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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101화 (101/206)

제101화

아주 잠깐이었다.

혹시나 한 마음에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봤다.

“뭘 봐요?”

“뭘 봐?”

“……”

아무래도, 생김새는 초등학생 저학년과 같았지만, 살아온 생이 길어서인지 싸가지는 제법 없는 것 같았다.

“아니, 누군가 싶어서요.”

나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재빨리 꼬리를 내렸다.

이곳에서 나는, 그저…. 강한 인간이지 성좌에 버금갈 정도는 아니었다.

“흐응…. 삼족오 님. 이놈 인간 맞습니까?”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닌 듯, 잘 모르겠구나.”

두 아이 중 남자아이가 질문하자, 삼족오는 그러려니 하라는 투로 대답을 했다.

“두 분은….”

이 어린 외형의 두 사람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자연스럽게 두 사람을 향해 질문했고 어린아이의 외형을 가진 두 남매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곤 대답했다.

“나는 해.”

“나는 달.”

“우리는, 해와 달.”

“우리는, 해와 달.”

역시.

내가 생각했던 것이 현실로 다가오니, 놀랍기도 했지만, 애써 표정 관리를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쪽 동생분은 ‘달’ 누나 분은 ‘해’라는 말이죠?”

“그것이 중요한가? 우리는 해와 달이다.”

어린아이의 외형을 가지고 나에게 말하는 달의 모습은 어이없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묵직하고 진실성이 묻어나 있었다.

나는 해와 달 두 사람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마땅히 할 말도, 바라본 이유도 없었지만 오랜 시간 어린아이의 외형으로 지낸 두 사람을 바라보자, 임아린이 생각이 났다.

“아무튼…. 삼족오 님 두 분이 저희를 도와준다는 겁니까?”

나의 물음에 삼족오는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해와 달을 약 올리기 시작했다.

“야 이, 꼬맹이들. 네놈들은 나에게 갚아야 할 것이 있지?”

“아니… 그건 맞는데… 지금 이 인간 놈들의 시중을 들라는 겁니까?”

“멍청한 달 놈아. 시중이 아니다. 그저, 중앙의 그놈에게 안내해달라는 것이다.”

“아! 그렇습니까!?”

“달아, 너는 어찌 그리 생각이 짧은 것이냐.”

“삼족오 님!!! 우리 달이 욕하지 말아요!!”

“욕은 안 했다만…”

아무래도 이들의 상하관계를 쉽게 알 수 있는 대화인 것 같았다.

달은 막내, 해는 삼족오보다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 태양신의 권위에 짬이 찬 것 같았다.

그 때문인지, 해가 삼족오를 향해 말하자, 안절부절못하는 삼족오였다.

“그래서, 누가 도와줄 겁니까?”

“응? 당연히 해와 달이지.”

삼족오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자 어이가 없다는 해와 달의 표정이 눈에 훤히 보였다.

“저희가 해야 해요?”

“그놈은 저희도 싫은데….”

해와 달의 말에 당연히 들어줄 거라 생각한 모양인지, 삼족오가 당황한 듯 나와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래서….”

“닥치거라. 내 알아서 할 터이니.”

“네.”

삼족오는 무언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해와 달을 향해 말했다.

“우리가 찾는 그놈. 이놈이 찾아주기로 했다. 그런데도 도와주지 않을 것이냐?”

“예?”

“정말입니까!?”

삼족오의 말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해와 달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좋습니다!! 이놈이 어떤 놈인 줄은 모르겠지만, 삼족오 님의 말이라면 믿어야지요!!”

“누이!! 드디어 그분을 만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달아, 경거망동하지 말거라, 이 인간은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 않으냐.”

“누이! 우리가 살아온 세월은 그리 길지 않지만, 이런 적이 있기라도 했습니까!? 아주 조금의 가능성이 있다면 믿어도 되지 않겠습니까!”

“……”

달의 말에 해는 아주 잠깐 고민을 하더니,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곤 살기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나의 목에 손을 가져다 댔다.

“너…. 행여, 거짓을 말하거나 네놈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머리를 굴린 것이라면, 죽어서도 후회하게 해주마. 알겠느냐?”

