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3화
공중으로 떠오르는 인티의 모습에 공포감마저 들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것뿐이었으면, 스킬 냉정의 효과로 인해 어찌 저찌 상쇄될 것 같았지만….
아니었다.
잘려 나간 왼팔에서 정령화를 시전해 마력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가짜 팔에서 소름이 돋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자 왼팔의 형상이 이리저리 튀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침착하자, 침착해야 해.
온전한 힘을 내지 않았음에도 인티의 강함은 나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이미, 버프의 사용으로 능력치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음에도….
“뭘….”
당황한 나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단순했다.
단순했지만, 내 입에서 나온 말과 드러나는 표정은 나의 감정을 보이기엔 충분했다.
“인간이여, 겁이 나는가?”
“안 난다면 거짓이겠죠?”
“그런데도 침착하군. 대단해. 인간의 몸으로 말이야.”
“……”
터질 것 같은 나의 감정과는 다르게, 인티와 해와 달, 삼족오의 표정은 그저 평온해 보이기만 했다. 마치,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
이 정도의 버프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온몸이 떨려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나였기에 김도은과 김영광이 있는 곳을 슬며시 쳐다보았다.
“아아, 네놈의 일행들은 걱정하지 말거라. 해와 달이 지켜주고 있지 않으냐. 한데….”
“……!?”
콰쾅!!!!
“감히, 나 인티를 눈앞에 두고 한눈을 파는 것이냐?”
갑작스레 손을 휘둘러 오브의 형태로 압축한 화염을 던지는 인티였다.
“크윽…!!!”
용광검과 태극검을 이용해 화염구를 겨우겨우 피해냈지만, 근방에서 터지는 후폭풍의 여파로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이게 무슨 짓…!!!”
“인간이여, 시험을 통과해 보거라.”
“무슨 말입니까!? 당신의 시험은 버티는 것 아니었습니까?”
“아아, 그랬지. 하지만 말이다. 내 무척이나 궁금해서 말이야.”
아무래도 알 것 같았다.
이들이 바라보아도 나의 힘은 인간임에도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힘의 정체가 궁금한 것은 당연지사.
단순한 나의 감일 뿐이었지만, 혹시라도 나를 태양신들이 거주하는 ‘황금 도시’로 끌어들인다면, 자신들의 입지가 더욱 높아질 것이기 때문에 갑작스레 행동을 변경한 것 같았다.
젠장, 적당히 해야 했었나? 쉽게 가려고 무리했더니.
“자, 강한 인간이여. 나 태양신 인티의 앞에서 증명해보아라!!!”
인티는 더욱 거센 태양의 열기를 온몸에 두르고 나를 향해 광기 어린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방해꾼은 없다. 온 힘을 다하거라. 나를 한 방이라도 건드리면 네놈이 이긴 것이다!!!”
“그 말 후회하지 마십시오.”
식은땀이 흐르고 공포라는 감정이 강하게 밀려 들어왔음에도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나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인티는 두 팔을 벌리고 나를 맞이했다.
그리고
정령화의 남은 시간이 없던 나는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30초.
몰아붙이면 승산은 있다.
능력치의 상한을 뛰어넘은 나는 초속 비행과 질주라는 두 스킬을 사용해 인티의 시야를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손오공의 분신술이 아니었음에도 분신과 같은 환영들이 내가 지나간 자리에 일렁였다.
샤샤샥!!
실체가 없는 환영이었음에도 지나치게 빠른 속도는 실체와 같은 힘을 낼 수 있었다.
나는 곧바로 용광검을 강하게 쥐었다.
까드득!!!
검이란 본래, 한 손보다는 양손에 쥐고 휘둘렀을 때 그 힘의 증폭이 강한 법.
그 위력의 상승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두 배 이상의 강한 파괴력을 낼 수 있었다.
“그거 아십니까?”
계속해서 움직이던 나는 수십 개의 환영 속에서 인티를 향해 말했다.
