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6화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들이 등장하리라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눈앞에 검은 정장의 사내들은 또다시 내 앞에 나타나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관리자들.
자주 봐왔던, ‘A’는 없었지만….
처음 보는 관리자인 한 명과 이전에도 한 번 봤던 ‘C’라는 관리자가 나의 눈앞에 나타났다.
모든 것이 멈춘 채로.
[반갑군. 난 S라 하네.]
[뭐, 이름을 알릴 필요는 없겠지만, 난 C다.]
“무슨 일이죠? 한참 미션이 진행 중에 이런 식으로 개입을 한다니요?”
당돌한 질문이었다.
관리자들은 생명체에게 그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았지만, 이들의 눈에 밸런스를 파괴하는 나의 존재는 골치 덩어리일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 부분을 알고 있음에도 침착하게 관리자들의 말에 대응했다.
[몰라서 묻는 것인가?]
[허허, 난 자네가 싫지 않네. 숨겨놓았던 ‘시드 스토어’의 아이템들도 잘 사용해주고 있으니 말이야.]
“전 당신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만.”
나의 물음에 관리자 C는 골치가 아프다는 행동을 취했고 S는 그저 재미있다는 듯. 허허 웃는 중이었다.
“최근 들어 A가 지적한 스킬도 사용하지 않았고….”
나의 말에 관리자 C가 표정이 변해가기 시작했다.
마치, ‘진짜 모르냐?’라는 듯한 표정.
“정말 모릅니다.”
아주 잠시였지만, 적대감이 없는 S와는 달리 C는 인상을 구기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자네는 모든 세계의 ‘이레귤러’네. 그건 알고 있나?]
“뭐, 모르지는 않지만, 큰 문제는 없을 텐데요?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니고.”
[그렇지. 그게 문제네. 큰 잘못 없이 너무나도 강한 자네 덕에 우주의 밸런스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 현재…. 자네의 강함은 모든 것을 한계까지 뛰어넘은 상태네.]
핵심만 짧게 요약하는 C였지만, 나는 C의 말에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나에게 있는 버프는 화안 금정을 포함해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결코 얻을 수 없는 스킬들이었다. 거기다, ‘칠정안’을 비롯해 선인과 관련된 버프 스킬과 모든 성운에서 경계하는 각성이라는 스킬.
이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버프를 사용하며, 모든 능력치가 인간의 한계로 정해놓은 ‘99999’를 뛰어넘은 상황이었다.
“혹시…. 스킬이 문제입니까?”
[그것도 그거네만, 능력치란, 본래 생명체의 한계를 정해놓은 것이네. 아무리 성장한다고 하더라도 일반적인 생명체들은 그 능력치의 맥스를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하지.]
“……”
아무 말 없이 C를 노려보는 나였지만, 신경도 쓰지 않는 C가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자네는 그 능력치를 뛰어넘었네. 세계의 문이 열리기도 전에 말이야.]
“뭐, 그러지 말라는 법 있습니까?”
[으하하하하. 역시 난 자네가 마음에 들어.]
세계의 관리자라는 자들에게 당돌하지만, 건방진 나의 말에 S가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핵심만 간단히 하시죠. 흐름 끊기는데.”
[역시. 나는 네놈이 마음에 들지 않는군.]
“그건 저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만.”
[됐고. 핵심만 간단히 하지. 너무나도 강한 자네는 앞으로 두 개의 미션동안 ‘시드 스토어’의 사용이 제한될 걸세. 또한 자네의 능력치는 두 개의 미션동안 그 어떤 행동을 취해도 상승하지 않을 걸세. 일종의 페널티라고 해두지.]
“어째서죠?”
[그래. 억울하겠지. 한참을 승승장구하는 상황에 이런 식으로 브레이크를 걸다니. 어이가 없겠지. 그렇지 않은가?]
고개를 끄덕이자 C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자네의 강함은 성좌들에 미치지는 못하네. 하지만, 너무나도 강한 탓에 미션을 진행하는 데 밸런스가 과하게 무너진 것이네.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지금…?”
[현재 자네들이 상대하는 세계는 자네가 사는 지구보다 월등히 강한 자들이네. 그런 자들을 상대로 혼자서 해결하는 중이지 않은가?]
