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79화 (79/206)

제79화

권민재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단순한 외형의 변화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전장의 대부분의 사람이 권민재를 보곤 입을 다물지 못하는 중이었다.

강함.

언제나 그랬듯. 강함에는 늘 조건이 붙었다.

의미 없는 강함은 없었으며, 강해지려는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었다.

그러나…. 그 욕구를 이루기 위해서는 늘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자신의 남은 생명력을 소진한다거나, 평생을 바쳐 모은 카르마를 사용한다거나.

방법은 많았지만, 권민재는 남은 수명의 절반을 배후성에게 바쳤고 그로 인해 단 한 순간뿐이지만, 강해졌다.

말도 안 되게.

쿠구구구구.

“시간이 얼마 없으니…. 빨리 끝내도록 하죠.”

권민재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를 본 황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단 한 순간이지만, 이곳 무림계에서 자신보다 몇 수는 더 강자인 ‘천하 오절’급에 버금가는 강함. 그 강함의 기운을 권민재가 풍기고 있었다.

“위험하겠군.”

강함만 놓고 보자면, 황호도 그에 지지 않을 정도의 강자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래봐야 천하 오절급에 발을 걸친 정도.

지금 상황에서 부딪힌다면, 지는 건 자신이 될 것이라는 걸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황호는 겁먹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으로 만난, 창을 쥔 이 남자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펼쳐내기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겐 네놈들과 같은 배후성이니 뭐니 하는 건 없다. 다만, 강해질 수 있는 기회는 충분히 주어졌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너의 그 강함에 도망치지 않겠다. 나 또한 나의 모든 것을 담아 공격하겠다.”

“깔끔하고 좋군요.”

은빛의 갑옷과 투구.

햇빛에 반사되는 은빛 검과 창.

권민재는 권민재이면서, 권민재가 아니었다.

조운 자는 자룡(子龍)

삼국지에 나오는 후한 말, 촉한의 오호 대장군 중 한 사람.

강직하고 온화한 성품을 지녔고 공과 사가 뚜렷하여서 일 처리가 공정하고 허물이 없었던 자.

높은 지위와 공적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과욕도 드러내지 않았으며, 겸손함과 청렴함을 잃지 않았던 자.

흔히들 정사나 연의에서의 조운은 그 평가나 활약상이 달라서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황호의 앞에 있는 이 사람은… 조운의 기억을 반쯤 가지고 있는 권민재이자 조운이었다.

권민재는 오른손에 창을, 왼손에 검을 강하게 쥐곤 앞으로 나섰다.

“자, 네놈에게 보이마. 천하 오절은 아니지만, 나 또한 그에 버금가는 강자. 그리고 한 가지 말해주도록 하지. 이 무림에는 얻기만 하면 천하를 거머쥘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있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싶던 권민재는 황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하지만

공격은 단 한 순간으로 판가름 날 것 같아 잠자코 있었다.

“이곳에는 무림 5대 기보라는 무기가 존재한다. 검, 도, 궁, 창, 장. 다섯 가지 기보 중 나는 창의 주인. 네놈에게 보이는 내 마지막 공격이니라.”

황호의 주변에 어둡고도 그윽한 오오라가 강하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오오라는 이윽고 황호의 다섯 개의 창으로 빨려 들어갔고 다섯 개의 창이 공중에 뜨기 시작했다.

“자, 이것이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기보의 ‘진 개방’이다. 보여라. 너의 강함을.”

쿠구구구

황호의 다섯 개의 창은 한순간에 단 하나로 합쳐졌고 그 창을 강하게 움켜쥔 황호의 눈빛이 변하기 시작했다.

“백호오창. 진 개방.”

파앗!

다섯 개의 창은 이내, 하나의 창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창을 움켜쥔 황호의 등 뒤로 백호의 형상이 비추어졌다.

말 그대로의 힘.

진 개방을 한 백호오창의 위력은 성좌들의 힘을 받지 않은 이들이 낼 수 있는 단 하나의 수단이었다. 그 강함은…. 최종적으로 성장한다면 선기를 뛰어넘어 신기에 다다를 수 있는 엄청난 무기였다.

권민재는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권민재는 생각했다.

자신이 왜 이렇게까지 목숨을 거는가?

그다지 친해지지도 가깝지도 않은 이안을 위해서?

자신의 강함을 인정해준 이안에게 보답하고자?