“이 상황에 말을 걸다니, 배짱이 제법 두둑하구나.”
“검은… 한 손보다 두 손으로 쥐었을 때 더욱 강한 법입니다.”
“그걸 모르는 멍청이도 있는가? 검을 쓰지 않는 나도 쉽게 안다만?”
“그러니까요. 그 아는 걸 보여드리겠습니다.”
“무슨 말을….”
당연하다면 당연한 소리였다.
나는 여태까지 그 당연한 소리를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무림계 게이트에서 아미파의 대사저를 구하다 왼쪽 팔을 잃었기 때문에.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정령화로 인해 왼쪽 팔이 생긴 나였기 때문에 이전과는 다른 전투법을 행할 수 있었다.
슈숙!
나는 재빠르게 인티의 정면으로 이동했다.
보통이라면 뒤쪽이나 머리 위로 이동해 기습을 가하는 게 맞는 방법.
그런데도 정면으로 이동한 이유는 간단했다.
인티 정도 되는 강자에게 편법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내 몸이, 내 감이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마력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왼팔과 온전한 오른팔의 두 손을 사용해 강하게 쥔 용광검을 위에서 아래로 강하게 그어냈다.
콰콰콰쾅!!!!!!
단순한 휘두름이 아니었다.
버프를 사용해 한계를 넘어선 능력치를 더해 이 강한 힘을 두 손으로 전개해 파천신군, 윤민의 무공을 사용했다.
회심의 일격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온 힘을 다한 나였다.
“제법이군. 역시 자네는 태양신의 재목에 딱인 듯하군. 관심이 있는가?”
엄청난 폭음 속에서도 인티는 아무런 공격도 받지 않았다는 듯 평온해 보이기만 했다.
손가락 하나.
나의 일격을 막은 것은 태양의 힘을 사용한 것도 자신의 성흔을 사용한 것도 아닌, 손가락 하나였다.
황당함에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리.
“관심 없습니다. 그럼, 계속해서 받아보시지요.”
“아직도 그럴싸한 공격이 남아 있는 것인가? 어디 해 보거라.”
어린아이 재롱잔치를 보는 듯 인티의 표정엔 흥미와 즐거움이 가득해 보였다.
자신이 기르는 애완 강아지가 재롱을 부리는 걸 보는 표정.
자존심이 상했다.
나의 눈앞에 있는 ‘인티’는 태양신이자, 사라진 ‘황금 도시’의 주인인 잉카 제국의 최고신이었다. 하지만, 그런 신의 무시에도 자존심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까득. 까드드득!!!
앙다문 입에서 ‘까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힘을 주었다.
남은 시간은 10초.
나는 최후의 발악을 하기 시작했다.
무쌍 난무와 파천 신공의 조합해 검기를 사방팔방으로 날려대기 시작했다.
속성부여를 사용해 검기에 밀어 넣은 수(水) 속성.
샤사사삭!!!!
모든 방향에서 쏟아지는 검기는 인티를 어지럽게 했지만,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는 인티였다.
계속된 공격에 그의 시야가 흙먼지 속으로 가려지기 시작했다.
“시야를 가리려는 건가? 어린애 장난 같군.”
희뿌연 흙먼지 속에서 인티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검기를 날렸고, 수속성이 담긴 검기는 인티를 조금씩 젖게 만들었다.
5초.
쿠릉!!! 쿠르릉!!!
나는 ‘파천 만뢰공’을 사용해 낼 수 있는 최대치의 양을 만들어냈다.
능력치의 한계를 돌파해 사용한 파천신군의 최종식은 거대한 홀의 천장을 금방이라도 부숴버릴 듯 천둥 벼락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4초.
이 모든 스킬을 조합한 나는 용광검을 높이 들어 인티를 향해 내리그었다.
쿠콰콰콰쾅!!!!
