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107화 (107/206)

제107화

episode(11.5) 용사, 차정우

그날은 구름 한 점 없었다.

일기예보에는 태풍이 올 거라 했기에 길거리에 수많은 사람은 모두가 우산을 들고 있었다.

심지어 장화나 우비를 착용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날은 이상하리만치 맑고 화창한 날이었다.

‘일기예보는 역시 믿을 게 못 되는군.’

일기예보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길거리에 있었고, 나 또한 그곳에 있었다.

가족이 없는 나에게 단 하나, 내 편인 여자친구 ‘이지은’과 데이트를 하던 중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생각은 무슨, 날씨가 너무 좋아서 잠시 멍해졌을 뿐이야.”

“그렇지? 이상하게 너무 좋다. 이런 날 도시락 싸서 한강에 소풍이라도 가면 좋을 텐데.”

“오늘은 우리 집으로 가자. 같이 도시락 싸서 내일 소풍 가면 되지.”

“헤헤, 좋지. 맥주도 한잔할까?”

“응. 영화도 재밌는 거로 보자.”

너무나도 평범하고 날씨 좋은 하루였을까?

어째서였는지는 몰라도 이상한 기분이 계속 들었다.

단순히 기분 탓이라 생각하고 넘겼지만, 이상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정우야 #$%#$%@”

길거리를 걸으며 구경을 하던 중 멍하게 걷는 바람에 ‘이지은’과 잠시 떨어졌다.

‘이지은’은 멀리서 나를 부르며 손짓했다.

빨리 이쪽으로 오라는 손짓하는 ‘이지은’의 눈앞에는 노점상과 꽃이 있었다.

꽃이 예쁘니 빨리 와서 같이 보자는 거였을까?

거리가 멀어져 무슨 말인지는 들리지 않았다.

들리지는 않았지만,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아…. 너무 멀어졌다.’

이상한 기분에 계속 멍해졌던 나는 몸을 돌려 ‘이지은’에게 가까워지는 순간이었다.

쿠콰콰쾅!!

‘어?’

내가 서 있던 지면은 그대로 가라앉아, 그대로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강남 한복판에서 ‘싱크홀’이라니.

빨려 들어가는 순간, 누군가가 나의 팔목을 잡아챘다.

남성의 손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여리고 고운 손이었다.

“정우야!!!!”

“이거 놔…. 너만은 살아….”

“내가 구해줄게. 정우야…!!”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순식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나의 머릿속을 헤집어놓았다.

나의 손을 잡은 사람은 나의 연인, 이지은.

방법이 없었다.

이대로라면, 둘 다 죽는 것은 기정사실.

결론만 놓고 말하자면, 한 명은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나는 결정할 수 있었다.

이지은이 손을 놓지 않는다면, 내가 놓을 수밖에.

살고 싶었다.

이지은과 함께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내가 싱크홀 밖으로 나가려 힘을 준다면 이지은도 같이 떨어지고 말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아니, 바보가 아닌 이상 모를 리가 없었다.

“미안하다. 너 혼자 두고 가고 싶지는 않았는데.”

나는 나를 잡은 이지은의 두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몰랐다.

싱크홀이 이세계로 통하는 문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기다려주면 다시 찾아가겠다고.

말해주었을 텐데.

“널 두고 가서 미안해…. 너무 힘들어하지 마.”

이지은의 손을 뿌리친 나는 싱크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그녀가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내 외침이 그녀에게 닿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지은의 입이 뻐끔거렸다.

무슨 소리인 줄은 모르겠지만, 눈물을 흘리던 그녀의 모습에 가슴이 아려왔다.

죽기 전에 이지은이 나에게 한 말이 무엇인지, 그것만 알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 할 틈조차 나에겐 없었다.

“으…. 으아악!!!! 으읍…!!!”

나도 모르게 나오는 비명은 참을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싱크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나의 전신에 엄청난 압력과 중력의 힘이 나를 눌러댔다.