그 어떤 이유를 가져다 붙여도 스스로가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하지만, 권민재는 이 순간만큼은 지고 싶지 않았다.

지고 싶지 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이해시킬만한 이유를 만들어냈다.

권민재는 고개를 돌려 임해든을 바라보았다.

“무사히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등을 떠밀어 방관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이인자의 자리를 지켜내기 위한 술수라는 것을.

‘그렇게 지키고 싶은 그 자리는 당신의 자리가 아닐 겁니다. 나는 알고 있죠. 안이 씨와 같이 있던 그 사람들. 분명 다시 돌아올 겁니다.’

권민재는 임해든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김도은, 김영광, 임아린을 떠올리며.

그리고…

마지막 불꽃을 태워내기 위해 권민재가 움직였다.

“약속은 지키시길….”

“물론.”

찰나의 순간.

두 사람은 동시에 움직였다.

치고받고 이를 악물고 베어내고 갈라내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저

두 사람이 가진 이 마지막 한 방을 서로에게 증명하듯.

“하아아압!!!”

[스킬, ‘조가 창법 제9식 신룡일섬’을 발동합니다.]

[스킬, ‘백호오창 제18식 절멸(絕滅)’을 발동합니다.]

번쩍!

쿠콰과과광!!!!!

두 사람이 사력을 다한 마지막 공격은 서로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자연재해에 버금가는 공격.

주변의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피해가 오지 않는 범위로 이미 거리를 두고 있었다.

한 마리의 푸른 용과 한 마리의 백색 호랑이가 서로를 찢어발기겠다며 부딪히는 순간이었다.

‘아, 강해진다는 것은 이런 기분이구나. 나는 더 강해질 수 있었는데….’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황호의 공격에 환희에 가까운 감정을 느낀 권민재와….

‘꼬맹이가 제법이군. 이런 죽음도 나쁘지는 않겠어.’

지루한 삶 속에서 자기 호적수가 나타나길 바라는 황호의 마음이 강하게 부딪히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좋다. 더 해보거라!!!”

“하아아아아!!!!”

권민재는 자신에게 남은 조운의 모든 힘을 쥐어 짜냈다.

자신이 사용한 조운의 창법과는 그 파괴력과 짜임새 자체가 달랐다.

이것은 오리지날.

성좌, 본인의 힘이 담긴 힘이었다.

반 빙의라 할지라도 그 힘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힘이었다.

콰콰쾅!!!!!

두 사람의 입가에서는 동시에 핏물들이 토해져 나왔다.

강력한 공격에 자신들의 몸이 버텨내질 못하는 듯.

그리고

용과 백호는 서로를 꿰뚫어 권민재와 황호를 향해 모든 마력이 쏟아져 터졌다.

“커 헉….”

“헉…. 헉….”

두 사람에게 남은 기력은 없었다.

권민재가 사용한 ‘반 빙의’도 시간제한으로 인해 끝나고 말았다.

은빛의 갑옷과 투구는 사라졌고 권민재에게 쥐어진 것은 창과 검뿐이었다.

“헉…. 커 헉….”

“대단하군…. 죽지 않았다니….”

황호는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은 몸뚱이를 자신의 창을 의지한 채 겨우겨우 몸을 일으켰다.

“제가 할 소리입니다만.”

“서로 힘은 남지 않았을 테지.”

“그렇군요.”

두 사람이 눈을 마주치는 순간.

모든 힘을 쥐어 짜낸 두 사람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파칭!!!!

단순한 휘두름.

초식이니 무공이니 시스템이니 하는 힘의 사용은 없었다.

“같은 세상에서 만났더라면, 내 네놈을 제자로 삼았을 것을.”

“헛소리 마시죠. 제 스승은 한 사람뿐입니다.”

“스승이 있는가? 그게 누구지?”

“당연한 것 아닙니까? 제 후원자시죠.”

“아….”

[성좌, <창술의 대가>가 권민재를 바라봅니다.]

핑-!

그 순간이었다.

조운이 권민재를 바라본다는 메시지에, 아주 잠시지만 권민재에게 힘이 주어졌다.

[성좌, <창술의 대가>가 자신의 역할은 여기까지라 말합니다.]

스걱!

“커 헉. 부럽군…. 자네 같은 제자가 있다니….”

단 한 번 검을 휘두를 정도의 힘이었지만, 권민재는 확실히 받아냈다.