“물론입니다. 전, 약속은 지킵니다.”

“좋다. 달아. 이놈들을 안내해 주자꾸나.”

“좋습니다. 누이!!”

그 누구든 말로는 믿지 않았을 상황이었지만, 해와 달은 나를 믿어주었고 나는 그에 따라 이들의 요구를 들어줄 입장이 되었다.

솔직히…. 들어주지 않아도 상관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들이 한낱 인간에게 부탁해야만 하는 상황을 생각했다.

이들은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 누군가는 ‘명’에서도 듣지 못했기 때문에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나의 ‘명’은 언제나 그랬듯, 아주 조금씩 변하는 중이었다.

내가 도움을 줌으로써 이들이 나의 조력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면, 아주 손해를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이들은, 해와 달.

이 두 사람은 지금은 동화로 인식되고 있지만, 신화 속에 존재했던 사람으로 본래는 해와 달의 기원이 되는 존재였다.

두 사람의 격은 조금씩 잊혀 민담이 되었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동화로 인식되는 존재가 되었다.

해.

달.

이 두 사람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는 유명한 대사가 있는 동화의 주인공들인 해와 달님. 즉,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있을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이미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여러 번 겪은 나는 침착했다.

어째서 이 두 사람이 어린아이의 외형을 지니고 차기 태양신이 될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생각했다.

그들의 이야기가 단순한 동화가 아닌, 설화이고 신화였다면?

아주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성좌의 이야기는 때론 허접했고, 때론 간단했다.

누군가는 동화라 불렸고 누군가는 역사라 불렀다.

설화란 민담이고 전설이었다.

그리고 신화이다.

해와 달이라는 오누이의 이야기가 <안락국>이 정한 신화라면, 충분히 가능성은 있는 이야기였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는 많았지만, 지금의 나로선 일 분 일 초가 아쉬운 상황이었기에, 호기심을 넣어두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결심을 굳힌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저희를 안내해 주실 겁니까?”

“물론이다. 그분을 찾을 수만 있다면,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도 걸어보아야지.”

“누이. 잘 생각했습니다. 한데….”

달이라는 아이가 말끝을 흐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무언가 문제가 있어 보였다.

“응? 왜?”

“저번에 누이가 깽판을 쳐놔서… 우리가 가면 더 역효과이지 않을까요?”

“아… 맞다.”

“어쩌죠??”

해와 달의 이야기를 듣던 삼족오는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기 시작했다.

“해야, 너는 성질을 조금 죽일 필요가 있겠구나.”

“그놈이 자꾸 말도 안 되는 걸 요구하니까 그러죠!! 차기 태양신인 우리 둘에게 바다를 맡으라니요! 아무리 인원 보충이 안 되어도 그렇지.”

“아. 그건 조금 그렇지….”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셋이 다 같이 가시죠! 삼족오 님이 있으면 저희에게 무리한 요구도 하지 않을 테고, 저 인간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을까요!?”

“흐음.”

어느새 인간의 외형으로 폴리모프한 삼족오가 턱을 괴고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김도은과 김영광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딱히 할 말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나름대로 난감함의 표현이었다.

“어쩌죠? 시간이 얼마 없는데….”

“괜찮을 겁니다. 아직 8시간은 남아 있으니.”

“잘 해결되겠죠?”

“네. 저희가 잘 해결하더라도 무림계 쪽 사람들이 영약을 구해오지 못한다면, 그때야말로 방법이 없어질 겁니다. 좋게 생각하시죠.”

김영광과 김도은은 아무래도 걱정이 많은 성격이었는지, 나의 말에도 걱정스러운 표정이 얼굴에 드러나 있었다.

나는 몸을 움직여 해와 달, 삼족오를 향해 이동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가자.”

“어딜요?”

“그놈이 거주하는 곳으로 가야겠지. 아무래도 나도 가야겠군.”

“괜찮겠습니까? 싫어하시더니.”

“별수가 없지 않으냐. 해가 얼마 전에 깽판을 쳐놔서…. 사이가 좋은 줄 알았건만.”