그렇게, 끝도 없이 떨어져 가던 중 한 사람이 ‘싱크홀’로 빨려 들어왔다.

처음엔 ‘이지은’이 나를 구하려 같이 뛰어들었을까? 싶었지만, 목소리의 주인은 여자가 아닌 남자였다.

“으아아아악!!!”

그 모습을 보며 엄청난 압력에 정신을 잃었다.

* * *

‘뭐지…. 죽지 않은 건가?’

정신이 서서히 들어 눈을 살며시 뜨자 눈앞에는 마치 중세시대에나 입을 법한 화려한 드레스의 복장을 한 여인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서히 눈의 시력이 돌아왔고, 그다음은 입을 열어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확실한 것은 내 눈앞의 여인은 ‘이지은’이 아니었다.

“용사님 정신이 드십니까?”

“……?”

‘내가 느끼는 이 감각들은 지극히 현실적인 것. 이건 꿈이 아니다.’

“누구지? 왜 날 용사라고 부르는 거지?”

“전 이 나라의 공주이자 소환 술사입니다. 메리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그걸 물은 게 아닐 텐데?”

“준비되셨다면 저 문을 향해 나오세요. 모든 걸 알려드리겠습니다.”

‘메리’라는 공주는 문을 나서며 나를 지긋이 쳐다보고는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현재 내가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다만, 알 수 없는 이곳은 내가 살던 세계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중세시대…?’

의문만 가득한 채 나는 몸을 일으켜 문으로 향했다.

나가서 이야기를 듣지 않는 한 내 머리로는 알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생각을 정리하며, 문을 열기 위해 걸어 나갔다.

하지만, 정리한다고 해서 정리가 될 생각이 아니었다.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끼이익.

문을 나선 나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태어나서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런 광경이었다.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왕족의 가문들이 사는 거대한 성 같았다.

엄청난 높이에 매달린 샹들리에와 내 시야의 끝에는 왕이나 앉을 법한 화려한 의자가 배치되어 있었다.

그 주변에는 왕을 기다리는 신하들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일렬로 서 있었다.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자신을 공주라고 소개한 메리가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용사님 이쪽입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

공주는 나를 양쪽에 일렬로 선 사람들의 중간으로 안내하더니 이내 화려한 의자의 맞은편에 세워두곤 중심지에 있던 화려한 의자의 옆으로 이동했다.

“곧 나오실 겁니다.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

의문만 가득해져 가던 때에 수염이 덥수룩하고 위엄 있어 보이는 남자가 다가와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그대가 백 년 만에 소환된 용사인가?”

평소대로라면 냉정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나는 지극히 차분하고 냉정했다.

이런 곳에서 눈을 뜬 것도 알 수 없는 상황에 다짜고짜 용사라니? 내 머리로 알 수 있는 건 한 가지 있었다. 나를 소환 한 건 저 ‘메리’라는 여인. 그렇다면 본래의 세계로 돌려보낼 수 있는 것도 저 여인일 것이었다.

‘밉보여서 좋은 건 없다. 상황 설명부터 들어야겠어.’

“제가 용사인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다만, 상황 설명을 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아직 설명을 안 해준 것인가?”

“네. 아버님. 지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공주는 나에게 소환된 이유를 말해주었다.

공주의 설명에 의하면 이세계는 ‘내부지구’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우리가 살던 세계인 외부지구의 깊숙한 안쪽에 존재하는 미지의 세계라는 것과 대마법사 ‘멀린’의 예언으로 인해 ‘마왕’과 ‘미션’을 위해 나를 소환했다는 것.

내가 의식을 잃었을 때 이미 나는 ‘시스템’을 각성해 스킬들을 터득했고, ‘미션’이 시작되었다는 것과 ‘마왕’은 벌써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무슨 말인 줄은 알겠습니다만, 제가 돌아갈 방법도 있습니까?”

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반쯤 믿으면서도 머릿속엔 온통 이지은의 생각뿐이었다.

