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2화
내 손에서 뻗어나간 블래스트는 백남광에게 닿지 못했다.
간단한 이유.
백남광도 같은 스킬로 나의 파천일장을 막아낸 것이었다.
“하? 이름 따라간다더니, 너 진짜 미친놈이네?”
“마음에 드나?”
“조금? 그럼, 다시 간다?”
“얼마든지.”
나와 백남광의 전투력 차이는 꽤 컸다.
그런데도 나는 백남광을 처치하지 못하는 중이었다.
어째서일까?
의문만이 가득했다.
전투력이 다가 아니라고…?
나에겐 전투력이 전부였다.
더욱더 강해져 압도적인 승리를 하는 것.
그것이 나의 승리 패턴이자,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백남광은 내가 사용하는 스킬들을 모조리 카피하며 나를 압박해왔다.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백남광을 처치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변칙성.
이전에도 앞으로도 이런 적을 만난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본래 나의 ‘명’에서 백남광은 2차 침공 이후에 등장한다.
그리고 자신들과 관련된 게이트를 모조리 클리어한 김도은과 김영광이 날 도우러 왔고 백남광은 김영광과 전투를 벌였어야만 했다.
하지만, ‘명’이 변하며 임해든이 살아나고 권민재가 죽었다.
그에 따라 상대 진영의 5대 기보의 주인 ‘황호’도 같이 죽게 되었다.
변수라면 이것이 변수였을까?
당장 등장하지 않았어야 할 백남광과 이계의 무림인 최강자들이 한 번에 그레이트 홀을 넘어 온 것이다.
“머리 아프네.”
“더 아프게 해줄까?”
“아니. 머리 아픈 건 질색이라서.”
“후후.”
같은 스킬을 사용해 나의 공격을 파훼하는 백남광의 표정에 우쭐함이 가득하였다.
단순히 따라 하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그 스킬을 온전히 자기 능력으로 사용했다.
이대로라면, 시간 끌기밖에 되질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내가 사용 가능한 버프 스킬을 사용했다.
화안금정.
선인의 기운.
두 스킬을 추가로 사용하자, 전투력의 상승이 가파르게 이루어졌다.
칠정안과 정령화는 아껴두자.
“또 강해졌군…. 그 강함엔 시간제한이 있겠지만…. 나 또한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잘 봐라. 이것이 무림 5대 기보의 ‘진 개방’이다.”
백남광은 변한 나의 기운에서 위기를 느꼈는지, 자신의 도를 사용해 ‘진 개방’이라는 것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오너라, ‘백화도’여. 나의 불음에 응답하라. 진 개방.”
“으…. 오글….”
“닥쳐라. 나도 창피하니까.”
진 개방.
이계의 무림인 중 그 강함을 인정받은 ‘무림 5대 신기’의 다섯 주인만이 사용한 기술.
이 기술의 부작용은 없다.
하지만
부작용이 없는 만큼 여러 개의 조건을 만족해야만 했다.
첫째. 기보의 힘을 다룰 수 있는 강함을 지니는 것.
둘째. 자아가 있는 기보의 주인이 될 자격을 갖추어 기보의 인정을 받는 것.
셋째. 기보와 주인의 상성이 맞을 것.
이 세 가지 조건이 맞는다면, 기보의 주인으로 ‘진 개방’을 이루어 더욱 강해질 수 있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내가 성장할수록 단계가 상승하는 용광검과 비슷했다.
물론, 기보와 힘의 융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강해지는 상승의 폭은 엄청났다.
신기를 뛰어넘는 강함.
훗날 기보의 주인들이 최종적으로 성장할 경우.
신기를 가진 성좌에 버금가는 힘을 가질 수 있었다.
이것이 강함의 대가였다.
5대 기보를 주는 대신, 성좌들의 지원을 받지 않는 것.
이들은 특별하게도 너무나도 강한 탓에 유일하게 성좌들의 지원을 받지 않는 세계였다.
나는 진 개방을 사용하여 강해진 백남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미션의 클리어를 위해서라면, 백남광을 제외하더라도 네 사람이나 기보의 주인을 상대해야만 했다. 물론, 김도은이나 김영광이 도움을 준다면, 말이 달라질 수 있었다.
언제 올지…. 연락이 끊긴 지 한참이 되었기 때문에 둘의 위치는 알 수 없었지만, 백남광의 말로 예측할 수 있었다.
꽤 강한 사람이 두 사람.
