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8화
그레이트 홀을 이용한 이계로의 진입한 인원은 총 52명.
권민재와 임해든을 포함한 숫자였다.
이들은 이계에 들어오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치 상황을 예상했다는 듯.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병력.
그중에 중심엔 강해 보이는 남성이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살아 돌아가기엔 힘들 것 같은데요…?”
“걱정하지 마세요. 한 사람이라도 돌아가야 합니다. 적어도…. 저들의 전력이라도 말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지구의 사람들이 살 수 있을 테니.”
“그렇겠죠?”
“뭐…. 규격 외의 사람이 있으니, 쉽게 전멸당하지는 않겠지만…. 민재 씨도 아시죠?”
“네? 뭘….”
“그 사람. 아니, 안이 씨를 제외하곤 저희 모두 약한 축에 낀다는 것.”
“……”
임해든이 정곡을 찌르자, 권민재는 말이 없었다.
자신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노력한 것이었다.
같은 일행으로 취급을 해주는 이안이라는 사람에게 조금 더 강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 노력한 것이었다.
비록 친해질 시간이나 가까워질 시간은 없었지만….
연락은 계속해서 주고받으며 인연을 이어온 권민재였다.
이안 그자가 악한 사람이라는 게 아니라는 이유 한 가지만으로 그를 따르는 것은 권민재에겐 충분했다.
“해든 씨는 어쩌다 안이 씨한테….”
“전 뭐, 이유 없습니다. 항상 이인자를 노리는 삶이었거든요. 그 사람을 따르면 자연스럽게 이인자의 자리는 제가 차지할 수 있을 거 같아서요. 대표는 부담스럽고 적당한 이인자의 자리가 편하거든요.”
“그 말은….”
“하하. 신경 쓸 거 없습니다. 그보다 앞에 적을….”
임해든은 권민재의 말에 답을 하지 않은 채, 얼버무렸다.
임해든과 권민재가 여유롭게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어느새 이계의 무림인은 눈앞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도…. 혼자서.
“대표는 아닌 것 같지만, 저 사람 제법 강해 보입니다.”
권민재가 전투 태세를 취하며, 자신의 창을 꽉 쥐자, 이계의 무림인은 권민재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흠…. 제법 자세가 그럴싸한 걸?”
“네놈은 이곳을 방어하는 대장인가?”
“뭐, 귀찮지만 그렇게 됐다. 우리가 정찰병을 보낸 것에 보답하는 것인가?”
“그런 셈이지.”
귀찮다는 듯. 하품하며 권민재를 향해 무림인이 움직였다.
“너. 나와 한 번 결투해 보는 건 어떤가? 네놈이 날 이긴다면 이곳의 정보와 함께 모두를 살려 보내주지.”
“나… 요?”
다짜고짜 권민재를 콕 집어 말하는 무림인의 말에 당황한 권민재가 쉽사리 대답을 못 하며 어버버거리기 시작했다.
“해든 씨. 어떻게 할까요? 이 부분은 저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닌 듯하고….”
임해든은 무림인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발동시켰다.
[스킬, ‘황룡의 금안’을 사용하였습니다.]
화악!
“많은 것을 꿰뚫지는 못하지만…. 실력 차이 정도는 가늠할 수 있으니…. 큭….”
황룡의 금안이라는 스킬을 사용하자, 두 눈이 노란빛으로 물들더니 무림인을 잠시 쳐다보자, 이내 두 눈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이렇듯. 타인의 상태 창을 들여다보는 것은 크나큰 힘이 들었다.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손오공이나 이안이 대단한 것이었을 뿐.
임해든이 피눈물을 흘리는 것도 당연했다.
“괜찮습니까!?”
“네. 아직 사용이 익숙하질 않네요. 그래도 조금은 들여다봤습니다.”
“제가 이길 수 있을까요?”
조금이 아니었다.
임해든은 확실히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주지 않는 임해든이었다.
“네.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정보를 얻어, 모두 살아가는 게 목적이니까요. 민재 씨는 강하시잖아요?”
“하하. 그런가요? 좋습니다. 그럼 제가 일대일로 기회를 잡아보도록 하죠.”
두 눈가에서 피눈물을 흘리던 임해든이 권민재를 향해 아주 조금.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희미하게 웃었다.
“그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근처에 있겠습니다.”
“네!”
권민재는 아직 어렸다.
나이가 어릴 것도 문제였지만, 전장에서의 경험도 부족한 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같은 편이라는 이유로 임해든을 너무 쉽게 믿고 말았다.