파천만뢰공의 천둥 벼락은 인티만을 향해 일제히 쏟아져 내렸다.
정령화의 시간이 끝나 가는 걸 감지한 나는, 모든 마력을 파천 만뢰공에 집중시켰다.
“헉…. 허헉…. 콜록, 콜록.”
티끌조차 남지 않는 마력에 거친 숨과 함께 마른기침이 터져 나왔다.
1초.
쿠콰콰콰콰쾅!!!!!
수십만 개의 천둥 벼락이 인티에게 모두 쏟아져 내리자, 나는 상황을 바라보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모든 버프를 사용했고, 지나치게 강해질 수 있는 정령화.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스킬들을 사용한 나는 정령화가 끝나며 사라진 왼쪽 팔을 바라보았다.
계속해서 없었으면 괜찮았을 걸, 있다가 없으니 허무한 기분마저 들었다.
쿠구구구구
천둥 벼락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엔 희뿌연 연기만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벼락의 힘을 증폭시키기 위한 수속성을 담은 검기.
온몸이 젖은 상태에서 쏟아진 파천 만뢰공의 벼락은 그 위력이 몇 배는 올라있었다.
제발…. 제발, 제발!!!
나의 시야에서 걷히는 흙먼지의 중심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죽이지는 못할지라도 아주 조금의 상처라도 낸다면 나의 승리나 다름없었다.
나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인티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파직-!! 파지지직-!!
공격의 여파는 아직도 이어지는 중이었다.
흙먼지를 휘감고 있는 파천 만뢰공의 천둥 벼락이 스파크처럼 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풀린 두 동공을 하곤, 숨을 헐떡이는 나의 모습에 김영광과 김도은이 무언가에 감싸져 소리치고 있었다.
아무래도 해와 달이 만든 결계 속인 듯 보였다.
인티의 힘에 휩쓸리지 않도록 해와 달이 힘을 써준 것이었다.
“안이 씨!!!!”
“괜찮아요!?”
두 사람의 외침에 나는 아주 슬쩍 고개를 돌려 희미하게 웃었다.
이제는 웃을 힘조차 남지 않은 것 같았다.
나의 희미한 웃음을 보았는지, 김도은과 김영광이 안쓰럽고도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스윽
온 힘을 쥐어짜서 오른팔을 조금 들어 올렸다.
나는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제스쳐였다.
인티는 어떻게 된 거지…? 왜 아직도…. 설마, 내 공격이 먹힌 건가?
조금의 희망을 품고 고개를 다시 돌려 인티가 있는 장소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주 조금의 시간이 흘러 희뿌연 흙먼지들이 걷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먼지가 걷히자, 인티가 서 있었다.
죽일 수는 없어도 아주 조금의 공격만 먹혀들기를 바랄 뿐이었다.
“제법이군….”
먼지가 걷힌 장소엔 상의가 너덜너덜하게 찢겨 한껏 진지한 표정의 인티가 모습을 드러냈다.
먹혔나?
“이 나에게 멍을 새기다니.”
먹혔다!
나의 시야는 인티의 찢겨 너덜너덜한 상의 틈 사이로 보이는 상체의 멍에 꽂히기 시작했다.
스아아아
흙먼지를 툴툴 털며, 나를 향해 다가오는 인티의 상체엔 엄청난 크기의 멍이 새겨져 있었다.
저 정도면 됐다. 성공이다…!!
그 모습을 바라본 나는 다행이라는 생각과 긴장감이 풀려 금방이라도 온몸의 힘이 빠져 쓰러질 것 같았다.
“약속은 지키시겠죠?”
인티는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
“나의 시험은 한 가지라고 말 한 적이 없네만?”
“그게 무슨…!!”
더 이상은 버틸 힘이 없었다.
정령화도 이미 사용한 상태였기에 다시 사용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정령화를 다시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인티를 이길 수 없었다.
