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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94화 (94/206)

제94화

두 사람의 거센 부딪힘에 거대한 폭음이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임시 필드’에 나선 모든 사람은 그들의 전투에 시선을 떼지 않았다.

나조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임해든이 백남광을 이길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다.

모든 게이트를 클리어하지 않은 임해든은 백남광보다 한참은 약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임해든이 죽지 않고 백남광의 기력만 소모한다면, 남은 이계의 무림인은 여섯 명 중 두 명은 기보의 주인이었고, 한 명은 윤문과 같은 이명으로 불리는 천마, 천하오절이 세 명이었다.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나는 이어서 임해든과 도착한 이재신과 천마, 윤문의 영혼을 소환 해제하여 마력을 조금이라도 보존하기 시작했다.

- 문아, 고생했다. 아저씨도 고생 많았습니다.

- 조금 쉬겠다. 주인!

- 허허. 개의치 말게나.

별 차이는 없었지만, 곧 이어질 전투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지켜보자. 이길 수 있다.”

나의 혼잣말을 일행들이 들었는지, 저마다 의지에 가득한 눈빛들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일행들을 바라보며 괜찮다는 듯, 웃어 보였다.

안심시키기 위해서?

아니다.

나는 남은 이계의 무림인 전부를 이길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생각해두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계획이 내 생각처럼 움직여주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현재 상황에서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나는, 나를 희생시킬 생각은 없었으니.

쾅-!! 쾅!!!!

두 사람의 전투는 꽤 오래 이어졌다.

비슷한 실력이었지만 우위를 점하는 사람은 백남광.

점점 그 기세가 백남광에게 기울며 그가 사용하는 백화도의 하얀 불길이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다.

“크흑…!”

“이쯤 하지? 버거워 보이는데.”

역시나였다.

백남광은 이번에도 임해든을 죽이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도대체 뭘 위해서? 나 하나만을 잡기 위함인가?

하나의 세계의 대표를 처치하는 것.

이것이 미션의 클리어 조건이었다.

그렇다면 대표가 없는 세계는?

나의 의문은 문뜩 떠오른 이계의 무림인인 검마, 진예화의 말이 떠올랐다.

이번 미션으로 남은 사람들은 두 개의 세계 중 남은 하나의 세계로 편입이 된다는 것.

그렇다는 건….

나는 혹시나 한 마음에 저 멀리 있는 진예화를 쳐다보았다.

대표직을 포기하려는 표정은 아닌데…. 무슨 꿍꿍이지?

진예화의 표정에서 알 수 있듯, 나 또한 대표직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모두를 살리기 위해 나를 희생한다?

그건 듣기 좋은 X 같은 소리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소설 속의 주인공도 만화의 정의감 넘치는 주인공도 아니었다.

나 하나만을 희생하면 끝나는 상황은 맞았다.

하지만, 그 희생으로 모두가 살 수 있는 상황은 아주 잠시일 뿐.

다음 미션이 시작되면 살린 보람도 없이 죽어 나가고 말 것이었다.

단지, 이 한 가지 이유만으로 희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음 미션이 아니더라도 나를 희생할 생각은 일절 없다고 생각했다.

살 거면, 같이 살아야지. 나를 왜?

누군가는 이기적이라고 욕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현실적이라며 긍정의 말을 해줄 수도 있지만. 나에겐 두 가지 모두 관심 없는 이야기였다.

나는…. 욕을 들을 생각도, 현실적이라며 긍정을 바라지도 않았다.

나를 믿어주는 일행들을 살리고 싶었고 ‘명’에서 본 나의 최후를 바꾸고 싶었다.

이렇게까지 강해진 것은 결국, 나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사명감 같은 것은 없었지만, ‘명’에서의 내 죽음 뒤의 이야기를 보고 싶었다.

될 수 있으면 나를 믿어주는 모두와 함께 살아가고 싶었다.

“해보자.”

각오를 다지며 생각을 하던 사이, 두 사람의 전투가 거의 막바지로 이어지는 중이었다.

백남광의 하얀 불꽃의 아우라는 전장의 모두가 땀을 뻘뻘 흘려댈 정도로 영향을 주고 있었고 임해든은 신수의 힘을 사용해 버티는 중이었다.

그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임해든이 주저앉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영광 씨. 도은 씨는 어떻습니까?”

“지나친 힘의 사용으로 정신은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괜찮은 것 같습니다.”