그리고 왼손에 쥐어진 신기, 청강검을 사용해 황호를 베어냈다.

털썩.

“지루했다만…. 마지막은 꽤 재밌었군.”

툭.

황호가 쓰러진 뒤.

[우와아아아아아!!! 이겼다!!!]

권민재의 진영에서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들려왔다.

털썩.

그 소리를 듣던 권민재는 방긋 웃으며,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누가 이기고 지고를 따질 필요는 없었다.

이 승부는….

더욱 강해지고자 했던 어린 청년과 너무나도 강한 탓에 지루한 삶을 살던 한 사람이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자신들의 진짜 마음을 깨우치게 된 전투였다.

무승부.

두 사람은 그렇게 바닥에 쓰러져서도 입가의 웃음이 사라지질 않았다.

권민재는 전투력만이 강함의 전부가 아니란 것을 이계인, 황호를 만나 깨달았다.

황호는 죽고 죽이는 강함이 전부가 아니란 것을 이계인, 권민재를 만나 깨달았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었구나. 마음이 중요한 거였어. 나는, 강했구나.’

‘내가 너무 멍청했다. 죽여야만 강한 것이 아닌 것을. 마음이 중요한 것이었군. 나는, 약했구나.’

두 사람은 동시에 생각했다.

“정파와 사파인은 모두 듣거라. 이 전투는 나의 패배다. 저들이 본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방해한다면…. 내 손에 죽을 줄 알거라.”

황호는 죽어가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으며, 사자후를 사용해 전장에 모든 이에게 말했다.

이 정도의 엄청난 전투를 보여서인지, 반발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민재 씨!!!”

“아…. 아직 계셨군요…. 저, 죄송한데 눈이 안 떠집니다.”

“젠장…. 저 때문에…!!”

“하하…. 아닙니다. 제가 원하던 것인걸요.”

권민재는 떨어지지 않는 입을 가까스로 열어 임해든에게 말했다.

“모두 돌아가세요. 약속은 지킬 겁니다. 어길만한 사내가 아니었거든요.”

“그런….”

“정보는 충분합니다.”

“그게 무슨….”

임해든은 정보가 충분하다는 권민재의 말의 뜻을 알 수가 없었다.

단 한 사람과 싸워보고 정보가 충분하다니?

“첫째. 저들은 성좌들의 가호를 받지 않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들 자체가 강하기 때문이겠죠. 시스템이면 충분하다는 것일 겁니다.”

“……”

“둘째. 저 사람은 강한 편에 속하지만, 그보다 더 높은 급의 강자들이 존재합니다. 물론, 그 강자들의 위에는 이곳의 대표가 있겠죠.”

“셋째. 저들은 무림 5대 기보라는 무기를 사용합니다. 그 강함은 보셨다시피 가볍게 넘어갈 수준이 아닙니다. ‘진 개방’을 조심하라고 알려주세요.”

“……”

자신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이런 말을 하는 권민재가 멍청해 보였다.

“왜 이렇게까지….”

자신이라면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라면 적당히 자리를 지키며 남들에게 밉보이지 않을 정도로 행동했을 것이다.

자신이라면 목숨을 걸어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한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임해든이었다.

“글쎄요…. 뭐, 자기만족 아닐까요? 전…. 만족했습니다. 그놈 걱정은 조금 되지만….”

“그놈이라면…?”

“지구에 돌아가거든, ‘안재훈’이라는 놈을 돌보아 주십시오. 제 마지막 부탁입니다.”

“……”

“아직 어려서…. 그 힘을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고 앞뒤 안 가리고 날뛰기만 하는 놈이거든요.”

“알겠습니다. 같이 가….”

임해든이 말을 끝마치려는 순간.

같이 돌아가자는 임해든의 말은 권민재에게 이어지지 않았다.

툭.

권민재는 팔을 축 늘어뜨려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권민재가 눈을 뜨는 일은 없었다.

“민재 씨…. 민재 씨…!!”

양측의 진영이 엄청난 전투를 보인 두 사람을 향해 조용히 다가왔다.

누군가는 목례를.

누군가는 손바닥에 주먹을 가져다 대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말없이 권민재와 황호를 추모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이들은 서로에게 적이 아니었다.

그렇게 각자 다른 세계의 창을 쥔 사내 둘은 만족감에 휩싸여 동시에 눈을 감았다.

환하게 웃으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