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5화
갑작스레 무림인 전체를 빗대어 욕하는 사람들이 나를 일제히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어리둥절한 표정.
누군가는 분노하는 듯한 표정들.
눈치가 빠른 이들은 나의 발언이 어떤 이유에서였는지를 알 것이다.
나는 남은 여섯의 무림인들을 전부 상대할 생각이었다.
당장 한 사람씩 상대한다면 이민영에게 받은 버프 효과가 끝나는 것은 물론이고 내가 사용 가능한 버프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용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그로 인해 생각한 나름의 방법이었다.
부디. 이 방법이 먹혀들기를 바랄 뿐이었다.
[뭘 봐? 벌레 같은 놈들아. 사람 말하는 거 처음 봐?]
웅성웅성.
다시 한 번 도발하는 나를 향해 무림인의 대다수가 나를 향해 욕을 내뱉기 시작했다.
알 게 뭐야?
욕지거리를 내뱉는 무림인들을 무시한 나는 고개를 돌려 나의 진영을 바라보았다.
미리 언질을 두지 않았기에, 나와 함께 행동하는 일행들을 제외한 사람들이 입을 떡 벌리고 당황하고 있었다.
하하. 미리 말해줄 걸 그랬나?
후웅.
나의 도발에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선 사람은 백남광을 자신의 진영에 내려놓은 진예화였다.
“방금 뭐였죠?”
“뭐긴요.”
“……미친 건가요?”
“아니요. 지극히 정상입니다만.”
“그럼…. 당신들이 진다는 생각에 대전쟁을 벌이려는 겁니까?”
“그것도 아닙니다만?”
“……”
진예화는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거세게 노려보기 시작했다.
“사전에 말한 대로 전 남은 여섯과 싸울 겁니다.”
“그런데, 왜 그런 발언들을 한 거죠?”
“말 그대롭니다. 당신이라면 눈치 채지 않았을까요? 전 강합니다. 때문에, 남은 여섯의 무림인들과 싸우고 싶습니다.”
“……미친 게 맞군요. 남은 여섯의 인원은 결코 약한 자들이 아닙니다.”
“제가 진다면, 저 하나로 저희 세계의 인원들을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요?”
“뭐, 글쎄요. 질 것 같지 않아서?”
아무래도 나의 도발에 대해서 진예화는 이해를 하지 못한 것 같았다.
하긴, 나 같아도 열 받지. 저렇게 조곤조곤 물어보는 거 자체가 많이 참고 있다는 거겠지.
진예화는 세계의 대표인만큼 당장, 도발에 응하지 않았고 여러모로 상황을 살피는 중이었다.
“어떻게 하실래요? 여섯이 아니라면, 전부가 덤벼도 좋습니다만.”
“하…? 그래도 생각이 있는 분 같아서 이야기를 들어주었더니…. 당신, 안 되겠네요.”
스릉
분노한 표정의 진예화가 자신의 검집에서 어두운 기운이 물씬 드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검을 뽑아 들었다.
“당신은 저 혼자 상대할 겁니다.”
“글쎄요. 말이 안 통한다면, 제 마음대로 해야죠.”
“뭐…?”
“두고 보세요. 당신 마음대로는 안 될 겁니다.”
당황한 진예화가 아차 싶었는지, 재빠르게 나를 향해 무공을 사용했다.
김도은과 싸웠던, ‘진선우’와 비슷해 보이는 검법들.
화안 금정을 사용하고 있었기에, 이미 한 번 본 검법의 초식들을 상대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휘릭
나는 재빠르게 용광검을 사용해 진예화의 공격을 흘려내었다.
“미안하지만, 당신 혼자서는 제 상대가 안 됩니다. 전 말하는 건 지키는 타입이라서요.”
“어딜…!!!”
무차별로 나의 급소를 향해 쏟아지는 날카로운 진예화의 검을 무력화 시킨 나는 공중에 날아올랐다.
“조금, 빠를 겁니다. 잡을 수 있으면 잡아도 좋고요.”
이동 스킬에 자신은 있었다.
이들도 경공술이라는 무공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MAX에 가까워진 초속 비행은 그 누가 와도 쉽게 잡을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나는 초속 비행의 속도를 최대치로 올려 진예화의 진영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가볍게 공격을 퍼부었다.
쿠콰콰콰쾅!!!!
나름대로 가벼운 공격이라 생각했지만….