어이가 없었다.
시스템을 준 것은 관리자들이 맞지만, 우연한 계기와 기연으로 인해 강해진 나에게 제약을 걸 생각인 것 같았다.
이유?
내 입장에서는 간단했다.
제약을 걸어 더 많은 생명들의 목숨을 취하고 카르마를 얻기 위함.
카르마란, 관리자들이 목숨을 유지하는 생명줄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그런 관리자들의 속내를 다 읽어내지는 못했지만, 조금은 짜증이 나고 있었다.
“그래서. 당신들 말은 나를 제약함으로써 더 많은 생명들의 카르마를 취하는 것이 목적이고, 본래라면 대전쟁이 일어나 죽고 죽이는 상황이 발생해야 했다는 것인데, 아무도 죽어 나가지 않으니 방식을 바꾼 것이네요?”
[이제야 말이 통하는군. 이의는 없다. 그럼, 이후의 상황도 잘 풀어내 보거라. 이레귤러인 네놈을 항상 감시할 것이니. ]
짜증이 머리끝까지 솟는 나는 조금씩, 분노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다음 미션만 해도 ‘명’에서는 나의 죽음이 확실시되었다.
제일 마지막에 본, ‘명’에서도 나는 죽음을 피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두 개의 미션이라니.
당장이라도 눈앞의 관리자들을 공격하고 싶은 충동이 깊게 일어났다.
[그럼, 난 가겠네. 어디 잘해보게나. 크크크.]
파앗!
순간적으로 번쩍이는 빛과 함께 관리자 C가 사라지자, 아무것도 대처하지 못한 나에게서 분노라는 것이 터지기 시작했다.
“X발.”
그때였다.
욕을 내뱉는 순간이었다.
[당신의 감정이 폭주하여 자동으로 [칠정안(七情眼) LV MAX]이 발동합니다.]
스아아아
[응…? 자네, 그 눈은…!!]
“……!!”
사라진 관리자 C의 자리를 노려보던 나에게 당황하는 S가 말을 걸어왔다.
나는 자동으로 발동한 칠정안을 사용해 관리자 S를 바라보았다.
[그 눈은… 인간이 얻을 수 없는 눈일 텐데…!!]
찌잉-!!!
황당함에 표정이 굳어지는 S를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칠정안으로 S를 바라보는 순간.
나는 S의 관리자가 되기 전 기억을 아주 조금 읽어내기 시작했다.
아니, 조금 정확하게 말하자면 S의 기억 중 그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이 나의 머릿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
“루! 오늘은 바쁜 날이야. 빨리 이리 오지 못하겠느냐!!”
“아이, 할아범!! 그러니까 내가 전날에 미리미리 준비해놓으라 하지 않았수!”
거칠게 풀어헤친 헤어스타일과 하얗고 긴 수염의 사람.
그리고 그와 대화하는 건 사람이 아닌 동물이었다.
뭐야 저건…. 사슴…?
처음엔 사슴인 줄 알았지만, 단단하고 멋있게 자란 뿔은 이어지는 기억에 사슴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저 동물은 순록이었다.
“루!! 선두는 네가 서야지! 또 어딜 간 거야!?”
“할아범!! 이걸 놓고 가면 어떡해!! 내가 아니었으면 그 아이에게 줄 것이 없을 뻔했다고!!”
“으하하하. 네놈이 챙기지 않았느냐. 잘했다. 루!!”
노인과 ‘루’라는 순록의 대화에 집중한 나는 계속해서 기억을 더듬어갔다.
기억들은 빠르게, 때로는 아주 조금씩 지나가기 시작했고.
루라는 순록이 하늘을 나는 마차를 움직이자, 중심에서 운행을 지휘하는 노인의 표정은 어째서인지, 아주 행복해 보였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고 관리자 S의 기억의 끝자락에 다다랐다.
“이 집이 마지막이구만. 루!! 고생했다!”
“할아범도 고생했어!! 뿌듯한 하루였다고!”
“으하하하. 그렇지? 이 아이는… 훗날 큰 변화를 몰고 오겠지. 이 선물이 이 아이에게 도움이 되기를….”
