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8화
장난기 어린 나의 말투에 전 세계의 대표들이 나를 순간 집중했다.
[저는 한국의 이안입니다. 반갑죠?]
“뭔데? 미션 아니야?”
“그러게. 저 사람은 뭐지?”
다짜고짜 나타난 나의 모습에 사람들을 당황하기 시작했다.
본래, 이 사람들을 모은 것은 미션. 아니, 미션과 비슷한 효과를 준 퀘스트 서.
‘퀘스트 서’란 원래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미션으로 서브 미션보다 아랫급의 미션을 말했다. 발동 대가에 엄청난 시드가 들어가 쉽사리 사용하지 못하기도 했지만, 적절한 이유가 없다면 사용할 필요도 없는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나에겐 큰 시드는 아니었다.
모아놓으면 모아놓을수록 좋은 시드였지만, 지금 당장 이보다 빠르게 전 세계의 대표들을 모으는 것은 이보다 좋은 방법은 없을 것 같았다.
의뢰서의 성공 보상인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은 알려주면 그만이었다.
[여러분들의 퀘스트는 제가 발행했습니다.]
나의 말에 몇몇은 눈치를 챈 듯, 나를 바라보았지만 다른 몇몇은 ‘너 따위가 뭔데 우릴 불러들였냐’는 듯한 경멸의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뭐…. 나한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지만.
[시간이 없으니 결론만 간단하게 말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저희 한국 그리고 전 세계의 나라들과 동맹을 맺어 이계인들과 전쟁을 벌이겠습니까? 아니면, 무력하게 전멸당하는 결말을 맞이하시겠습니까? 머리가 멍청하지 않은 여러분이라면 쉽게 깨달을 수 있을 겁니다.]
도발성이 짙은 나의 말에 대부분의 대표들이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시간은 10분. 잘 생각해보세요. 여러분들이라면 설명은 필요 없을 겁니다. 대신, 저희 한국과 계약을 하신다면…. 강해질 방법을 알려드릴 겁니다. 선택은 여러분들의 몫. 적당한 죽음을 기다리시든지. 아니면 보다 강해져 변한 세상에서 살아남을지.]
웅성웅성.
마지막 발언에 사람들이 저마다 말을 하기 시작하자, 웅성거림이 더욱 커졌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일행들을 향해 싱긋 웃었다.
“안이 씨. 말을 좀…. 더 자세히 해주는 게 좋지 않았을까요?”
“글쎄요. 이 정도에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저에게도 큰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요. 지금부터는 전투력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렇군요….”
“납득은 안 가시겠지만…. 이렇게 해야만 저들이 원하는 방향과 제가 원하는 방향을 조율해 계약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전 세계의 사람들을 제 아래로 둘 생각이 전혀 없으니까요.”
“아….”
김영광이 이해를 했는지 아닌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나의 말에 의아함을 품으면서도 믿어주는 사람은 김영광을 포함해 김도은과 진선미 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다.
“도은 씨. 민영이는 아직인가요?”
“네. 안 그래도 제가 도우러 가볼까 생각은 했는데….”
“괜찮습니다. 그 게이트는 죽을 위험은 없으니까요. 다만, 시간이 걸릴 뿐. 연락할 수단과 ‘전이의 깃털’의 사용 방법은 일러뒀으니, 금방 올 겁니다.”
이재신의 딸 이민영은 일본에 있는 게이트에서 자신과 관련된 배후성의 게이트를 해결하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혼자서는 처음 겪는 게이트였고 난이도가 상당하다 보니 시간을 꽤 잡아먹는 것 같았다.
어느덧 10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결심 한 표정의 대표들과 그렇지 않은 표정의 대표들이 보였다. 이미 ‘칠정안’을 사용하고 있는 나였기에 그들의 감정은 대략 알 수 있었다.
[자, 시간이 됐습니다. 계약을 맺을 분들은 이쪽으로. 아닌 분들은 이쪽으로 오시죠.]
“저 새끼는 뭔데 자꾸 명령질이야?”
“이 세계의 대표라는 놈이겠지. 다짜고짜 저놈의 홈그라운드에서 덤비지는 말자고. 저놈도 숨겨놓은 패가 있을 테니.”
저들끼리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조금씩 엿듣기는 했지만….
