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9화
처음 본다. 당연하지 않을까…?
멸망이 이루어진 세계에서 시스템이 발현되었고 그에 따라 성좌와 몬스터 등 알 수 없는 존재들은 지나칠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말하는 까마귀라니.
‘명’으로 이 자의 정체를 알고 있음에도 당황스러움은 숨길 수 없었다.
“안이 씨…. 까, 까마귀가 말을 하네요…?”
“까… 까,까… 마귀….”
“도은 씨, 새 싫어합니까?”
“아니… 말을 하네요…?”
나의 어깨에 올라탄 까마귀는 당황하는 김도은과 김영광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까악거리기 시작했다.
말도 할 줄 알면서 왜 자꾸 까악거려?
나는 어깨에 올라탄 까마귀를 바라보곤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려오시죠. 무겁습니다.”
“응…? 인간. 넌 내가 무섭지 않는 것이냐?”
“까마귀가 왜 무섭습니까. 내려오세요. 모습은 까마귀여도 무게는 상당합니다.”
“으하하학, 깍깍”
“웃음소리도 이상한데 귀 옆에서 웃지 마시고요.”
파앗!
까마귀는 그제야 나의 어깨에서 내려와 인간의 형태로 ‘폴리모프’를 사용했다.
“거참, 까칠한 인간이군. 한민족의 피가 흘러 나름대로 친근함을 표시한 것인데 말이야.”
인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한 까마귀는 그 외형이 동양인과 매우 흡사했지만, 느껴지는 분위기는 꽤 무겁고 진중해 보였다. 검은 머리칼에 길쭉하고 잘 빠진 몸매.
예능 방송에서나 나오는 세계에서 제일 잘생긴 남자를 뽑는다면, 틀림없이 이 자가 거론될 정도의 잘생긴 외모였다.
“그래서, 인간들이 이곳은 무슨 일이지? 미션이 시작되었어도 이곳을 알 방법은 없을… 어라?”
까마귀는 어째서 인간들이 이곳에 궁금하면서도 나의 전신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궁금한 것 같았다.
그 증거로 까마귀는 나의 전신을 쓰다듬으며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 신선? 아니… 기록자? 아닌데, 인간인데 분명히….”
혼잣말인지 질문인지 알 수 없는 까마귀에 말에 반응하지 않자, 까마귀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인간이냐?”
“네. 인간입니다.”
“신선이냐?”
“아닙니다.”
“그럼…. 기록자냐?”
“아닙니다.”
“그럼 넌 뭐냐? 혼종이냐?”
“혼종은 까마귀인지, 인간인지 모를 당신 같은 분을 말하는 것 아닙니까…?”
“으히히히. 좋다, 좋아. 뭐든 무슨 상관이냐. 재미있는 놈이로구나.”
잘생긴 외모와는 다르게, 이상하게 웃는 이 까마귀는 나름대로 호감을 느끼고 우리들에게 접근한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조금 예의를 넣어두고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물론, 나의 말장난도 이 까마귀였기에 너그럽게 받아주는 것이지만.
유쾌하고 호기심이 가득한 이 까마귀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존재였다.
삼족오.
삼족오는 까마귀의 외형으로 다리가 세 개인 동아시아 전설에나 등장하는 ‘환상종’이다.
신화의 한 부분에서는 하늘 높이 떠 있는 해가 삼족오라거나, 또는 삼족오의 거처가 해 안이라는 말이 있었고 태양의 흑점을 신격화했다는 말도 있었지만. 정확한 설은 알 수 없었다.
그저, 나의 눈앞에 다리가 세 개인 까마귀가 존재했고 이 존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삼족오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는 것만 알면 될 것 같았다.
동아시아에 포함된 삼족오는 한국, 중국, 일본 등 여러 곳에서 발현된 신화들이 있지만, 눈앞의 이 삼족오가 그 전체를 포함하는지, 단순하게 한국의 삼족오인지는 나조차도 알지 못했다.
조금 전에 한민족 어쩌고 하더니, 한국의 삼족오인게 맞는건가…?
중국의 신화에서 본래 열 마리의 삼족오가 존재했다.
열 마리의 삼족오는 하루마다 한 마리씩 교대로 나가서 태양 역할을 해야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말 안 듣고 10마리가 우르르 나갔다고 한다.
한마디로 천방지축 말 안 드는 애완 멍멍이 같은 놈들이었다.
