존재하는 ‘외부세계’에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은 더 급해지기만 했다.
“난장판이군.”
“그러게요.”
나와 신지훈은 왕궁을 벗어나 도시의 중심가로 나갔지만, 이미 마물들에 의해 난장판이었다.
처음 보는 마물들임에도 나와 신지훈은 무서워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이미 많은 수의 스킬이 있었고, [이성적 사고 LV MAX] 라는 스킬은, 처참하고 눈으로 보기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침착함을 유지하게 도와주었다.
그 때문인지, 처음 정신을 차렸을 때도 이성을 유지하고 차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시스템의 각성과 함께 생긴 이 스킬 덕분인 것 같았다.
“무섭지 않나?”
“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전 이미 용사의 조력자라는 직업을 얻었습니다. 여러 가지 스킬 중[이성적 사고 LV MAX] 라는 것도 생겼고요. 스킬 덕분인 것 같은데요?”
이세계에 같이 와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신지훈 또한 나와 같은 스킬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그러려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걱정할 필요는 없겠군.”
“제 무기는 ‘활’입니다. 엄호할게요.”
곧바로 성검(聖劍), 아르담을 꺼내 들어 눈앞에 마물들을 향해 나아갔다.
스릉 - 후웅!
검을 뽑아 근처의 마물들을 베었고, 나에게 다가오는 마물들은 신지훈이 마무리를 해주었다.
첫 전투이기에 생각보다 어려울 거라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나와 신지훈은 꽤 많은 혜택을 받고 시작한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한들 이곳은 애초에 검과 마법의 세계. 당장 시야에 보이는 ‘모험가’라는 자들은 능숙하게 무기를 다뤘으며, 마법 또한 수준급으로 사용했다.
“호오 제법 하는군, 신입 모험가인가?”
“꺼져라.”
“대장, 급발진…. 마물이 우선입니다.”
“안다.”
사람들을 일일이 상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갈 길이 멀었기에 눈앞에 보이는 마물들을 그대로 썰어내며 이동했다.
“이봐!!”
후웅 - 챙!
자신을 무시하기라도 하는 듯한 말투에 화가 난 근육질의 남성은 들고 있던 도끼를 휘둘러 공격했다.
“꺼지라고 했을 텐데?”
“어디서 배워먹은 싸가지냐? 난 B급 모험가라고!!”
나는 이제 막 전투를 시작했지만, B급 모험가에게 밀리지 않았다.
용사의 기본 능력치와 스킬들은 대단했던 것이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근육질의 남성은 얼굴이 빨개지더니, 자신의 스킬을 사용해 덤비려는 순간이었다.
“이봐 헌트!! 애송이들 상대할 시간 없다고. 와서 마물이라도 한 마리 더 잡으라고!!”
“쳇…. 이봐. 운 좋은 줄 알라고.”
누군가의 외침에 멈칫한 근육질의 남성은 씩씩거리면서도 공격을 멈추고 돌아섰다.
“대장 괜히 적만 늘리는 겁니다. 진정하세요.”
“……가지.”
신지훈의 말이 괜히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한시가 급한 나는 신지훈에게 이동을 재촉했다.
그러자, 신지훈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대장. 원래 직업이 뭐였습니까?”
“그게 지금 중요한가?”
“아무래도 대장은 히키코모리, 은둔자, 독고다이 같은 게 어울립니다. 결혼은 하셨습니까?”
“……죽고 싶나?”
“어휴…. 이봐, 이봐. 말투 딱딱한 거. 이래서는 이곳에서 만나는 족족 시비가 걸리고 말 겁니다.”
“……”
신지훈의 말에 조금은 움찔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나는 그런 신지훈을 노려보기 바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조금은 참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가는 곳마다 시비가 붙으면 마왕은 어떻게 잡을 겁니까?”
“맞는 말이군.”
“아까도 그래요. 그 덩치한테 ‘예. 신입 모험가입니다. 저희도 돕겠습니다.’라고 했으면 그냥 넘어갈 상황이었다고요.”
“그냥 넘어가지 않았나?”
“……그 덩치의 일행이 아니었다면, 싸움이 먼저 났겠죠.”
“그렇군.”
신지훈이 팩트만 콕콕 집어서 말하자, 할 말이 없었다.
본래 내 성격이 이런 걸 어떻게 하겠는가?
“앞으로 대화는 제가 하겠습니다. 대장은 뒤에 서서 분위기잡고 왕처럼 계십쇼.”
“……그러면 되는가?”
“그 말투부터 어떻게 하시구요.”
“노력해보지.”
“에휴….”
신지훈의 깊은 한숨이 진심이라는 것쯤은 간단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본래의 세계에서도 사회생활에 젬병이었고 그걸 정확하게 캐치한 나는 나 혼자 할 수 있는 직업을 돈벌이로 삼았다.
일러스트레이션, 웹소설, 동영상 편집자 등.
혼자서 할 수 있는 직업은 대부분 손을 대었다.
그 중 나와 가장 맞는 건 ‘일러스트레이션’이었고, 우연한 계기로 ‘이지은’과 만나 연인으로 발전한 것이었다.