백남광이 감지를 해 파악했을 때 꽤 강한 두 사람이라는 것은 김도은과 김영광은 말하는 것이라는 걸 간단하게 눈치챌 수 있었다.
나의 예측일 뿐이었지만, ‘명’이 변한 이상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스아아-
진개방을 사용한 백남광의 몸과 백화도에서 하얀 오오라가 퍼져 나왔다.
눈으로 봤을 때 하얀 오오라였지만, 실제로 저것은 하얀 불꽃이었다.
말도 안 되는 색상의 불.
지옥의 업화를 상회하는 불.
백화도라는 이름에 걸맞게 ‘진 개방’을 하자, 하얀 불꽃들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안 뜨겁냐?”
“뜨겁다.”
“빨리 끝내자. 덥다.”
“좋은 생각.”
소모전을 한다면, 하얀 불의 온도에 익어버리는 것은 내가 될 것이었다.
나에겐 특출난 공격 스킬이 많이 없었다.
그나마 있는 스킬은 천마와 파천의 무공.
그 스킬들은 이미, 백남광의 스킬인지 특성인지 모를 것에 카피 당하고 있었다.
백남광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힘에는 대가가 필요하지. 너 그 힘 시간제한이 얼마냐?”
“알아야 하냐?”
“어. 뭐, 됐다. 어차피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나는 거 아닌가?”
“글쎄.”
화악!!
선제공격을 해 온 것은 백남광이었다.
자신의 하얀 불꽃을 이용해 나를 향해 공격해왔다.
일반적인 화염과는 달랐다.
전신에 얼음 속성의 속성 부여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얼마나 버틸지 자신이 없었다.
전신이 녹아 들어가는 느낌.
단 한 번의 휘두름에도 입이 바짝 말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불안한 마음이 든 나는 더 이상의 시간 싸움은 의미가 없다는 듯.
백남광의 공격을 흘려내며 공격을 이어갔다.
지금 당장, 전투력의 영향에 상관없이 엄청난 화력을 뿜으며 쓸 수 있는 스킬은 단 한 가지였다.
파천 만뢰공.
파직. 파지지직-!
버프의 사용으로 강력해진 능력치는 ‘파천 만뢰공’을 사용하자, 대기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시야에 보이는 모든 하늘이 어두워지며, 하늘에서 천둥과 번개를 당장이라도 쏟아 낼 듯.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이건…. 좀 무리겠는데? 하하….”
나는 한쪽뿐인 오른손을 위에서 아래로.
허공으로 그어내며 파천 만뢰공을 사용했다.
쿠콰콰쾅!!!!
“크흐읍…!!!”
대기 전체가 변하는 자연재해에 버금가는 파괴력.
이 스킬마저 카피한다면, 나에게 남은 스킬은 없었다.
백남광은 입에서 핏물을 토해내며, 나의 공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파천 만뢰공은 단 한발이 아닌 수만 발.
끝날 줄 모르는 벼락이 백남광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파과과광!!!
“커 허억…!!”
털썩.
짧은 시간 쏟아지는 파천만뢰공의 벼락이 백남광의 전신에 꽂히자, 더는 못 버티겠는지, 백남광이 무릎을 꿇었다.
“이건 못 따라 하나봐?”
“헉…. 헉…. 제법 강한데…?”
“제법이 아닐 텐데? 이대로면 너 죽을 걸?”
“글쎄.”
나의 말에 반박이라도 하는 듯.
죽음이라는 단어가 나의 입에서 나오자, 백남광의 곁을 둘러싸며 이계의 무림인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이 새끼들…. 앞뒤가 다른 새끼들이네?”
“당신. 역시 강하군요. 제안을 거절한 이유는 알 것 같군요.”
“말했잖아. 강하다고. 난 내 사람들은 더 이상 죽음으로 몰고 싶지 않거든.”
“그건 저희도 마찬가지인데요?”
두 진영.
아니, 두 진영이 아닌, 한 세계와 한 사람이 대치하자 긴장감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누군가 움직이거나 신호를 보낸다면 당장이라도 서로를 죽이겠다는 눈빛들.
하지만, 나는 두렵지 않았다.
한순간. 선인의 기운의 덕인지 반가운 기운들이 나의 등 뒤쪽에서 느껴졌다.
상당한 수.
이미 내 주변에는 수많은 지구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한국인, 미국인, 일본, 중국 등 수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어느새 모여들어 백남광과 나의 전투를 보고 있었다.
