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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76화 (76/206)

제76화

손을 뻗어냄과 동시에 빛이 번쩍였다.

하지만, 처음 차정우의 기억을 들여다본 것과는 달리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았다.

“……?”

[그 기억은 무언가와 공명을 해야지만 당신의 기억에 스며들 겁니다. 지금은…. ‘가지고 있다’는 게 옳겠군요.]

“공명이라…. 당연히 알려주지 않으시겠죠?”

[미안합니다. 하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전, 당신의 적이 아니라는 것을.]

“그건 참, 믿을만한 소리네요. 그럼 현계로 보내주십시오.”

[때가 되어 다시 만나길 기다리겠습니다.]

실리아나의 말을 마지막으로 얻을 것을 모두 얻은 나는 더 이상 이곳에 남을 이유가 없었다.

* * *

새하얀 빛과 함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이민영과 진선미였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뭐라고 하는 것 같았지만….

아직은 입 모양만으로 짐작할 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게이트를 벗어난 일시적인 후유증 같은 것이겠지.

“두 분, 별일 없으셨죠? 미안합니다. 자리를 너무 오래 비워서.”

“응? 오라버니가 간 이후로 저희는 바로 현계로 나오게 되었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맞아요. 아줌마랑 오라버니를 기다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어요!”

“요것이! 또 아줌마라고!!”

“왜요!”

두 사람의 다툼을 듣던 나는 잠시 생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첫째. 나는 일곱 가지 정을 통제하는 시험을 받았다. 하지만, 그 시험에서의 시간은 모두 허상일 뿐 나의 기억 속에서의 셀 수 없는 시간은 이들에게 짧은 시간이었다.

둘째. 내가 원하는 스킬인 정령화를 제외하고 일곱 가지 정을 통제하여 생긴 ‘칠정안’을 얻었으나, 스킬 설명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다. 이 말은…. 내 스스로가 이 스킬에 대해서 알아봐야 한다는 것.

셋째. 차정우를 기다리는 단 한 사람. 이지은을 찾는 것. 지금 당장 두 사람을 만나게 해 준다거나 연락을 취할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꼼수는 어디에서든 존재하는 법.

나는 배후성을 바라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냐며 당황해합니다.]

“곧 알게 될 겁니다.”

넷째. 정령왕과 곤륜산의 서왕모의 관계. 이 부분은 내가 깊이 파고들 이야기는 아니었으나, 관련이 아예 없지는 않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정령왕과 나의 관계는 그저 지나가는 시민 도와주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다섯째. 차정우의 연인을 찾아주는 것은 약속한 이상 당연했지만, 그의 연인 ‘이지은’이라는 여인이 죽었을 가능성을 생각해야만 한다. 지금 당장이야 차정우가 나에게 호의적이지만 그녀가 죽었다면, 내가 죽인 것이 아님에도 결코 호의적으로 나를 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섯 째. 이번 게이트에서 모든 것을 클리어하며, 나는 새로운 ‘명’을 갱신해냈다. 아직 기억을 더듬어보지는 않았으나, 미션을 앞둔 지금 상황에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타이밍에 갱신한 것.

“그럼…. 슬슬 기억을 더듬어볼까?”

나는 잠시, 눈을 감고 ‘명’에 대해서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눈을 뜬 나는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두 사람. 지금부터 정신 바짝 차리세요. 미션이 바뀌었습니다.”

“네? 아직 시작도 안 한 미션이요?”

“……네. 아무튼 더 어려워진 것은 확실합니다. 이유는 알 것 같지만….”

두 사람에게 모른 척, 던지듯이 말은 했지만 미션이 변한 이유는 쉽게 알 것 같았다.

균형.

멸망 이후의 세계는 어째서인지, 균형을 중요시했다.

하지만, 그 세계에서도 ‘이레귤러’는 반드시 존재하는 법.

그 존재가 바로 나였다.

현 상황에서 나의 존재는 지나치게 강했다.

덕분에 성장하는 미션을 건너뛰고 곧바로 침공이 일어나는 것.

나 때문에 모두가 죽을 위기에 처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미션의 남은 시간은 10분.