“이 정도로 나의 시험을 가볍게 본 것인가? 자, 마지막 시험일세. 나의 일격을 버텨보게나.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미친….”
정령화가 있다고 한들, 그의 일격에 너덜거릴 게 뻔했다.
죽지 않으면 다행이지 현재의 나로는 버틸 수 없었다.
“자, 받아보게나.”
자신의 몸에 멍을 새긴 게 은근하게 화가 났는지, 인티는 표정 변화 없이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대로 죽는다고? 안 된다…. 방법을…!!!
[스킬 [냉정 LV MAX]가 발동합니다.]
어?
냉정의 발동과 동시에 눈앞의 태양의 구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아 보였다.
나는 문뜩 떠오른 생각에 오른팔을 벌렸다.
“확실하게 말씀하시죠. 태양신이나 되는 분께서 계속해서 말을 번복하는 게 말이나 됩니까?”
“그렇군…. 내 잠시, 부끄러운 짓을 하고 말았구나. 좋다. 이 일격을 버티면 자네의 부탁을 들어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인티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곧 죽을 텐데, 감사는 무슨.”
인티가 사악하게 웃음을 지으며, 사람보다 몇 배는 더 큰 태양의 구를 나를 향해 쏘아 보냈다.
쿠구구구구
닿는 지면에 불타오르는 화염의 길이 생성되며 태양의 구는 빠르게 나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나는 침착했다.
태양의 구가 눈앞까지 다가오자, 응축된 힘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찰나의 시간.
찌이이잉-!!!!!
쾅!!!!!
엄청난 폭음에 눈을 감았지만, 생각보다 타격이 없는 나의 몸에 당황했다.
“어? 왜 멀쩡….”
“네놈은 나와 약속하지 않았느냐. 아직은 죽지 마라. 내 이 상황을 어떻게든 모면시켜주도록 하지.”
엄청난 크기의 태양의 구를 막은 건, 인간의 형태로 변한 까마귀. 삼족오였다.
“이놈, 삼족오야. 어찌 방해하는 것이냐!!”
“이봐라. 인티. 하찮은 인간을 상대로 태양을 담은 힘을 사용하는 것인가!?”
“이것은 나와 저 인간의 약속이니라. 그대는 끼어들지 말라!!”
“아니, 약속은 나도 했다. 저 인간은 여기서 죽으면 안 될 인간이다.”
어리둥절한 상황 속에서 삼족오와 인티가 말싸움을 이어갔다.
금방이라도 서로를 잡아먹을 듯. 둘의 힘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이유야 어쨌든, 나를 감싸주는 삼족오에게는 고마웠다.
하지만
나 또한 방법이 있었기 때문에,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나는 앞으로 걸아나가 삼족오의 앞에 섰다.
“감사합니다만, 이건 제 일입니다. 걱정하지 말고 제 일행들을 지켜주시지요.”
“너….”
나의 모습에 인티가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으하하하!!! 제 발로 죽는다는 것을 어찌 막는 것이냐. 삼족오야!!”
“저놈이….”
“두고 보시지요. 전 죽을 생각 없으니.”
“좋다. 죽으면 네놈의 일행들도 죽여 버릴 테니 그리 알거라!”
삼족오는 자신의 배려를 무시한 게 화가 났는지, 씩씩거리며 해와 달에게로 이동했다.
“자, 방해꾼은 없습니다. 다시 해보죠.”
“무슨 방법을 쓰든… 내 일격을 맞고 살아남을 순 없을 것이다!!”
인티는 다시 한 번 응축된 태양의 구를 나를 향해 쏟아 보냈다.
“자, 죽어서 후회하거라.”
쾅!!!!!! 쿠콰콰쾅!!!!
태양의 구는 엄청난 넓이의 홀을 집어삼키듯. 터져나갔다.
그리고
거센 후폭풍과 함께 희뿌연 먼지 속에서 나의 눈앞에 시스템 창이 뜨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