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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91화 (91/206)

제91화

그런 나이도 모른 채, 김영광의 볼은 불그스름한 붉은 기를 보였다.

“영광 씨. 취향이….”

“저 인간이…!?”

나의 말에 근육질의 김영광이 듣기라도 했는지, 움찔거리며 헛기침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김도은이 인상을 찌푸리며 김영광을 노려보았다.

오호…. 두 사람 같이 붙어 다니더니, 정이라도 든 건가?

“뭐에요!? 그 재수 없는 웃음은?? 그런 거 아니거든요?”

“저 아무 말도 안 했거든요?”

“아…. 칫.”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간사한 미소를 짓는 나에게 김도은이 버럭 화를 냈다.

뭐 낀 놈이 성낸다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뾰로통한 표정을 짓는 김도은이었다.

“지켜보세요. 남친, 아니, 영광 씨는 강합니다. 그리고 도은 씨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저 여인도 이겨낼 겁니다. 조금 힘들겠지만.”

“……앞에 못 들을 말을 조금 한 것 같은데.”

“말실수입니다.”

“또 해봐요. 진짜 머리 뚫어버리게….”

“도은 씨. 그거 압니까?”

“뭐요?”

“제 힘과 체력 능력치는 도은 씨의 2.5배는 될 겁니다.”

“그래서요.”

“그냥 하는 소리지만, 나중에 안 뚫린다고 두 방을 쏘거나 저격을 하시면 안 됩니다. 피 정도는 흘릴 수도 있으니.”

“으아 오!!! 재수 없어!!”

“별말씀을.”

지구와 이계의 무림이라는 두 세계의 존망이 달린 상황에 가벼운 농담이나 툭툭 던지는 나를 보던 김도은이 분에 못 이겨 하며 소리를 버럭 질러댔다.

나는 그런 김도은을 향해 회심의 미소를 날려 준 뒤, 김영광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미 전투는 한창이었다.

“하아아압!!!”

김영광의 나무 몽둥이인지, 야구 방망이인지 모를 무기는 날아오는 화살을 족족 쳐내 부숴내고 있었다.

나는 그런 김영광의 모습에서 조금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설마….

“영광 씨. 빨리 끝내셔야 합니다!!”

“네? 네…!!”

갑작스레 소리친 나의 목소리에 반응한 김영광이 얼떨결에 소리치자, 기보의 주인이 눈을 게슴츠레 뜨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나와 같은 것을 느낀 것 같았다.

젠장. 할망구가 눈치는 빨라서는.

“호호. 당신…. 혹시 바보입니까?”

“네? 바보라니….”

“그런 바보 같은 남자. 저는 싫어하지 않아요. 호호. 그러니, 포기하세요.”

“아니요. 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더 강합니다.”

“말은…. 그렇다고 해도 지금 당신의 행동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는 건 어떤가요?”

활의 기보의 주인은 계속해서 방어만 하는 김영광을 안쓰러운 듯, 바라보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직까진 내 생각일 뿐이지만, 우직하고 남자다운 성격의 김영광은….

강한 정의감과 어린아이를 좋아하는 성격.

김도은과 행동하는 내내, 자기 몸보다 김도은을 더욱더 보살피고 지켜주던 그 강인함.

그 덕분에 김영광은 여자를 공격할 수 없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결론이었다.

“젠장. 도은 씨. 준비하셔야겠습니다.”

“네? 왜요? 저 곰탱이가 이기지 않을까요?”

“본래라면 그래야 하지만…. 아마도 힘들 겁니다.”

“……?”

내내 장난만 치던 나의 모습이 한껏 진지해지자, 김도은의 표정이 의아함으로 변해갔다.

“설마.”

“네. 그 설마가 맞을 겁니다. 제 생각일 뿐이지만….”

“아휴…. 저 미련곰탱이.”

나의 말을 눈치를 챈 김도은의 심정도 이해는 갔다.

세계의 존망이 걸린 이 시점에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며, 정한 것을 지키려는 우직함.

바보와 같았다.

하지만….

그런 김영광의 모습이 미워 보이지는 않았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기보의 주인을 멍청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김영광이었다.

“아. 혹시, 그쪽 세계에서는 전투하기 전에 이름을 알려주는 겁니까? 제 이름은 김영광입니다.”

탁.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김영광을 바라보던 김도은이 자기 손바닥을 이용해 이마를 쳤다.

“저…. 하…. 저거 바본가?”

“제 생각이지만, 영광 씨는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바보인 것 같네요.”

“같은 생각입니다.”

나와 김도은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영광은 그저 진지해 보이기만 했다.