아무튼 이 삼족오들은 멋대로 단체 비행해서 지상에다가 이상고온을 일으키는 등 깽판을 치며 막무가내로 놀다가 ‘예’에게 활을 맞아 아홉 마리가 죽고 한 마리만 겨우 살아남아 태양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설도 있었다.
남은 최후의 한 마리가 눈앞의 삼족오일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 설화에서 알 수 있는 부분은 삼족오는 어찌 됐건 ‘태양’과 관련된 자라는 것이었다.
그럼, <안락국>의 태양신은 누구지…?
아주 잠시지만, 문뜩 궁금한 부분이 떠올랐지만 당장 중요한 것은 아니었기에 금세 기억의 저편으로 날려버렸다.
“저희는 한국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아는데?”
“네. 아시겠죠.”
“그보다…. 너 내 제자가 되지 않겠냐?”
“싫은데요.”
“왜?”
“더운 건 질색이라서요.”
“……건방진 놈.”
삼족오는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흘겨보기 시작했다.
“더운 거 아닌데.”
“싫습니다.”
“그러니까, 왜? 내 제자가 되면 앞으로 음… 내가 담당하는 곳의 다섯 번째로 태양신이 될 수 있다고?”
“그래서 싫습니다. 첫 번째도 싫을 거 같은데 다섯 번째는 언제 기다립니까?”
“으히히힉. 역시 네놈은 재밌는 놈이다. 무얼 할지 모르겠지만, 당분간 네놈을 따라다니도록 하지.”
뭐가 재미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삼족오는 처음 봤던 까마귀의 모습으로 변해 나의 어깨에 올라탔다.
“다 좋은데, 귀 옆에서 그렇게 웃지 말아 주세요.”
“왜?”
“온 마음을 다해서 시끄럽습니다.”
“으히히히힉. 생각해보마.”
삼족오는 고양이가 식빵을 굽는 자세를 취하더니 평온하게 나의 어깨에 안착했다.
이 모습은 본래 어깨에 달린 까마귀 장식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안 무겁지?”
“……네.”
무겁다는 핑계도 댈 수 없으니, 이 삼족오 놈을 쫓아낼 방법은 천천히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았다. 안 그래도 툴툴대듯 건방지게 말했는데, 심기를 건드렸다가 괜히 얻어맞을 수도 있었으니.
적당히 해야지.
“잘…. 어울리네요.”
“그래서, 그 까마귀님은 정체가 뭔데요…?”
“직접 물어보세요. 알려줄 겁니다.”
“무서운데….”
김도은이 우물쭈물 입을 열다가 닫기를 반복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삼족오는 답답하기라도 한 듯, ‘까악, 까악’ 거리며 김도은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아!!! 빨리 물어봐!! 답답하게!!”
“기다리고 있었나 보네요.”
“저 처자가 답답하지 않으냐!!”
갑작스레 소리치는 삼족오의 모습에 김도은이 잠시 당황했지만, 금세 침착함을 찾았는지 삼족오를 향해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응…?
“……? 처자야. 뭐 하는 것이냐?”
“네? 아니…. 동물들은 이러는 거 좋아하지 않나요…?”
“... 그래. 아무튼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거라. 지금은 조금 졸리니 한 가지만 답해주도록 하겠다.”
귀찮다는 듯 날개를 푸드덕거리더니 김도은을 향해 말하는 삼족오였다.
“당신의 정체는 무엇인가요…?”
조심스레 질문하는 김도은이었지만, 그 모습이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삼족오가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나는!!! 왕 중의 왕! 새 중의 새! 삼족오니라!”
“아…. 삼족오….”
삼족오가 자신이 있게 자신을 소개하자, 곤륜산의 신선들을 볼 때보다 더욱 황당한 표정을 짓는 김도은이었다.
그리고…
그런 김도은의 옆에서 황당함을 넘어서는 표정으로 삼족오와 나를 번갈아 보는 김영광이 있었다.
“설명은 안 드려도 괜찮겠죠? 그 새 맞습니다. 고구려 신화 고주몽. 벽화에 있는 그 까마귀.”
“그쪽 세계에서 내가 좀 유명하지?”
자신이 유명하다는 것을 아는지, 삼족오는 으쓱거리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조금요. 많이는 아닙니다.”
“쳇. 재미없는 놈 같으니라고.”