“네. 물론입니다. 단순하게 말씀드리자면, ‘마왕’을 처치하시면 ‘미션’으로 인해 ‘외부세계’로 이동할 수 있으십니다.”

“내가 용사로 선정된 이유는?”

“그건 저희도 모릅니다. 다만, ‘외부세계’와 ‘내부세계’에는 조율자라는 ‘신’이 존재합니다. 그분의 선택이었겠지요.”

의문스러운 것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시스템’의 덕분인지 매우 차분하고 냉정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내가 거절한다면?”

“……그러지 않기를 바랍니다만, 용사님이 거절하게 된다면 저희는 현재는 약한 용사님을 죽이고 조율자님의 선택을 받은 다음 용사님을 소환할 것입니다. 협박은 아닙니다만. 가족들과 연인을 볼 일은 없어지겠죠.”

“협박은 아니지만, 협박처럼 들리는군.”

“그렇게 들리셨다면 죄송합니다.”

공주와의 대화가 거의 끝나 갈 즈음 왕은 나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강제로 시키지는 않겠네. 다만, 용사로서의 본분을 지켜준다면 ‘용사의 검’과 함께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걸세.”

“제가 ‘마왕’만 죽인다면 확실하게 돌아갈 수 있는 겁니까?”

“그렇다네. 돌아가기 싫어도 돌아가게 될 것이야.”

“알겠습니다. 해보죠.”

내가 동의하자 무표정의 차갑던 공주는 그제야 환하게 웃었고, 왕이라 불리는 자는 신하를 시켜 ‘용사의 검’을 가져오라 지시했다.

방법이 없었다.

나를 소환한 ‘메리’라는 여성은 내가 이곳의 마왕을 물리쳐주기를 바랐고, 나는 돌아가야만 했다. 하지만, 돌아가기 위해서는 마왕을 죽여야만 가능한 것.

저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마왕을 죽이면 내가 살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확률이 조금이라도 높아지는 것이었다.

왕의 지시에 따른 신하가 용사의 검을 가져다 내 앞에 두며, 고개를 숙여 나에게 인사했다.

“이 검은 대대로 용사들만 사용한 검일세. 모두 여덟 자루가 있지만, 현재 자네는 한 자루만 사용하기도 벅찰 것이야. 일단은 이것부터 받게.”

“감사합니다.”

왕이 내게 하사한 검은 성검(聖劍), ‘아르담’ 이었다.

말 그대로 검이었지만 느껴지는 건 무척이나 신비롭고 아름다운 느낌의 검이었다.

‘검이 이렇게 아름답다니….’

검을 보며 속으로 감탄하던 중 공주와 후드를 뒤집어쓴 사람이 나에게 다가왔다.

“다음으로 예언의 구슬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예언은 단 한 번. 용사님만이 볼 수 있습니다. 저희가 본건 전체적인 부분 중에 일부분입니다. 하지만, 용사님은 상세하게 보이실 겁니다. 그것이 용사의 역할이니까요.”

“구슬에 손을 갖다 대고 눈을 감게. 그럼 예언이 자네의 기억처럼 변해 스며들 걸세. 미래를 알 수 있는 것이지.”

“…….”

나는 손을 뻗어 구슬에 대었다.

눈을 감자, 전혀 보지 못했던 장면들이 내 기억 속으로 스며들어왔다.

내가 겪지 않았지만, 내가 겪을 미래. 하지만, 내 기억으로 스며들어온 기억은 내가 겪을 미래였기에 이미 겪은 상황처럼 기억 속에 섞이기 시작했다.

“웁…. 우웁…”

온갖 기억이 스며들자 구역질부터 나왔다. ‘마왕’, ‘미션’, ‘내부세계’, ‘외부세계’ 등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었지만, 내 기억의 일부분이 되자 모든 걸 알 수 있었다.

현재의 나에게 가장 중요한 기억은 ‘이지은’의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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