“삼족오 님! 그놈이랑 사이좋은 건 정말이지 많은 걸 참아야 한다구요.”

“맞아요, 삼족오 님. 이 세계에 거주하는 누가 됐건 그놈과 사이가 좋은 분은 없을 겁니다!”

이들이 말하는 ‘그놈’이 누구인지는 나의 ‘명’을 봤기 때문에 쉽게 알 수 있었다.

괴팍한 성미를 가지고 있어 다루기가 어려웠지만, 서로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거래한다면 그야말로 깔끔한 성격이었다.

나는 멀찍이 서 있는 김영광과 김도은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기다렸다는 듯 이동할 채비를 마쳤다.

“그럼, 오랜만에 그놈을 보러 가볼까?”

“삼족오 님과 함께 간다니, 든든합니다!!”

“달아, 우리는 놀러 가는 게 아니다만…?”

“아무렴 어때요!!”

삼족오는 귀엽기만 한 달을 향해 피식 웃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해가 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들의 상하관계가 어떤 식인지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아무리 오랜 세월을 살아왔고 어린아이와 까마귀의 외형이었지만 서로가 서로를 존중했고 아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들은 겉모습만 이렇지, 이곳에서 꽤 영향력 있는 존재들 같았다.

나의 감일 뿐이었지만.

삼족오의 안내를 따라 해와 달, 우리는 중앙의 건물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중앙의 건물로 이동을 하며, 주변 구경을 하는 우리에게 무엇이 그리 신이 났는지 이것저것 설명해주는 달이었다.

“우리는 먹지 않아도 평생을 살 수 있지만, 저곳에서 파는 재료들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 카르마와 능력치를 향상할 수 있지. 재밌지?”

누가 보면 소풍이라도 가는 어린아이로 볼 수도 있지만….

나는 겉모습에 속지 않으며 달이 하는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저 듣기만 해도 주저리주저리 떠들기 바빴지만, 아주 가끔 질문이라도 해주면 더욱 신나 보이는 달이었다.

“저건 뭡니까?”

“아!! 저것은 말이지. 관리자 S라는 놈이 만들어놓은 상점이야. 우리는 ‘시드 스토어’를 사용할 수 없거든.”

“어째서죠?”

“그건 잘 모르겠지만, 세계의 법칙 때문이지 않을까? 성좌나 우리나 다를 것 없는 존재들이니까 말이야.”

멀리 보이는 상점을 들르고 싶었지만, 남은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계속해서 달의 말에 맞장구쳐주며 이동했다.

“다 왔다. 젠장 맞을 놈. 문 한번 거창하구먼.”

엄청나게 거대한 문이었다.

이 정도 크기라면 곤륜산에서 ‘천존’이 거주하는 곳의 문과 비슷한 크기였다.

아니, 그보다 더 크면 컸지 결코 작은 수준은 아니었다.

끼이이익

삼족오는 오른손을 들어 공중에 휘휘 젓더니, 거대한 문은 기다렸다는 듯 열리기 시작했다.

“가지.”

거대한 문을 열고 들어간 우리는 겉모습만 황금이 아닌, 안쪽도 모든 것이 황금으로 되어 있다는 것에 큰 놀라움을 표했고 꽤 오랜 시간을 이동한 끝에 도착한 곳은 거대한 홀이었다.

그리고

그 중앙엔 한 사람이 앉아있었다.

흡사, 왕이라도 앉을법한 화려한 의자였다.

하늘을 바라보던 의자에 앉은 사내는 고개를 내려 세 태양신을 반기기 시작했다.

“오오!!! 오랜만이군. 삼족오!! 해와 달도 어서 오거라.”

“음. 잘 있었느냐? 백 년 만이군.”

사이 안 좋은 것 아니었나…?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는데?

의자에 앉은 사내가 몸을 일으켜 우리에게 이동했다.

그리고

그 사내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호오…. 삼족오 네놈이 재미난 걸 주워왔구나.”

“재미는 무슨. 이놈들이 너에게 할 말이 있어 같이 와준 것뿐이다.”

“그렇군. 재미있구나.”

삼족오의 말을 가만히 듣던 사내는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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