이미 강해질 대로 강해지고 이민영의 버프로 두 배는 더 강해진 나의 공격에 사람들이 휩쓸리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피를 흘렸고 누군가는 죽어 나가고 있었다.
“그만두지 못해요!?”
“그러니, 내가 한 말을 들어주시든지.”
“이… 망할 인간이…!!”
진예화가 20대 20의 전투를 받아들인 이유는 자기 세계에 속한 사람들을 살리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레 6대 1 전투를 요구하며 공격하는 나의 행동에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눈치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당신 세계의 사람들은 죽어 나갈 겁니다.”
진예화를 떨어트린 나는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이계의 무림인들을 계속해서 공격했다.
그리고 나의 공격에 남은 초절정의 고수들이 자신의 병장기를 들고 일제히 나를 막아서기 시작했다.
[남은 여섯의 인원은 저 혼자 상대합니다. 전부 나오세요. 그렇지 않으면 무고한 희생만 늘어날 뿐입니다.]
“안 돼요!! 나오지 마세요!!”
나의 말에 진예화가 반응하며, 사람들을 말리려 했으나, 무차별적인 폭격으로 분노에 가득 찬 무림인들이 나에게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이쿠. 다들 오셨네. 이거 어쩌나? 못 말려서.”
“당신, 기어코…!!”
진예화의 기운이 점점 검게 물들어갔다.
그리고 기운이 온몸을 뒤덮듯이 그녀의 전신에서 흉흉한 기운이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화악!
그 기운은 끝내 진예화 본인을 잡아먹듯 커질 대로 커졌고 그녀의 두 눈이 온통 검은색으로 변했다.
“내가… 그만하라고 했지…?”
“이중인격…? 아니, 검에게 먹힌건가?”
“넌… 용서하지 못해. 죽이겠다.”
어째서 진예화가 ‘검마’라고 불리는지 알 것 같은 모습이었다.
검을 든 마귀 혹은 악귀.
그녀의 푸른 머릿결이 사방으로 휘날리며, 귀신같은 동공을 보니 쉽게 이해가 갔다.
분노한 진예화는 어두운 기운을 전장에 뿌려대며 공격을 해오기 시작했다.
강했지만, 백남광이 ‘진 개방’을 사용했을 때와 비슷하지만 조금 더 강한 정도.
그녀 혼자로는 나의 상대가 되질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의 공격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나를 죽이겠다는 마음은 아무래도, 진심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녀를 무시한 채, 다가오는 다섯의 무림인들을 향해 검기를 이리저리 날리며 그들을 도발했다.
“너희 대표인지 검무말랭이인지 죽어도 괜찮겠어? 안 덤벼?”
“이놈이!!!”
흥분한 무림인들이 덤벼드는 찰나.
진예화는 더욱 더 어두운 기운을 발산해냈다.
“어? 백남광 저놈이 숨겨진 일인자 아니었어? 이 정도면….”
아무래도 ‘명’에서 본, 진예화의 강함은 그것이 끝이 아닌 듯이 나를 향해 이성의 끈을 놓고 분노에 휩싸였다.
그런 그녀의 강함은…. 버프를 사용한 나와 호각이거나 아주 조금 약한 정도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받은 버프는 이민영의 버프 일 뿐.
내 스스로가 사용할 수 있는 버프는 아직도 남아 있었다.
“다들 멈춰라! 검마께서 허하지 않으셨다!!”
“네가 뭔데, 명령 질이야? 난 가겠다!! 저 기고만장한 놈을 죽여야 분이 풀리겠다!!”
진예화의 지나치게 어두운 기운을 보면서도 누군가는 멈췄고 누군가는 나를 향해 이를 드러냈다.
“천하오절이 별거야? 아니, 무림의 초절정 고수들이라더니, 별거 아닌 거 아니야? 겁먹었으면 집에 가서 죽음만 기다리는 게 좋지 않겠어? 멍청한 노인네들아.”
계속되는 도발에 한계까지 기운을 방출하는 진예화였지만, 이미 그녀의 이성은 진 개방을 사용하며 어두운 기운에 먹혀든 지 오래였다.
이성의 끈을 놓은 진예화가 남은 다섯의 무림인을 막아내지 못하자, 전투의 방향은 어느새 나 하나를 중심에 두고 여섯의 무림인들이 둘러쌌다.
“진작 그랬으면, 저 사람들은 안 죽었을 거 아니야. 생각이 없는 거야? 아니면, 겁이 많은 거야?”
“이놈이…!!!”
“후회할 것이다.”
“과연?”