“다행이네요. 한 가지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무엇을….”

전투에 집중을 해도 모자랄 상황에 갑작스레 진지해지는 나의 말에 반응했다.

“남은 건 저 하나뿐입니다. 아시죠?”

“네…. 알죠.”

“전 이길 겁니다. 하지만… 제가 진다면, 지구는 이계의 무림으로 편입되어 살아갈 겁니다.”

“……”

“그런 상황이 온다면, 저희와 함께 한 모든 일행을 지켜주세요.”

“알겠습니다.”

김영광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궁금한 부분이 많았을 것이고 안이 씨가 질 리가 없다며 응원을 해줄 수도 있었지만, 김영광의 표정을 바라보며 나는 대답을 들었다고 생각했다.

“참. 만약에 상황이 그렇게 흘러간다면 아린이는… 그냥 곤륜산에 두세요. 데리고 오지 않는 편이 좋을 겁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하지만, 저희를 기다리는 그 아이에게 너무 큰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겠죠. 하지만, 언젠가는 깨달을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저희들이 처한 상황을 알 수 있을 때가 올 테니까요. 기록자들은…. 그런 존재들이니까요.”

“알겠습니다. 전 안이 씨를 항상 믿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한 건 해주실 거라 믿고 있고요.”

김영광의 말에 쓰게 웃은 나는 앞으로 조금씩 걸어 나갔다.

백남광과 임해든이 숨을 헐떡이며, 서로 최후의 일격을 날리기 시작했다.

쿠콰콰쾅!!!!!!!

쿠구구.

두 사람의 부딪힘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흙먼지들이 일어났다.

“끝났네요.”

승자는 당연하게도 백남광이었다.

백남광의 승리를 예상했음에도 생각보다 기진맥진해 있는 상태였다.

임해든의 각오는 그만큼 대단했다.

나는 하늘을 날아올라 임해든에게 이동했다.

“너…!!”

“시끄러워. 어차피 안 죽일 거잖아.”

“그건 그렇지만….”

어이없어하는 백남광의 말들을 무시한 채, 임해든을 들어 올렸다.

“괜찮습니까?”

“전… 죽지 않았군요.”

“네. 앞으로도 죽지 않을 겁니다.”

“민재 씨한테 조금은 위로가 되었을까요?”

“글쎄요. 죽은 자는 대답이 없는 법이니까요.”

“그렇죠….”

임해든을 들어 올려 우리 쪽의 진영으로 몸을 움직였다.

후웅-

“공주님 안기로 안겨있으니, 기분이 묘하군요.”

“조용히 해요.”

시답잖은 농담을 하는 임해든이 말을 이어갔다.

“당신이 있어 안심입니다. 이기시겠죠?”

“이기든 지든… 변하는 건 없을 겁니다.”

“그게 무슨….”

“그런 게 있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쉬고 계세요.”

임해든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대표끼리 단판 승부를 지어도 될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미션을 클리어 하든, 클리어하지 않던 사람들에게 변하는 것은 없었다.

그저 보상으로 주어지는 5천만 시드와 ‘기본 스킬’이 이세계에서 살기 더욱 편하게 해준다는 것뿐.

두 가지의 보상을 얻고 안 얻고의 차이는 있었지만, 없다고 못 살아갈 보상들은 아니었다.

이런 것들을 안다면, 미션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무조건해야 하는 상황과 선택적으로 해야 하는 상황은 다른 법이었다.

물론….

대표로 지목이 된 나의 처지에선 무조건이었지만.

“민영아. 부탁할게.”

“맡겨둬요. 아저씨!”

“참, 아저씨한테 버프 좀 걸어줄래?”

“당연하죠!”

부상이 심한 임해든을 이민영에게 맡겨 치료를 부탁했다.

그다음은 전투에 효율이 엄청난 이민영의 버프를 한 몸에 받아냈다.

부정한 방법이라 할 수도 있지만, 편법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남은 인원은 아직도 백남광을 제외하더라도 여섯.

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릴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공중에 날아오른 나는 귀를 후비며 여유롭게 서 있는 백남광에게 이동하려 할 때였다.

“오라버니.”

“……?”

부상에서 어느 정도 회복을 한 진선미가 말을 걸어왔다.

이미 초반의 전투에서 상당한 부상을 입은 진선미였기에 정신을 차린 것이 조금은 신기해 보였다.