“당신, 바보인 척하는 건가요? 방심시키기 위해….”

“네? 아닙니다. 혹시, 제가 실수라도….”

“우후후훗. 아니에요. 제 이름은 마유리. 지금부터 전력을 다하도록 하죠.”

“바라던 바입니다!!”

활의 기보를 다루는 주인답게, 마유리의 전신에서 강한 오오라가 풍겼다.

그리고 눈으로 보기엔 차마 꺼낼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며 자신의 활을 치켜들었다.

“나, 기보의 주인 마유리가 말한다. 기보는 주인의 말에 대답하라. 진 개방.”

파앙!!

거대한 소닉붐과 동시에 마유리의 전신과 그녀의 활에 검은 아우라가 강하게 일렁였다.

“오…. 역시, 강하시군요. 그렇다면, 저도….”

마유리가 진 개방을 하자, 상승한 능력치 외에도 화안 금정에 보이는 ‘천지파멸궁’이라는 기보는 대단해 보였다.

모든 것을 꿰뚫어낼 수 있는 강함.

그 강함에 상응하는 자아를 가지고 있는 무기.

이계의 무림인 중 가장 강한 다섯 아니, 선택받은 다섯 명만이 사용할 수 있는 무기였다.

고오오.

흉흉한 기운과 함께 마유리가 엄청난 경공술을 사용해 거리를 벌렸다.

“한방에 죽지 마세요. 제법 마음에 든 남자는 오랜만이었으니까.”

하지만

김영광은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기운을 더욱더 강하게 발동해내며 한 가지의 성흔을 사용했다.

“안이 씨. 죄송합니다만, 상의 한 벌 준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뭐…. 원하신다면.”

“또 그걸….”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며 김영광이 전장의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큰 소리로 기합을 내뱉었다.

“우랴아아아아!!!”

소리를 지르는 그 모습은 삼국시대의 ‘장비’라는 장수를 생각나게끔 하는 우레와 같은 소리였다.

성흔…?

화안 금정을 내내 사용하고 있는 나의 눈에 비치는 것은 김영광이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얻은 한 가지의 성흔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내가 몰랐던 성흔.

산군을 처치할 때 보았던 성흔과는 다른 성흔이었다.

김영광이 소리치며 전신에 힘을 주자, 김영광이 입고 있던 상의가 모조리 찢어져 날아갔다.

아…. 이래서.

“전 여자는 공격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공격을 받아 줄 수는 있죠. 유리 씨. 당신의 가장 강한 공격을 해주십시오!”

김영광의 당당하고 솔직한 외침에 마유리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김영광을 향해 화살을 겨누었다.

“역시…. 세계가 같았으면, 좋았을 것을.”

“오십시오!!!”

대놓고 여자를 공격하지 못한다고 고백하는 바보스러운 김영광이었지만, 김도은은 걱정할 필요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곤 아무런 말도 없이 김영광을 바라보았다.

“갑니다. 살아 있으면, 저의 네 번째 남편으로 맞이하도록 하죠.”

“네? 아니…. 아무튼….”

다짜고짜 청혼 받은 김영광의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그런 김영광의 모습에 웃음을 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크크큭. 하긴, 여자라면 누구나 좋아할 것 같네요.”

“어휴. 저 헬스광을 누가요!”

“도은 씨라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만.”

“아….”

김영광이 사용한 성흔의 이름은 ‘대영웅의 진심’.

어떤 효과가 있는지는 몰랐지만, 김영광과 같이 행동한 김도은의 반응으로 봐서 별걱정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받아보세요. 제 전력입니다. 파멸산탄시.”

쐐애애앵!!!

마유리가 잡은 활시위를 놓자, 그녀와 기보에서 흐르던 검은 기운들이 한곳에 집중되어 쏟아져 나갔다.

쿠구구구구

화살이 없음에도 사용할 수 있는 무형시.

단순한 강함을 지닌 이가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은 아니었다.

물론, 같은 활이라는 무기를 사용하는 김도은도 사용할 수는 있었지만, 마력의 소모가 컸고 무엇보다 곤륜산에서의 수행이 없었다면 게이트를 전부 클리어하더라도 스스로 배울 리가 없는 기술이었다.

나는 그런 마유리의 진 개방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았다.

앞으로 내가 상대할 자들은 저 여성보다 강할 테니.

김영광에 쏟아지는 파멸산탄시는 검은 기운으로 만들어진 화살의 형상을 갖추고 사방팔방에서 날려져 왔다.

수백. 아니, 수 천 발.

아무리 강해진 김영광이라도 이 정도의 강한 공격을 맨몸으로 받기엔 힘들 것 같았다.