나는 잠시간의 휴식을 취하기 위해 ‘시드 스토어’를 사용해 에너지 바, 에너지 드링크, 1분만에 1시간의 수면 효과를 주는 아이템 등을 구매했다.

“두 사람 지금은 체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드세요.”

비장한 표정으로 말을 하는 나를 이상하다고 생각한 두 사람이었지만, 군말 없이 내가 건넨 것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동안 휴식이 없던 나는 수면 효과를 주는 아이템을 사용해 8분간 눈을 감았다.

* * *

“오라버니. 일어나요. 주변의 기운이 뭔가 이상해요…!!”

나를 깨운 것은 진선미였다.

진선미는 주변의 기운에서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는지, 나를 급하게 깨웠다.

“오랜만에 푹 잔 것 같아 기분이 좋네요.”

“……정신 차리시고요.”

“네.”

정신을 차려 미션의 남은 시간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남은 시간은 30초. 예정보다 조금 더 잠에 빠져들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푹 자서 그런지, 기분이 몹시 좋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미션이 시작되려는 징조입니다.”

“아….”

겁에 질려있는 두 사람을 보니, 새삼 스포를 당한다는 것은 이런 기분일까 생각이 들었다.

이번 미션은 성장 미션을 건너뛴 침공 미션.

말 그대로였다.

현계의 모든 사람이 게이트를 클리어하듯. 다른 세계에서도 게이틀 클리어하고 점차 강해지고 있다.

레벨이 비슷한 서로의 세계는 미션을 부과해 서로 간의 침공을 하는 것.

이번 미션은 별과 별의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잠시, 차정우가 있는 지구안의 지구는 같은 별에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명’에서 보았듯 차정우의 지구와 나의 지구가 같은 편으로 참전하지는 않았다.

지구라는 별을 공유 할 뿐 세계는 다르게 인식되는 것 같았다.

곧 만나게 되겠지.

“시작됩니다.”

나의 말을 끝으로 다음 미션의 메시지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네 번째 미션 : 침공

- 게이트를 넘어 쳐들어오는 이계의 종족을 막거나 반대로 게이트를 넘어 쳐들어가 이계의 종족을 처치하십시오. 당신의 판단에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시길.

#제한 시간 – X

#클리어 조건 – 세계를 대표하는 사람을 처치할 것. (외부지구의 대표 – 이안)

#대표의 존재는 강한 순위로 결정되었다.

성공 시 – 5,000만 시드, [기본 스킬 LV MAX]

실패 시 – 사망]

예측한 부분이다. 역시, 대표는 나였군.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 떠 있는 그레이트 홀.

이곳을 통해 이계로 넘어가거나 쳐들어오는 적을 막아야 했다.

물론, 클리어 조건에 적혀 있듯 대장만을 죽이면 끝이 날 테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균형.

균형이란 같은 레벨의 조건을 맞추어 매칭되었다는 것을 뜻했다.

그 말은…. 나 혼자서는 이계의 대표를 죽일 수 없었다.

지금의 나는 강했지만, 저들은 약하지 않았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혼자서만 강해진 나와는 달리 이계인들은 꽤 괜찮은 균형으로 모두가 강해졌다.

현 상황에, 우리가 사는 지구 사람들은 강해진 사람이 몇 없을 것이 분명했다.

강해질 방법을 알고 있는 김도은과 김영광 그리고, 나의 말을 들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나의 손짓만으로도 죽음에 이를 것이었다.

즉. 이대로 부딪힌다면, 죽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러나저러나 문제는 문제네.”

나는 곧장 이민영과 진선미를 데리고 광화문 광장으로 이동했다.

* * *

광화문 광장.

이곳은 무언가 친숙하기도 했고 사람을 모으기도 편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특권을 발동시켜 모든 사람을 한곳에 모으기 시작했다.

물론, 전 세계 사람을 모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중간에 빠진 성장미션.

본래 성장미션으로 인해 세계의 통합을 이루어야 했지만, 이레귤러인 나의 강함 덕분에 그 과정을 건너뛰고 만 것이었다.

오로지 강해지려는 나의 판단 실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저지른 실수는 내가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슬슬 오네요. 그럼…. 맛보기로 저놈들부터 조져보죠.”

“네?”