그다지, 쓸모 있는 대화들은 없었다.
숨겨놓은 패라니.
그런 건 애초에 없었다.
아니, 전 세계의 사람들이 연합해서 나에게 덤비지 않는 이상 대표들로만 짜인 이들은 나를 이길 수 없다.
기껏해야 삼 백 명도 안 되는 인원.
나는 이들의 강함을 초월한 지, 한참이었다.
무엇보다, 나에겐 일행들이 있으니, 마땅히 숨겨놓은 패라든지, 함정을 파놓는다든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자…. 그럼, 보기 쉽게 줄 섰네요. 저와의 계약을 찬성하지 않는 사람들은 셋. 더 세고 말 것도 없네요. 그럼….]
나는 계약을 원하는 사람들과 계약을 진행했고, 찬성한 사람 중엔 한 사람만이 남아있었다.
“내 이름은 마크. 자네가 한 말을 지킬 수 있겠는가? 나는 강해져야 하네.”
“물론이죠. 당신이 어디의 어느 대표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제가 한 말은 분명히 지킵니다.”
“좋네. 그럼…. 외계인보다는 자네를 믿어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근육으로 치자면, 김영광보다 더욱더 화가나 보이는 근육을 가지고 있는 외국인이었다.
온몸에는 타투가 그려져 있어 멸망 이전의 세상에서 봤다면, 눈을 쳐다도 못 봤을 만한 덩치의 소유자였지만, 지금은 달랐다.
마지막으로 계약에 찬성한 사람과 계약을 마무리한 뒤, 사람들에게 후에 일어날 침공을 대비해 강해질 방법을 일러뒀고 ‘화안 금정’을 통해 20인을 뽑아두었다.
그리고
“자…. 지금부터는 확성기를 사용할 필요도 없겠네요. 남은 건 당신들 세 명뿐이니.”
화안 금정으로 확인 한 이들은 전 세계를 통틀어도 꽤 강해 보이는 자들이었다.
“네놈을 어떻게 믿지? 미션을 독식하려는 건가?”
“……”
“그렇군. 그렇지 않고서야 계약이니, 어쩌니 하는 말로 대표들을 구워삶으려는 것인가?”
나는 말없이 세 사람이 하는 말을 조용히 들었다.
“그게 아니라면…. 지구의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려는 것인가? 네놈의 정체는 무엇이지?”
세 사람의 말투는 무언가 나를 잔뜩 오해하는 말투들이 확연하게 드러나 있었다.
나는 그런 세 사람을 바라보며 화안 금정을 사용했다.
화악!
이들의 성좌만 보아도 어느 나라에 포함되어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이탈리아의 대표, 오세아니아 전체의 대표 그리고….
아시아권에서 유일하게 계약하지 않은 나라인 ‘네팔’.
나는 이들의 신화를 알고 있었고, 그들의 배후성을 ‘명’으로 인해 알고 있었다.
결코 약할 리가 없는 배후성을 가진 대표들의 능력치.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이들을 나의 편으로 만든다면 결코 후회할 만한 결정은 아니었다.
“그래서…. 원하는 게 따로 있는 겁니까?”
나의 물음에 가장 먼저 나선 사람은 이탈리아의 대표였다.
“아니. 없다. 우리는 당신을 못 믿는 게 아닌, 우리가 믿는 신을 믿는다. 그뿐이다.”
“……무슨 말인 줄은 알겠지만, 당신들의 나라는 멸망에 빠질 겁니다. 저는 그러지 않기 위해 도와줄 수 있고요.”
“괜찮다. 우리들의 일은 우리들이 알아서 하겠다.”
말을 마친 이탈리아의 대표는 순간, ‘전이의 깃털’을 사용해 눈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당신은요?”
찬성 한 사람 중에도 우락부락한 덩치를 자랑하던, 사내.
그 사내보다 더욱 큰 덩치와 큰 키를 자랑하며, 흰 런닝 위에는 부족을 상징하는 문양의 사내였다.
흡사….
프로 레슬링 선수이자, 영화배우인 누군가가 생각났다.
이름은, 기억나질 않았지만.
“우리는 누군가를 믿을 생각이 없다.”
“어째서죠?”
“우리들은 강하기 때문이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구가 멸망하는 시점에 우리는 강하기에 누군가와 손을 잡을 필요가 없다니?