떨떠름한 기분이 들었지만, 권민재는 자신이 있었다.
미션이 진행되는 동안 자신 또한 놀고먹지는 않았다는 것을.
자신도 이미 강해질 만큼 강해졌다는 것을.
“당신이 한 말. 정말인가?”
“그렇지. 원한다면 뭐, 내 목숨이라도 걸지.”
“좋다. 내 실력을 보여주도록 하지.”
“으하핫.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기개가 제법 마음에 드는구나. 내 이름은 황호. 네놈의 창술을 보여라!!”
“내 이름은 권민재요.”
“음!”
무림인 황호는 자신의 창을 소환했다.
파칭!
“본래는 잘 안 보여주는 건데, 네놈은 제법 강해 보이니. 처음부터 전력으로 가겠다.”
등 뒤로 창 집에 세 가지의 창.
양손에는 두 가지의 창.
각기 다른 모양의 다섯 개의 창을 소환해낸, 황호가 권민재를 향해 전투 자세를 잡았다.
‘한 가지도 힘들 텐데, 많이도 들고 다니는군. 기운을 보니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나는 나의 성좌님을 믿고…!!’
황호가 다섯 개의 창을 소환해내 전투 자세를 취하자, 권민재도 자신의 신기를 소환해냈다.
역사급 무장일지라도 이 무장의 역사는 대단했다.
그로 인해 다른 역사급 무장들보다 카르마를 더욱 모을 수 있었던 장수.
파츳.
파앗!
[성좌, <창술의 대가>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의 후원자를 바라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 강해졌습니다. 당신의 무기와 함께라면 더욱…!!”
권민재가 소환해낸 창은 창술의 대가가 살아생전 사용하던 무기.
게이트를 클리어해 사용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것이었다.
“호오…. 제법 강해 보이는 창인데?”
“당신도 강해 보이는군요. 같은 창술이라니.”
“크크. 같은 창이라도 이 다섯 개의 창을 받아낼 수 있겠는가?”
“물론!!”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며 달려들었다.
파칭!!
황호의 세 개의 창이 자유롭게 공중을 헤집었다.
의식만으로 검을 다루는 어검술과 같은 능력이었지만, 조금 이상한 점은 겉보기에도 황호가 조작하는 것이 아닌, 창 그 자체에 의지가 있어 보였다.
“큭…!!”
당장 밀리는 것은 권민재였다.
신기인 ‘창술의 대가’의 창을 들고 있음에도 권민재는 하나였고, 황호는 3가지의 창과 자신의 두 손을 이용한 쌍창 술을 펼쳐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아아압!!!”
[스킬, ‘조가 창법 제7식 쌍룡 출두’을 발동합니다.]
파아아아앗!!!
기본적인 창술에서 밀리자, 권민재는 자신의 성좌가 물려준 창술을 전개했다.
성흔은 아니었지만, 게이트를 클리어하며 자연스럽게 얻은 창술이었다.
권민재가 창을 휘두르자, 두 마리의 푸른 용이 아가리를 벌려 황호를 향해 쏟아졌다.
쿠구구구구.
콰콰쾅!!!
“읍…!!! 제법….”
황호는 갑작스레 날려져 온 스킬에 당황했지만, 자신에게도 이런 스킬은 아주 많았다.
“너…. 재능 있는데? 역시, 일대 일이 옳았군. 아주 재밌어!!!”
“당신도 제법 강하군요.”
권민재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파앗!
등 뒤에 세 가지의 창이 자신의 스킬을 막는 동안 거리를 좁혔다.
“그럼….”
[스킬, ‘조가 창법 제8식 용 죽이기’를 발동합니다.]
거리를 좁힌 권민재가 공중으로 높이 뛰어올라, 지상의 황호를 향해 자신의 창을 내리꽂았다.
콰드드득.
“크흡…!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그리고
권민재는 자신에게 승기가 있다는 것을 놓치지 않고 황호를 향해 자신이 사용 가능한 최고의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 ‘조가 창법 제9식 신룡일섬’을 발동합니다.]
쿠콰콰콰쾅!!!!!
권민재가 사용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스킬이자, 이길 수 있는 연속기나 다름없었다.
신기를 사용해 제7식과 이어 8식과 9식을 사용한 것.
하지만….
희뿌연 먼지 속에서 헛기침을 하며 황호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콜록. 콜록. 이 정도뿐인가!? 먼지만 나질 않는가!”
“하…. 아무렇지도 않다고…?”
권민재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사용한 스킬과 신기였다.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 방법은 자신의 생명을 걸어야 하는 방법.