저놈들이라는 말에 이민영과 진선미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미 그레이트 홀을 넘어서 백여 명의 이계인들이 우리들의 앞에 나타나고 있었다.

정찰병.

서로 간의 강함을 모르는 건 우리나 저들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 부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전투는 나 혼자서 참전할 생각이었다.

단 한 사람의 힘으로 백여 명의 이계인을 무너트린다?

저들의 대표가 듣기엔 어이없음을 넘어 함부로 쳐들어오지 못할 시간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저들의 대표가 생각이란 걸 할 줄 안다면 이야기는 달랐다.

나 정도의 강함을 가진 이 라면, 지구의 대표격 정도라 생각할 것이고 그렇다는 건 나의 강함을 가늠해 더욱더 몰아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강함을 가늠해 몰아 칠 일은 없었다.

현재의 나는, 그 누가 보아도 약하지 않은 수준이었다.

용광검을 빼 들어 공중에 날아오른 나는 백여 명의 정찰병 앞에 섰다.

“안녕?”

“……?”

자신들의 앞을 막는 한 사람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정찰병들이었다.

이계인.

이들의 외형은 인간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화 속에서나 나오는 큰 눈과 초록 피부를 가진 이계인도 더러 있었지만, 나의 눈앞에 있는 이들은 같은 지구인이라 해도 믿을 정도의 외형이었다.

개개인의 능력치는 진선미보다 강하거나 조금 약한 정도로 말 그대로 정찰하기 위해 보내온 것인지 그리 강하지는 않았다.

“네놈은 이곳을 지키는 자인가?”

“아니? 전 일개 잡병입니다만?”

시스템의 덕분에 말이 통하자, 이계인은 나를 향해 질문을 했다.

“그나저나, 되게 빨리들 왔네요? 당신들 대표는 성격이 급한가 봐요?”

“이놈…!! 말을 가려 하지 못할까!”

“말투는 왜 사극 톤인지…?”

이들과 아주 잠깐 나눈 대화였음에도 나는 알 것 같았다.

이들이 어디에서 온 누구인지를.

이들의 복장부터 말하는 본새까지.

“사형. 제가 손을 봐주겠습니다.”

“괜찮겠느냐?”

“물론입니다. 이때를 대비해 강해진 것이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나는 생각했다.

우리와는 다르게 이들은 정보를 얻어, 강해지기 위해 미션을 클리어 한 것 같다고.

그 정보는 이들의 대표라 불리는 자가 주었거나, 다른 방법으로 얻었을 테지만.

정찰병으로는 나의 적수가 될 가능성은 없었다.

“당신들…. 무림인인가요?”

“우리를 아는가?”

“아아. 알죠.”

“정보가 제법 많은 잡졸이군.”

잡졸이라는 말에 순간적으로 욱한 나는 존댓말을 집어치우기로 생각했다.

“내가 쫌.”

“다른 형제들은 오지 않았는가? 혹, 죽음을 바라는 건가?”

“아니. 죽음은 네놈들이 바라는 것 같은데? 왜 남의 지구에 함부로 쳐들어와?”

“……미친놈인가…?”

“어. 조금 전에 효과가 좋은 아이템을 먹었는데 사약 맛이 나더라고.”

“……”

쓸데없는 대화였다.

하지만, 시간을 끈 이유는 간단했다.

하나씩 모여들고 있는 나의 휘하의 사람들.

모두가 나의 강함을 알고 참전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선인의 기운을 펼쳐 대부분이 모여들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이들에게 본보기로 다시 한 번 내가 서울의 왕이라는 것을 이들에게 인식시켜 줄 참이었다.

물론, 서울과는 달리 세계의 왕들은 나를 인정하지 않을 테지만.

현 상황에서는 그들 알아서 잘 막아내면 되는 일이었다.

“자, 구경꾼도 다 모인 것 같으니, 시작해보자고.”

나의 눈앞에 이들은 파천신군 ‘윤민’과 내가 사역하는 천마신군 ‘윤문’의 무림계와는 다른 곳인, 또 다른 무림계. 만난 적은 없었지만, 나는 이들의 대표를 알고 있었고 이들이 사는 세계가 어떤 무림인지를 알고 있었다.

“한 놈은 살려줄게. 누가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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