자신들의 강함이 아무리 강해봐야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 강함이었다.
물론…. 이들은 강했다.
하지만,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이들은 김영광과 김도은보다 한참은 약한 정도였다.
“제가 도움이 될 겁니다. 더욱더 강하게 성장할 방법을 알려 줄 수도 있구요.”
“아니!! 우리는 네놈들에게 도움을 받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강하기 때문이다!!”
“……”
말이 통하지 않는 사내를 보며, 한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좋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제가 더 이상 할 말은 없겠군요. 가세요. 번거롭게 불러들여 미안했습니다.”
“음!!”
상남자였다.
아니…. 그냥, 꼰대인 건가…?
‘전이의 깃털’을 사용해 모두가 떠나간 뒤, 남은 사람은 네팔의 한 소녀였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이 네팔의 소녀는 자신을 보좌하는 두 남성에 의해 들려 있었다.
소녀…?
나를 멀뚱히 쳐다보는 소녀를 바라보며, 한 가지 신화가 생각이 났다.
네팔…? 소녀…?
내 기억 속의 이 네팔의 소녀와 관련된 신화는….
많은 것을 알지는 못했지만, 내가 아는 이들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건, 단 한 가지였다.
쿠마리…?
나는 여러 가지 역사나 신화에 관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다.
흘러가는 이야기였을 뿐이었지만, X튜브나 관련된 이야기와 블로그 등.
두루가 여신의 화신인 쿠마리.
쿠마리란.
3~6세 사이의 초경을 겪지 않는 어린 여자아이를 데려다 32가지의 선발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외모에 대한 심사는 크게 보지 않는 편이고 살아있는 ‘여신’으로 섬겨지는 만큼 선발 과정이 까다로울 뿐이다. 예를 들면, ‘석가모니’의 후계자의 성씨라고 여겨지는 ‘샤캬’ 혹은 ‘바즈라차르야’가문의 초경을 겪지 않는 어린 아이 중에서 선발한다고 알고 있었다.
이 여자아이들은 쿠마리에 선발되는 순간, 감정표현을 못 하거니와 수행하는 수행원이 붙어 그를 들고 다닌다고 한다.
가마라든가, 직접 든다던가.
이유는?
조그마한 상처에도 혈액이 나오면 안 된다는 이유로 땅에 디디면 안 된다는 이유였다.
심지어…. 밥을 떠 먹여주는 것은 물론, 네팔의 왕조차도 ‘쿠마리’라는 존재를 만나면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들은 신성한 존재이기 때문에, 살아있는… 세계에서 가장 슬픈 여신이라 평가받고 있다.
나는 그 ‘여신’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말은 할 수 있나요?”
“……”
쿠마리는 말이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네팔의 ‘쿠마리’. 이 여성은 어떠한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감정을 드러내고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 함부로 감정을 나타내서는 안 됐다.
그렇기 때문에, 쿠마리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말을 하지 못하도록 어릴 때부터 절제하는 삶을 살아온 것이다.
여러 가지 살아있는 신격화된 존재였기에 내가 모르는 부분도 많았지만, 분명한 것은 ‘쿠마리’의 삶은…. 나 스스로가 이해하지 못하는 삶이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면서도 그녀가 나를 뚫어지라 쳐다만 보는 이유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옆에 수행원으로 눈을 돌렸다.
“당신들이 저희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요?”
“우리는 이미 신을 모시고 있다. 그 존재가 바로 이분. ‘쿠마리‘시다.”
“……”
나는 머리가 지끈거려 한 방 쥐어박으려다 말았다.
“그래서요?”
“우리들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 우리에겐 살아있는 신인, ‘쿠마리’께서 존재하신다.”
“어어…. 그래…. 될 수 있으면 빨리 꺼져주길 바라.”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다.
당황한 수행원은 눈을 이리저리 굴려댔으나, 쿠마리라는 소녀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뭐, 더 이상 말은 하지 않겠지만…. 당신들은 그 나라에서 비참하게 죽어갈 겁니다.”
나의 말에 소녀는 또랑또랑한 눈빛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 눈빛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적어도, 나의 화안 금정에는 보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두 눈빛을 바라보았을 땐, 나는 그 어떤 것도 읽을 수 없었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어둠 속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공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