“기고만장함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죽여라. 우리들의 적은 이놈 하나다! 대표를 지키고 이놈을 죽여라!!!”
“오냐. 오늘 하루만큼은 네놈 말에 동의한다.”
“그럼, 오랜만에 놀아봄세.”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 무림인들이었으나, 무섭지는 않았다.
나는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효율이 높아진 이민영의 버프가 10분 정도 남은 것을 확인하며, 나의 버프를 사용했다.
선인의 격. 그리고, 선인의 기운을 사용해 버프 시간과 효과를 증대시켰다.
남은 모든 버프의 시간은 20분.
혹시나 하는 상황에 정령화는 아껴둔 채로 왼쪽 눈의 화안 금정이 황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현재 나의 강함은 평소보다 5배 이상은 강해진 상태.
버프가 진행되는 동안 이들 모두를 무력화 시켜야만 했다.
“이 악물고 덤벼라. 늙은이들.”
“크르르…. 크….”
챙-!!!!
가장 먼저 나를 향해 공격을 한 것은 진예화였다.
이성을 잃은 진예화가 흉악하고도 어두운 기운에 사로잡혀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중이었고 분노한 무림인들이 자신들의 병장기를 사용해 일제히 공격해왔다.
한쪽 팔이 없음에도, 엄청난 강함의 상승 덕분에 여섯 명의 공격을 막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현재의 나는
정령화를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모든 능력치가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99999가 끝이 아니었구나. 좋았어.
정해진 능력치가 끝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끝에 다다랐을 때도 정령왕, ‘실리아나’의 강함에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었다.
그 말은
나는 더욱더 강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단 1분뿐이지만, 정령화까지 사용한다면….
나의 강함은 이계의 무림인 전부가 덤벼들어도 지지 않을 정도였다.
후웅-!!
콰콰쾅!!!!
가볍게 공격을 피해냈고 애매하다 싶은 공격들은 태극검을 사용했다.
그리고.
단순한 휘두름에도 폭격이 쏟아지듯 모든 것이 터져나갔다.
“이…. 이 무슨…!!”
“괴물 같은 놈이군….”
“검마보다 강하다. 전부 정신 차려라!!”
일제히 기운들을 끌어모은 무림인들의 전투력이 상승하고 있었다.
검에 정신을 잡아먹힌 진예화는 버프를 중첩하지 않았을 때의 나보다 약한 정도.
나머지 인원 중 세 명의 천하오절은 김도은과 비슷한 수준이었고 ‘무림 5대 기보’의 주인은 아무런 버프도 사용하지 않았을 때의 나와 비슷한 강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나름대로 경계했던 사파의 ‘지존’ 천마는 진예화보다 강하지는 않았지만, 그에 지지 않을 정도의 강함을 지니고 있었다.
이 정도면
걱정은 없었다.
정령화를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눈앞의 초절정 고수들이 덤벼든다고 해도 질 것 같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강해진 나는 우월감에 휩싸여 전투를 길게 끌기 시작했다.
버프의 남은 시간은 10분.
슬슬 끝내볼까?
“헉…. 헉…. 내가 동귀어진을 하겠다. 누군가 저놈의 움직임을 막아라!!”
“좋다. 네놈과 다시 못 붙는 것은 아쉽지만, 저놈을 꼭 죽여야겠다!”
“그런 말은 안 들리게 해야지. 뇌까지 굳은 거야?”
“이 망할 놈이…!!!”
세 명의 천하오절이 자신들의 무공을 사용해 나의 움직임을 막아냈다.
팡-!!!
아주 잠깐, 움직임이 멈추었지만, 저들의 강함으로 나를 막는 것은 무리였다.
“이만, 끝내자고.”
나는 움직임을 멈춘 무공들을 파훼하며, 말했다.
사람은 강해질수록,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자만심과 우월감에 휩싸여 자신을 놓는 경우가 있었다.
나 자신이 그런 사람일 거라는 생각은 없었지만,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이들의 강함을 무시하고 있었다.
[스킬, [냉정 LV MAX]가 발동합니다.]
최근 들어 발동하지 않는 스킬이 발동하자,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평생을 수행에 힘쓰며 강해진 사람들.
우연한 계기로 시스템을 각성한 내가 이들의 강함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인가…. 정신 차리자.
공격을 이어가려는 순간이었다.
칭-!
스아아
갑작스레 주변이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다시 밝아지며 검은 정장의 사내가 나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하, 또 당신입니까?]
[이놈, 이거. 안되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