쉽사리 하지 못하는 방법이었다.
헌데….
그 방법을 제외하고서도 권민재의 필승 패턴을 가볍게 뚫고 나온 황호였다.
“다음은 내 차롄가? 죽지 말라고. 오랜만에 마음에 들었으니.”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며 황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용자, ‘황호’가 스킬, ‘천지등공’을 사용합니다.]
황호가 스킬을 사용하자, 권민재의 몸이 공중에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씩이었지만, 이내 권민재의 몸은 공중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것으로 끝나면 재미없지?”
[사용자, ‘황호’가 스킬, ‘오성무격’을 사용합니다.]
권민재가 공중에서 아무것도 못 한 채 발버둥을 치자, 황호는 그 상태를 유지하며 한 가지 스킬을 더 발동해냈다.
발동함과 동시에 황호가 공중으로 날아올라 두 손의 창을 놓으며 양팔을 벌렸다.
그리고
두 눈을 감고 말했다.
“내공 소모가 심해 잘 안 보여주는 것인데. 네놈은 마음에 들었으니. 잘 보거라. 이것이 창술의 극치다.”
두 손에서 떨어지는 두 개의 창과 등 뒤. 허공을 날고 있던 세 개의 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섯 개의 창에 마력이 일렁이며 권민재를 향해 쏟아졌다.
파파파파팟!!!
“크하악…!!”
스각!!
스걱!!
눈을 감고 양팔을 벌린, 황호의 모습은 그야말로 빈틈투성이였다.
하지만, 권민재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처음 스킬로 공중에 잡힌 것은 물론, 쏟아지는 다섯 개의 창의 연격들이 그의 살갗을 찢어놓기에 바빴다.
권민재는 그저….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이 전부였다.
“자, 어떤가!!”
“이…. 크하악…. 내가 여기서 질 것 같으냐!!!”
권민재가 이를 악물고 발버둥 쳤지만,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며 계속해서 상처만 늘어갔다.
“제법 버티는군. 이만 끝내도록 하지. 네놈은 나의 포로다.”
포로라는 말에 권민재는 생각했다.
이 상태로 잡히느니, 영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겠다고.
이런 식으로 쉽게 포로가 되느니, 모든 수단을 이용하겠다고.
“서…. 성좌님. 듣고 계십니까.”
[성좌, <창술의 대가>가 자신의 후원자를 안쓰럽게 바라봅니다.]
“하하….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저도 나름대로 노력하지 않았습니까.”
[성좌, <창술의 대가>가 그 방법은 1분도 사용하지 못할 거라 말합니다.]
“그랬었죠. 당신과 저희 ‘파장’이 맞지 않는다나….”
[성좌, <창술의 대가>가 포로가 된다면 시간을 벌 수 있을 거라 말합니다.]
“괜찮습니다. 시간을 벌어도…. 저는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는 존재는 되고 싶지 않습니다.”
이미 넝마가 되어버린 권민재에게 남은 시간은 없었다.
계속되는 다섯 개의 창의 공격은 권민재의 정신을 몇 번씩 날려버리고 말았다.
“시간이 없습니다.”
권민재는 조금씩 잃어가는 정신을 가까스로 부여잡으며 배후성을 향해 말했다.
[성좌, <창술의 대가>가 자신의 후원자가 살아남기를 바랍니다.]
파앗!!!
“뭐지…!?”
성좌, ‘창술의 대가’의 마지막 메시지와 함께 권민재의 몸에서 소닉붐이 일어났다.
당황한 것은 황호뿐만이 아니었다.
전투를 지켜보며, 당연히 죽으리라 생각했던 임해든도 권민재의 모습에 두 눈의 초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젠장. 무슨 수를 쓴 것이지? 비장의 수단인가? 이러면, 나의 계획이…!!’
그리고
거센 소닉붐의 영향으로 황호의 다섯 개의 창이 저 멀리 날려져 가며 권민재가 속박을 풀어내고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
이 전에는 없는 은빛의 갑옷과 은빛의 투구.
더욱더 세련되어 보이는 은빛의 창.
그리고 그의 왼손에는 하나의 검을 쥐고 있었다.
그의 모습이 처음과는 다르게 변해가고 있었다.
오른손에 신기, 조룡담.
왼손에 신기, 청강검.
1분, 강제 반 빙의.
성좌, ‘창술의 대가’의 힘과 기억이 권민재에게 스며들었다.
“나는, 더 이상 권민재가 아니다. 내가, 상산의 조자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