가장 의문이 드는 건, 이런 성격을 지니고 있음에도 나를 사랑해주고 누구보다 나의 편이 되어준 건 아직도 그녀에게 궁금한 것 중 한 가지였다.
나는….
어린 나이에 가족을 잃었고, 평생을 사랑하는 사람도 없이 혼자서 자라왔기에, 감정이 너무나도 무뎌져 있었다. 그런 나에게 단 하나뿐인 사람이 되어준 것이 이지은.
나는 그녀에게 돌아가야만 했다.
“그나저나, 이제 어디로 갈 겁니까?”
“마왕을 죽이러 가야지 않겠나? 내가 목적이 있듯, 네놈도 목적이 있을 테니. 그 목적은 마왕을 물리쳐야만 가능한 목적이지 않은가?”
“후….”
나의 말에 한숨을 땅이 꺼지라 쉬던 신지훈이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대장. 마왕은 지금 당장 죽일 수 없습니다. 저희는 강해져야 하고요.”
“강해지면 된다.”
“아니…. 그러니까 강해지는 방법은 자고 일어나서 강해졌다! 이게 아니라구요.”
“그건 나도 알고 있다.”
“와. 이 사람 진짜 대박이네. 차근차근 강해져 마왕을 죽여야 한다구요. 마왕은 이미 만렙이고 저희는 이제 시작한 뉴비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아요?”
“…….”
신지훈은 정곡이라도 찔렀다는 듯, 의기양양하게 나를 향해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저희는 미션을 진행하면서 강해져야 하는 게 첫 번째에요. 그러면서 미션의 끝에는 결국, 마왕을 죽이라는 미션이 있을 거고요.”
“확실한가?”
“네. 메리라는 공주의 말에 의하면 확실해요. 그러니, 고집 그만 부리고 제 말 좀 믿으세요. 안 그러면 둘 다 목적도 못 이루고 죽고 말 겁니다.”
“……알겠다. 믿어보지.”
마음은 조급했지만, 나는 진실성 있게 말을 하는 신지훈의 말을 믿기 시작했다.
“그럼, 뭘 해야 하지?”
신지훈은 허공에 손질하며, 무언가를 바라보는 듯 읊기 시작했다.
“첫 번째 미션, 멸망이 시작된 이 세계에서 살아남으십시오. 평소보다 마물이 강해지고 그 종류가 다양해집니다.”
신지훈은 시스템의 말을 나에게 읽어주며 자신의 활을 꺼내 들었다.
“레벨부터 올리시죠?”
“그거면 되는가?”
나는 성검, 아르담을 꺼내 들어 주변에 보이는 마물을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마물들이 약하기도 했지만, 용사의 능력치를 더불어 혜택을 받은 나의 힘은 상상 이상이었다.
“와….”
간단하게 마물들을 쓸어버린 나는 신지훈을 향해 말했다.
“내가 만화는 진짜 많이 봤는데, 진짜네. 용사는 사기라더니….”
“가지. 마왕은 내가 죽이겠다.”
그렇게, 싱크홀에 떨어진 용사, ‘차정우’는 얼떨결에 떨어진 ‘신지훈’과 함께 이세계를 평정하기 시작했다.
그 강함은 역대 용사 중, 두 번째로 강했으며 얼떨결에 떨어진 신지훈도 이세계에서 이름을 떨쳤다. 두 사람은 예언에서 본 모든 세계의 문 열리기를 바라며,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 * *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고, 나는 신지훈과 함께 마왕을 토벌했다.
여정 속에서 죽을 뻔한 사건도 많았지만, 결국 강해지는 것에 성공했고 ‘정령왕’의 거처에서 ‘이안’을 만나면서 ‘이지은’의 생존을 조금이나마 높일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더 흐르며, 미션을 계속해서 수행해나갔다.
외부세계로 이동해 ‘이지은’을 만날 때까지….
“대장, 이제, 문이 열립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외부세계’부터 장악하는 것이다. 그래야 너와 나의 바람을 이룰 수 있을 테니.”
“물론이죠. 그놈이 있겠죠?”
“그렇겠지.”
“그럼, 그놈은 대장한테 맡기겠습니다.”
신지훈과 대화를 이어가던 중, 이세계의 최후룡 ‘다이아나’가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그놈? 그놈이 누군데? 대장만큼 재미있는 놈이야!?”
“넌 상대가 안될 것이다. 신지훈을 엄호해라.”
“칫. 궁금한데....”
어느새 늘어난 이세계의 동료들과 함께 그레이트 홀 앞에 섰고, 곧 우리들의 눈앞에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그레이트 홀이 하늘과 지상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지은을 못 구했다면, 난 네놈을 찢어버릴 것이다. 이안…!!‘
모든 세계의 문이 열리며, 가장 처음으로 조우한 것은 ‘외부세계’의 최강자인 ‘이안’이었다.
여전히 재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한쪽 팔의 부재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자신감이 넘쳐 보이는 ‘이안’이었다.
이놈을 쉽게 말하자면, 그냥….
단순했다.
또라이.
“왔냐?”
그렇게, 세계의 문이 열린 순간. 나와 이안의 두 번째 만남이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