하지만

김영광은 찢어진 상의는 신경도 쓰지 않고 묵묵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피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김영광은 자신의 두 팔을 벌려, 날려져 오는 화살들을 모조리 받아낼 생각인 것 같았다.

“영광 씨!!”

나도 모르게 소리치자, 김영광이 슬쩍 고개를 돌려 희미하게 웃었다.

마치….

저 희미한 미소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라는 듯한 모습이었다.

“지켜보세요. 적어도 지지는 않을 테니.”

“좋습니다. 두 사람을 믿어보겠습니다.”

김도은의 말에 안심하는 순간이었다.

쿠콰콰콰쾅!!!!

엄청난 소리와 함께 희뿌연 연기 속으로 김영광이 빨려 들어갔다.

“후….”

마유리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 공격을 진행했는지, 기진맥진해 하며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할멈. 괜찮아? 초장부터 그런 큰 기술을 사용하면 어째?”

“닥쳐라, 꼬맹이.”

“아니, 난 걱정돼서…!! 그걸 사용하면 다시 할멈의 본모습으로….”

“개소리는 예화 앞에서나 하거라. 난 괜찮으니.”

“성질하고는.”

백남광의 말을 유심히 듣던 나는 어렴풋이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모든 내공과 마력을 쏟아 부은 마유리의 공격을 버티기만 한다면, 김영광의 승리라는 것을.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연기 속을 헤쳐, 단단해 보이는 근육을 뽐내며 상처 하나 없이 김영광이 걸어 나왔다.

저벅.

저벅, 저벅.

“제법 강한 공격이었습니다. 이걸 그대로 돌려주었다간, 몸이 성치 않으시겠죠.”

파앗!

김영광의 말에 그의 몸에서 흐르던 붉은 피와 상처들이 적당히 나아져 갔다.

그리고 나의 화안 금정에 보이는 김영광의 마력과 체력이 1로 줄어들었다.

어?

“죽지는 않겠지만, 이 전투는 무승부로….”

털썩.

털썩.

김영광의 말을 내뱉자, 쓰러진 사람은 두 사람이었다.

김영광과 마유리.

“젠장. 할멈!!”

“영광 씨!!”

나와 백남광이 서로의 동료를 살피려 난입을 했을 때였다.

“하하. 안이 씨. 미안합니다. 힘이 다해서요. 부축 좀 부탁드립니다.”

“이게 무슨….”

“제가 이번에 얻은 성흔은 제 체력과 마력을 모두 소모해 받은 데미지를 최소화하고 공격을 가한 상대에게 돌려주는 것입니다.”

“하…. 그런 성흔이 있었습니까?”

“네. 하지만, 그대로 모두 돌려주었다간 저 여성분이 죽을 수도 있어 적당량은 제가 감수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이겼겠지만….”

“성흔을 사용한 뒤에는 어차피 체력과 마력이 1만 남을 테니, 다음 전투는 진행하지 못할 테고 저 여성을 살리는 길을 택하신 거군요.”

“네. 미안합니다. 무승부가 한계였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남아있으니.”

어이가 없었다.

사기라면 충분히 사기적인 성흔.

모든 데미지를 되돌려주어 상대를 무력화하는 기술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마유리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최후의 공격을 사용했으니, 다행인 것이지 믿을만한 동료가 없다면 사용하기가 꽤 껄끄러운 성흔이었다.

“조금 쉬어야겠습니다. 다음은 부탁드립니다.”

“맡겨두세요.”

김영광을 들어 올려 김도은에게 향하려 몸을 돌릴 때였다.

“야.”

“왜?”

“언제 나오냐?”

“왜?”

“아니, 복수전은 해야 하잖아?”

“왜?”

“……”

“가라. 말을 건 내가 잘못이다.”

“걱정하지 마. 곧 만날 거야.”

“개자식.”

백남광은 역시…. 놀리기가 쉬운 놈이었다.

나는 김도은에게 김영광을 맡긴 뒤, 이민영을 불러 적절한 치료를 부탁했다.

괜찮은 시작이었지만, 방심을 할 수는 없었다.

* * *

그렇게…

전투는 끊임없이 이루어졌고, 서로에게 남은 인원은 계속해서 비슷하게 흘러갔다.

남은 지구인은 일곱 명.

남은 이계의 무림인은 아홉 명.

누구 하나 죽지는 않았지만, 결코 쉽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나는 다음 순번인 사람의 앞으로 이동했다.

“잘하고 와라.”

“아이, 형님! 별걱정을 다 하신다!! 맡겨두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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