자신들이 우위라고 생각했던 이계의 무림인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나의 곁에도 사람들이 있었다.
임해든과 서울 지역의 사람들.
우정혁과 광주 지역의 사람들.
부산 지역의 진선미를 따르는 사람들.
그 외 나와 연이 닿았던 사람들과 권민재의 사람들.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렸던 두 사람.
김도은과 김영광.
나는 든든한 나의 우군인 두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다.
얼마간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었다.
그저, 훗날 나의 든든한 우군이 되어 주기를 바라서 두 사람을 보낸 것이었다.
그 두 사람이 나의 등 뒤에 든든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뒤돌아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반가운 기운이었다.
“여전히 맞고 다니시네요?”
“안이 씨. 오랜만입니다.”
나는 두 사람의 말에 눈시울이 붉어지며, 너무나도 반가운 기분이들었다.
“두 사람. 이젠 강해진 겁니까?”
“물론이죠. 누굽니까? 저희가 상대해야 할 사람은.”
김영광이 앞으로 나서며, 나에게 말했다.
든든함.
나의 친형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든든함과 뿌듯함이 밀려 들어왔다.
우락부락한 근육의 김영광의 말 한마디에서 많은 것이 변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영광 씨. 오버하는 거 아닙니까? 이제 막 돌아오셨는데?”
“하하하. 괜찮습니다. 이젠, 안이 씨에게 도움이 될 정도는 됐거든요.”
나는 김영광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어머. 전 안 보이시나 봐요? 맞아가는 걸 도와줬더니?”
“도와준 건 없죠. 기똥찬 타이밍에 등장해 주셨을 뿐.”
“역시 입만 살았네요.”
팩트를 말하는 김도은 앞에서는 역시, 할 말이 없었다.
김도은과 김영광의 등장.
그리고 수많은 한국의 지역 사람들.
이 사람들의 등장은 나의 마음을 한껏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들과 내가 전력을 다한들, 전력 전에서 우리가 이계의 무림인을 이길 수 있는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아직 까지는 비슷하지만, 낮은 수준.
세계의 모든 사람이 모여야 했지만, 모인 것은 근방의 일부 나라들 뿐.
지금 당장, 일면식도 없는 그들이 한국을 도울 가능성은… 알 수 없었다.
어느순간 이후로는 ‘명’에 의지하지 않는 중이었다.
나는 용광검을 빼 들곤 선두에 서서 이계의 무림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버프를 사용했기 때문인지, 기운만으로 그들을 압박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때였다.
이계의 무림인.
‘검마’라 불리는 여성이 비장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이계의 무림인 중. 백남광을 제외한 최강이라 불리는 ‘진예화’가 말했다.
“그만하죠.”
느낌이 나쁘지는 않았다.
좋게 풀리려나…? 이대로 가주면 고마울텐데.
지금 당장, 부딪힌다면 죽어가는 백남광과 기보의 주인들을 제외하더라도 전멸에 가깝게 죽어 나가는 것은 이계의 무림이 아닌, 내가 사는 지구였다.
그들은…. 한 명 한 명이 그만큼 강했다.
“뭐죠?”
“당신도 알 텐데요. 이대로 전투를 이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왜죠?”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모르는 척 진예화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강한 척.
내 나름대로의 허세였다.
“허세는 그쯤 부리시죠. 서로간의 이해가 맞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겠죠. 저희는 이대로 저희 세계를 버릴 수 없습니다.”
진예화는 나의 강함을 보고 느낀 것이 많았는지, 이대로 부딪힌다면 양측 모두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을 것을 말하는 것 같았다.
물론…. 진예화의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는 것은 우리들이었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나는 허세를 거둬들이지 않았다.
이럴 때 약해 보인다면, 잡아먹히는 것은 우리일 테니.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만.”
“한 가지 제안을 하죠.”
제안이라는 말에 귀가 쫑긋한 나는 진예화를 쳐다보았다.
지금 당장은 남장을 하고 있는 진예화였지만, 그녀가 본래의 모습을 보인다면.
지구의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여성인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나의 시선이 진예화에 고정되자, 백남광이 이를 갈며 나를 노려보았다.
“야. 그만 쳐다봐라. 죽는다?”
“곧 죽을 것 같은 건 너 같은데?”
“……”
“남광아 조용히 해.”
“응.”
아. 두 사람은 부부였지.
“그래서, 제안이란?”
“저희와 당신들에게 10일간, 휴전을 가지도록 하죠.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