“이제 괜찮습니까?”

“네. 저 꼬맹이가 잘 치료해줬거든요.”

“무슨 할 말이라도….”

“꼭 돌아오세요.”

별다른 말은 없었지만, 진선미는 나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금방 올게요. 다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갑시다.”

나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 진선미를 향해 미소를 지어낸 후, 곧바로 백남광에게 이동했다.

후웅-

“기다렸냐?”

“덕분에 쉬고 좋았지.”

“금방 끝내줄게.”

진 개방 상태의 백남광은 아직도 자신이 있다는 듯.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챙-!!!!

용광검을 사용해 공격을 막아낸 나는 곧바로 태극검을 사용해 유하게 공격을 이어갔다.

채엥!!!

검과 도가 부딪히는 쇳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지며, 지구와 이계의 무림이라는 두 세계의 마지막 전투가 시작했다.

“너… 그 짧은 시간에 더욱 강해졌군.”

“빨리 들어가라. 나도 너 죽일 생각 없거든?”

“미안하지만, 지금부터는 다르다.”

백남광의 눈빛이 번뜩이며, 나를 거세게 공격해왔다.

단순한 휘두름이었지만, 묵직한 도의 강함은 나를 조금씩 밀어내기 시작했다.

민영이의 버프를 받고 있는데도 이 정도라고? 이놈도 강해지는 게 사기적인 놈이네.

10일이라는 짧은 시간 속에서 강해진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라는 듯.

백남광의 공격에 잠깐 당황하는 나였다.

하지만

나는 이민영의 버프가 걸려있을 때, 빨리 끝낼 생각으로 전력을 다하기 시작했다.

별다른 공격 스킬은 없었지만…. 쉴 틈 없이 몰아붙이는 것은 자신이 있었다.

아무리 공격을 카피한다고 해봤자, 백남광은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몸이었다.

쾅!!!!

콰콰콰쾅!!!

파천의 무공과 조금은 더 약한 천마의 무공을 섞어냈다.

오른손에는 용광검을 사용한 파천의 검술을.

두 다리는 각 법을.

1분 1초가 아까운 상황 속에서 몰아치는 공격은 백남광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셌다.

“네가 그곳의 숨겨진 일인자라 해도 지금은 안돼. 더 회복하고 덤비든지.”

“그럴 시간이…. 남아 있을 거라 생각하나?”

“내 알 바는 아니지. 없으면 말고.”

“역시…. 네놈은 재수가 없다.”

“그것도 내 매력이라고 생각해주라. 미안하지만, 끝내자.”

후웅!!! 휘릭-

임해든에 의해 힘이 빠질 데로 빠진 백남광의 마지막 발버둥은 태극검을 사용한 흘리기에 손쉽게 파훼 됐다.

촤악!

백남광의 공격을 가볍게 흘린 후, 상체를 베어냈다.

“헉…. 허억…. 안 돼. 난 쓰러지면 안 된다…!!!”

“왜? 너 뒤에는 아직도 여섯이 남았는데? 너 그렇게 혼자 다 해결할 수 있다고 덤벼들면 죽는 건 너 하나뿐이야.”

“안다. 알지만…. 내가 지면, 예화가…!!”

퍽!

“예화…. 너…!!!”

털썩.

“미안해, 남광아. 널 희생 시킬 수는 없어.”

백남광이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는 사이 갑작스레 난입한 진예화가 백남광의 목덜미를 강하게 후려쳐 기절 시켰다.

“잠시 기다려줄 수 있나요?”

백남광이 기다려주었듯, 버프 시간이 아까웠음에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멀어지는 진예화와 그 품에 들린 백남광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역시 그 방법이 가장 좋겠다. 한 사람씩 상대하다간 버프 시간도 못 버틸 게 뻔하고….”

나는 생각해둔 방법대로 공중에 날아올라 ‘확성기’ 아이템을 사용했다.

[아아. 전장의 모든 이들은 들립니까?]

확성기를 사용한 목소리에 전장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이 나를 바라보았다.

진예화도 예외는 아니었다.

저 사람이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냐는 의문이 가득한 얼굴.

나는 그런 진예화를 쳐다보곤,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이해해달라는 웃음이었지만, 그녀가 알아들을지는 알 수 없었다.

부디, 알아들어 주길.

[야 이, 문명의 발전도 못한, 저능아 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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