*
노인의 말을 마지막으로 번쩍이는 빛이 나의 시야를 뒤덮었다.
그리고
나는 정신을 차렸다.
“크윽…!!”
[자네… 뭘 본 것이지?]
머리가 지끈 아파옴과 동시에 질문해오는 S를 인상을 구긴 채 바라보았다.
“노인과 순록…. 당신입니까?”
[허…. 나의 기억을 엿보다니. 자네…. 역시, 이레귤러라 불릴만하구먼.]
단번에 눈의 위험성을 알아챈, S가 나를 향해 말했다.
“당신이 맞았군요. 관리자가 되기 전의 기억입니까?”
[그렇네. 정확하게 말하자면, 성좌였을 적의 기억이지.]
“어째서 그런 기억이 나에게….”
관리자 S는 무언가를 느낀 것인지, 갑작스레 아차. 하는 표정으로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아아…. 허허허. 자네가 그 아이의 바람을 지켜주고 있는 것이로군.]
“그 아이…? 마지막으로 선물을 건넨 그 아이 말인가요?”
[그렇네. 지금 당장은 세계의 법칙 때문에 아무런 말도 못 해주지만…. 자네가 나의 기억 단편에서 그 기억만을 봤다면, 그 아이에게 아니, 지금은 아이가 아니지. 허허허. 그이에게 분명 도움이 되는 존재일걸세.]
“……?”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하나도 몰랐다.
더 질문하고 싶었고 더 알아가고 싶었지만, 관리자 S는 몸을 움직여 나를 향해 손을 뻗어냈다.
[이것 하나만은 알아두게. 나의 본래 진명은 S가 아닌, ‘니콜라스’라네. 그리고 나는 ‘시드 스토어’를 운영하는 관리자일세.]
“예…?”
[성좌였을 적, 나의 수식언은 ‘아이들의 아버지’. 잘 기억해두게. 시간이 없어 난 이만 가야 하네만…. 부디, 자네가 살아남기를 바라지. 이건 내 선물일세. 그와 만나려면 이 힘이 도움이 될 것이야.]
“무슨…?”
[미안하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일세. 당장의 미션부터 해결하게나.]
너무나도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갑작스레 나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자,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나는 사라지려는 S를 향해 오른손을 뻗어냈다.
하지만, 오른손은 S에게 닿지 못했다.
스으으
[자네의 그 눈은 이 세계의 어느 곳을 뒤져도 존재하지 않는 특별한 눈일세. 정령왕과 기록자의 힘이 담긴 그 눈을…. 부디, 그 눈을 잘 사용하고 조심하게나. 관리자들은 자네를 항상 주시할 것이니.]
연기처럼 사라지는 S의 말이 나의 귓가를 맴돌았다.
“젠장…. 알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네. 가면 갈수록 헷갈리기만 하고…!!”
사라진 S의 자리엔 아주 조그마한 빛이 나의 눈에 보였다.
“이게, 선물인가…?”
손을 뻗어내자, 멈추었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고 조그마한 빛은 나의 심장 한편에 자리 잡은 듯 따듯한 기운들이 심장 한쪽에서 느껴졌다.
따듯한 기운만이 맴돌며, 어째서인지 이 힘으로 인해 무언가를 알게 될 것 같은 기분만 아주 조금 들 뿐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단순한 나의 감이었고 느껴지는 기분일 뿐이었다.
당장에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기에, 이해가 가거나 알 수 있는 부분들은 하나도 없었지만… 적어도 ‘시드 스토어’를 운영하고 ‘아이들의 아버지’라는 수식언을 두었던 늙은 관리자인 S의 정체는 알 것 같았다.
기억에서의 이 존재는 내가 아주 어릴 적.
1년에 단 한 번, 애타게 기다리던 존재였다.
실존하지 않는 것을 안 것은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지만.
신선들이 존재하고 우주 어딘가에 무림이라는 곳이 존재하는 마당에 이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 전혀 놀랍지는 않았다.
이 사람의 정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우리들은….
아니, 전 세계의 사람들은 이 인물을 이렇게 불렀다.
산타.
그리고
‘루’라는 순록은 S와 동고동락하며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 주기 위해 마차를 이끌던 ‘루돌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