아쉬워하는 삼족오였지만, 우리는 갈 길이 바빴다.
나는 김도은과 김영광에게 손짓하며, 앞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가시죠. 여기서 잡담할 시간이 없습니다.”
“네? 네….”
“별일이 다 있군요. 삼족오라니….”
“두 분, 여태 본 것 중에 가장 놀라시는 것 같습니다.”
“당연하죠! 다리가 세 개 달린 것도 신기한데, 말도 하잖아요! 인간으로도 변하고!”
“앞으로 그런 건 어딜 가든 자주 볼 겁니다. 익숙해지세요.”
익숙해지라는 나의 말에 김영광이 나의 오른편에 걸으며 입을 떼기 시작했다.
“이럴 때 보면, 안이 씨는 이 세계에 대해서 적응력이 뛰어난 건지,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하.”
“둘 다라고 해두면 좋겠네요.”
지나가는 말이었음에도, 김영광의 날카로운 지적에 움찔한 나였지만 당장 진실을 말해 줄 수는 없었다. 아직도 나는 모르는 것이 너무나도 많은 것도 이유였지만, 당장 다음 미션에서 살아남은 뒤에 말 해줘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당연하지만, 나를 포함해 다음 미션에서 김도은과 김영광이 살아남아야 할 테지만….
이번 여정으로 인해 이계의 무림계를 우리들의 편으로 편입시킨다면, 김도은과 김영광을 비롯해 모두가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나는 어깨에 삼족오를 올린 상태로 앞으로 걸어 나갔다.
잊혀진 고대 문명인 잉카 문명의 황금 도시이자, 태양신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 * *
초속 비행을 사용해 날아가면 금방이었지만, 일행들과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는 삼족오와 함께 천천히 걸어갔다.
이유는 간단했다.
갑작스레 하늘을 날아 그들의 거주지로 침입한다면, 공중에서 폭격을 맞아 죽을 확률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인간에게 너그럽지 않았고, 어째서인지 자신들의 거주지는 자신들이 지킨다는 사명이 있었다.
그들의 도시는 멀리 보이는 거리와는 다르게 이동하는 시간은 꽤 걸렸고 도중에 안내원이 없었기 때문에 도중에 길을 잃고 말았다.
“여기가 어디야…?”
“자네…. 혹시 길을 잘 찾지 못하는 건가?”
“……”
삼족오의 말에 무언가 뜨끔한 기분이 들었다.
그 사실을 몰랐던 김도은과 김영광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기 시작했다.
“안이 씨. 진짜…?”
“하하. 안이 씨도 못 하는 게 있군요.”
“헷갈린 것뿐입니다.”
사실, 나는 길치였다.
낮과 밤에 같은 건물을 보더라도 길을 헤매었고 며칠이 지나고 그 장소에 가도 여러 번 돌기를 반복했었다.
멸망 이전의 세상에서, 이사를 한 뒤 집을 못 찾아 반나절을 돌고 돌아 겨우 집에 들어간 기억도 있었다.
나는
그만큼 길치에 가까웠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길치였다.
인정하지 않았을 뿐.
“대단하신, 삼족오님.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 주시면 안 됩니까?”
“내가 왜?”
자존심을 잠시 내려놓은 뒤 삼족오를 향해 질문했지만, 이 상황 자체가 재미있다는 듯 삼족오는 길을 알려주지 않고 대답을 회피하기만 했다.
망할 까마귀.
“그러지 말고 알려주시죠. 저희가 재밌어서 따라다니는 거면, 알려주셔야 더 재미있을 텐데요….”
“흐응….”
삼족오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래, 좋다. 알려주지. 하지만, 조건이 있다.”
“조건?”
“나는 만나고 싶은 성좌놈이 있다. 언제가 됐건, 그자와 만남을 성사해다오.”
“성좌…?”
“그렇다.”
삼족오의 말에 당장, 어떤 식으로 만나게 해줘야 할지 고민이 들었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보니 삼족오가 ‘언제가 됐건’이라는 말을 한 것을 캐치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좋습니다.”
“그놈의 수식언은 내 다음에 알려주도록 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의 대답에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까악, 까악’거리던 삼족오는 하늘에서 날갯짓하며 자기 부리로 이동할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남남동!!! 남나암도옹!!!!”
삼족오가 하늘로 높이 날아올라 크게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